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환 수필집『그 곳 봄은 맛있었다』. 최세환 작가의 수필은 서술로만 치우치기 쉬운 수필 현장에서, 상당 부문 서술 위에 묘사를 접목시키거나 강화하여 읽는 독자들의 입맛을 만족시켜 주고 있다. 그런데다, 아이러니와 패러독스와 해학을 적절히 활용하여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아이러니를 통해 사건의 의미를 뒤집어 버리는 효과를 얻고 있고, 패러독스를 통해 모순된 구조가 오히려 더 감동을 주고 있고, 해학을 통해 시종일관 웃음 속으로 몰아가 서먹서먹한 관계의 벽을 순식간에 허물어 버리고 있다. 또한, 긴장을 깔아놓아 끝까지 읽게 만드는 기법도 활용하고 있다. 일단 궁금하게 하여 다음 페이지로 눈길을 유도한 다음 독자가 마음 열고 다가서면 감동과 의미를 재빨리 심어 버리는 기법, 이렇듯 아주 세련된 기법이 쓰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감칠맛 나는 묘사를 서술 속에 끼워 놓아, 수필 문장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 최세환은
광주 출생
현재 신한 ENG 이사
[문학공간] 수필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매일 시니어 문학상 수상
직지 문학상 대상 수상
뇌연구원 문학상 장원 수상
곡성 작은도서관 백일장 수상
한실문예창작 회원
한꿈 문학회 회원
덕스런 문학회 회원
탐스런 문학회 회장
최세환 수필집 출간을 축하하며 - 박덕은 _4 작가의 말 _8
누름돌_16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_22
은행잎에 묻혀 숨고 싶다_28
미네르바의 부엉이_33
비 오는 날의 만남_39
헬스장의 단상_46
도둑놈_50
시간의 새_58
꿀단지_64
김가네 김밥의 인연_70
사랑하는 사람아_76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_82
오두방정_89
순덕이 누님_96
황토 무시_103
통명산 자드락의 행복한 둥지_110
그곳 봄은 맛있었다_117
보리피리_126
유도의 여백_133
자유의 종은 울렸다_142
산까치 우는 봄의 길목에서_155
여름밤에 일어난 일_161
똑같네_168
밤낚시_174
복동이_179
보고 싶다_185
목소리_193
너, 거기서 뭐하냐_199
그랑께 어째서_206
홍 대리_212
아름다운 만남_219
작은 여행길 법성포_225
진도 오일장_230
보름녀_238
위대한 천재, 직지_247
바람피운 감나무 숲속의 텃_253밭
단상_260
개망초 꽃밭 속으로의 귀국_263
목사님입니까?_270
개코_276
최세환 수필집 출간을 축하하며
바보 같은 사람, 시암골 최세환 작가!
누군가 이렇게 말하고 싶으리라. 그만큼 그는 지구인은 아닌 듯하다!
처음 그와의 만남은 어느 조그만 마을 도서관이었다. 우리는 한실문예창작이라는 문학 동아리를 만들어, 장애인센터의 구석에 마련된 도서관에서 시, 수필, 동화 등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누구 소개로 우리 문학동아리에 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자세한 안내를 했지만 전화만 길어져, 결국 문우 한 사람이 건물 밖으로 나가 모셔 오게 되었다.
최세환 수필가의 첫인상? 한마디로 무뚝뚝한 사나이 그 자체였다. 함께한 첫 문학 수업 내내 굳은 표정을 좀처럼 풀지 않았다. 긴장된 시간이었다. 그러던 그가 변하기 시작했다. 따스하고 깊이 있는 수필가로서 빛을 발하더니, 시, 시조, 동시, 가사문학, 동화, 소설까지 영역을 넓혀 무지개 빛발 같은 작품들을 마구 쏟아냈다. 그것도 오래도록 문장 훈련을 받아 온 작가인 양 멋진 작품들을 매번 손에 들고 왔다.
