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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家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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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家 사람들

영웅의 숨겨진 가족이야기

저자
정운현, 정창현 공저
출판사
역사인
발행일
2017.03.23
정가
18,000 원
ISBN
9791186828052|
판형
153x224
면수
464 쪽
도서상태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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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중근이 아닌 안중근家 사람들인가?  

이 책은 삼대에 걸쳐 안중근 일가가 우리 근현대사에 남긴 족적을 꼼꼼히 추적한 기록이다. 이를 위해 기존 자료뿐만 아니라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여러 관계자의 증언을 폭넓게 활용했다. 그동안 이회영 일가, 이상룡 일가 등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가문으로 재조명되었으나 의외로 안중근 일가의 독립운동과 행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가문을 대표하는 안중근은 ‘영웅’으로 추앙받아 많은 전기와 평전이 나오고 영화, 연극, 드라마, 소설 등으로 부활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친동생과 사촌형제, 조카 등 안중근 일가가 우리 근현대사에 남긴 발자취는 연구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망각의 역사’ 속에 묻혀 있다. 또한 안중근의 ‘영웅적 거사’만을 추앙하다 보니 오히려 그의 ‘인간적 면모’는 우리로부터 멀어졌다. 안중근 의사를 보는 우리의 인식은 단순히 ‘우국지사’로 영웅시하는 데 머물러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영웅’이 되는 순간 역설적으로 우리로부터 멀어진 셈이다. 약지가 잘린 손바닥 도장과 ‘대한국인’이라는 글씨 정도만 기억될 뿐 안중근의 사상과 그 일가의 삼대에 걸친 고투는 잊혀졌다. 이제는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테러리스트’”라거나 평생을 조국 광복에 헌신한 김구 선생에까지 “대한민국 독립에 아무런 공헌한 바가 없다”는 망언이 공개석상에서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안중근 의사가 통곡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끄럽고 안타깝게도 순국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안중근의 유해조차 찾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다. 부친의 묘는 북한에 있지만 그의 사후 독립운동에 뛰어든 안태건, 안태순 등 안 의사의 숙부를 비롯해 모친과 친동생 안정근, 안공근도 해방된 조국에 돌아오지 못했고,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항일을 하면 삼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삼대가 흥한다”는 부끄러운 현실은 안중근 일가도 예외가 아니다. 안중근의 의거 이후 그의 일가에 가해진 일제의 감시와 탄압은 가혹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대부분이 러시아,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의 대열에 합류했다. 안중근은 사형 직전 남긴 옥중 자서전에서 “우리 대에서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아들 대, 손자 대에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하고야 말리라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유지를 남겼다. 그의 유지대로 부친 안태훈부터 시작된 안중근 일가의 독립투쟁은 대를 이어 조선, 만주, 중국, 홍콩, 러시아 등지에서 다양한 이념과 노선에 기초해 이루어졌다. 3대에 걸쳐 항일독립운동과 해방 후 민주화, 통일운동에 헌신한 안중근 일가의 곡절 많은 이야기는 그 자체로 우리 근현대사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광복된 조국의 상황은 혼란스러웠다.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 안중근 일가는 또 다시 남북으로 나뉘고 미국 등지로 흩어졌다. 안중근 의사는 여전히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그의 일가는 해방 조국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에 반해 2대에 걸쳐 뚜렷한 친일행적은 남긴 윤치영 가문은 해방된 뒤에도 승승장구했다. 심지어 윤치영은 1963년에 결성된 안중근숭모회의 초대이사장까지 지냈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 왜곡된 현대사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안중근 의사는 “불의를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라”고 말했다. 역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민족은 또다시 역사의 횡포를 만날 것이고 역사를 통찰할 줄 모르는 민족은 미래로 전진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는 게 별로 없는 안중근 가문에 대한 재조명은 과거에 대한 성찰을 넘어 새로운 미래상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삼대에 걸친 안중근 일가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가 아닌 현재의 난제를 풀어나가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인간 안중근’의 면모를 부각시키고, 안중근 일가가 남긴 위국헌신(爲國獻身,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 정신을 새롭게 조명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저자 : 정운현

1959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와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하여 서울신문 차장,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등 20여 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1980년대 말부터 친일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자료수집과 취재를 해왔으며,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 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를 역임했다. 저서로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실록 군인 박정희』, 『풀어서 본 반민특위 재판기록』(전 4권), 『임종국 평전』, 『친일파는 살아 있다』, 소설 『작전명 녹두』(전 2권), 『혜주-실록에서 지워진 조선의 여왕』 등이 있다.
 
