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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의 왕자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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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의 왕자를 꿈꾸다

고조선부터 발해까지, 한민족의 고대 전쟁사

저자
서인한
출판사
플래닛 미디어
발행일
2009.12.28
정가
18,000 원
ISBN
9788992326612|
판형
153*224
면수
368 쪽
도서상태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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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왕자를 꿈꾸다』는 부유하고 교만’했던 경제대국 고조선으로부터 삼국과 통일신라 그리고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녔던 발해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역사를 다룬다. 이 책에서는 고조선부터 발해시기까지 주변국과의 주요 전쟁을 분석하고, 한반도 내부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싸운 전쟁을 11개로 나눠 독립적. 개관적으로 조망한다. 전쟁을 이해하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가치와 평화를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동북아의 왕자를 꿈꾸다

저자: 서인한

국민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책임편찬위원으로 입사하여, 그 후신인 군사편찬연구소에서 군사사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는『고구려 대수·당 전쟁사』, 『나당전쟁사』, 『한민족전쟁통사(고대편)』, 『한민족 역대파병사』, 『한국고대 군사전략』등이 있고, 논문은「대한제국 군사제도연구」, 「조·명 연합군 기병작전의 전개 양상」외 다수가 있다.

들어가는 말 |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이해하라

제1장 문화의 우위가 힘의 불균형을 만들다
- 기원전 300년 고조선과 연나라의 전쟁

최초의 국가
‘잔인하고 교만한’ 경제대국
연의 동진
군비경쟁
연의 세력권에서 벗어나 수도를 한반도로 옮기다
전략적 후퇴
?또 하나의 역사-단군신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제2장 리더가 지도력을 상실하면 국가는 곧 위기다
- 기원전 109년 고조선과 한나라의 전쟁

이민자 위만이 고조선을 치다
군사력은 경제력에 비례한다
선전포고
한나라의 패수 도하를 저지하다
남북의 수륙군에 도성이 넘어가고
요동의 주도권을 건 힘겨루기
?또 하나의 역사-위만의 정체성, 그는 어디서 왔나?

제3장 요동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 172년 고구려와 한나라의 전쟁

‘하구려’
옥저를 확보하여 후방을 안정시키다
합종과 연횡
고구려를 키운 전사계급
극단의 방어 청야전술
형의 왕위와 아내를 물려받다
?또 하나의 역사-형과 아우의 왕비가 되었던 우씨

제4장 요동의 육상교통로를 확보하라
- 244년 고구려와 위나라의 전쟁

어지러운 혁신의 시대
동북아의 독자세력으로 성장하다
완충지대가 사라지다
초토화되는 국내성
항복 소찬 속에 단검을 숨기고
낙랑과 대방을 압박하며 다시 세를 키우다
?또 하나의 역사-목숨으로 주군을 구한 밀우와 유유

제5장 왕조의 안녕을 보장받기 위한 정치적 선택
- 4세기 후반 백제와 고구려의 전쟁

기지개 펴는 백제
백제의 기회, 고구려의 위기
근초고왕, 사상 최고의 지략가
장차 누가 다시 이곳까지 올 수 있을까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의 남진을 견제하다
팽창정책의 성과와 후유증
?또 하나의 역사-백제는 과연 요서지역을 지배했을까?

제6장 사상 최대의 영토를 지배하다
- 4세기 말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

연의 침략에 고구려가 휘청거리다
위대한 정복군주의 등장을 준비하다
척박하고 메마른 땅은 강인한 전사를 길러내고
한민족 역사상 최대의 영토국가로
고구려의 최고전성기를 이끌다
등거리외교
?또 하나의 역사-장수왕의 공작원 도림

제7장 고구려와 백제의 연결을 차단하라
- 553년 신라와 백제의 전쟁

불교의 위엄에 지배자의 권능을 일치시키고
백제와 고구려의 혼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다
군제를 개편하고 진흥왕의 시대를 준비하다
한강을 장악하다
‘용궁을 탈출한 토끼’
중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또 하나의 역사-최초의 여왕 선덕

제8장 살수의 큰 이름을 세계 전쟁사에 기록하다
- 6세기 말~7세기 중반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

남북세력과 동서세력으로 동아시아를 양분하다
끼니 거르는 30만 침략군
113만 대군이 9600리의 대열을 이루다
쿠데타를 일으키고 스스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다
토산보다 높은 성벽으로 고구려를 지켜내고
방어전에는 수세적 외교관계가 필수적이다
?또 하나의 역사-절대권력자 연개소문과 그 아들의 말로