한실문예창작반에 입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매일 시니어 문학상》 수상을 시작으로, 《직지 문학상》 대상, 《뇌연구원 문학상》 장원, 《곡성 작은도서관 백일장》, 《수필 부문 신인문학상》 등을 연달아 수상하였다.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요즘도 성실과 노력과 정성을 다해 집필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사 문학에도 손을 대어 수준 높은 작품을 쓰고 있다. 그 저력에 우리 모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닉네임은 ‘시암골’이다. 토속적이면서 흙내음이 물씬 풍기는 이 닉네임에서 그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다. 마치 막걸리 같이 텁텁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있는 사람, 날이 갈수록 매력이 넘치는 사람,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 같은 사람, 전쟁터에 나가면 맨 앞에 서서 깃발 들고 질주할 것 같은 사람, 찬찬히 바라보면 장군 같은 품위가 발견되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시암골’, 최세환 수필가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점은 그의 문장력이다. 서술과 묘사와 대화가 골고루 배치되어야 하는 수필에서, 그는 아주 정교한 문장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서술로만 치우치기 쉬운 수필 현장에서, 상당 부문 서술 위에 묘사를 접목시키거나 강화하여 읽는 독자들의 입맛을 만족시켜 주고 있다. 그런데다, 아이러니와 패러독스와 해학을 적절히 활용하여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아이러니를 통해 사건의 의미를 뒤집어 버리는 효과를 얻고 있고, 패러독스를 통해 모순된 구조가 오히려 더 감동을 주고 있고, 해학을 통해 시종일관 웃음 속으로 몰아가 서먹서먹한 관계의 벽을 순식간에 허물어 버리고 있다. 또한, 긴장을 깔아놓아 끝까지 읽게 만드는 기법도 활용하고 있다. 일단 궁금하게 하여 다음 페이지로 눈길을 유도한 다음 독자가 마음 열고 다가서면 감동과 의미를 재빨리 심어 버리는 기법, 이렇듯 아주 세련된 기법이 쓰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감칠맛 나는 묘사를 서술 속에 끼워 놓아, 수필 문장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수필이 너무 서술로만 치우칠 때 맛이 없다. 그렇다고 대화로만 이어져도 싱겁다. 묘사만으로 이어져도 지루할 수 있다. 그런데 최세환 수필의 문장은 격이 다르다. 한 문장 한 문장 소홀함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격조 높은 문장과 위트와 해학과 긴장으로 독자의 마음을 쥐락펴락 이끌어 가고 있다.
운문에서도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최세환 작가! 우리 모두가 좋아하고, 부러워하고, 또 닮고 싶은 작가임에 틀림없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면서, 이 땅에 독자들이 영원히 사랑하고 아껴줄 명편들을 많이 남겨 주기를 바란다.
문학도들에게 문장 훈련을 시킬 때, 최세환 수필집으로 하도록 권하고 싶다.
최세환 작가의 세계는 이제 출발이다. 그 도착점이 어디일지는 모르겠다. 머지않아 우리 모두 기억하는 좋은 작가, 알찬 작가, 배우고 싶은 작가, 계속 노력하는 작가, 자랑하고픈 작가로 알려지게 될 것 같은 최세환 수필가! 그와 수시로 만나 밝게 인사하며 장난치며 깔깔대며 지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냥 행복하다.
이 멋진 작가가 매주 박덕은 문학관, 박덕은 미술관에 와서 문학을 토론하고 같이 식사하고 함께 자연과 시심을 노래하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이 행복이 깨어나 훌쩍 달아나지 않고 천년만년 우리 곁에 알콩달콩 남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
- 해바라기들이 아기자기하게 피어 있는 박덕은 문학관에서
한실 문예창작 지도 교수 박덕은
■ 작가의 말
달러스로 가는 길 옆 좌석엔 착한 사위가 말없이 앉아 있었다. 영주권을 포기하고 4년여의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헉헉거린 휴스턴의 뜨거운 호흡을 담고 나는 15시간을 넘은 여행을 했다. 15시간의 여행은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공항장해와 통증 때문에 좌석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기도하며 비행기의 좁은 통로를 긴 시간 걸어 다녔다. 비행기는 몹시도 추워 겨울옷을 걸친 땅 인천 국제공항에 나를 내려놨다. 내가 귀빠진 날이었다.