저자 : 정창현

196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4년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통일문화연구소)에 전문기자로 입사해 10년간 주로 남북 현대사, 남북관계 분야 기획취재를 담당했다. 통일부·국가기록원의 자문위원과 북한대학원대학교·국민대학교 겸임교수, 월간 『민족21』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건국대 대학원에서 강의하며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위원, 경실련 통일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KIMJONG IL OF NORTH KOREA』, 『남북현대사의 쟁점과 시각』, 『평양의 일상』, 『키워드로 본 김정은시대의 북한』 등이 있다

책을 펴내며
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안중근의 후예들

시작하며 안중근 일가의 파란만장한 백년사

남산과 안중근, 이승만, 김구, 박정희의 인연│반일 독립운동에서 통일의 상징으로

제1장
안중근 영웅의 탄생과 죽음

거사 4일 전, 하얼빈에 도착하다│’나는 신을 보는 느낌이었다’│뤼순감옥서 강도 높은 조사받다│일제의 회유공작과 안중근의 의연한 공판투쟁│사형선고 받고 항소를 포기하다│순국 당일, 종일 봄비가 내리다│안중근 의거 소식에 충격 받은 사람들

제2장
부친 안태훈 투사를 키워낸 안씨 가문의 실질적 리더

진사 안태훈 _문인의 풍모와 무인의 가풍

천주교와 민권에 눈을 뜬 안중근의 청소년 시절
글공부 대신 사냥 즐긴 호걸형 성품│부친 도와 동학농민군 진압 참가│천주교 수용과 천명사상│천주교인 안중근, 민권에 눈 뜨다│해외이주 미루고 교육·계몽운동에 나서다

해외 망명과 의병투쟁 활동
러시아 땅으로 망명하다│패배로 끝난 첫 의병투쟁│단지동맹과 블라디보스토크 결의

제3장
두 동생 정근과 공근 해외를 떠돈 독립운동가

첫째 동생 안정근 _‘전천후 독립운동...책을 펴내며
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안중근의 후예들

시작하며 안중근 일가의 파란만장한 백년사

남산과 안중근, 이승만, 김구, 박정희의 인연│반일 독립운동에서 통일의 상징으로

제1장
안중근 영웅의 탄생과 죽음

거사 4일 전, 하얼빈에 도착하다│’나는 신을 보는 느낌이었다’│뤼순감옥서 강도 높은 조사받다│일제의 회유공작과 안중근의 의연한 공판투쟁│사형선고 받고 항소를 포기하다│순국 당일, 종일 봄비가 내리다│안중근 의거 소식에 충격 받은 사람들

제2장
부친 안태훈 투사를 키워낸 안씨 가문의 실질적 리더

진사 안태훈 _문인의 풍모와 무인의 가풍

천주교와 민권에 눈을 뜬 안중근의 청소년 시절
글공부 대신 사냥 즐긴 호걸형 성품│부친 도와 동학농민군 진압 참가│천주교 수용과 천명사상│천주교인 안중근, 민권에 눈 뜨다│해외이주 미루고 교육·계몽운동에 나서다

해외 망명과 의병투쟁 활동
러시아 땅으로 망명하다│패배로 끝난 첫 의병투쟁│단지동맹과 블라디보스토크 결의

제3장
두 동생 정근과 공근 해외를 떠돈 독립운동가

첫째 동생 안정근 _‘전천후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
러시아 망명시설 밀정 처단하고 벼농사 성공│독립단체 통합운동과 청산리전투 종군│다양한 단체 활동과 투병생활│해방, 그러나 안정근은 돌아오지 않았다

둘째 동생 안공근 _‘김구의 오른팔’로 활동하다 의문의 죽음
러시아에 특사로 파견되다│한인애국단 운영과 특무공작 수행│김구와 안공근의 갈등, 사실인가│비극적 최후, 드러나지 않은 배후│남북으로 흩어진 안공근의 자녀들

