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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신간 도서 소개(종합) - 매주 업데이트 됩니다.
등록일
2024-10-23
조회수
196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유홍준 저 / 22,000원 / 창비


“그의 문장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그가 걸은 곳마다 이야기가 피어난다”

한국의 대표 글쟁이, 국보급 역마살
유홍준이 인생만사 답사로 돌아왔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이 30여년만에 산문집으로 독자를 찾아왔다. 문화유산 전도사, 문화재청장 등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는 500만 부 판매의 신화를 쓴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수십년 동안 베스트셀러 작가의 자리를 내려놓은 적 없는 유홍준의 글쓰기 비법과 그의 ‘문장수업’의 이력을 낱낱이 공개하고, 신문 등 다양한 지면을 통해 발표해온 유홍준의 산문 중 백미를 엄선해 묶어 시대와 호흡하는 지성인의 고뇌와 서정을 느낄 수 있다.
작가 스스로 ‘잡문’이라고 말하는 이 글들은 길지 않은 분량 속에서도 촌철살인의 메시지가 빛을 발하며 유홍준의 인간미 넘치는 매력과 특유의 입말을 살린 문체가 글에 윤기를 더한다. 금연 결심을 공개적으로 선언해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고별연」에서는 복잡한 세상사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유머감각과 인문정신이, 50년 지기 홍세화·김민기 등을 떠나보내며 쓴 추도사에서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세월을 뛰어넘은 우정이, 자신의 주례 선생인 리영희 선생에 대한 회고에서는 질곡 많은 현대사 속에서도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지식인들의 교류가 감명 깊게 펼쳐진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글쓰기 비법뿐만 아니라 삶에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누구보다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유홍준의 태도를 통해 인생의 지혜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사라져가는 존재는 말이 없다


정의동 저 / 18,800원 / 어티피컬

 








숨과 입자

황여정 저 / 16,000원 / 창비
“나는 진정한 연결을 원해.
내가 진짜로 누구이고 네가 진짜로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소설이 다다를 수 있는 지고지순한 깨달음
아득히 먼 곳의 ‘너’에게 닿을 ‘나’의 진심
“집요함과 대범함이 느껴”지는 “세련되고 효율적인 구성”(은희경), 작품의 “전언과 감정을 훼손 없이 소중히 보관”(신형철)하고 싶어진다 등의 찬사를 받으며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 데뷔 당시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은 황여정의 세번째 장편소설 『숨과 입자』가 출간되었다. 황여정은 역사적ㆍ사회적 문제를 예리한 눈매로 주시하며 비극으로 빚어지는 관계의 균열과 애틋한 정서를 아름답게 엮은 작품들로 주목받아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에 더해 일상적 개념에 변성을 일으키는 탄탄한 문장들로 삶의 진정성을 회복해가는 특별한 감동을 쌓아올렸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 즉 삶의 본질을 잊은 채 살아가던 인물들이 생의 변곡점이 되어줄 인물과 맞닿아 이전까지와 다른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과정이 인식의 지평을 활짝 열어젖힌다. ‘나’의 이야기가 마침내 모두와 연결되는 정교한 서사는 가슴속 깊이 따스하게 스며들며 잊지 못할 여운을 남긴다.

내면은 텅 비었지만 남들 보기에 세련되고 산뜻한 ‘퍼스널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일상을 벗어나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이수’,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지쳐가다가 간절하게 닿고 싶은 존재를 깨닫게 되는 ‘이영’. 자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황여정은 삶과 개인, 연결의 의미를 탐구한다. 이들의 삶 곳곳에서 이 찬란한 깨달음의 여정을 매개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서로가 견고하게 얽히며 감동의 영역을 넓힌다. “때로 타인을 통해 자신의 본질에 가닿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토록 잘 보여준 소설이 있을까.”(전성태, 추천사) 신중한 문체와 진중한 문제의식, 연결점이라곤 없어 보이는 인물들을 빈틈없이 엮어내는 섬세한 구성을 통해 우리는 머나먼 타인이라는 존재에, 흐릿하던 인생의 진면목에 한껏 가까워진다.