2년 동안 복용해 왔던 수면제를 먹지 않고 잠들 수 있을까? 불면의 날이 끝날 수 있을까? 한국을 밟던 순간 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다.
마중 나온 친구가 불편해진 나의 몸뚱이를 보고 착잡한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훗날 친구는 말했다. 그때 내 모습은 몹시 절망적이었다고.
친구의 사랑을 흠뻑 느끼며 아무 생각 없이 서울에서 보름 동안 보냈다. 물론 수면제를 끊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는 남쪽 광주, 내 고향에 왔다.
나의 내면을 파먹고 있는 병을 알기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을 노크 했으나 예약 날짜를 잡기 어려웠다. 3개월여의 기다림 끝에 겨우 예약 날짜를 받았다. 나의 예상대로 결과가 나왔다. 파킨슨병이라고 했다. 슬프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을 마음이 마실 나갔는지 덤덤하기만 했다.
어두운 방, 불을 켜고 주춤거린 내 육신을 이불 위에 던졌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많이 울었다.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다는 병이 내 몸에 아무런 허락도 없이 떡 버티고 자리 잡고 있다니!
내 수필집이 세상에 부끄러운 낯을 내놓았다. 기적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나의 삶은 자랑할 것 없는 아련한 칠십 평생의 삶이었다.
여기에 올라온 이야기들은 나의 교만, 아픔, 슬픔, 괴로움, 사랑 등등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발가벗고 있다.
나의 수필집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하며 설마 설마 입맛 다시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내가 글 쓰는 작가가 됐다는 것을 어찌 믿을 것인가. 나는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나의 세계에서 내 눈과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
나는 지금 내 안의 '다른 나' 때문에 지난날의 모든 사회생활 속에서 맺었던 인간관계를 단절한 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지금 하루하루 변해 가는 내 몸을 날카롭게 주시하며 통증과 경직을 내려치며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간혹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올바른 길인가? 이런 생각들이 몰려들 때면 나는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곤 한다. 나를 숨기기 위해서 내가 사랑하고 의지했던 선배, 친구, 동료들을 외면하고 4년여를 숨어 살고 있다. 2년여의 문우들과의 만남에서도 나의 병을 숨기며 생활했다.
깊은 밤 나의 몸속에 있는 사람다운 것들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 버려 내가 아닌 내가 부스러지며 운다. 그러나 분명히 울고 있는 자는 나다. 내 의지로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자괴감으로 팔다리가 꺾인 풍뎅이가 되어 뱅글뱅글 돌 뿐이다.
나는 내 안에서 성장하면서 휘몰아치던 이야기들의 얼굴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늙고 병든 후에 우리의 삶 자체가 사랑인 것을 알게 됐다. 사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행복은 그것을 실천함에 있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글을 더 쓸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계속 글을 쓸 것이다. 내 모습은 분명히 혐오스럽게 변할 것이며 내 의지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의 모든 것이 나에게 소중하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없으나 무엇이든 할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이 고통을 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고통은 나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나는 파킨슨병환자다.
하늘에 감사드린다.
글 쓰는 은혜를 주셨다는 것을 늙고 병든 후에 알게 하심을…….
내 안의 이야기가 이렇듯 하얀 종이 위에 웃고 누워 있다.
예쁘고 기쁘다.
이 수필집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병든 늙은이를 격려하고 채찍질하며 사랑으로 이끌어 주고, 무더위 속에서 교정까지 맡아 수고해 주신 한실문예창작 지도 교수 낭만대통령 박덕은 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또한 교정을 봐 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은 운거 이호준 시인님과 토끼마녀 정은희 동화작가님께도 고마움을 바친다.