제9장 새로운 한반도
- 7세기 중반 신라와 백제·고구려의 전쟁

생존게임
구원요청에 외교적 역량을 집중하다
당 고종을 한반도로 불러들이다
문화선진국 백제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당나라의 권력지형도를 바꿔놓다
700년 고구려의 기상이 꺾이고
변혁 또는 지각변동
?또 하나의 역사-김유신이 여동생을 김춘추와 혼인시키다

제10장 고구려의 대부분을 대가로 지불한 통일
- 7세기 후반 신라와 당나라의 전쟁

백제 고토에 당의 행정조직이 들어서다
고구려의 레지스탕스를 지원하다
멸망 후 10년 만에 백제 땅을 취하다
죽는 것보다 죽을 자리를 택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니
티베트의 개입으로 7년 나당전쟁이 막을 내리다
실리외교의 승리
?또 하나의 역사-백제 유장 흑치상지 당나라에서 재기하다

제11장 다시 발해를 꿈꾸며
- 733년 발해와 당나라의 전쟁

고구려를 계승하며 말갈을 거두다
당의 전략적 파트너로 성장하다
새질서와 구질서
거대한 제국 발해의 전성시대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해동성국 부활운동
?또 하나의 역사-발해 공주의 묘비

마치는 말 | 언제나 으뜸은 국익이다
연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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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의 힘이 교차하는 중간지대,
때로는 완충지대였다가 때로는 격전지로 급변하는 이중적 성격의 한반도…
이 땅에서 한민족은 다양한 민족들과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면서
역사의 한 축이 되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왜 전쟁을 이야기하는가? 목적은 찬양이 아니다. 전쟁을 이해하지 않고 평화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폴레옹과 싸워 승리한 웰링턴은 “패전 다음으로 슬픈 일은 승전이다”라고 하여 승리한 전쟁조차 평화보다는 아픈 것임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전쟁은 인류 역사의 중요한 일부를 형성해왔으며, 명백하게 승자와 패자를 갈라놓았다.(6쪽)

고대부터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현대까지 한반도의 전쟁사를 정리하는 플래닛미디어의 ‘한국 전쟁사’ 시리즈 세 번째 책, "동북아의 왕자를 꿈꾸다-고조선부터 발해까지, 한민족의 고대전쟁사"가 출간되었다. 한국 전쟁사 시리즈 1. 조선전쟁사 『조선 평화를 짝사랑하다』, 2. 고려전쟁사 『고려, 북진을 꿈꾸다』에 이어 발간된 고대전쟁사 『동북아의 왕자를 꿈꾸다』는 부유하고 ‘교만’했던 경제대국 고조선으로부터 삼국과 통일신라 그리고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녔던 ‘우리나라’ 발해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와 대륙을 넘나들며 떨쳐보였던 한민족의 웅대호장한 기백의 역사를 돌아본다. 과연 고대사회에서 전쟁은 무엇이고, 전쟁을 치렀던 전사들은 누구인가? 그 명분조차 변변찮았던, 그럼에도 생존의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고대의 전쟁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 전쟁에서는 진실로 인간을 향한 도덕과 가치가 전혀 무시되기만 했던 것인가? 역사를 주도했던 그들 주인공들의 고민과 결단의 종점에는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는가? 이 책은 감히 이런 의문들에 대한 답으로 만들어졌다. 과연 고대사회에서 전쟁은 무엇이고, 전쟁을 치렀던 전사들은 누구인가? 고대의 전쟁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전쟁은 더 나은 수준의 평화를 건설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국가가 출현한 후로 무력에 의한 영토확장과 정복활동은 더욱 조직적으로 행해졌고, 이런 정복전쟁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전쟁은 본질적으로 자신이 속한 정치공동체의 안전과 이익의 확보로 귀결된다. 고대의 전쟁은 그 정당성을 논하기에 앞서 본질적으로 생존을 위한 투쟁 자체였다. 전쟁에는 그 사회의 모든 지혜와 에너지가 동원되었고, 승리하여 모든 것을 취하거나 혹은 왕조와 왕국의 몰락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러했기에 고대 사회에서 전사는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고대국가에서 권력의 정점에 존재한 군주는 하늘의 뜻을 지상에 전달하는 ‘대리자’로서 절대적인 통치권을 행사했는데, 그가 장악한 권력은 군사軍事와 정치의 구분이 없었으며, 오히려 권력 초기에는 군사권이 정치권을 압도했다. 한국의 고대사에서는 신라의 삼국통일 이전까지 통치자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 출정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고조선의 위만, 고구려의 광개토왕, 백제의 근초고왕과 근구수왕, 신라의 진흥왕과 무열왕?문무왕 부자, 발해의 고왕 대조영과 무왕 대무예 등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대화로 하는 전쟁이 외교라면 무력으로 하는 외교가 바로 전쟁이다. 이것은 무한경쟁,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질서와 함께 반만년 전부터 21세기 오늘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엄숙한 생존의 룰’이다. 이것은 다만 문장의 형식을 취하지 않은 ‘국제법’이다. 그 중한 질서 안에서 고대인들은 외교와 군사력을 적절하게 구사하며 전쟁과 평화의 균형점을 찾고자 했다. 고대사회의 국제적 질서 아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한 전쟁사에서 일정한 법칙을 끌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다만 한 시대의 과학과 철학, 지식과 견식 등 모든 동력을 끌어 쓴 그들의 분투 속에서 역사가 전하는 생생한 생존의 파노라마만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지혜를 읽기 위해 고조선부터 발해시기까지 주변국과의 주요 전쟁을 분석하고, 여기에 한반도 내부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싸운 전쟁을 11개로 나눠 독립적?개관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그들의 무대는 대륙이었다!
반도를 넘어 대륙을 호령하던 기개와 위엄의 고대전쟁사

