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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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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일기

극동공군 사령관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의

저자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 / 편 윌리엄 T. 와이블러드 / 역자 : 문관현, 손석주, 김택, 오충원
출판사
플래닛 미디어
발행일
2011.06.20
정가
38,000 원
ISBN
9788992326995|
판형
153*224
면수
820 쪽
도서상태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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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공군 사령관이 기록한 살아 있는 한국전쟁의 교훈
『한국전쟁 일기』는 6.25전쟁 당시 미 극동공군 사령관이었던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이 기록한 한국전쟁 일기와 함께 당시 극동군 사령관이자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을 비롯한 각 군의 수뇌부 주요 인사들과 주고받은 비밀전문, 사적인 전문을 공개한 전쟁기록서다. 미군의 시각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살펴보며 한국전쟁에 개입되었던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이 세운 작전, 문제점, 성공과 실패 사례들을 이야기한다. 한국전쟁 동안 미국 각 군의 막후 활동과 언론 홍보 활동도 자세하게 소개했으며, 미군이 합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육해공 3군이 서로 조율해나가는 모습을 통해 합동·연합 전력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저자 : 윌리엄 T. 와이블러드   저자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George E. Stratemeyer)는 1950년 6월 25일부터 1951년 5월 20일까지 미 극동공군 사령관이었던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은 한국전쟁 참전 기간 동안 자신의 활동을 일기에 기록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많은 장군들이 이와 같은 일기를 썼으나, 일반적으로 일기 쓰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이 책은 그가 미 극동공군 사령관의 위치에서 한국전쟁과 그 특징을 독특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이다. 역자 : 문관현   역자 문관현은 1995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연합통신사(현 《연합뉴스》)에 입사했다. 2008년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주로 국방부와 외교통상부, 통일부를 출입했고, 2006년 미 국무부의 공식초청을 받아 미국의 외교안보 부서와 연구소, 군사시설 등을 방문했다. 남북 장관급 회담과 군사 회담, 적십자 회담, 이산가족 상봉행사, 대북지원단체 행사 등을 취재하기 위해 북한을 수십 차례 드나들었다. 한국기자협회 부회장과 국제교류위원장, 통일분과위원장을 역임했고,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낸 바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보통신방송정책 과정(AIC)을 수료했다. 현재는 《연합뉴스》의 기획조정실 미디어전략팀에서 일하고 있다. 역자 : 손석주   역자 손석주는 동아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코리아 타임스》, 《연합뉴스》 기자로 일했다. 국방부, 외교통상부, 통일부 등을 출입했다. 제34회 한국현대문학번역상, 제4회 한국문학번역신인상을 받았고, 2007년 대산문화재단 한국문학번역지원금을 수혜했다. 현재 호주 시드니대학에서 탈식민지 영문학의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로힌턴 미스트리(Rohinton Mistry)의 장편소설 『적절한 균형』을 번역했으며, 김인숙의 단편소설집 『그 여자의 자서전』을 영역했다. 계간지 《아시아》 등에 단편소설, 에세이, 논문 30여 편을 국역 및 영역했다. 역자 : 김택   역자 김택은 1995년 공군사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임관하여 공군군수사령부, 제11전투비행단, 한미연합군사령부 공보실 등에서 근무했다. 2001년에는 미국 국방공보학교(Defense Information School)에서 공보장교과정을 졸업했고, 2007년에는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08년에는 미국에서 개최되는 다국적군 참가 연합훈련인 레드 플래그(Red Flag) 훈련에 대한민국공군 공보참모 자격으로 참가했으며, 2010년에는 미국 미주리주립대학교(University of Missouri) 저널리즘 스쿨(School of Journalism)에서 방문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 공군 본부 공보과에서 언론담당으로 근무 중이다.

역자 : 오충원
역자 오충원은 1999년 공군사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KF-16을 주기종으로 전투조종사로 근무하고 있다. 2005년 공군대학교 초급 지휘관 참모 과정을 차석으로 졸업했으며, 2008년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에서 군사전략을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공군 작전사령부 합동훈련 담당관을 역임한 뒤, 현재 군산기지 KF-16 비행교관으로서 영공방위 임무의 최일선에서 근무 중이다. > 엮은이 : 윌리엄 T. 와이블러드
윌리엄 T. 와이블러드(William T. Y'Blood)는 제2차 세계대전을 주로 연구하고 글을 쓴 미국 전쟁사가(戰爭史家)이다. 미 공군 최초의 보잉 B-47 조종사이자 이후 콘티넨탈 항공(Continental Airlines)의 조종사로서 그가 겪은 경험들이 그의 책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그의 첫 번째 책인 『임무 중인 스트라토젯(Stratojet in Action)』은 그의 전문 분야인 B-47에 대한 사진기록서이다. 『붉은 석양(Red Sun Setting)』은 필리핀 해 전투를 기록한 것으로, 전투 기간 동안에 있었던 공중전(dogfights)과 일본 항공모함에 대한 공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후 그는 호위 항공모함에 관심을 돌려서 『헌터-킬러(Hunter-Killer)』와 『작은 거인들(The Little Giants)』를 쓰게 되었는데, 이 책들로 그는 미얀마 스타 협회(Burma Star Association)와 호위 항공모함 공군 병사 및?수병 협회(Escort Carrier Airmen and Sailors Association)로부터 상을 받았다.
말년에는 미 국방부에 있는 공군역사실(Air Force History Office)에서 역사담당으로 2006년 작고할 때까지 근무했다. 그는 공군역사실에서 근무하는 동안 한국전쟁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다. 《에어 파워 저널(Air Power Journal)》의 한 비평가는 그의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와이블러드의 책은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정확하다. 한마디로 최고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서문
엮은이의 말
들어가는 말