“그 모습은 어쩐지 그 사람의 전부를 말해주는 듯했지.”
순도 높은 진실을 찾아가는 지극한 여정

쉼 없이 유행을 좇으며 일에 파묻혀 살던 광고 디자이너 이수는 어느 날 회사에서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고를 겪고 지독한 번아웃 증상에 시달린다. ‘발전적’이라고 생각해온 지난 삶이 사실은 자신에게 전혀 충족감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수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데, 그러던 중 동생 이영의 권유로 가게 된 포르투갈 여행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특별한 경험을 한다. 우연히 만난 아드리아나에게 요가를 배우며 표리부동한 삶에서 ‘철수’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수가 요가의 호흡에 집중하며 내면의 환희를 목도하는 장면은 경이로운 감동이 책장을 넘어 손끝에 생생하게 전해질 정도로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이수는 그렇게 이전까지의 수동적인 삶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도전에 뛰어든다. 1부에서 전개되는 이수와 아드리아나의 이야기는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숨’에 대한 열망을 일깨우며 영혼의 강렬하고 궁극적인 ‘연결’로 묘사된다.
이러한 연결의 개념은 2부에서 동생 이영의 종교적 사유와 함께 더 멀리 뻗어나간다. 여기서는 ‘길병소’라는 인물이 고뇌를 함께한다.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 중인 길병소는 종교적 믿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이영이 일하는 기도원에 찾아와 이영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길병소와 대화하며 이영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곰곰 고민한다. 특성화고를 다니다가 현장실습을 나간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죽은 친구 승아. 이영은 분명 오래전 떠나보낸 승아에게 닿고 싶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이영이 진정 원하는 것은 교회라는 믿음의 형식이 아니라 신에게, 승아에게 닿고 싶은 지극한 마음이라는 깨달음이 세차게 밀려와 긴 파장을 남긴다. 길병소는 이영에게, 이영은 승아에게 닿으며 그렇게 또 연결이 발생한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이다.”
너와 나, 현재와 과거, 삶과 죽음… 경계를 허물며 확장되는 사유


『숨과 입자』에서는 껍데기만 요란할 뿐 내면은 앙상하게 마른 사회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직업계고, 실업계고, 전문계고, 특성화고,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이름만은 진화를 거듭해왔지만 승아의 사고와 같은 심각한 제도적 문제점을 여전히 안고 있는 한국 특성화고 현실이 대표적이다. 신앙의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믿음의 형식에 종속되어 믿음의 본성을 잊는 세태가 선연하게 묘사된다. 이수의 서사 또한 본말이 전도된 현대사회의 초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스스로를 혹사시키며 일하고 그럴싸한 겉모습을 연출하는 삶은 이수의 숨통을 조인다. 아드리아나와 요가를 만나 이런 껍데기를 벗고 비로소 편히 숨 쉬는 이수를 보며 우린 깨닫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SNS 게시물처럼 완벽하게 연출된 외양이 아니라고. 자신의 진심을 깨닫고 그럼으로써 타인과, 세계와 연결되는 경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감각이라고. 그렇게 삶의 불순물들이 날숨으로 날아가고 본래의 나를 이루는 것들이 들숨으로 채워진다.
과거와 현재, 이곳과 저곳, 겉과 속을 가로지르는 이야기는 마침내 삶과 죽음을 거론하며 애도를 다룬다. 작중 인물들이 누군가를 애도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 하지만 방법이야 어떻든 애도하는 마음, 간절한 기원에 본질이 있다. 그렇기에 개인 각자는 궁극적으로 애도를 통해 연결되고 확장된다. 우리가 죽음으로부터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현장에 있었단 이유로 죽은 승아와 현장에 없었단 이유로 살아남은 나의 경계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무수한 죽음과 사회적 참사를 상기시키며 황여정은 모든 죽음에 모든 삶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연루되어 있다는 감각,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닿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너른 인식으로 우리를 이끈다.

“나는 누구일까.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 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의 의지이고 나 이외의 사람들의 의지일까. 당신은 누구일까.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개인이란 무엇일까. 그 의미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작가의 말) 『숨과 입자』는 이처럼 명확히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에서 출발한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황여정은 사람과 사람,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관계를 파고든다. 끝끝내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고 답이 존재한다는 확신마저 스러질지언정 방황의 걸음걸음까지 살뜰히 살피며 다시 나아간다. 독자에게 닿으며 완성되는 것이 소설이라면, 『숨과 입자』는 그 어떤 작품보다 독자들과 가까이 맞닿으며 무한히 확장되는 작품일 것이다.