우리 한민족은 고대로부터 수많은 전쟁을 치러왔다. 지정학적으로 중간지대rim land에 위치한 한반도는 주변국 간의 힘이 교차하는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때로는 완충지대에서 때로는 격전지로 급변하는 이중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흔히 한반도를 전략요충지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주변의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형성하는 힘의 관계성, 그 영향력을 지적한 것에 다름 아니다. 문헌상으로 나타나는 한민족 최초의 전쟁은 기원전 4세기 말~기원전 3세기 초에 걸쳐 전개된 고조선과 연나라의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후 고조선부터 발해?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면서 승리와 패배를 주고받았다. 현대적 개념의 국경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국과 주변국의 상황 및 정세의 변화에 따라 생존을 위한 인구이동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지역사회가 정치적 혼란을 겪거나 자연재해가 빈발하여 생존여건이 열악해지면 보다 나은 생활환경을 찾아 이동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한민족의 영역은 결코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들의 무대는 요서와 요동을 아울렀고 국력의 성쇠에 따라 확대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했다. 오늘날과 같은 한민족의 개념은 적어도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 생긴 개념으로 백제?고구려 유민을 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을 것이다. ‘삼한일통三韓一統’을 강조함으로써 삼국민의 융화와 정권의 안정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통일신라의 영역이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북방으로부터의 인종적?문화적 교류도 폐쇄되어 점차 ‘단일민족’ 개념으로 고착되어갔다. 저자는 이 단일민족 개념과 함께 서쪽 대동강과 동해 원산만을 연하는 선 이남의 지리적?지형적 한계가 오늘날 우리 역사의식의 범주를 한반도에 가두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만주대륙이 비좁던 그때의 고대인을 다시 생각한다.”

환란의 시기에 자신을 지킨 선조들의 지혜.
언제나 으뜸은 국익이었다.

한국 고대 전쟁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민족의 사활을 건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고대 국가들이 외국과 특히 선진문화를 보유한 중국 대륙의 국가들과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전쟁과 외교를 적절히 양립시켰다는 점이다. 이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리외교의 전형으로, 우리 고대사회의 대외투쟁사에 흐르는 일관된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지형적?전략적 환경은 오늘날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넓고 비옥한 토지가 존재하는 지역, 한강을 비롯하여 낙동강 지역이나 영산강 일대, 그리고 호남에서 황해도까지 서해를 연하는 일대의 평야지역은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의 공급지일 뿐 아니라 남양만을 통해 중국의 남북조 국가들과 연결되는 통로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군사적 거점이자 목표였다. 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 속에서 지형적 환경은 줄곧 동서와 남북을 연결하는 외교의 축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동북아 국제질서의 역학관계는 그때마다의 특수한 사정에 기인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고대인들의 원교근공 외교 전략이 중요한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중국에 수?당이 들어서기 전에 고구려가 북위와, 백제가 송과, 그리고 신라가 진나라 등과 친선을 유지하면서 선진문물을 수용하고 의례적인 조공관계를 통해 중국세력을 이용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또한 고구려의 장수왕은 중국 남북조의 대립을 이용하여 북조의 북위?동위?북제?북주 등과 통교하고, 다른 한편으로 남조의 동진?송?제?양?진 등과도 친선을 도모함으로써 전쟁을 예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들 전쟁의 대부분은 그 결과가 국왕이나 군사지휘관의 개인 역량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지도자들은 나름의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국가나 민족의 운명을 건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고대 전쟁사는 사료의 부족으로 그 연구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적지 않지만 고대 전쟁사에 나타난 이 같은 지략과 전략적 사고는 오늘날 우리의 전략적 사고를 형성하는 데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또한 고대인들의 지략은 전쟁과 같이 경쟁이 치열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역사를 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