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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대변자, 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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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대변자, 달라이 라마

조국과 민족을 위한 70여 년의 비폭력 투쟁

저자
달라이 라마
출판사
하루헌
발행일
2025.11.23
정가
30,000 원
ISBN
9791199517202|
판형
137*214*30mm
면수
336 쪽
도서상태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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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시대, 평화로 응답한 한 인간의 기록

지금껏 공개된 적이 없는 기록으로, 티베트와 그 민족을 지키기 위해 중국과 맞서 온 달라이 라마의 75년 여정을 담고 있다. 전쟁과 분열이 계속되는 오늘, 비폭력과 대화를 믿으며 평생을 살아온 한 지도자의 목소리는 한 시대의 기록을 넘어 인류의 양심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된다. 억압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은 그의 내면을 통해, 폭력의 시대에 평화로 응답하는 것이 무엇인지, 티베트의 목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묻게 된다.  

■ 세계의 양심, 75년 비폭력의 길을 기록한 공식 회고록  

‒ 세계 언론이 ‘양심의 목소리’로 불러온 달라이 라마의 75년 기록
‒ 『가디언』,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세계 유수 언론이 극찬한 공식 회고록
‒ 폭력에 굴복하지 않은 달라이 라마가 전하는 자유와 존엄의 메시지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은 전 세계 주요 언론이 “세계의 양심이 남긴 가장 개인적인 기록”이라 평가한 달라이 라마의 구순 특별 회고록이다. 1950년 중국의 침공을 열여섯에 맞닥뜨리고, 스물다섯에 조국을 떠나 인도로 망명한 그는 이후 75년 동안 폭력 대신 자비와 대화를 원칙으로 공동체를 이끌어 왔다. 이 책은 그 긴 시간 동안 어떤 선택과 갈등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는 무엇을 지켜내고자 했는지를 처음으로 온전히 드러낸다.

이 회고록에는 지금까지 공개된 적 없던 기록이 다수 등장한다. 중국 지도부와의 비공개 협상 과정과 강압적인 조약 체결의 이면, 망명 정부가 형성되며 겪어야 했던 정치적·문화적 고민들, 세계 각국과의 외교적 교섭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내밀한 증언은 이전 달라이 라마의 어떤 저작에서도 볼 수 없던 내용이다. 아울러 디아스포라 2‧3세대가 마주한 언어와 정체성의 문제, 최근 중국 내 티베트 정책이 만들어 낸 억압의 현실, 티베트의 미래와 ‘달라이 라마 제도’에 관한 달라이 라마의 분명한 견해까지 담기면서 오늘의 티베트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역사적 사건들의 나열에 머물지 않는다. 오랜 망명과 상실 속에서도 민족의 정체성과 언어, 문화, 종교를 지켜 내기 위해 어떤 결단을 내려야 했는지, 폭력의 시대에도 왜 자비를 선택했는지, 절망의 순간에도 어떻게 희망을 놓지 않았는지가 잔잔한 어조로 이어진다. 달라이 라마는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고 말하며, 갈등과 분열이 격화하는 현재의 세계가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을 우리 앞에 놓는다.

티베트의 역사는 한국 독자에게도 특별한 울림을 가진다. 식민과 분단, 언어 말살을 겪은 우리의 역사는 억압 속에서도 정체성과 존엄을 지켜낸 티베트인의 여정과 자연스럽게 겹친다. 이 책은 먼 나라의 역사를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와 공동체가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폭력으로 평화를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자비로 세상을 다시 세울 수 있다.” 이 문장은 달라이 라마의 삶을 관통하는 신념이며, 왜 지금 이 기록이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분명히 한다. 이 책은 고통의 역사를 담고 있으나 절망을 말하지 않는다. 끝내 그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지은이: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달라이 라마 성하는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티베트와 그 고유한 문명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성하는 자비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세계 평화와 환경 보호에 기여한 공로로 18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또한 미국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영예인 미국 의회 금메달을 비롯해 수많은 국제적 상을 수상했다. 티베트의 지도자로 추대된 이래, 티베트인들의 자유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한결같이 헌신해 왔다. 1959년 망명 이후에는 성하가 ‘제2의 고향’이라 부르는 인도에서 무국적 티베트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옮긴이: 안희준

고려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유공(현 SK이노베이션)과 SK네트웍스에서 자원 개발, 해외무역, 투자 업무 등을 맡았으며, SK네트웍스 무역 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은퇴 후에는 청년 교육에 힘쓰며 멘토로 활동하는 한편, 제14대 달라이 라마 공식 홈페이지 한국어판 번역과 감수에 참여하고 있다. 성하의 메시지가 한국 독자들에게 명료하게 전해지도록 문장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다듬는다.  

