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희망의 위험과 적절한 비관의 효용
[긍정의 오류]는 영국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이 긍정의 오류에 대해 풀어낸 책이다. 이책에서 프랑스 혁명은 오류에서 시작된 사건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유토피아 오류, 최상의 시나리오 오류, 계획의 오류, 총합의 오류 등 온갖 오류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저자는 역사적 사건들과 현대 사회의 예들을 적절히 버부리면서 현대인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자유와 인간의 훌륭한 삶은 언제나 어떤 개인의 ‘I’에 의해 성취되지만, 그 성취도 공동체 즉 ‘we’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은 또한 중도적인 비관주의와 양심적인 낙관주의에 대한 옹호로 읽힌다.
저자 : 로저 스쿠르턴
저자 로저 스크루턴(Roger Scruton)는 1944년 영국 링컨셔 주 버슬링토프 출생의 철학자로 미학에 관심이 아주 깊다. 1971년부터 1992년까지 런던의 버크벡 칼리지에서 미학을 강의했다. 그 후로는 보스턴 대학과 워싱턴 D.C.의 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세인트앤드루스 대학 등에서 강의했다. ‘영국미학저널’(British Journal of Aesthetics)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소설을 2편 쓰고, 오페라도 2편 작곡했다.
저서로 ‘Art and Imagination’(1974) ‘The Meaning of Conservatism’(1980) ‘Sexual Desire’(1986) ‘The Philosopher on Dover Beach’(1990) ‘The Aesthetics of Music’(1997) ‘Beauty’(2009) 등이 있다.
역자 : 정명진
역자 정명진은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부, 국제부, LA 중앙일보, 문화부 등을 거치며 20년간 근무했다. 현재는 출판기획자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부채, 그 첫 5000년》(데이비드 그레이버),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더글라스 무크), 《상식의 역사》(소피아 로젠펠드), 《타임: 사진으로 보는 ‘타임’의 역사와 격동의 현대사》(노베르토 앤젤레티), 《팀워크 심리학》(대니얼 래비), 《성격의 재발견》(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 《성공의 새로운 심리학》(캐롤 드웩), 《자유와 존엄을 찾아서》(B. F. 스키너) 등이 있다.
1장 일인칭의 미래
2장 최상의 시나리오 오류
3장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난다는 주장의 오류
4장 유토피아 오류
5장 제로섬 오류
6장 계획의 오류
7장 움직이는 정신의 오류
8장 총합의 오류
9장 진실을 외면하는 전략들
10장 부족이었던 우리의 과거
11장 시민사회인 우리의 현재
12장 우리의 미래
당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과연 정상일까?
혹시 낙관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영국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이 당신의 참모습을 비춰볼 거울을 제시한다.
* 최상의 시나리오 오류
*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난다는 주장의 오류
* 유토피아 오류
* 제로섬 오류
* 계획의 오류
* ‘움직이는 정신’의 오류
* 총합의 오류
스크루턴이 인간 집단의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이 6가지 오류에 벗어나
있다면 당신의 생각은 건전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생각에 약간의 비관을 곁들여야 한다.
우유 반잔을 두고 낙관주의자는 반이나 남았다는 식으로 보고 비관주의자는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식으로 본다고들 흔히 말한다. 과연 이 말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진리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낙관주의자가 채워지지 않은 반을 억지로라도 채우려 들고 비관주의자가 반잔의 우유에도 아주 고마워하는 것 같다. 비관주의자는 잔을 채우지 않고 마시기만 하면 잔이 비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 까닭에 비관주의자는 목장에 가는 길도 잘 알아둘 것이다.
스크루턴이 오류를 설명하는 대목을 읽어보면 누구나 자신은 절대로 그런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앞서지만, 그러는 당신도 예외없이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 중 많은 것이 오류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 혁명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건에서는 유토피아 오류, 최상의 시나리오 오류, 계획의 오류, 총합의 오류 등 온갖 오류가 다 보인다.
예를 들어 최상의 시나리오 오류가 작용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계획에서 생겨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억지로 마음에서 밀어내며 그런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계획은 성공이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맹목적으로 믿어버린다.
총합의 오류도 누구나 쉽게 저지르는 오류이다. 인간 세상에 선으로 통하는 것들이 서로를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 안전과 재미의 예처럼 한 쪽이 다른 쪽을 분명히 훼손하게 되어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선한 개념이 여러 가지 모이면 곱으로 좋다는 식으로 쉽게 판단해버린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라는, 양립 불가능하다고 봐야 마땅한 구호 때문에 죽은 자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스크루턴은 역사적 사건들과 현대 사회의 예들을 적절히 버무리면서 현대인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유와 인간의 훌륭한 삶은 언제나 어떤 개인의 ‘I’에 의해 성취되지만, 그 성취도 공동체 즉 ‘we’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은 또한 중도적인 비관주의와 양심적인 낙관주의에 대한 옹호로 읽힌다.
