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육군참모총장의 일기로 본 제2차 세계대전 KODEF 안보총서 | 27
한 군인의 일기를 통해 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초상!
1939년 9월 말, 한 영국군 육군중장은 아내에게 자신의 속내와 경험 등을 전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전쟁 기간 내내 일기를 썼으며, 일기장 한 권이 채워질 때마다 집으로 보내 아내가 보관하도록 했다.『워 다이어리』는 영국의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앨런 브룩의 일기를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살펴보는 책이다. 7년 동안 이어진 브룩의 일기에는 국가의 운명을 어깨에 진 군인이자 생존의 기로에 선 개인의 심정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또한 그가 취급했던 중요한 사안이나 요직에 있었던 사람들과의 만남이 담겨 있어, 2차대전 전략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저자 : 아서 브라이언트
저자 아서 브라이언트 경은 Sir Arthur Wynne Morgan Bryant(1899. 2. 18.~1985. 1. 22.)은 저명한 영국의 역사가이자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Illustrated London News' 의 칼럼리스트다. 그의 주된 연구분야는 18~19세기 영국 역사로 'The Battle of Britain. The Few'(1944), 'The Summer of Dunkirk and The Great Miracle'(1948), 'Triumph In The West 1943~1946'(1959), 'The Fire and the Rose : Dramatic Moments in British History'(1966), 'The Great Duke : A biography of the Duke of Wellington'(1971) 등 다수의 책을 썼다. 그의 책은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읽히고 있으며 역사 연구의 주제가 되고 있다.
역자 : 황규만
역자 황규만은 1950년 7월 육군사관학교 제10기로 임관했으며, 사관생도로서 6.25전쟁에 참전했다. 미국 육군보병학교와 육군참모대학을 졸업하고 육군정보처장, 육군대학 교수부장을 거쳐 1976년 3월 준장으로 예편한 뒤 현재는 육군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롬멜보병전술', '롬멜 전사록', '현대 육군의 개혁' 등을 번역했다.
역자 서문
추천사
서장 천생연분
제1부 청천벽력
1장 무비유환
2장 구출작전
3장 프랑스 패망
4장 마지막 보루
5장 수난의 겨울
제2부 주도권 만회
6장 대영제국 육군참모총장
7장 전략기획 수립
8장 바다 건너 맺은 혈맹
9장 목숨 건 하늘길
10장 공세전환
11장 카사블랑카
12장 트라이던트
13장 시칠리아 작전
14장 퀘벡
참고문헌
제2차 세계대전의 난중일기
영국 육군참모총장 앨런브룩의 일기를 통해 보는
한 군인의 초상,
2차대전의 초상!
손자가 이르기를 “무릇 전쟁을 오래 끌어 국가에 이로운 예는 아직 없었다. 그러므로 백 번 부딪쳐서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상의 용병법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의 용병법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사 이래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경험자가 아니고서는 그 당시의 전쟁의 현장, 참혹함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어리석은 인간들은 과거를 망각하고 다시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있기에 우리는 당시의 전황은 물론 한 국가의 운명을 책임진 장군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전쟁 현장의 기록은 후대에게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고 반복되는 과오를 경고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이하는 2010년, 전쟁을 통해 인간 본성과 역사의 흐름을 되짚어보는 〈KODEF 세계전쟁사〉와 〈세계의 전쟁〉 시리즈를 발간한 플래닛미디어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난중일기라 할 수 있는 ??워 다이어리-영국 육군참모총장의 일기로 본 제2차 세계대전』이 출간되었다.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이 끝난 1939년 9월 말, 한 영국군 육군중장이 프랑스 셰르부르를 향해 날아가는 동안 방금 전 이별의 인사를 나눈 아내에게 자신의 속내와 경험 등을 전하고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책 ??워 다이어리-영국 육군참모총장의 일기로 본 제2차 세계대전』은 2차대전 당시 영국의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앨런브룩Alan Brooke의 일기를 토대로 쓰인 책이다. 앨런브룩은 전쟁 기간 내내 일기를 썼으며 일기장 한 권이 채워질 때마다 집으로 보내 부인이 보관하도록 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들이 임진왜란을 소상히 알 수 있었듯이 앨런브룩의 일기 역시 사료적 가치가 있는 귀중한 문건이다.
