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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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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터키 건국의 아버지 아타튀르크 일대기

저자
앤드류 망고 / 역자 : 곽영완
출판사
애플미디어
발행일
2012.10.10
정가
28,000 원
ISBN
9788996899341|
판형
152*225
면수
648 쪽
도서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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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건국의 아버지 아타튀르크 일대기『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터키 공화국을 세운 건국자이자 나라의 기반을 닦은 정치인으로 여전히 많은 터키인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일대기를 담은 책이다. 외세의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투르크 민족의 나라를 건설했으며, 이 과정에서 같은 처지의 여러 나라들에게 독립하는 방법을 알려준 아타튀르크의 애국심과 민족애에 초점을 맞췄다. 아울러 이스탄불 출신의 영국인 작가 앤드류 망고는 케말 아타튀르크의 영웅적인 면모는 물론, 나약하고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모습도 조명하였다.

저자 : 앤드류 망고   저자 앤드류 망고(Andrew Mango)는 1926년 이스탄불의 부유한 영국인 집안에서 태어난 영국인이다. 1947년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대학을 졸업한 뒤 BBC에 입사, 1986년 은퇴할 때까지 터키 문제를 주로 다뤘다. 출생지가 이스탄불이었던 그는 터키인이 아니면서도 어느 외국 작가보다 터키 측 자료를 쉽게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영어로 집필한 그의 아타튀르크 전기가 전 세계에서 발간된 아타튀르크 관련 서적 중에 가장 풍부하고 가장 객관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역자 : 곽영완   역자 곽영완은 애플미디어 대표. 20년 가까운 일간지 기자생활을 접고 터키문화관광부 한국사무소 고문을 맡으면서 터키와의 인연을 쌓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터키를 알리는 일을 여러 해 동안 해 오면서 터키 땅에서 이루어진 역사와 문명에 심취, 터키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재조명하는 저술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기자 시절의 취재노트를 바탕으로 쓴 한국 남녀골퍼 이야기 『108mm 홀컵을 정복하다』, 터키 땅을 바탕으로 서양 중근세사를 서술한 『이스탄불의 황제들』『터키에서 읽는 로마사』와 , 번역서 『터키 민족 2천년 사』가 있다.

추천사
서문
서론

제 1부 성장기
제1장 유럽 땅에서 태어나다 제2장 오스만 제국의 장교가 되다
제3장 군사 혁명의 서곡 제4장 성마른 청년 투르크

제 2부 길고 긴 전쟁
제5장 사막에서의 모험 제6장 재앙에 맞서다
제7장 막간의 외교관 생활 제8장 전선으로 가다
제9장 전면전

제 3부 건국을 향한 의지
제10장 사막에서의 모험 제11장 재앙에 맞서다
제12장 막간의 외교관 생활 제13장 전선으로 가다
제14장 전면전 제15장 그리스군을 저지하다
제16장 전쟁에서 승리하다 제17장 싸우지 않고 승리하다

제 4부 공화국 건국과 개혁
제18장 황실 폐지 제19장 평화 정착과 공화국 건국
제20장 칼리프제 폐지 제21장 법과 질서를 세우다
제22장 개혁과 압제 제23장 암살 위기

제 5부 독재자
제24장 지도자는 항상 옳다 제25장 불황
제26장 테이블 정치 제27장 마지막 싸움
제28장 신격화 제29장 그 후
역자의 말
주변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
연대기
주석
참고문헌
색인

 

터키 건국의 아버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1차 대전후 외세침략에 맞서 조국을 구한 영웅이자 터키 근대화를 밀어붙인 독재자로서의 역사평가가 늘 엇갈리는 그는 누구인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그는 왜 ‘국민의 아버지’라 불리는가


- 전세계 역사가들이 추앙하는 성공한 제3세계의 지도자
- 한국근대사와 닮은 꼴… 그가 2012년 대한민국에 던지는 메시지
- 이스탄불에서 출생한 영국인,BBC 기자출신 작가... 앤드류 망고의 걸작
-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케말 아타튀르크의 전기물로 사료가치 높아

“독재자인가 구국의 영웅인가.”
우리나라의 대선주자와 관련된 물음이 아니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사활을 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1938)의 일대기를 담은 전기물(제목-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이 출간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케말 아타튀르크의 일대기가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여당 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를 비교하는 논쟁이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심 업적으로 꼽히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한 관 주도의 경제 개발, 농촌 근대화 사업, 서구식 제도 도입 등은 물론,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교육헌장’까지 매우 유사한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제3세계에서 성공한 지도자의 본보기로 아타튀르크와 박정희를 꼽는 역사가들도 많다. 군 출신이라는 점과 근대화의 기반을 잡아놓았다는 것도 공통점으로 본다.