책 속에서
“‘우리’를 앞세우는 태도는 전반적인 염세주의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적당할 정도의 염세주의는 환영한다. 어느 정도의 염세주의는 낙관주의만 팽배할 경우에 우리 인간을 망쳐놓을 수도 있는 헛된 희망을 적절히 조절해줄 것이다. 약간의 염세주의는 온갖 소음이 가득한 세상에서 지혜의 목소리 역할을 할 것이다.”
“나의 최우선 관심은 희망을 정당화하거나 실망을 적어도 견딜 만한 것으로 미화하는 일부 오류들로 쏟아질 것이다. 내가 제시하는 예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 예들 모두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비양심적인 낙천주의자가 품는 비전의 핵심에는 자기기만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보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그런 실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한결같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비관주의가 몰아내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자기기만이다.”
“‘우리’를 추구하는 태도에서 내려지는 결정은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고 더 나아가 다른 시대까지 고려한다.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지는 동안에 죽은 자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도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이 같은 태도가 ‘앞으로 전진!’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취하는 입장은 ‘오늘의 일로도 충분히 힘들다’는 식이다.”
“시인이며 역사가인 로버트 콘퀘스트(Robert Conquest)가 언젠가 ‘정치의 법칙’ 3가지를 발표했다. 그 중 첫 번째 법칙이 바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잘 아는 것에 있어서는 ‘우익’이 된다는 것이다(두 번째 법칙은 명백히 우파를 표방하지 않은 조직은 조만간 좌익이 된다는 것이고, 세 번째 법칙은 관료 조직의행태를 가장 간단히 설명하는 방법은 그 조직이 적들의 파벌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콘퀘스트는 ‘우익’ (right-wing)이라는 표현을, 열광과 진기함을 의심하고 계급조직과 전통과 기존의 방식을 존중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썼다. 콘퀘스트에 따르면, 무지(無知)를 보여주는 신호 하나가 바로 관습보다 독창성을, 그리고 전통적 권위보다 급진적 해결책을 선호하는 것이다. 물론 환경이 급변할 때에는 독창성이 필요하다. 급진적 해결책이 필요한 것과 똑같다. 그러나 독창성과 급진적 해결책이 필요한 것은 예외적인 조건일 때뿐이다. 콘퀘스트가 경계한 것은 모든 예를 예외적인 것으로 보려는 욕망이었다.”
“낙관주의자의 심리상태에 나타나는 가장 놀라운 특징 하나가 바로 자신들의 믿음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낙관주의자는 그 같은 결과를 낳은 오류들의 위험에 대해서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이 책에서 분석할 오류들에 빠진 사람을 구할 길은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미스터리이다.”
“양심적인 사람들은 세상과 이 세상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인다. 이 세상이 향상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중요한 향상 중 많은 것이 세상의 목표가 아니고 우리의 협동에 따른 부산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심적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좋은 결과만 아니라 나쁜 결과도 낳고 또 비상 사태가 성공적으로 해결되려면 리더십과 지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혜가 한 사람의 머리에만 담겨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또 급진주의자와 행동가들의 전략보다는 오랜 세월의 시험을 버텨낸 관습 속에 담겨 있을 확률이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행복은 쾌락을 추구한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자유를 준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희생에서 온다. 그것은 서구 문화의 모든 기념비적 저작물들이 전하는 위대한 메시지이다. 그런데 이 메시지가 그만 헛된 희망의 소음 속에 실종되어 버렸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전력을 다해 되찾겠다고 나선다면 다시 들릴 수 있는 그런 메시지이다. 그리고 유대교-기독교 전통에서 가장 값진희생의 행위는 바로 용서이다. 용서하는 사람들은 분노를 희생시키고 따라서 자신의 가슴 속의 소중한 무엇인가를 부정한다.“
“공동체가 회의와 의심에 귀를 여는 것, 즉 예언자의 목소리를 허용하는 것이 곧 지혜의 시작이다. 바로 여기서 새로운 종류의 질서가 나타난다. 이 질서 안에서는 인간에 의해 발견된 법률이 신의 계시에 따른 명령을 대체하고, 협상이 지배를 대체하고, 자유로운 교환이 통치계획에 따른 중앙의 분배를 대체한다. 그런 것이 도시의 질서이고, 개인의 자유와 순수한 일인칭 복수를 결합시키는 질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