완벽한 하루를 꿈꾸는 허술한 우리

정은표, 김하얀 저 / 18,000원 / 오늘산책


누가 꿈을 물어오면 배우라고 답하는, 여전히 꿈이 배우인 사람 정은표. 연기를 통해 다양한 삶을 경험하지만, 가족 안에 있을 때 더욱 빛나는 그는 최고의 아빠이고 남편이다. 그의 원동력은 바로 가족이고, 가족의 중심에는 그를 ‘완벽한 내사랑’이라 부르는 김하얀이 있다.
이 책은 가족이 해체되고 사랑이 무뎌지는 시대에 서로를 아끼고 보듬으며 그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매일 아침 주문을 거는 정은표 김하얀 부부의 이야기다.
거창하거나 유려하지 않은 언뜻 투박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정은표, 김하얀의 문장에서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정은표는 구수한 된장찌개를 주문하지만, 김하얀은 두부가 없다며 김치찌개를 끓인다. 허술해 보이는 밥상에 두툼한 계란말이를 올려 차려내는 완벽한 행복. 이 부부의 밥상에 우리도 같이 숟가락을 들자.

“그래 여기가 집이지, 이 사람들이 나랑 사랑을 나누는 가족이지.”
여기 오면 난 항상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저 여자는 항상 나를 최고라고 말해준다. 아무리 힘들고 지친 날도 여기 오면 쉴 수 있고 위안을 얻는다는 확신이 내게 있다.

‘아침에 행복하자’라는 주문을 건다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매일 매 순간 행복해 보이는 부부. 아내의 부은 말을 주무르며 손에서 발 냄새가 나도 마냥 즐거운 남자와 일어나기 힘든 아침 상큼한 과일 한 조각으로 모닝콜을 하는 여자, “사랑해”라는 말을 숨 쉬는 것처럼 자주 말하는 이 부부는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아빠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면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밀치며 우당탕 달려나오는 가족들, 아침밥을 먹을 때마다 깔깔거리며 웃고 떠드는 아이들,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혼자 남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엄마. 정은표는 매일매일 행복을 귀로 듣는다.

몸소 겪어보고 나서야 알게 되는 일,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일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되는 일도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지혜라고 부르지만, 정은표 김하얀 부부는 “우리만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드러내놓고 자랑하지도, 당신들도 이렇게 해보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다만 가족들이 각자 기울이는 노력으로 하루의 행복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살아간다.
 
자녀 양육도 그런 믿음을 꼭 닮았다. 두 사람은 세 자녀 지웅이, 하은이 지훤이를 끌고 가지 않고 따라가는 방식으로 교육한다. 한 배에서 나왔지만 성격도 행동도 제각각인 아이들을 존중해주고, 각자의 속도와 모양대로 자라기를 기다려준다. 고민은 함께하고 결정은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바른 어른으로 성장하길 원하기에 부부가 먼저 바른 어른이 되려고 노력한다. 자신들의 방법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부모가 소유하는 대상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고 함께 성장하는 사이라고 말한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 같다는 정은표 김하얀 부부. 그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가 쏟아진다.


아들 정지웅의 추천글

살면서 힘든 일이 생길 때, 피곤한 일이 생길 때, 너무 지칠 때가 있어요. 제게 고3 시절이 그랬고, 대학에 다니면서도 가끔 그럴 때가 있었고, 지금 군 생활을 하면서도 힘든 일이 없을 수 없죠. 그럴 때마다 제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게 이 미소였어요. 환하게 웃으면, 이 또한 지나가리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뭐든 이겨낼 수 있었어요. 우리 가족이 만들어준 미소니까, 결국 항상 우리 가족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살면서 부모님께 받아온 것이 셀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 최고는 이 미소가 아닌가 싶어요. 별다를 것 없는 저희 집 사는 모습이지만 웃음은 항상 가득했으니까요. 이 책을 읽어주시는 여러분도 지치는 하루 속에서 저희 가족과 함께 미소 한번 얻어가실 수 있으면 합니다.









스크린 너머의 공간 이야기

장윤정 저 / 16,000원 / 푸른길

미디어와 함께하는 삶 속에서 생겨난 지리적 궁금증과 이를 풀어내는 방법
이제는 미디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다. 신문이나 라디오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에서 영상으로 이루어진 뉴미디어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현대인들은 ‘미디어와 함께하는 삶’에 익숙해졌다. 이러한 발전과정에서 미디어 속 데이터-영화, 드라마, 광고 등 공간의 재현을 바탕으로 하는 영상 데이터-는 다양한 매체로 축적되며, 절대적인 양을 무한히 늘려가고 있다. 그럼에도 몇 개의 검색어만 입력하면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인터넷을 누비며 필요한 정보를 쉽게 손에 넣는 것이 당연한 시대다. 방법만 터득한다면 미디어 속에서 생겨난 지리적 궁금증 역시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저 섬은 어디일까?

영화〈미나리〉를 촬영한 곳은 영화 속 배경과 같은 아칸소일까?

영화〈엘리자베스타운〉의 제목은 어떻게 정해졌을까?


