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 전쟁사
남북 전쟁, 당시의 현장 속으로!
북한의 6.25 남침에서부터 38선을 돌파하여 북진할 때까지 기간에 해당하는 ‘낙동강 방어선 전투’ 내용을 담은 전쟁 역사서 『낙동강』 제8권. 6.25 최대 격전인 다부동전투를 치르고 있을 때 16세의 어린 학생으로 참전했던 저자가 당시의 기억과 객관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당시의 남한군과 북한군 군사 규모와 미국의 참전, 전쟁 피해 상황 등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각 연대에서 어떤 명령을 하였고 어떤 방향으로 군사 작전을 세우고 실행하였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저자 : 류형석
이 책의 지은이 류형석은 1934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1949년에 당시의 구운국민학교를 1회로 졸업했다. 6.25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에 그는 대구농림중학교 2학년생이었다. 8월 21일에 입대하여 제1사단 제11연대 제1대대 통신대의 통신병으로 2년 1개월 동안 직접 전투에 참가했다. 이후 육군헌병학교, 육군형무소, 제5헌병대대 등에서 근무했으며, 1954년 6월에 일등중사로 만기 제대했다.
1956년에 보통고시(당시 4급 공무원 임용시험)에 합격하여 이듬해부터 공무원으로 일했다. 1980년에 이사관으로 퇴직할 때까지 심계원, 감사원,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그 사이에 건국대 법학과와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행정학석사). 공무원 생활을 마친 뒤에는 10년 동안 대우그룹 임원 및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1991년부터 본인의 세무사사무소를 개업해 현재에도 계속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홍조근정훈장, 대통령표창, 국무총리표창을 받았고, 이번 책 이전에 『우리들의 아름다운 날을 위하여』라는 소년병 참전 수기를 내기도 했다.
또 하나의 전쟁사
전쟁일지
국방 관련 법령 및 규정
본문 관련 협정 및 선언
북한군 남침에 따른 미국 및 UN의 대책
남북한 대치 전력 비교
피아군 조직
국군 사단 및 연대 창설
북한군 창설 개황
주요 인사 프로필
한강 전선에서 맥아더와 대화한 병사
지상군 장비
참고자료
전투 상황도
전쟁이 핥은 상처(화보)
참고 문헌
소년병 출신 민간인의 10년 노력이 빚어낸 6.25전쟁사의 최대 역작
“국가가 하지 못한 일, 민간인이 해냈다!”
소년병 출신 노병 류형석
전 8권에 이르는 이 방대한 책의 저자는 올해 77세가 된 소년병 출신의 류형석 세무사다. 이제는 노병老兵이라 불러야 마땅할 그는 6.25전쟁이 일어난 해에 열여섯의 나이로 입대, 대구 팔공산 근처의 제1사단에 배속되어 통신병으로 참전했다.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할 때 다른 소년병들과 함께 개성까지 진군했고, 총탄이 날아다니는 사선에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도 넘겼다. 전쟁이 끝나고 1954년이 되어서야 일등중사로 제대했으며, 전쟁의 와중에 두 형을 잃었다.
이후 그는 공무원과 세무사로 일하면서 한때 대우그룹에도 몸을 담았었고, 지금도 세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던 그가 이 대작의 집필을 결심하게 된 것은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 때문이었다. 하필 6.25전쟁이 발발한 달이자 남한에서는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에 ‘이래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어느새 6.25전쟁에 대한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국민들에게 무언가 기억을 환기시킬 만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기존의 자료들을 모으고, 본인의 기억을 되살리고, 연이 닿는 모든 참전용사들을 일일이 인터뷰했다. 6.25전쟁에 대한 개인 회고록이나 비평의 수준을 넘어서기 위해 수만 페이지의 자료들을 뒤지고 철저한 고증 과정을 거치느라 작업은 더디고 힘겨웠다. 그런 10년 노력의 결산이 전 8권 분량의 『낙동강』이다. 6.25전쟁 발발 시점으로부터 그해 10월 1일까지의 전쟁사를 다루되 본인의 경험은 물론 주요 전투의 모든 상황과 거기 참여했던 인물들, 작전의 배경과 경과와 결과까지를 상세히 서술했다. 이전 책들의 잘못된 자료나 서술들을 바로잡았고, 사진이며 도표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을 동원했다. 사전에 이 책의 원고를 본 국방부의 고위 관계자는 그에게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이 해낸 쾌거”라며 치하했다.
