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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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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눈물

알렉산드로스의 죽음과 제국의 왕관을 놓고 벌이는 살아남은 자들의 전쟁

저자
제임스 롬 / 역자 : 정영목
출판사
섬섬
발행일
2015.11.15
정가
20,000 원
ISBN
9791195261727|
판형
152*224
면수
464 쪽
도서상태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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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한 자가 내 왕관을 써라.”

불사의 영웅 알렉산드로스가 32살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공식적인 후계자도 정해지지 않았던 무주공산(無主空山)의 거대 제국.
죽기 전 왕이 남긴 말은 단 한 마디였다. “가장 강한 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왕관을 쓸 자 누구인가? 누가 역사의 새 주인이 될 것인가?
제2의 알렉산드로스가 되려는 자들이 벌이는 죽음의 후계자 시합.
무덤 속 비밀로 봉인되었던 제국의 야망과 전쟁과 몰락.
역사상 가장 뜨겁고 잔혹했던 알렉산드로스 사후 10년이 펼쳐진다!








저자 제임스 롬(JAMES ROMM)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예일대학교에서 고전학을 전공하고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주 바드대학에서 그리스어와 문학,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구겐하임 재단, 국립 인문학기금, 도로시 앤 루이스 컬맨 센터 등과 협력, 연구 저술 작업을 해왔다. 저서로 『고대 그리스가 생각한 세계의 끝The Edges of the Earth in Ancient Thought』 『헤로도토스Herodotus』 등이 있고, 편저로 『위대한 아리아노스: 알렉산드로스 출정기The Landmark Arrian: The Campaigns of Alexander』 등이 있다.

역자 정영목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번역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9년 제3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신의 가면: 서양신화』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그레이트 게임: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트로이 전쟁』 『호치민 평전』 『카탈로니아 찬가』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불안』 『여행의 기술』 『행복의 건축』 『일의 기쁨과 슬픔』 『미국의 목가』 『눈먼 자들의 도시』 『서재 결혼시키기』 등이 있다.





0장 무덤의 비밀을 열다
1장 왕의 죽음
2장 제2의 알렉산드로스는 누구인가
3장 빼앗긴 아테네에 봄은 오는가
4장 저항과 반역, 재정복
5장 아테네인의 마지막 저항
6장 프톨레마이오스와 페르디카스
7장 풍운아 에우메네스
8장 고향 마케도니아로 밀려온 전쟁
9장 생사의 결투
10장 무덤을 닫다

에필로그
저자의 말
감사의 말
옮긴이의 글
주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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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렉산드로스의 죽음이 불러온 역사상 가장 잔혹한 후계자 싸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왕관을 쓸 자 누구인가?
기원전 323년 6월 11일, 마케도니아 제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그의 나이 32살이었다. 스무 살에 왕이 된 뒤 12년간 원정에 올라 다뉴브 강에서 인더스 강 유역까지, 폭이 5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세계 제국을 건설한 정복 영웅. 죽기 직전까지도 참모 장군들과 아라비아 원정 계획을 짰던 그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며칠 만에 세상을 뜬 것이다.
너무 급작스러워 왕은 공식적인 유언도 후계자 지정도 하지 못했다. 제국은 갑자기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되었다. 이복형이 하나 있었으나 지적 장애로 왕위 수행이 어려웠고, 출산이 한 달 남은 유복자가 있었으나 아들일지 딸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설사 아들이라 한들 언제 자라 왕위를 이어받고, 또 그 동안은 누가 통치를 할 것인가? 당장 떠올릴 수 있는 대안은 왕의 최측근들, 즉 왕의 동료이자 참모로서 왕과 함께 정복 전쟁에 나서 제국을 넓히고 왕이 세운 세계 제국의 비전을 충실하게 수행해온 대여섯의 신임 받는 장군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서로 치고 박는 싸움이 일어난다면, 아기 알렉산드로스는 과연 어엿한 성인이 되어 왕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때까지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까? 모르는 이야기였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임종 전에 권력을 누구에게 넘겨주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장 강한 자에게.” 이 표현에 사용된 ‘kratistos’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힘이 가장 강한 자’를 뜻할 수도 있고 ‘가장 훌륭한 자’로도 해석될 수 있는 말이었다.
분명한 상속자나 후계 구도가 없었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가 죽으면서 남긴 이 말은 세상이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권력 투쟁에 불을 붙이게 된 셈이었다. 그 투쟁에서 승리한 자가 얻는 상은 당시까지 알려진 세계 전체, 즉 아시아?아프리카?유럽에 대한 지배권이었다.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 싸움은 역사상 가장 강렬하고 복잡한 싸움이 되었다. 자신이 제일 강한 자라 생각했던 장군들, 자신이 가장 합법적이고 대의(大義)에 맞는 후보라 생각했던 왕족들, 급변하는 정세의 흐름 속에 뛰어든 새로운 다크호스들…. 왕의 죽음 뒤 몇 년 동안 세 대륙에 걸쳐 벌어진 후계자 시합에서 이들은 전대미문의 느와르를 연출한다. 알렉산드로스라는 신화적 영웅의 대서사시가 끝나고, 제국의 역사는 피투성이 내전과 술수, 잔혹한 배신이 난무하는 스릴러로 장르가 바뀌었다.