영화를 보다가 혹은 드라마를 보다가 장소에 주목해 본 적이 있는가? 주인공을 감싸는 풍경이 아름다워서, 직접 가 봤던 곳이어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어서. 어떤 이유로든 말이다. 이런 사소한 지점에서 미디어와 지리학의 만남을 시작한다. 제작자의 포지셔널리티에 따라 달라지는 관점과 내용을 볼 수 있는 ‘인천상륙작전’ 소재의 영화들과 ‘우도’라는 하나의 장소에서 찍은 다양한 영화들, 영화보다 훨씬 많은 분량의 드라마 속 더 다양한 장소들을 살펴보고 미디어를 바라보고 생겨나는 지리학적인 호기심을 어떤 방식으로 녹여낼 수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적용해 본다.
현실과 조금은 동떨어져 보이는 판타지 영화의 배경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닿지 못하는 장소를 선택한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우도’는 그런 장소다. 제주도에서도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 중의 섬으로 천혜의 자연경관이 보존되어 있어 판타지적인 느낌을 주기에 알맞은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영화들이 이곳을 촬영지로 활용하였다.
이 책은 같은 장소와 같은 사건을 주제로 만든 3편의 영화가 제작자의 포지셔널리티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다르게 표현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부터 시작한다. 특별한 장소이미지를 가진 하나의 공간을 여러 영화들이 활용한 방식의 차이를 바라보고 그에 따른 장소의 특징을 세심하게 살피며 풀어나갔다. 공간의 재현과 간접 경험이라는 개념을 통해 영화와 드라마를 볼 때 생겨나는 지리적인 물음을 해소해 주는 이 책을 지도 삼아 영화 속 공간과 영화 밖 공간을 산책해 보자.


◎알아두면 좋은 용어들

포지셔널리티란?

물리적 공간의 위치나 시대적 위치 등의 다양한 위치성, 소속이나 입장

미디어 재현?
현실의 공간을 미디어로 담아내는 것

지리적 미디어 리터러시란?
사람들이 지리적 정보와 이를 제공하는 미디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수 - 영원해!

에밀리 디킨스 저 / 박혜란 역 / 16,700원 / 파시클출판사


『수, 영원해』는 수잔에게 보낸 디킨슨의 시들 가운데서 골라 번역한 시를 묶은 시집이다. 총 77편의 시를 8개의 장으로 나누어 실었다. 여기에는 시인의 수잔에 대한 그리움, 찬사, 정념, 애틋함을 담아 표현한 시가 다수를 이룬다. 수잔은 디킨슨의 오랜 친구이자 오빠의 아내였지만, 이 이름을 훌쩍 뛰어넘는 누군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디킨슨을 퀴어라 부를 수 있을까. 기성의 관습과 통념, 상징체계 바깥으로 스스럼없이 건너가는 이가 퀴어라면 디킨슨 역시 그러고도 남는 존재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수잔과 디킨슨, 이 두 사람 사이를 채웠던 정동에 완전히 부합하는 단어는 그리 쉽게 찾을 수 없다. 시 속의 문장은 언제나 이미 반쯤은 숨어 있는 문장이며, 무언가를 숨기는 문장이므로. 진술을 유예하며, 읽는 눈을 유인하는 시적 단서에 불과하므로.
어쩌면 디킨슨은 시의 한 모퉁이에 투명한 글씨로 독자의 주소를 써 넣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시집 전체가 반쯤 열린 채 독자를 향해 무한히 생성되고 영원히 배달되는 편지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수 - 영원해!』는 이제 그렇게 수 혹은 수잔이 아닌, 바로 그곳의 당신을 기다린다.

본문에는 번역과 함께 원문인 영문 시를 함께 실었다. 원문 텍스트는 에밀리 디킨슨 아카이브에 올라와 있는 시인의 필사 원고가 바탕이 되었다. 번역자이자 파시클 대표인 박혜란이 필사 원고를 훑으며 직접 선별, 구성해 편집하고 번역했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은 제목이 없어서 차례에는 각 시의 첫 행을 두었다. 가급적 시인의 단어 선택, 시행 구분, 연 구조를 그대로 반영해 원문 텍스트를 구성했다. 디킨슨의 필사 원고를 텍스트로 번역했기에 20세기에 출간된 디킨슨 전집들에 기반한 기존 번역들과는 시의 구성과 내용이 다르다. 디킨슨만의 고유하고도 고전적인 시 세계 및 문체를 더 가깝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디킨슨의 편지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 수잔!
에밀리 디킨슨의 오랜 친구이자 오빠의 부인이었던 수잔 헌팅턴 길버트 디킨슨(Susan Huntington Gilbert Dickinson, 1830-1913)은 디킨슨의 시를 가장 많이 받았고 가장 먼저 읽었던 독자이기도 했다. 둘은 어린시절부터 지척에 살면서 친분관계를 유지해 왔고, 10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다.
번역자 박혜란에 따르면, 에밀리 디킨슨은 수잔이 여행 중일 때면 어김없이 애머스트의 날씨와 주변 풍경을 전하고 가족의 안부와 사랑을 나누는 매우 다정하고 일상적인 안부 편지를 보냈고, 평소에도 자주 편지와 쪽지로 수잔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표현했다.