아정 김영순 시인님과 야나 유양업 시인님을 비롯한 탐스런 문학회 문우들, 옥구슬 황귀옥 시인님과 동그라미 전지현 시인님을 비롯한 온스런 문학회와 덕스런 문학회 문우들께도 감사드린다. 이외에도 한실문예창작 문우님들과 나를 한실문예창작 수업에 참가토록 길을 안내해 주신 새아씨 김정순 시인님, 나의 귀국 소식을 들뜬 마음으로 듣고 찾아와 준 멋쟁이 정찬선, 오정우 교수, 그리고 친구 창남을 비롯한 친구들의 고마움과 감사함을 어떻게 갚아야 하나. 큰 숙제다.
처음 탐스런 문학회를 찾던 한 시간여, 전화 걸고 전화 받고, 포기하고 돌아서는 순간 반가운 웃음이 서 있었다. 나를 안내했다. 글쓰기의 기본을 몰라 교수님을 난감하게 했다. 그때 진실로 반가워한 웃음은 땡감 먹은 나에게 된장국을 주었다. 염치없이 맛있게 먹었다. 글의 된장국을 맛있게 끓이는 법을 가르쳐 준 치우 신명희 시인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사단법인 파킨슨 행복쉼터 이사장님께도 감사드린다.
끝으로, 내 가족에게 이 기쁨과 행복을 살포시 바친다.
수필가 최세환
책속으로
아버지를 따라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는 꼭 나의 탯자리 백부님 댁에 갔다. 자자 일촌인 고향, 내 또래는 모두가 형과 동생들이었다.
겨울방학 때는 뒷산에서 관솔 꺾어 불피우며 고구마 구워 먹고 검정 칠해진 입 주둥이를 보고 서로 웃고 이 집 저 집이 내 집인 양 두루치며 먹고 잤다.
통무시로 담근 살얼음 낀 싱건지의 맛은 나에게 밥 먹을 시간을 기다리게 했다.
여름방학 때는 형들 따라 남의 동네 참외, 수박 서리하는 재미에 빠졌다. 수박 서리를 형들과 나갔다. 큰 수박 덩이를 찾기 위해 더듬고 한참을 기어갔다.
어둠 속에서 담뱃불이 크게 일어서며 쇠꼬챙이를 끌며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누구요?”
“서리꾼이오.”
도적놈이 그렇게 말할 순 없질 않는가. 삼십육계 도망쳤다. 하필 쫓겨 도망을 간 것이 울퉁불퉁 고랑을 쳐 무시 씨를 파종해 놓은 밭이었다. 도망가다 높은 턱에 걸려 넘어지고 일어나 도망가다 또 턱에 걸려 넘어지고 쫓고 쫓기는 심야의 소동에 무시 밭만 엉망진창이 돼 버렸다.
다음날 이른 아침 잠결에 된불 맞은 벅구가 펄쩍 뛰며 깨갱거리듯 친척의 숨넘어간 소리가 들렸다.
“성님, 환장하겄소. 뭔 염병할 새끼들이 달밤에 무시밭에서 춤을 췄을까라, 엉망진창 돼 부렀소. 미쳐 불겄소. 올 무시 농사 포기해 불라요.”
그날 밤 도망가는 서리꾼이나, ?는 자나, 씨 품고 있는 친척 무시밭은 재수에 옴 붙은 밤이었다.
《황토 무시》 중에서
어젯밤 시위에서도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진압과 폭력에 시민들이 흩어지면서 도망쳤다. 충장로 쪽으로 전일빌딩 골목 쪽으로 나는 금남로 대로변 쪽으로 뛰고 또 뛰기 시작했다.
마지막 발악인 듯 공수부대가 착검한 채 곤봉을 휘두르면서 무차별 두들기며 쫓아왔다.