제4장
부친 안태훈과 백범 김구
‘동학접주’ 김구의 청계동 피난시절│임시정부서 김구 도운 안정근·공근 형제│김구의 장남과 안정근의 딸이 혼인하다

제5장
격랑에 휩싸인 안중근의 후예들

사촌동생 안명근 _조선총독 암살시도로 세상을 놀라게 하다
조작사건으로 종신형을 선고받다│‘안악사건’과 일제의 ‘105인 사건’ 조작│석방 후의 근황과 두 아들 의생·양생

사촌동생 안경근 _김구의 특무활동과 납북협상 보좌
윈난군관학교 나와 황푸군관학교에서 교관으로 활동│세 살 때 두고 간 아들 얼굴도 몰라보다│김구의 대북연락원으로 평양 방문│통일운동한 죄로 7년형 선고

사촌동생 안봉근 _독일에서 ‘손기정 우승 축하연’ 열어주다
20대에 독일 유학 가 베를린 정착

안봉근의 차남 안민생 _해방된 조국에서 삼대가 옥살이
50년 만에 벗은 억울한 누명│숙부 안태건과 안태순도 반일운동 참가│동생과 함께 총을 들다│4·19혁명 나자 통일운동에 적극 참여

안봉근의 장남 안호생 _‘항일투사’에서 친일파로 전향
안광훈은 안호생의 가명이었다│체포되어 전향 후 과거 동지들을 잡으러 다니다

안중근 의사의 5촌 조카 안춘생 _안중근 가문에서 배출한 유일한 육사 출신
광복군 출신 초대 독립기념관장 역임│광복군서 OSS 훈련 … 정규 육사 초대 교장

안정근의 두 아들 안원생과 안진생 _박정희와의 인연으로 외교관 활동
축구 선수로 이름 날리다 임정에서 활동한 장남 안원생│‘조선공학 박사’ 출신의 외교관 둘째 아들 안진생

안공근의 두 아들 안우생과 안지생 _전쟁 중 북을 선택하다
아버지를 닮아 외국어에 능통했던 안우생│‘의문의 인물’ 성시백과의 만남│홍콩을 거쳐 평양에 가서 정착│북한에서 활발한 활동하는 후손들

안공근의 둘째 아들 안낙생 _역사의 한순간을 기록하다

안공근의 사위 한지성 _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에서 활동

제6장
안중근가의 여성 묻히고 잊힌 이름들

모친 조마리아 _“대의에 죽어라”라고 한 대쪽 같은 인품

부인 김아려 _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 고통

동생 안성녀 _서훈 받지 못한 숨은 독립운동 공로자

딸 안현생 _이토 사당 박문사에 참배하다

조카 안미생 _백범 김구의 맏며느리가 되다

제7장
차남 준생의 친일행적과 찾지 못한 유해들

안중근 의사의 장남 분도 _일제의 독살이 아닌 병으로 요절
‘박문사 참배’ 친일 논란된 차남 안준생│안준생의 친일행각에 대한 비판론과 동정론│지지부진한 안중근 유해 찾기와 묘소 없는 가족들│안중근의 ‘단지(斷指)’는 어디에 있나

제8장
동양평화론의 메시지

최후의 순간까지 동양평화론 집필에 몰두│‘앞사람이 한 일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경계한다’│동양 3국의 세력균형과 다자간 통합 역설│동양평화론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안중근 일가의 유산은 남과 북을 잇는 가교

맺으며
독립운동 최고 명문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위하여

참고 문헌
책을 펴내며
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안중근의 후예들

시작하며 안중근 일가의 파란만장한 백년사

남산과 안중근, 이승만, 김구, 박정희의 인연│반일 독립운동에서 통일의 상징으로

제1장
안중근 ? 영웅의 탄생과 죽음

거사 4일 전, 하얼빈에 도착하다│’나는 신을 보는 느낌이었다’│뤼순감옥서 강도 높은 조사받다│일제의 회유공작과 안중근의 의연한 공판투쟁│사형선고 받고 항소를 포기하다│순국 당일, 종일 봄비가 내리다│안중근 의거 소식에 충격 받은 사람들