70년대 우리나라 교과서에 ‘케말 파샤’로 언급되기도 했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역시 재임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독재자와 영웅’이라는 두 얼굴을 지닌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독재자’라는 멍에를 씌운 건 15년간의 장기 집권에만 초점을 맞춘 외부세계와 세속주의 정책에 반감을 지녔던 이슬람 지도자 일부였을 뿐이다. 터키 국민들은 오히려 나라의 기반을 다진 ‘영웅’으로 추앙하며 숨진 뒤 8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존경심을 잃지 않고 있다. 웬만한 터키 도시에서는 그의 이름이 붙은 도로나 공원은 물론, 동상 하나쯤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터키의 가장 큰 도시이자 관문인 이스탄불 공항에도 그의 이름이 붙어있다.

1881년 그가 오스만 제국 하급 관리 집안의 아들로 태어날 즈음 오스만 제국은 600년이 넘는 영화를 뒤로하고 붕괴 직전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동맹을 맺고 참전한 제1차 세계대전 패배는 마지막 치명타였다.
패전국 오스만 제국은 전승국 연합국에 의해 철저히 분할됐다. 오스만 제국은 다민족, 다종교 사회였다. 주도 세력인 투르크인은 물론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아랍인들이 어울려 대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민족별로 종교도 달랐고, 종교별로 사회 조직도 달랐다. 같은 기독교도인 연합국의 지원에 힘을 얻은 기독교 민족들, 즉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백 년 동안의 염원이었던 민족 독립을 넘어 오스만 제국 전체를 손에 넣으려 했다.
이 과정에서 투르크 민족의 지도자로 떠오른 인물이 바로 아타튀르크였다. 그는 외세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투르크 민족의 나라를 건설했다. 오스만 제국은 무너졌지만 투르크 민족은 독립된 민족 국가를 수립하며 살아남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같은 처지의 여러 나라들에게 독립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영웅이었다. 그러나 터키인들이 그를 독재자보다는 국부로 인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화국 건국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애국심과 민족애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터키 민족의 문화와 저력을 믿었고, 무엇보다 철저히 외세 의존적인 생각을 배제했다.

한편 6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1850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최초로 출간한 유서깊은 영국의 존 머레이(JOHN MURRAY) 출판사가 1999년 발간한 책으로 10여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저자는 앤드류 망고는 1926년 이스탄불의 부유한 영국인 집안에서 태어난 영국인으로, 1947년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대학을 졸업한 뒤 BBC에 입사, 1986년 은퇴할 때까지 터키 문제를 주로 다뤘다. 출생지가 이스탄불이었던 그는 터키인이 아니면서도 어느 외국 작가보다 터키 측 자료를 쉽게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영어로 집필한 그의 아타튀르크 전기가 전 세계에서 발간된 아타튀르크 관련 서적 중에 가장 풍부하고 가장 객관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번 한국어 번역은 역시 기자 출신인 애플미디어의 곽영완 대표가 직접 맡았다. 곽 대표는 “아타튀르크가 살았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사회, 정치, 문화적인 시대상과 인물들의 갈등은 6.25 이후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던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오늘날 우리 정치에도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곽 대표는 “일부 논란이 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어떤 자세로 나라를 이끌어야 할지에 대해서만큼은 우리 지도자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아 번역, 출간하게 됐다.”며 “정치 지도자들은 반드시 읽어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아타튀르크 어록
권력은 조건없이, 제한없이 국민의 것이다 - 아타튀르크의 묘비문구
가정에서 평화, 세계에서 평화 -현 터키공화국의 모토
- 나라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서민들이다.
- 진실을 말하는것을 두려워 말라.
- 터키 공화국은 행복, 풍요, 그리고 승리를 얻을 것이다.
- 터키 공화국의 기초는 문화다.
- 우리의 위대한 목표는, 우리 조국을 가장 높은 수준의 문명과 번영을 이룩하는
데에 있다.
- 선생님들이여, 새로운 세대는 여러분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집니다.
-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터키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 내 미천한 몸은 언젠가는 먼지가 될 것이나, 터키공화국은 영원히 우뚝 서 있
을 것이다.
- 권력은 주어진 것이 아니며, 획득하는 것이다.
- 우리 터키인들은 역사를 통틀어 자유와 독립을 실천해온 민족이다.
- 우리 민족은 행동과 노력에서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연대로 인하여 성공할 수
있었다.

■ 세계각국 언론의 평가
“앤드류 망고는 아타튀르크를 혼란스러운 20세기 초반을 헤쳐나간 인물로 확고히 자리매김 시키고 있다-이는 많은 평론가들과 명사들, 또는 비평가들도 못한 일이다…. 영어로 쓰여진 아타튀르크 일대기의 결정판이다.” -이코노미스트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감이 느껴지는 한 인물에 대한 최고의 일대기다.”
-댈러스 모닝 뉴스

“앤드류 망고가 새롭게 집필한 권위 있는 이 일대기는 수없이 많이 출간된 터키 측 자료들을 신중히 고려하면서도 아타튀르크의 폭풍과 같은 삶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대단한 업적이다.” -스펙테이터

“앤드류 망고의 책은 아타튀르크 일대기를 다룬 책 가운데 최고다.”
-더 선데이 타임즈(런던)