2. 왕의 죽음 뒤에 드러난 알렉산드로스의 ‘세계제국 설계도’
알렉산드로스의 죽음은 고대 세계의 판도와 질서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대대적인 동방 원정으로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지역까지 파죽지세로 뻗어오던 제국의 팽창은 중단되었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그가 오래 살아 원정을 계속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중국을 거쳐 고구려까지 닿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어떤 세계를 꿈꾸었던 것일까? 그는 자신이 만든 제국 안에서 유럽과 아시아가 하나로 융합되기를 바랐다. 페르시아를 정복한 뒤에는 그곳의 문화와 풍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부하 군인들이 아시아인 신부를 맞이하도록 대규모 합동결혼식을 기획했으며, 자신 또한 박트리아(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 출신 여자를 왕비로 맞아들이는 한편 죽기 전해에 치러진 대규모 합동결혼식에서는 페르시아의 공주 두 명을 더 아내로 삼았다. 군대 조직 또한 마케도니아 및 그리스 군인과 아시아 신병이 한데 섞이도록 재정비했다.
이런 문화?인종 융합이라는 낯선 정책은 전통주의를 고수하는 사람에게는 달갑지 않은 정책이었을 것이다. 왕은 그의 융합 계획에 협조적이지 않은 인사는 전쟁에서 아무리 큰 공을 세운 장군이라도 원정의 최전선에 세우지 않았다. 아버지(필리포스 2세) 대부터 제국을 충실히 섬겨온 보수적인 정치가 안티파트로스를 애초부터 원정에서 배제하고 유럽에 남게 하여 그리스 지배를 맡긴 것이나, 왕의 유럽-아시아 융합 정책에 문제를 제기했던 전설적인 장군 크라테로스를 고참 용사 1만 명과 함께 명예 제대를 시켜 유럽으로 돌려보낸 것은 모두 이런 조치의 결과다.
왕이 죽은 뒤 문건 하나가 공개되었다. 제국에 대한 왕의 플랜이 담긴 일종의 설계도였다. 이것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군선 1000척을 건조해 곧 대규모 서방 원정도 진행할 참이었다. 목표지점은 시칠리아와 이베리아 반도 사이의 유럽 해안선과 카르타고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나머지 지역(이집트는 이미 정복했다)이었다. 그는 또한 유럽 사람을 아시아로 옮기고 아시아 사람을 유럽으로 옮기는 야심찬 이주 정책을 계획하고 있었다. 자신과 부하 군인들이 거행한 이민족 간 결혼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대서양부터 인도양까지 뻗은 단일한 세계국가. 2300년 전의 이 비전은 기독교의 새 예루살렘부터 파시스트 독재가 이루어지는 왜곡된 유토피아까지 모든 이미지를 담고 있어 경이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3. 영웅이 사라진 세상에서 반(反)영웅들이 펼치는 피와 욕망의 제전(祭典).
역사의 진짜 스펙터클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의 남은 계획은 군부회의의 표결을 통해 부결 처리되었다. 12년간 막강한 지도력으로 그들을 이끌어온 군주가 사라진 이 시점에서 그 플랜은 “지나치게 웅대하고 달성하기 어려워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이루어낸 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도 벅찬 일이 될 터였다. 바야흐로 남은 자들 사이의 권력 투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뛰어난 장군과 참모들을 훈련시켰지만, 분명한 2인자는 키우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부관들에게 중요한 임무를 나누어 맡겨 의도적으로 권력을 흩어놓았다. 왕이 살아있을 때는 이것이 강력한 통치력을 보장했지만 왕이 죽자 권력의 진공 상태로 이어졌고, 이는 마치 하늘에서 태양이 사라진 뒤 행성과 위성들이 새로운 방향으로 미친 듯이 도는 것과 같았다. 이들은 종종 무시무시한 힘으로 서로 충돌했다.