“옴에, 얼릉 피하쇼잉, 잽히면 죽은께. 저것들이 우리 군인들 맞소? 우리가 빨갱이요. 뭔 죄를 졌소. 미쳐 불겄소. 하여간 멀리 도망칩시다.”
우두둑 우박 떨어지는 군화 발소리와 시민들의 허겁지겁 흩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금남로 거리를 나는 뛰었다.
‘아따메 죽겄는거. 죽일 놈들, 죽일 놈들.’
입안에서 맴도는 분노와 차오르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뛰고 뛰었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은 것을 얼마나 후회하며 도망을 갔는지 모른다.
유동 삼거리까지 도망쳤다. 걸어서 양동 시장 쪽으로 갔는데 시민들이 무슨 종이쪽지를 주워 보면서 웅성거렸다.
늦은 밤 희미한 백열등에 비친 파출소는 무당 굿판이 끝나고 휑하니 비어 있는 흉가 같았다. 거기에는 누군가에 의해서 파헤쳐진 무덤같이, 흩어진 비밀들이 발가벗은 몸을 감추지 못하고 흩날리고 있었다. 주민들의 사찰 기록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우리가 항거하고 있는 독재 정권은 시민들의 알몸들을 속속들이 내다보고 있었다.
“와, 이 새끼들, 인자 본께 우리를 깨 할닥 베께 놓고 염병 지랄을 했구만잉. 완마, 웃겨 분 세상을 우리가 살았네그려.”
여기저기서 사찰 기록물을 보면서 군부 독재의 믿기질 않는 실상에 욕설로 침을 뱉었다.
패대기쳐 버린 파출소를 지키고 있는 담쟁이는 찔레꽃이었다. 오늘의 함성을 기억한 꽃망울들은 오월이 지나면 눈물 나게 시린 흰 꽃으로 필 것이다.
--중략--
끓어오르는 분노 속에서 내가 참여한 역사적인 사건 위에 서있는 나를 정리하고 싶었다. 인간이 참으로 바른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지혜, 용기, 욕망, 정의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생각하는 용기는 무엇인가?’
‘참으로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에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 진정한 기개이다.’
‘정의는 무엇인가?’
‘참으로 사랑할 것을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을 것을 사랑하지 않고, 그가 지닌 어떤 고유한 몫을 돌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핏방울처럼 진한 주체성을 가지고 목적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살아 있다고 모든 것이 결코 산 것은 아니다.
나는 군중 속을 헤집고 내려오면서 외쳤다.
“대한민국 만세!”
고개는 뒤로 젖혀 어둠 속 별을 보고, 팔을 벌려 하늘을 움켜쥐고, 상의 단추는 풀어져 있었다.
“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뿌듯한 열정에 흥분하며 뛰고 있는 내 양심을 꼭 껴안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승리했다. 자유의 종을 울려야 한다.”
중앙 교회를 찾아 들어갔다.
“계십니까, 계시오?”
“어쩐 일로……?.”
“종지기신가요?”
나의 흥분된 언행에 그가 잠시 머뭇거렸다.
“며칠 동안 항거한 시민들이 오늘 밤 승리했소, 도청 함락도 시간문제요. 이제 자유의 종을 울립시다. 종을 울려 주시오.”
나의 제안에 머뭇거리던 종지기에게 군중들이 종을 울리라고 재촉했다. 종지기가 높다랗게 걸려 있는 종에 매단 줄을 힘껏 잡아당겼다.
나 또한 역사적인 이 환희의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싶어 종지기와 함께 줄을 힘껏 잡아당겼다. 시민들이 힘을 보탰다.
“여러분 종소리가 들린가요?”
종소리를 듣기 위해 뭉클거린 마음들이 저항의 함성을 삼키고 있었다.
종소리는 분명히 억압된 가슴을 풀어헤치고 맑은 웃음의 빛살로 만든 비둘기를 밤하늘에 날려 보냈다. 함성에 묻힌 종소리는 긴 듯 짧은 몸짓으로 날고 있는 머슴둘레꽃 꽃술이 되어 느리게 퍼지고 있었다.