제2장
부친 안태훈 ? 투사를 키워낸 안씨 가문의 실질적 리더

진사 안태훈 _문인의 풍모와 무인의 가풍

천주교와 민권에 눈을 뜬 안중근의 청소년 시절
글공부 대신 사냥 즐긴 호걸형 성품│부친 도와 동학농민군 진압 참가│천주교 수용과 천명사상│천주교인 안중근, 민권에 눈 뜨다│해외이주 미루고 교육·계몽운동에 나서다

해외 망명과 의병투쟁 활동
러시아 땅으로 망명하다│패배로 끝난 첫 의병투쟁│단지동맹과 블라디보스토크 결의

제3장
두 동생 정근과 공근 ? 해외를 떠돈 독립운동가

첫째 동생 안정근 _‘전천후 독립...책을 펴내며
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안중근의 후예들

시작하며 안중근 일가의 파란만장한 백년사

남산과 안중근, 이승만, 김구, 박정희의 인연│반일 독립운동에서 통일의 상징으로

제1장
안중근 ? 영웅의 탄생과 죽음

거사 4일 전, 하얼빈에 도착하다│’나는 신을 보는 느낌이었다’│뤼순감옥서 강도 높은 조사받다│일제의 회유공작과 안중근의 의연한 공판투쟁│사형선고 받고 항소를 포기하다│순국 당일, 종일 봄비가 내리다│안중근 의거 소식에 충격 받은 사람들

제2장
부친 안태훈 ? 투사를 키워낸 안씨 가문의 실질적 리더

진사 안태훈 _문인의 풍모와 무인의 가풍

천주교와 민권에 눈을 뜬 안중근의 청소년 시절
글공부 대신 사냥 즐긴 호걸형 성품│부친 도와 동학농민군 진압 참가│천주교 수용과 천명사상│천주교인 안중근, 민권에 눈 뜨다│해외이주 미루고 교육·계몽운동에 나서다

해외 망명과 의병투쟁 활동
러시아 땅으로 망명하다│패배로 끝난 첫 의병투쟁│단지동맹과 블라디보스토크 결의

제3장
두 동생 정근과 공근 ? 해외를 떠돈 독립운동가

첫째 동생 안정근 _‘전천후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
러시아 망명시설 밀정 처단하고 벼농사 성공│독립단체 통합운동과 청산리전투 종군│다양한 단체 활동과 투병생활│해방, 그러나 안정근은 돌아오지 않았다

둘째 동생 안공근 _‘김구의 오른팔’로 활동하다 의문의 죽음
러시아에 특사로 파견되다│한인애국단 운영과 특무공작 수행│김구와 안공근의 갈등, 사실인가│비극적 최후, 드러나지 않은 배후│남북으로 흩어진 안공근의 자녀들

제4장
부친 안태훈과 백범 김구
‘동학접주’ 김구의 청계동 피난시절│임시정부서 김구 도운 안정근·공근 형제│김구의 장남과 안정근의 딸이 혼인하다

제5장
격랑에 휩싸인 안중근의 후예들

사촌동생 안명근 _조선총독 암살시도로 세상을 놀라게 하다
조작사건으로 종신형을 선고받다│‘안악사건’과 일제의 ‘105인 사건’ 조작│석방 후의 근황과 두 아들 의생·양생

사촌동생 안경근 _김구의 특무활동과 납북협상 보좌
윈난군관학교 나와 황푸군관학교에서 교관으로 활동│세 살 때 두고 간 아들 얼굴도 몰라보다│김구의 대북연락원으로 평양 방문│통일운동한 죄로 7년형 선고

사촌동생 안봉근 _독일에서 ‘손기정 우승 축하연’ 열어주다
20대에 독일 유학 가 베를린 정착

안봉근의 차남 안민생 _해방된 조국에서 삼대가 옥살이
50년 만에 벗은 억울한 누명│숙부 안태건과 안태순도 반일운동 참가│동생과 함께 총을 들다│4·19혁명 나자 통일운동에 적극 참여

안봉근의 장남 안호생 _‘항일투사’에서 친일파로 전향
안광훈은 안호생의 가명이었다│체포되어 전향 후 과거 동지들을 잡으러 다니다

안중근 의사의 5촌 조카 안춘생 _안중근 가문에서 배출한 유일한 육사 출신
광복군 출신 초대 독립기념관장 역임│광복군서 OSS 훈련 … 정규 육사 초대 교장