제2의 알렉산드로스가 되기 위한 첫 시험대에 오른 사람은 친위대(왕의 최측근 장군들) 선임자 페르디카스다. 왕의 인장반지를 이어받은 그는 지적 장애가 있는 왕의 이복형 필리포스 3세와, 미망인이 된 왕비에게서 갓 태어난 아들 알렉산드로스 4세를 공동 군주로 세우고 후견위원회를 구성하여 섭정 체제의 수장 노릇을 했다. 친위대의 2인자이자 경쟁자인 프톨레마이오스를 이집트 지역 사트랍(총독)으로 임명하고 견제했는데,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렉산드로스의 방부 처리된 주검을 장례 행렬 도중 가로채 이집트로 훔쳐가자 이를 되찾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이집트로 갔다가 나일 강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그리스 지역을 맡아 통치하던 유럽의 권력자 안티파트로스는 오랜 세월 마케도니아 제국에 충성을 바친 군인이자 정치가, 철학자다. 보수적 정치 성향을 가져 알렉산드로스의 ‘무분별’한 동서양 융합 정책을 싫어했으며, 이 때문에 알렉산드로스가 죽었을 때 그가 독살한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심을 받았다. 알렉산드로스의 모친인 올림피아스 태후와 특히 불화관계에 있었으며, 두 집안의 악연은 다음 세대까지 이어져 안티파트로스의 아들 카산드로스가 알렉산드로스의 아들을 죽이는 비극으로 마감한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뛰어난 군인은 아니었으나 실용적인 처신으로 훗날 가장 영리한 통치자가 된다. 이집트에 부임한 그는 알렉산드로스의 주검을 중간 탈취하여 자신의 수도에 안치해 제국의 상징적 정통성을 얻으려 하였으며, 왕의 시신을 찾으러온 정적 페르디카스와 그의 군대를 나일 강에서 제압, 파멸을 이끌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과 내전의 회오리에서 한 발 비켜난 그는 천연 요새인 나일 강을 방패삼아 안전하게 자신의 왕조를 건설한다. 그의 왕국은 거의 300년간 지속되는데 훗날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클레오파트라 7세는 그의 9대 손녀로, 이집트 산 코브라를 이용해 자살한다.
젊은 시절 전투에서 한쪽 눈을 잃은 ‘애꾸’ 안티고노스는 왕의 죽음 당시 프리기아(오늘날의 터키 남서부)의 사트랍이었다. 나이가 많은 관계로 오랫동안 알렉산드로스의 본대에서 벗어나 후방인 아시아 서부를 관리했기에 권력의 중심에서 소외되어 있었으나, 특유의 뚝심과 허세로 아시아의 최강자로 떠오르고 가장 넓은 제국 영토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스 서기 출신인 에우메네스와는 오랜 세월 애증의 관계를 쌓는다.
저자가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여 묘사한 인물은 알렉산드로스의 문서와 장부 관리를 담당하던 그리스인 서기 에우메네스다. 가늘고 곱상한 외모를 가진 그는 애초부터 군인이 아니라 펜대를 굴리는 서기였고, 더구나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는 그리스 출신의 비천한 신분이었기에 그가 후계자 싸움의 일원이 되리라는 것은 자타 공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우연찮은 기회에 맡은 군사 업무에서 숨은 잠재력을 발휘했고, 지략과 무용(武勇)을 함께 갖춘 유능한 장군으로 부상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후계자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변수를 가진 인물로 떠오르게 된다. 왕가(王家)를 보호하고 왕가의 대의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사투를 벌였으며, 어쩌면 제2의 알렉산드로스가 될 수도 있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친구이자 적이었던 안티고노스에게 패하고 풍운의 삶을 마감한다.