2차대전 당시 영국의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앨런브룩의 일기는 2차대전에 관한 모든 개인 기록 중에서 가장 귀하고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 자료는 국가의 운명을 어깨에 지고 고독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한 군인이자 생존의 기로에 서서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앞일에 대한 걱정을 떨치지 못하기도 하는 한 개인의 심정을 반영하고 있다.
일기는 7년이나 이어졌고 그가 취급한 사안의 규모나 범위는 범세계적이며 그것들은 말할 것도 없이 기밀에 속했다. 뿐만 아니라 브룩은 군인, 민간인을 불문하고 요직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접촉했기 때문에 앨런브룩의 일기와 자서전적 기록에는 2차대전의 대전략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귀중한 자료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1950년 7월 육군사관학교 제10기로 임관하고 사관생도로서 열아홉의 나이에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며 미국 육군보병학교와 육군참모대학을 졸업하고 육군정보처장, 육군대학 교수부장을 거쳐 1976년 3월 준장으로 예편한 뒤 현재는 육군대학 명예교수로 있는 역자는 ?케르크에 갇혀 있다 빈손으로 몸만 빠져나온 영국 원정군의 모습이 1950년 6월 25일 아무런 준비 없이 안이하게 있다 북한의 기습을 받고 부산으로 쫓겨 갔던 한국군의 비참한 모습과 겹쳐져 절로 한숨이 나왔다고 한다.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한 지 2달여 후인 1939년 11월 11일 1차대전 휴전 기념일에 앨런브룩은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러한 유혈 참사를 또다시 일으키고 만 어리석음을 새삼 뼈저리게 느낀다. 우리들은 ‘이웃을 사랑하기를 내 몸을 사랑하듯 하라’라는 가르침을 이런 가혹한 벌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지 않을까.”
?케르크에서 사지에 내몰린 영국군을 구출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
목공일을 즐겨하고 들새 사진을 찍으며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버지, 앨런브룩
저자는 브룩의 일기와 자서전적 기록을 바탕으로 전쟁 초기 몇 년 동안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한 참담한 패배의 소용돌이 속에서, 특히 싱가포르 함락에서 이탈리아 항복까지의 19개월 동안에, 그가 영국 및 연합국의 승리를 위해 얼마나 공헌했는지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앨런브룩이 제2군단장으로서 프랑스에 부임한 지 8개월이 지난 당시 영국 원정군은 매우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었다. 1940년 5월 연합군은 ?케르크 항만에 고립되었으며 영국 육군 정규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약 25만 명이 협공포위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독일군은 그 포위망을 좁혀 들어가고 있었는데, 26일에 히틀러가 갑자기 독일 기갑부대에 전진을 중지할 것을 명령했다가 28일 다시 공격을 재개했고, 독일이 이 부근 일대를 완전히 점령하게 된 6월 4일까지 영국은 어선 등 모든 종류의 선박 850척을 모아 33만 8,000여 명의 연합군을 영국 본토로 철수시키는 데 기적적으로 성공했다.
이 역사적인 대작전의 뒤에는 앨런브룩이 있었다. 죄어오는 적의 포위망을 뚫고 부대들을 무사히 철수시킨 앨런 브룩의 공적은 영국의 군사사상 위대한 업적의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제2군단 철수작전을 지휘할 뿐만 아니라 위기에 처한 전투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등 후퇴하는 영국군의 노출된 모든 동쪽 측방을 통합 지휘했다. 당시 육군성 장관이었던 그리그 경은 “후퇴 시 제2군단뿐 아니라 전 영국군이 전멸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브룩의 지략과 결단력에 의한 것이며 이 점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증언이 일치했다”고 기술했다.