참전용사가 전하는 가장 생생한 6.25전쟁사
6.25전쟁은 비극적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비극적이었는지조차 잊어가고 있다. 남과 북의 화해나 통일이 중요하다는 거대 담론에 밀려 6.25전쟁의 실상은 전문 연구자들 사이에서나 이따금 화제로 운위될 뿐이고, 전쟁의 실상과 그 의미를 세세히 살피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그러나 저자는 북한이 6.25전쟁을 벌이던 시점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의 이런 염려를 입증하듯이 책의 출간을 앞두고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이 차례로 일어났다. 그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던 셈이다.
저자는 자신의 믿음과 북한에 대한 염려를 단순한 감상이나 적개심으로 기술하지 않는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6.25전쟁 시 실제로 있었던 사건과 전투를 세밀하고 정확하게 기술함으로써 북한의 실체와 이들의 죄과를 낱낱이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다른 참전용사들의 회고록을 살피고, 정부 기관에서 편찬한 사료들을 두루 참조했다. 전사편찬위원회의 『한국전쟁사(전10권)』, 군사편찬연구소의 『6.25 전쟁사(6권)』, 전쟁기념사업회의 『한국전쟁사(전8권)』, 일본육전사보급연구회의 『한국전쟁』이 가장 기초적인 자료가 됐다. 여기에 연이 닿는 참전용사 45명을 따로 인터뷰해 그들의 생생한 증언도 책에 실었다. 그 결과 책은 전쟁의 큰 줄기를 다루면서도 특정 전투의 아주 세밀한 부분들까지 포착해내어 마치 생생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처럼 사실적이다.
6.25전쟁의 참화는 필설로 표현할 수가 없다.
국군 100만 명이 사상했고, 남북한을 합하여 국민 200만 명이 희생되었다. 국토는 폐허로 변했고, 국민은 헐벗고 굶주렸다.
안타깝게도 6.25전쟁은 세월에 묻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가르치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정치적 시류에 편승하여 억지로 만들어진 남북화해무드에 국민은 당장에 통일이 되는 것 같은 환상에 젖었고, 친북좌경 성향의 이념집단은 민족공조, 외세배격을 외치는 북한의 주장에 맞장구를 치며 우리를 침략한 북한의 미화하고, 우리를 도운 미국을 배척하는 감정을 조성하였다.
저들은 외세를 배격하고 민족끼리 평화적으로 조국을 통일하자고 제의하여 우리의 이목을 그쪽으로 돌려놓고, 기습 남침했었다.
민족공조, 외세배격, 평화통일은 표면에 내세운 북한의 허울이고, 무력수단에 의한 남조선해방이 저들의 기본 통일노선이다.
체제가 다른 국가로 성립하여 60년을 적대관계를 유지해왔다. 같은 민족이라는 단순논리로 통일의 감상에 젖는 것은 위험하다.
북한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
『낙동강』 전 8권 구성
제1권 1950년 6월 25일 새벽, 남조선 해방은 무력수단으로
6.25전쟁 발발로부터 서울 철수 이전까지의 남북한 정세와 주요 전투 상황
제2권 적구의 발굽에 밟힌 수도, 초전에 참패한 미 지상군
개전 3일 만에 벌어진 서울 철수와 미군의 참전 과정
제3권 한강을 버리고 낙동강으로, 7월 염천에 밀리기만 했다
7월까지 계속되는 후퇴 과정과 주요 전투 상황
제4권 지상 낙원 인민공화국, 그냥 바친 곡창 전라도
서남부 방면을 중심으로 한 해군, 공군, 경찰의 주요 작전
제5권 피로 물든 낙동강 - 이 강에 조국의 운명이
낙동강 방어선 전투
제6권 구국의 전장 다부동 전선, 세기의 도박 인천상륙전선
6.25전쟁 최고의 전투로 평가되는 다부동전투와 인천상륙작전의 전개 과정
제7권 낙동강아 잘 있거라, 대반격작전 - 38선 돌파
인천상륙작전 이후의 북진 과정
제8권 전사 자료
전쟁일지, 군사관련 협정, 미국 및 UN 결의와 미 지상군 참전, 지휘관 및 참모 프로필, 남ㆍ북한 군 창설 개요 및 주요지휘관, 남북한 군사력 비교, 지상군 장비, 전쟁의 상처,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