제1부 암울한 시기
1950년 6월 25일~1950년 9월 14일

제2부 열정의 나날들
1950년 9월 15일~1950년 11월 25일

제3부 혹독한 나날들
1950년 11월 26일~1951년 6월 20일

극동공군 사령관이 기록한
살아 있는 한국전쟁의 교훈

“나는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세 가지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것은 바로 ‘공산주의자들과의 전쟁’, ‘언론과의 전쟁’,
‘미 육군 및 해군과의 전쟁이었다!”

3군 합동성 강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전쟁기록서

‘잊혀진 전쟁’, ‘제한전’으로 불리는 한국전쟁.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과 서가 처음으로 부딪친 전쟁으로 결코 잊어서는 안 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1년 6ㆍ25전쟁 61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출간된 이 책은 당시 미 극동공군 사령관이었던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이 기록한 한국전쟁 일기와 함께 당시 극동군 사령관이자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을 비롯한 각 군의 수뇌부 주요 인사들과 주고받은 비밀전문과 사적인 전문들을 공개한 귀중한 전쟁기록서로, 우리 전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아니라, 미군의 시각에서 본 한국전쟁의 또 다른 차원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료이다.
어떤 이들은 한국전쟁을 단순한 지상전으로 간주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한국전쟁은 미 공군이 1947년 9월 18일 미 육군으로부터 독립하여 육군 및 해군과 동등한 위치에서 하나의 독립된 군으로서 전투에 참가한 첫 번째 전쟁이었으며, 미국의 각 군 항공 전력이 힘을 합쳐서 뛰어난 활약을 한 전쟁이었다. 수적으로 우세한 적군에 맞선 상황에서 미 공군이 제공권을 확보하지 못했더라면, 지상군은 공습에 노출되어 처참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의 미 극동공군 장병들과 항공기, 그리고 해군과 해병대 항공 전력이 없었더라면, 한국전쟁의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한국전쟁을 처음부터 기록한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의 일기는 극동공군 사령관이라는 지위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본 그의 독특한 시각이 담겨 있다. 그의 일기에는 극동군 사령관이자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이 세운 작전, 문제점, 그리고 성공과 실패 사례들이 담겨 있으며, 한국전쟁 동안 미국 각 군의 막후 활동과 언론 홍보 활동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이 일기에 쓴 적절한 군사력의 규모와 장비, 정확하고 시의적절한 정보, 다른 군과 협조, 그리고 언론의 전쟁 보도 영향력 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더욱이 6ㆍ25전쟁 61주년을 맞는 2011년 ‘3군의 합동성 강화’가 우리 군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 한국전쟁 동안 미 육ㆍ해ㆍ공군이 불협화음 속에서 합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서로 조율해나가는 모습은 우리 군이 합동ㆍ연합 전력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중요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단순한 역사적 흥밋거리가 아닌 전시지휘권 문제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자료
조지 스트레이트 장군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부터 그가 심장발작을 일으킨 1951년 5월 20일까지 한국전쟁 참전 기간 동안 자신의 활동을 일기에 상세하게 기록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많은 장군들이 이와 같은 일기를 썼으나, 일반적으로 일기 쓰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한국전쟁을 기록한 일기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놀랍게도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과 당시 미 제5공군 사령관이었던 얼 E. 패트리지 소장(이 책에 일부가 실려 있음), 그리고 제5공군 부사령관 에드워드 J. 팀버레이크 소장이 쓴 3권의 일기가 존재한다. 미 극동공군 사령관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의 일기를 담은 이 책은 군 수뇌부의 계획과 전략, 그리고 정치적 측면에서 바라본 한국전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부터 9월 14일까지, 그리고 2부는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이 실시된 9월 15일부터 11월 25일 대규모 중공군 공격 개시까지, 그리고 3부는 1950년 11월 26일부터 스트레이트마이어가 심장발작을 일으켜 극동공군 사령관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1951년 5월 20일까지로 되어 있다.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의 일기에는 당시 공군 최고 야전사령관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전쟁과 미 공군의 역할이 잘 드러나 있으며, 인적ㆍ물적 자원의 부족, 다른 군과의 갈등관계, 갈등관계라기보다는 애증관계에 더 가까웠던 언론과의 관계, 그리고 상부의 지시들이 모순되거나 배치되는 상황에서 전투를 치르는 문제, 그리고 3군의 불협화음 속에서 합동작전을 위해 조율해나가는 과정 등이 여과 없이 담겨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스트레이트마이어가 한국에서 치른 제한전의 경우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저강도’ 게릴라 작전에서부터 핵전쟁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의 일기는 단순한 역사적 흥밋거리가 아니라 전쟁을 연구하는 학생들과 모든 계급의 장교들이 전시지휘권 문제와 3군의 합동작전 조율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반드시 참고해야 할 귀중한 전쟁기록서이다.