앨런브룩은 자신의 임무수행에 있어서 정치적 고려 때문에 군사적 판단을 희생시키는 것을 거부했으며 모순된 본국의 훈령을 무시하면서 파멸 직전에 놓인 휘하 장병들을 본국으로 안전하게 철수시키는 데 성공했다. 처칠은 “그는 그만의 투철한 정신과 치밀한 판단력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난국과 혼란의 와중에서 냉철하게 행동했다”라고 썼다.
그러나 일단 공무를 떠나면 정중함과 자상한 배려를 베푸는 등 자신의 계급과 현 직위에 걸맞지 않게 아주 평범하게 상대를 대하는 것으로도 평판이 자자했다. 브룩의 절친한 친구는 그에 대해 “그의 유별난 점은 언제나 자신이 준장인 것처럼 말한다”라고 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브룩이 국난에 처하자 맨 처음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그리고 완급과 경중을 가려 조치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 영국 정부의 수뇌부와 영미군의 의견 대립과 동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방책을 어떻게 창출해냈는지 밝히고자 했다’고 한다. 이 기간의 일기를 읽는 독자들은 누구나 그의 미래에 대한 전망과 판단의 일관성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쟁 수행을 위해 헌신적인 희생의 거보를 내디딘 한 군인의 일기를 통해 참군인상을 그려본다.
환상의 짝꿍
동물적 직감의 처칠 & 현실적 분석가 브룩
앨런브룩의 일기에는 많은 명사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인물은 3년 반에 걸쳐 그가 모신 수상 처칠이다. 처칠은 국민들에게 애정과 존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결코 적에게 굴복하거나 절망하지도 않고, 영국의 흥망과 승리를 위한 본질적 문제를 절대 얼버무리지 않았던 지도자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위기와 호기를 예견하는 통찰력이 있었으며 절망과 희망으로 국민들이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잘 조절할 수 있는 저력도 있었다.
그러나 처칠은 참을성이 없고 충동적이고 성미가 급하다는 결점도 있었다. 무엇이든 적의 약점을 포착하면 반격해야 한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공격만이 최상의 방책이라는 마술에 걸려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의 화신이 되어버린 처칠은 때로 대담무쌍한 모험적 행동으로 치달아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면 파멸적 패배로 귀결되었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처칠의 웅변과 완고함은 군 고위참모들에게 골칫거리가 되었다.
이러한 성향의 수상에게는 앨런브룩만이 대항마였다. 처칠은 ‘문제의 논리적 검토는 일절 생략해 버리고 직감에 의존하여 순간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방식’을 택하는데 이와 대조적으로 브룩은 무엇이 가능한가를 선별하는 통찰력이 있었고 자신이 선택한 방책이 언제, 어디서 실현 가능할지 판단할 줄 아는 실제적 감각도 가지고 있었다. 수상의 선견지명적인 구상에 대해 즉각 실현가능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현실 상황에 비추어 조정하는 일이 브룩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었다. 육군장관 그리그는 브룩이 “전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에 있어서 육군 내에서는 물론 해군이나 공군의 고위장성 누구보다도 뛰어난 소양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수상과 브룩은 종종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지만 둘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나갔다. 한마디로 그들은 환상의 짝꿍이었다.
일기는 회고록과 다르다. 솔직하고 감정적이기도 하다. 브룩의 일기에는 당시 처칠과의 마찰, 처칠에 대한 불만 등도 숨김없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기이기에 볼 수 있는 인간적인 감정일 뿐 처칠의 단점은 그가 이룩한 업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브룩은 말한다. 브룩은 “처칠은 내가 지금까지 만나 함께 일한 사람 중 가장 까다로운 인물이기는 하나 그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은 이 지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앨런브룩의 일기를 통해 고집 세고 성격이 급하지만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처칠이란 걸출한 전쟁 지도자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장군의 환상적인 궁합이 국난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거인들의 진정한 리더십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