안정근의 두 아들 안원생과 안진생 _박정희와의 인연으로 외교관 활동
축구 선수로 이름 날리다 임정에서 활동한 장남 안원생│‘조선공학 박사’ 출신의 외교관 둘째 아들 안진생

안공근의 두 아들 안우생과 안지생 _전쟁 중 북을 선택하다
아버지를 닮아 외국어에 능통했던 안우생│‘의문의 인물’ 성시백과의 만남│홍콩을 거쳐 평양에 가서 정착│북한에서 활발한 활동하는 후손들

안공근의 둘째 아들 안낙생 _역사의 한순간을 기록하다

안공근의 사위 한지성 _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에서 활동

제6장
안중근가의 여성 ? 묻히고 잊힌 이름들

모친 조마리아 _“대의에 죽어라”라고 한 대쪽 같은 인품

부인 김아려 _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 고통

동생 안성녀 _서훈 받지 못한 숨은 독립운동 공로자

딸 안현생 _이토 사당 박문사에 참배하다

조카 안미생 _백범 김구의 맏며느리가 되다

제7장
차남 준생의 친일행적과 찾지 못한 유해들

안중근 의사의 장남 분도 _일제의 독살이 아닌 병으로 요절
‘박문사 참배’ 친일 논란된 차남 안준생│안준생의 친일행각에 대한 비판론과 동정론│지지부진한 안중근 유해 찾기와 묘소 없는 가족들│안중근의 ‘단지(斷指)’는 어디에 있나

제8장
동양평화론의 메시지

최후의 순간까지 동양평화론 집필에 몰두│‘앞사람이 한 일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경계한다’│동양 3국의 세력균형과 다자간 통합 역설│동양평화론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안중근 일가의 유산은 남과 북을 잇는 가교

맺으며
독립운동 최고 명문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위하여

참고 문헌

왜 안중근이 아닌 안중근家 사람들인가?

이 책은 삼대에 걸쳐 안중근 일가가 우리 근현대사에 남긴 족적을 꼼꼼히 추적한 기록이다. 이를 위해 기존 자료뿐만 아니라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여러 관계자의 증언을 폭넓게 활용했다.
그동안 이회영 일가, 이상룡 일가 등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가문으로 재조명되었으나 의외로 안중근 일가의 독립운동과 행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가문을 대표하는 안중근은 ‘영웅’으로 추앙받아 많은 전기와 평전이 나오고 영화, 연극, 드라마, 소설 등으로 부활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친동생과 사촌형제, 조카 등 안중근 일가가 우리 근현대사에 남긴 발자취는 연구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망각의 역사’ 속에 묻혀 있다.
또한 안중근의 ‘영웅적 거사’만을 추앙하다 보니 오히려 그의 ‘인간적 면모’는 우리로부터 멀어졌다. 안중근 의사를 보는 우리의 인식은 단순히 ‘우국지사’로 영웅시하는 데 머물러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영웅’이 되는 순간 역설적으로 우리로부터 멀어진 셈이다. 약지가 잘린 손바닥 도장과 ‘대한국인’이라는 글씨 정도만 기억될 뿐 안중근의 사상과 그 일가의 삼대에 걸친 고투는 잊혀졌다. 이제는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테러리스트’”라거나 평생을 조국 광복에 헌신한 김구 선생에까지 “대한민국 독립에 아무런 공헌한 바가 없다”는 망언이 공개석상에서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안중근 의사가 통곡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끄럽고 안타깝게도 순국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안중근의 유해조차 찾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다. 부친의 묘는 북한에 있지만 그의 사후 독립운동에 뛰어든 안태건, 안태순 등 안 의사의 숙부를 비롯해 모친과 친동생 안정근, 안공근도 해방된 조국에 돌아오지 못했고,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항일을 하면 삼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삼대가 흥한다”는 부끄러운 현실은 안중근 일가도 예외가 아니다. 안중근의 의거 이후 그의 일가에 가해진 일제의 감시와 탄압은 가혹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대부분이 러시아,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의 대열에 합류했다.
안중근은 사형 직전 남긴 옥중 자서전에서 “우리 대에서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아들 대, 손자 대에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하고야 말리라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유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