잠시 후 넓고 높은 곳에서 상쇠 머리의 상모 꽃 돌기가 회를 친 기쁨을 몰고 와서 점점 큰 원을 그리며 밤하늘을 쓰다듬고 있었다.
감추어진 아버지의 사랑, 항상 부족하다며 새벽을 여는 어머니의 마음 같은 따뜻함에 펄펄 울 수밖에 없는 종소리였다.
그 울림은 진양조 가락에 고개 숙여 발끝을 본 고운 맵시의 이녁들의 울림이었다. 기어이 계면조 가락의 슬픔으로 가슴을 풀어 버린 종소리는 빛고을 밤하늘을 우도 가락의 장엄함으로 품에 안고 넓게 팔 벌리면서 너울너울 춤추며 긴 소맷자락을 펄럭이고 있었다.
나는 석가탑의 속울음을 울었다. 그렇게 슬프고 서러웠으나 고립무원의 광주가 자랑스러웠다. 진정한 용기와 정의로움으로 생존을 걷어차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았고 우리는 하나였으며 형제였다. 나눔을 실천했고 자유의 소중함을 알았고 외로움을 배웠다.
새벽녘 집에 오니 아내가 뜬눈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눈시울 붉히며 손을 잡았다. TV에서는 똥걸레 찬 저능아 지식인이 광주를 간첩들의 사주를 받고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남대문 출입구 문지방이 오동나무로 되어 있다고 했다. 광주 시민들의 집에 있는 장독대 항아리 속 간수 빠진 십년 묵은 소금이 썩어서 구더기가 득실거린다고 했다.
이 시간 군부 독재자들은 여유로움이든 초조함이든 어찌됐든 간에 술판을 벌리고 있겠지…….
평조 가락의 화평한 종소리가 중모리에서 중중모리를 넘어 자진모리로 휘몰아치면서 무등산을 감아 돌고, 상쇠가 상모를 돌리며 흥을 맞추는 굿판을 품고 깊은 잠 속으로 들어갔다.
아카시아꽃향은 서럽게 종소리를 보듬고 있었다. 금남로에서 도청을 점령할 시민과 철수할 공수부대가 뒹굴며, 분수대에서 붉은 피가 솟구쳐 도청 앞을 물들이는 꿈을 꾸고 있었다.
이팝나무의 푸른 잎은 흰 꽃에 얼굴을 가리고 떨고 있었다.
《자유의 종은 울렸다》 중에서
우리는 섬 주민들을 대접한다고 남은 곰보병 양주는 사양했다. 판자로 만든 감옥에 교수형 집행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들이 잡아온 16인의 한 되짜리 소주만 집행하기로 했다.
밥상을 물리친 후 섬주민 젊은이가 북채를 들고 한가락 뽑겠다고 했다. 북채로 북 옆구리를 힘주어 때리고 치고 등짝을 토닥토닥 튕기는 솜씨로 호남가를 멋들어지게 뽑아냈다.
“아따, 이양반 여자 깨나 죽였겄네. 북 솜씨, 소리 솜씨 기막히오. 엣쇼, 한 잔 받으쇼.”
얼큰히 오른 돼지 친구가 맛있는 표정으로 조그만 잔에 양주를 채웠다.
“워메, 감질나서 어디 묵겄소. 여기다 까뜩 따라주쇼.”
밥뚜껑을 내밀었다.
“독한 술이요. 조금씩 마십시다.”
“우리 섬 촌놈들도 이런 술 많이 묵어라. 흥건히 얼른 따쇼.”
방 안은 막소주와 양주가 뒤엉키기 시작해 갔다. 점잖히 먹던 술이 슬슬 옷을 벗기 시작했다. 질세라 북채가 소리꾼의 목을 툭툭 건들며 북의 옆 볼따귀를 두들기니 북이 낯바닥을 잡고 슬피 울었다. 소리꾼이 작심한 듯 한바탕 궁구니, 넉넉함으로 자리잡고 있는 슬픔 속으로 나를 몰아갔다.