추천사
이 책은 우리 땅에서 우리가 겪은 전쟁이면서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과 서가 최초로 부딪친 비극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의 전쟁에 대한 그들의 기록을 읽으면서 이 땅에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타산지석(他山之石) 아닌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학송 | 한나라당 국회의원, 전(前) 국방위원장

전쟁 승리를 위해 여론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의 전쟁에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6ㆍ25전쟁을 보도하는 미국 언론, 그리고 이들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극동공군 사령관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록서이다.
지갑종 | 로이터 통신 종군기자

6ㆍ25전쟁 61주년을 맞이하는 2011년 현재 우리 군의 화두는 ‘합동성 강화’이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와 물리적 전장 환경이 크게 변화하지 않은 지금,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합동성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유용원 | 《조선일보》 군사전문 기자

이 책은 6ㆍ25전쟁 당시 주요 전사를 중심으로 연합ㆍ합동작전의 진행 추이와 각 군의 역할, 그리고 각 군 수뇌부가 타군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해할 수 있는 사료로서 향후 우리 군이 연합ㆍ합동 전력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소중한 전쟁기록이다.
황의돈 | 전(前) 육군 참모총장, 전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책속으로 추가
<54쪽>
스트레이트마이어는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오류로 가득 찬 보도에 대해서 불만이었다. 그는 공군이 이룩한 업적 중에서 홍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업적이 제대로 알려지기를 바랐다. 그가 일기에서 자주 언급했듯이 한국전쟁 때문에 공군의 업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그의 욕심은 더욱 커져갔다.
그는 언론이 공군과 해군의 항공 전쟁을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지 몰라서 틀리게 기술하거나, 육군이나 해군에 이용당해서 공군의 기여를 폄훼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특히 해군이 공군과 정정당당한 대결을 하지 않고 ‘교활한 책략’을 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언론과 계속해서 싸웠다. 그는 홍보를 공보장교들에게 맡기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언론을 상대했다. 그는 언론을 다룰 때 솔직하고 우호적이었으며, 할러웨이에 따르면, “전혀 가식이 없었다.”
홍보는 스트레이트마이어가 직면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의 세 번째 전쟁은 바로 ‘육군 및 해군과의 전쟁’이었다. 당시 한국전쟁에서 공군의 근접항공지원 역할에 대한 육군과 해군의 오해, 육군이 극동공군사령부를 장악하고 자신의 예하에 두려는 시도, 그리고 맥아더가 스트레이트마이어에게 모든 항공 부대에 대한 ‘조정 통제’ 권한을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군이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항공 전쟁을 시도한 일 등이 벌어졌다. 스트레이트마이어는 한국전쟁뿐만 아니라 이런 문제들로 정신이 없었다.

<61쪽>
1954년 8월 25일 휴전협정이 맺어지고 1년이 지난 뒤 그는 윌리엄 F. 제너 상원의원이 올란도에서 개최한 상원 법사위 국내안보소위 청문회에 출석해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청문회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트루먼과 아이젠하워 행정부를 때리기 위해서 한국전쟁이 어떻게 치러졌는지를 조사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정부 전복 행위 가능성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위원회에 출석한 스트레이트마이어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우리는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는 또한 이것이 미 합참의 잘못이 아니라 국무부의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제가 지금껏 함께 지내온, 혹은 역사를 통해 보아온 모든 군 지휘관들은 이기기 시작한 전쟁을 이길 수 없게 만드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미국인이 그랬을 리 없겠죠. 그러면 누가 그랬을까요? 저는 누가 그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합참이 아니라 국무부가 맥아더 장군의 행동을 구속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 의견이며, 아직도 저는 이것을 믿고 있습니다.”
관심을 끄는 것은 그가 1951년 3월 26일 국가정책에 대해서 언론에 발표한 성명서이다.
“우리는 적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항공전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폭격기와 전투기를 한반도를 넘어서 운용하는 결정은 야전사령관이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결정은 정부, 그리고 유엔 차원에서 내려져야 한다. 군인은 민주 정부의 외교 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군대는 외교 정책을 수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