한국어판 서 문
서 문
들어가는 글  

1장 중국의 침략과 우리의 새로운 지배자
2장 마오쩌둥 주석과의 만남
3장 인도 방문
4장 망명
5장 지정학적 역학 관계
6장 조국의 폐허와 망명지 건설
7장 대화를 향한 서곡
8장 국제 사회의 도움
9장 천안문 사태의 파장
10장 고통에 대처하는 유용한 수련법
11장 20세기를 마감하며
12장 최종 대화 국면
13장 지난 대화의 평가
14장 희망의 끈
15장 티베트의 현재 모습과 나아갈 길
16장 호소  

감사의 글  

부록1 티베트 약사
부록2 티베트와 중국 간 장칭조약 (821-822년)
부록3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 주석과 장쩌민 주석에게 보낸 서한
부록4 티베트 민족을 위한 진정한 자치에 관한 각서
부록5 「티베트 민족을 위한 진정한 자치에 관한 각서」의 부속 문서  


참고 문헌
색인

■ 책 속으로  

‒ 1959년 3월 17일 밤, 승복을 벗고, 추바를 입은 나는 무겁게 내려앉은 어둠과 얼어붙은 밤공기를 가르며 노블링카 궁 정문을 빠져나왔다. 그 순간 시작된 망명의 시간은 어느덧 60년을 넘어섰다. (8페이지)  

‒ 티베트 문제는 내 삶의 첫 번째 과제이자 가장 깊이 책임져야 할 일이었기에 그 무엇보다 어려웠다. 나는 1950년 티베트르 침공한 중국 공산당과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이 최선을 다했다. (13페이지)  

‒ “전 세계 이목은 국제 연합군이 북한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있는 한반도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티베트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나 전혀 주목받지 못한 채 묻히고 있습니다.” (22페이지)  

‒ 나는 마오 주석에게 세 차례 서한을 보냈고, 세 번째 편지는 반드시 그의 손에 전달되도록 했다. 그러나 끝내 어떤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마오 주석과 공산당 지도부에 가졌던 마지막 기대마저 산산이 무너졌다. 그들이 우리에게 강요한 협정에서 내세웠던 모든 약속은 결국 아무런 실질적 의미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42페이지)  

‒ 티베트 고원의 군사적 요새화, 3천 킬로미터가 넘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일부 구간의 영유권 분쟁과 함께 지속되는 인도와 중국 간 안보 대치, 삼림 벌채와 광범위한 채굴로 인한 고원의 생태 파괴, 수억 명의 생존이 달린 아시아 주요 강들의 수원을 무책임하게 관리하는 현실, 이 모든 요소들을 고려할 때 중국의 티베트 침공은 단지 티베트인들만의 비극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겪는 참혹한 재앙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비극이며, 그 파괴적 여파는 수세기에 걸쳐 지속될 것이다. (79페이지)  

‒ 1970년대 초, 나는 우리 투쟁의 본질과 앞으로 나아갈 최선의 방도를 두고 숙고 끝에 몇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 중 하나는 우리가 티베트의 완전 독립이라는 목표를 고수하면 공산 중국을 상대로 장기적인 무장 투쟁까지도 검토해야 할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었고 그것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실로 자멸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102페이지)

‒ 베이징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약 30만 명의 병력이 도심에 배치되었다. 긴장이 고조되고 이 극적인 사태가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나는 시위에 나선 학생들과 그들의 열망에 연대의 뜻을 표해야 한다고 느꼈다. 주변에서는 우리가 협상을 시도하고 있는 상대가 바로 베이징인만큼 그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연대 표명은 삼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 그러나 내가 지금 침묵한다면, 앞으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발언할 도덕적 정당성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26-7페이지)  

‒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 증오에 뿌리를 둔 행동은 그 대의가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해결을 위한 토대를 파괴한다는 것을. 불교에는 자신을 괴롭히는 상대를 수행의 스승으로 여기라는 특별한 가르침이 있다. 그들의 의도가 어떠하든 그들은 우리에게 인내와 자비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의 적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스승이다. (144페이지)  

‒ 점령된 나라의 국민으로서 우리 티베트인들은 독립을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앞서 설명한 이유 때문에 나는 우리 티베트인들이 독특한 언어, 문화, 종교, 역사적 유산을 가진 민족으로서 우리의 권리와 존엄을 진정으로 보장받는다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가족 안에서 살아갈 길을 찾는 것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198페이지)  

‒ 사람들은 내 뒤를 이을 제15대 달라이 라마가 있을지 내게 자주 물어 왔다. 나는 1960년대 초부터 달라이 라마 제도의 존속 여부는 티베트인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밝혀 왔다. …… 2011년, 나는 티베트의 모든 주요 종파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열었다. 그 회의가 끝난 뒤 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고, 그 성명에서 내가 90세가 되는 해에 각 종파의 고승들은 물론이고 티베트 대중과 상의할 것이라 밝혔다. (213페이지)  

‒ 자유를 위한 우리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전체주의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체제이므로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시간은 자유를 염원하는 티베트인과 중국인 모두의 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 흔들림 없는 결단과 단결, 그리고 명확한 목표에서 비롯된 용기다. (217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