이 외에도 알렉산드로스 군사 학교 출신의 많은 장군과 군인들이 피투성이 싸움의 무대에 등장했다 사라진다. 인도 정복 전쟁 당시 화살을 맞아 쓰러진 알렉산드로스를 맨몸으로 구해 충성을 입증했던 친위대원 레오나토스. 왕의 죽음 뒤에 페르디카스에 의해 권력 주변부로 밀려난 그는 안티파트로스의 사위가 되는 조건으로 그리스 아테네 폭동 진압 전쟁에 나섰다가 일찌감치 죽는다. 왕의 유럽-아시아 융합 정책을 비판했다가 제대당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 왕의 죽음 소식을 들은 크라테로스 또한 안티파트로스와 결혼동맹을 맺고 권력 전쟁에 뛰어들었다가 에우메네스와 맞붙은 전쟁에서 백전노장으로서는 어이없는 죽음을 맞는다. 쇳덩어리 방패를 목에 걸고 손에는 5미터가 넘는 사리사 창을 들고 험준한 지형에서도 하루 60킬로미터 이상을 이동했던 보병 ‘은방패 부대’.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도 절벽을 오르고 성을 공략했으며 사막의 열기나 눈 덮인 산등성이를 통과하면서도 사기를 잃지 않았던 이 정예부대는 알렉산드로스 정복 전쟁의 가장 든든한 밑천이었으나, 이들 또한 왕의 죽음 뒤에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한편 왕족은 어땠을까? 필리포스 3세의 아내이자 황제 알렉산드로스의 모친인 여장부 올림피아스는 과거에 아들의 왕위 상속권을 확보하기 위해 훗날 자기 아들과 경쟁자가 될 만한 왕족 혈통은 모조리 죽였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사망했을 때 심신 미약한 이복형과 갓 태어난 아들 외에는 별다른 후계 혈통을 찾을 수 없었던 것도 그 이유다. 손자의 후견인이 된 태후 올림피아스와 알렉산드로스의 여동생인 클레오파트라, 제국을 장악할 포부로 기꺼이 ‘반편이 왕’ 필리포스의 부인이 된 왕가의 또 다른 여인 아디아, 남편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갓난 아들과 함께 권력 투쟁의 피바람에 휘말린 박트리아 출신 왕비 록사네 또한 자의든 타의든 역사 느와르의 한 장면을 장식했다. 장군과 왕족들을 서로 편의에 따라 편을 먹고, 그러다가 더 유리한 자리가 눈에 보이면 편을 바꾸어 이전의 우군과 적이 되었다. 그리하여 알렉산드로스가 죽고 십수 년 내에, 대왕의 모친과 여동생, 이복형 필리포스 3세, 왕비 록사네와 아들 알렉산드로스 4세, 또 다른 아내들과 숨겨둔 혼외자식까지, 알렉산드로스와 조금이라도 피를 나눈 가족 혹은 배우자는 모조리 죽어 멸족(滅族)에 이르렀다.