궁둥이 흔들고 바람피우던 뺑덕 엄씨, 젊은 봉사와 밤 짐을 쌌다, 내 사랑 뺑덕 엄씨, 허공에 팔 저으며 심봉사 몸부림친다. 쪽박 찬 심봉사 홀로 있어 슬프다고 계면조 가락으로 목청껏 슬픔을 뽑아냈다.
방안의 슬픈 발림이 눈발을 헤치면서 검게 물들어 버린 ‘모도’ 뒷산으로 흩어졌다.
“와, 아니, 진도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북도 잘 하고 다들 한가락씩 하요?”
슬픔조차도 아름다운 것으로 걸러내는 남도창의 멋을 한껏 먹으며 내 마음을 전했다.
밖은 어둠이 문풍지 자락을 붙들고 있는 눈발들을 품에 안고 깊은 시간 속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판자로 엮어진 감옥 안에 갇혀 있던 소주병들이 목 틀려 빈병이 되어 여기저기 뒹굴기 시작했다.
“어이, 박 선생, 그것 언제 나온당가. 얼른 가져오라 하소. 언능.”
내 친구 돼지는 온통 머릿속에 그것이 나오기만 기다린 것 같았다. 머리를 도리도리 치고는 취한 몸으로 손짓하며 박 선생을 불렀다.
나도 순간 여기 온 목적이 이것이 아닌데,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을 모으려고 애를 썼다. 빙글 빙글 돌고 있는 방안의 재미가 꼴깍하며 성질 지랄 맞게 나에게 건네 온 술잔에 입을 맞추게 했다.
취해서 속을 비운 소주병 그놈이나 제법 귀티 난 양주병 그년이나 똑같은 해롱거림이었다. 드러누워 헤벌린 그놈 그년들의 입들은 아무렇게나 씨부렁거리면서 방안을 기어 다녔다.
섬 사나이들은 밥뚜껑 술잔에 양주 댁을 넘치도록 채우면서 간드러진 유혹을 내장 깊이 넘기고 있었다.
“어허, 웃겨 분당께라. 일 년에 딱 한번 물이 갈라진다고라, 미친년 씨나락 까 묵고 한 소리요. 한 달에 너댓 번씩 갈라진디. 그라게 많이 사람들이 올까라. 그라고 우리는 고기도 못 잡소. 우리하고는 아무 상관없소. 거그다 돌멩이를 몽땅 부서 부릴 라요. 뭔 모세의 기적, 겁난 거짓깔이제.”
양주 댁이 섬주민의 불만을 꼬여내서 앙칼진 눈보라를 만나보게 한 것 같다.
나는 내 의식을 평행 상태로 회복하기 위해 머리를 들고 방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졸부라고 폄하하고 있는 김 사장이 취한 내 머릿속에서 머리를 쭈뼛이 내밀었다.
사업의 여러 계획들이 알코올로 적셔진 머릿속을 뛰쳐나가 긴장 속에서 자리 잡기 위한 몸부림도 보았다.
거구 돼지는 안간힘을 다하며 의사 체면을 지키려는 듯 밥뚜껑 술잔을 건네고 술잔을 받으며 목구멍에 넘기고 있었다.
고꾸라져 엎어진 박 선생은 젊은이 얼굴에 발을 올려놓고 배를 긁으며 냠냠거리고, 후배는 머리에 넥타이를 맨 채로였다. 꾸어다 놓은 겉보리 자루처럼 방 귀퉁이에 눈감고 입 헤벌리고 희죽거리면서 귀신과 깊은 대화를 하는지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방안 풍경을 보듬은 모도의 밤은 바닷바람과 눈보라의 더욱 엉켜 버린 머리카락을 끌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가고 있었다.
《너, 거기서 뭐 하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