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계 최초로 육군 군종감을 역임한 김덕수 법사의 법어집이다. 저자는 14세에 출가해 당대 최고의 학승들로부터 경전을 공부했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을 졸업한 뒤 육군 군법사 2기로 임관해 군포교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저자는 군법사로 부임했던 각급 부대마다 포교의 중심 도량 역할을 하게 될 군법당을 창건했으며 역사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호국불교 사상의 이념적인 틀을 정리했다. 그 결과 지금은 군포교의 살아있는 역사로 평가받고 있다. 육군 대령으로 전역한 뒤에도 불교의 생활화와 일상 속의 불교화를 주도해왔던 저자는 군과 민간의 포교 일선에서 사자후를 토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저자는 일요 법회를 비롯해 수많은 정기 법회와 강연을 앞두고 법문할 내용을 A4용지 수천 장에 메모해 두었다. 이 책은 그런 기록들 중에서도 불교 초심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이 알아두어야 불교 교리와 상식, 주요 경전의 핵심을 정리한 내용을 엄선해 편찬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불교의 기본 교리와 용어에 담긴 의미를 간결하게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있으며, 특히 해당 주제에 어울리는 예화들을 곁들여 불교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했다.
사주 관상에 통달한 어떤 스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풍채는 썩어 비틀린 모과와 같고 키도 작으며 등이 굽은 곱추인데다 소아마비로 다리까지 절었습니다. 사주 또한 빈천한 거지팔자였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의 사주 관상을 잘 보아주어 이름을 날렸고 돈을 잘 벌어 부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큰스승으로 공경받았으며 건강했습니다. 그것을 의아하게 여긴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스승님의 관상이나 팔자는 형편없는데 어째서 그런 것들에 구애를 받지 않으시는지요?”
그 스승이 답했습니다.
“그것은 모두 부처님 덕택에 내가 인과를 배워 알기 때문이다. 내 얼굴과 몸이 이렇게 못난 것은 내가 전생에 아상이 높고 진심(嗔心)이 많아 남을 멸시해 흉보고 심술을 부렸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닫고 참회, 인욕하며 자비심으로 하심하여 늘 감사하고 만족해하며 이렇게 노력한 것이다. 내가 타고난 병약하고 단명한 상은 전생에 살생을 저질렀고 남을 불구로 만들었으며 모진 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저 : 김덕수 (在圓 金德洙,재원 김덕수)
1945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14세 때 강릉 법왕사에 청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그 뒤 운허, 탄허, 용성 스님 등 당대의 고승들로부터 경전을 익혔으며 1968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졸업 후 조계사에서 수행하던 중 1969년 제2기 군승법사로서 중위로 임관해 6군단 사령부, 월남 십자성 부대, 부산 군수사령부, 김해 공병학교, 계룡대 등 여러 부대의 군법사로 임무를 다하며 군불교 포교에 매진하였다. 또한 새로 전입한 부대마다 불이사(不二寺), 불광사(佛光寺), 금련사(金蓮寺) 등 사찰을 창건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전국에 360여 개에 이르는 군법당을 창건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관할 부대와 지역의 불교 포교의 근본도량으로 자리 잡게 하였다.
1985년에는 불교계 최초로 육군 대령으로 진급하여 군사령부 군종참모, 육군 차감, 국방부 군종실장, 군종감을 역임했다. 1993년 4월, 명예 전역 후에는 대한생활불교회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60여 개의 분원 사찰과 200여 명의 제자를 양성하여 전국적으로 불교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육군 법요집』, 『국군 법요집』, 『군인정신의 샘』, 『자아발견』, 『호국승병』 등의 저술과 논문이 있다. 또한 『금강경 강의』, 『천수경 강의』 등 다수의 경전 해설서를 편찬했다. 현재 충남 논산 불이선원(不二禪院)에서 주석하며 수행 중인 저자는 군 불교 포교의 살아있는 증인이며 역사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