4. 방대한 자료 고증과 분석, 깊은 통찰,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이 결합된 역사 교양서
알렉산드로스 사망 당시 그가 머물던 궁은 현대의 이라크 남부 바빌론에 있는 네부카드네자르 궁이었다. 대대적인 동방 원정을 진행하면서 제국의 중앙정부도 마케도니아의 펠라에서 아시아의 바빌론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2300년 전 왕의 죽음 소식은 그 거대 제국의 방방곡곡에 어떻게, 얼마나 빨리 전달이 되었을까? 소식은 페르시아인이 구축하고 마케도니아 통치하에서도 쓰이던 통신선을 따라 퍼져나갔다. 최대 가청 거리 간격을 두고 산꼭대기에 배치된 사람들이 서로 외치면, 한 달 걸려 갈 수 있는 곳에 하루면 소식이 전달되었다. 말을 탄 전령이 역마다 배치되어 릴레이식으로 소식을 전하기도 했고, 바퀴살처럼 뻗어나가는 봉화도 이용했다. 봉화 담당자는 불을 매다는 장대를 조작하여 암호화된 메시지를 전달했다. 최근 사해 옆 이두미아 근처에서 날짜가 적힌 기록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의 사망 소식은 불과 엿새 만에 그곳까지 전해졌다.
소식은 마케도니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의 도시 국가, 특히 아테네의 정치판에도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이참에 봉기하여 유서 깊은 민주 정치를 빨리 되찾자는 과격파와, 성급히 행동했다가 오히려 불상사가 생길 수 있으니 관망하자는 온건파가 대립하였으며, 아테네의 정치 분열과 마케도니아 제국의 내전이 서로 맞물려 예기치 못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데모스테네스, 히페리데스(히페레이데스), 포키온 등 당대 최고의 웅변가와 정치가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자살했고, 알렉산드로스와 유명한 사제관계를 맺었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정치적 재앙을 피해 아테네를 떠나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제국의 하나였으나 또한 가장 빨리 단명한 제국이었던 마케도니아 제국. 알렉산드로스 가문의 멸문과 함께 정통성 있는 왕족도 모두 죽었으니 이후의 권력은 말 그대로 “가장 강한 자에게”, 즉 스스로 왕이 될 만한 완력이 있는 사람에게 돌아갔다. 제국은 곧 다섯 왕조로 분열되었고, 이 조각들은 견제와 의심, 변덕스러운 동맹, 끊임없는 갈등으로 상태를 유지해나갔다. 알렉산드로스가 바라고 계획했던 세계국가와는 거리가 먼, 즉 여러 면에서 지금 우리가 사는 곳과 비슷한 다극 세계였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와병과 죽음부터 뒤에 남은 왕족의 멸족까지 10여 년을 다룬 이 책은 방대한 자료 수집과 고증으로 정확한 역사 재현에 심혈을 기울였고, 역사적 인물의 죽음이 불러온 파장과 고대사의 판도 변화를 심도 있게 통찰했으며, 그 시대를 살아간 다양한 인물들의 행동과 내면, 관계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저자 제임스 롬의 매력적인 글쓰기는 독자에게 역사서를 보면서도 삼국지나 스릴러를 읽는 듯한 재미와 몰입감을 준다.
당시의 세계사를 파악하려는 관심에서 출발했든, 한 신화적 제국과 권력의 붕괴 과정에 대한 정치적 관심에서 출발했든, 역사적 인물들의 극적 삶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든, 읽고 나면 누구나 그 이상을 얻게 되는 역사교양서다.