“위대한 저술이다. 오스만 제국의 쇠망과 관련해 내가 본 저술 가운데 가장 간명하다. 아타튀르크를 다룬 결정판이다. -조프레이 루이스

“앤드류 망고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일대기는 20세기의 위대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을 다룬 사려 깊고 명예롭고, 균형감 있고, 정통성 있고, 최종적이고, 계몽적인 저술이다. 최고의 책이다.”
-브루스 쿠니홈, 듀크대 공공정책 및 역사학 교수

“망고의 아타튀르크 일대기는 중동 지역 지도자를 다룬 일대기 가운데 최고다. 모든 위대한 일대기들처럼 개인적인 의견과 견해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비판가들조차 만족시킬 만큼 잘 쓰여 졌다.”
-저스틴 맥카시, 오스만 투르크(The Ottoman Turks)의 저자이며 루이스빌대 역사학 교수

■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아타튀르크(1881~1938).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투르크인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무스타파였고, 군사 고등학교 재학 시절 케말이라는 성을 얻었다. 우리에게 흔히 알려져 있는 케말 파샤라는 존칭도 여기서 비롯된다. 아타튀르크라는 명예로운 성은 후에 터키 국민들이 만들어준 것이다.
그는 터키 공화국을 세운 건국자이자 그 나라의 기반을 닦은 정치인으로서 여전히 터키인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웬만한 터키 도시에서는 그의 이름이 붙은 도로나 공원은 물론, 동상 하나쯤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터키의 가장 큰 도시이자 관문인 이스탄불 공항에도 그의 이름이 붙어있다.
단순히 나라를 건국한 공로 하나만으로 ‘아버지’라는 칭호이자 이름을 얻었고,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변함없이 존경을 받고 있을까? 그랬다면 이 세상 모든 나라의 건국자들 앞에는 아버지라는 칭호가 붙어있어야 할 것이다. 그는 다른 정치인들과 무엇이 달랐을까?

그가 살았던 시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였다. 그는 오스만 제국 하급 관리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터키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지금은 그리스 영토인 살로니카였고,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군인으로서 활약을 펼친 곳은 소아시아의 앙카라였고, 숨진 곳은 이스탄불이었다. 급격한 신분과 체제의 변화, 그리고 일생 동안 여러 곳을 전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시대가 얼마나 혼란스러운 시대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가 태어날 즈음 오스만 제국은 600년 가까운 영화를 뒤로하고 붕괴 직전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동맹을 맺고 참전한 제1차 세계대전 패배는 마지막 치명타였다.

패전국 오스만 제국은 전승국 연합국에 의해 철저히 분할됐다. 오스만 제국은 다민족, 다종교 사회였다. 주도 세력인 투르크인은 물론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아랍인들이 어울려 대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민족별로 종교도 달랐고, 종교별로 사회 조직도 달랐다. 같은 기독교도인 연합국의 지원에 힘을 얻은 기독교 민족들, 즉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백 년 동안의 염원이었던 민족 독립을 넘어 오스만 제국 전체를 손에 넣으려 했다.
이 과정에서 투르크 민족의 지도자로 떠오른 인물이 바로 아타튀르크였다. 그는 외세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투르크 민족의 나라를 건설했다. 오스만 제국은 무너졌지만 투르크 민족은 독립된 민족 국가를 수립하며 살아남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같은 처지의 여러 나라들에게 독립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영웅이었다.
그가 살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사회, 정치, 문화적인 시대상과 인물들의 갈등은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킨 주제는 1918년 미국 대통령 윌슨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였다. 이후 민족주의 이념은 전 세계를 풍미했다. 일제 강점기에 있던 우리의 지식인들이 3.1운동을 일으킨 것도 민족자결주의라는 민족주의 열풍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서 당시 터키의 일부 지식인들은 미국의 신탁통치를 절실히 원했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스스로 독립을 지키며 발전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마도 일제 강점기 우리의 일부 지식인들도 그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타튀르크는 터키인들의 저력을 믿었다. 외세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독립된 국가를 유지하며 세계 문명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동시대 우리의 지도자들보다 위대하고 혜안이 있었다.
또 그 시기는 전쟁의 시기였다. 발칸 전쟁과 이어지는 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의 혼란상은 6.25와 그 이후 우리의 혼란상과 흡사했다. 그 같은 혼란과 외세의 침략이라는 2중고 속에서 아타튀르크는 독립을 쟁취하고, 그 독립을 지키고자 다양한 정책을 도입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독재 정치를 실시했다.
우리 정치도 혼란을 없애고 질서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한동안 독재의 그늘 아래 놓여있던 때가 있었다. 아타튀르크를 대하는 터키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여전히 그를 독재자보다는 국부(國父)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아타튀르크는 오늘날 우리 정치에도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터키인들이 그를 독재자보다 국부로 인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애국심과 민족애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민족의 문화를 믿고 민족의 저력을 믿었다. 무엇보다 철저히 외세 의존적인 생각을 배제했다. 다만 타 민족이 갖추고 있던 좋은 점만은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때문에 그는 터키인들 뿐 아니고 세계의 모든 역사가들이 추앙하는 유일한 제3세계의 지도자로 남아있다.
우리는 언제 그 같은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이미 지녔던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