<책 속으로>

알렉산드로스는 임종 때 누구에게 권력을 넘겨주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장 강한 자에게.”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정복자 알렉산드로스는 그의 죽음 뒤에 엄청난 경쟁이 벌어질 것을 예견하고, 영웅을 매장할 때 체육 시합을 벌이는 그리스 관습과 관련하여 그 이야기를 하면서 거기에 냉혹한 이중적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분명한 상속자나 후계 구도가 없었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는 죽으면서 세상이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권력 투쟁에 불을 붙이게 된 셈이었으며, 그 투쟁에서 승리한 자가 얻는 상은 세계 전체, 즉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대한 지배권이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장례식 시합은 실제로 역사상 가장 강렬하고 복잡한 경기로 꼽히게 된다.

알렉산드로스가 죽고 나서 며칠이 흘렀다. 성장을 한 왕의 시신은 궁 알현실에 누워 경외감을 자아내며, 자신의 앞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혼란 때문에 경황이 없어 부패를 방지하는 조치를 취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주검은 기적적으로 부패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생전 왕의 특징인 아름다움, 힘, 향기로운 체취를 발산하고 있었다. 마침내 방부 처리를 하는 사람들을 불렀지만, 그들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주검에 손을 대는 것을 두려워했다.

데모스테네스는 패배를 인정하듯이 가족에게 편지를 쓰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신전의 담으로 둘러싸인 곳 안으로 들어가, 글을 쓸 때면 자주 그러듯이 갈대 펜을 입에 갖다 대고 거기에 감추었던 독을 몰래 빨았다. 그는 망토로 몸을 덮고 머리를 숙인 다음 죽음이 오기를 기다렸다.

병사들은 10여 년의 원정을 함께했던 무기와 갑옷을 버리고 소용돌이치는 물살로 뛰어들었다. 힘이 있고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은 강을 건넜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물살에 휩쓸려 구르고 허우적거리다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 최악의 공포가 남아 있었다. 나일 강의 악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떼로 몰려와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기 시작한 것이다. 2000명 이상이 물살이나 악어의 무시무시한 아가리에 죽임을 당했다.


<추천사 및 서평>


알렉산드로스의 죽음 뒤에 더 압도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 책은 상상을 넘어서는 용기와 인내, 필사적인 전투, 술수와 음모, 방탕, 암살, 배신 등에 관한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했던 알렉산드로스 사후 10~20년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정치 모략과 군사 작전들을 정확하게 재구성했으며, 알렉산드로스가 그의 제국을 ‘가장 강한 자’에게 남기고 떠났을 때 고대 세계 판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날카롭게 통찰했다. - W. R. 코너(프린스턴대학 고전학 명예교수 및 티글재단 수석고문, 『투키디데스Thucydides』 저자)

롬은 고대 그리스 분야의 탁월한 연구자이자 매력적인 스토리텔러다. 잠시도 눈 돌릴 틈 없는 몰입적인 이야기가 이 책을 가득 채운다. 이렇게 역사적 고증이 탄탄하고 연구가 정통하면서도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역사교양물은 여간해서 만나기 어렵다. 제임스 롬 교수 같은 사람을 역사 안내자이자 이야기꾼으로 얻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 폴 카트리지(케임브리지대학 고전학 교수, 『스파르타 이야기The Spartans』 『알렉산드로스Alexander the Great』 저자)

놀라운 학문적 깊이와 유혹적인 글쓰기……. 알렉산드로스 이후의 잔혹한 후일담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대중 독자들에게 펼쳐 보인다. 고전 학문이 모델로 삼아야 할 본보기다. - 빅터 데이비스 핸슨(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 『살육과 문명Carnage and Culture』 『고대 그리스 내전, 펠로폰네소스 전쟁A War Like No Other』 저자)

“안정감 있으면서도 때로 드라마틱하게 몰아치는 서술, 철저한 자료 조사와 고증, 따끈따끈한 최신 연구 성과까지! 생기와 열정이 느껴지는 책.” -「월스트리트 저널」

“제임스 롬은 존경스런 학자인 동시에 타고난 스토리텔러다.” -「초이스」

“스릴 있다, 그러나 학문적 깊이 또한 대단하다.” -「뉴 크라이테리언」

“속도감과 흡인력으로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대사의 한 시기를 완벽하게 복원했다.” -「퍼블리셔스 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