수, 널 그리워하는 게 힘이야. 아무리 많은 걸 소유해도 상실의 자극 탓에 다 하잘것없구나. 삶은 언제나 지속되지만 사랑은 삶보다 단단하다. 상처받은 마음은 오직 불멸을 넘어 계속 나아갈 뿐이야.

나무들이 온종일 널 위해 집을 지키고 풀들은 한풀 꺾인 듯하다. 조용한 암탉 하나가 미신에 잘 속는 병아리들과 그 자리에 자주 나타나고 - 수탉 하나가 네 바깥문을 두드려. 바라보는 자체가 로맨스야.

수잔과의 실뜨기로 빚어진 시의 버전들
디킨슨은 자신이 쓴 시를 보내고 수잔의 감상을 들은 뒤 기존 시를 대폭 수정해 거의 새로운 시로 발전시켜 나가기도 했다. 즉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를 신뢰하는 문학적 동료 관계였다고도 할 수 있다. 『수 - 영원해!』는 시 한 편에서 파생된 여러 버전의 시를 모두 실음으로써, 에밀리 디킨슨이 수잔을 통해 어떻게 시를 변형하고 발전시키는지에 대한 과정 또한 담았다.
번역자 박혜란은 이 과정을 시를 수정해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이야기에서 파생되어 각기 다른 흐름과 정서를 가지게 된 여러 이야기로 본다. 놀이를 통해 태어나는 이야기로 본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시인이 쓴 첫 번째 시라는 실을 가지고 신나는 공동의 실뜨기를 하고, 그 시간을 유영하는 과정 속에서 함께 새로운 버전의 시를 빚어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반쯤 열린 채 독자를 향해 영원히 배달되는 편지
수잔과의 지적이고도 낭만적인 실뜨기와, 오로지 수잔만을 바라보며 써 내려간 사랑과 찬사의 시. 이 같은 장면에 기댄다면 우리는 디킨슨을 퀴어라 부를 수 있을까. 기성의 관습과 통념, 상징체계 바깥으로 스스럼없이 건너가는 이가 퀴어라면 디킨슨 역시 그러고도 남는 존재임에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수잔과 디킨슨, 두 사람의 사이를 채웠던 정동에 완전히 부합하는 단어는 쉽게 찾을 수 없다. 시 속의 문장은 언제나 이미 반쯤은 숨어 있는 문장이며, 무언가를 숨기는 문장이므로. 진술을 유예하며, 읽는 눈을 유인하는 시적 단서에 불과하므로.
번역자 박혜란 역시 시를 고르고 옮기고 또 역자 후기를 쓰는 동안, 시에 대한 감상이 시인의 전기적 사실을 캐내는 데 소비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리하여 시인의 문장을 무엇 하나로 정의 내리는 대신 “틈새의 언어”이자 “골방에서 다친 상처를 내보이며 깔깔댈 수 있는 속삭임”이자 “산책길에 옷깃에 묻혀 온 우엉 가시”라고 했다.
그렇다. 이처럼 이번 시집은 반쯤 열린 채 독자를 향해 무한히 생성되고 영원히 배달되는 편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수 - 영원해!』는 이제 그렇게 수 혹은 수잔이 아닌, 바로 그곳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파시클과 번역
‘파시클’은 에밀리 디킨슨이 필사한 자신의 시를 모아 손수 제본한 각각의 책 자체를 가리킨다. 이 이름을 딴 출판사 파시클은 번역문학가 박혜란이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고르고 번역해 한 권, 한 권의 시집으로 엮기 위해 만들어졌다. 박혜란은 연세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내러티브 이론을 연구하다가 내러티브와는 전혀 다른 글쓰기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매료된 이후론 페미니즘 시학으로 전공을 바꿔 연구해 왔다.
파시클은 앞서 에밀리 디킨슨 시선집 시리즈로 첫 권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을 시작으로 시선 시리즈를 펴내고 있다. 지금까지 그림시집 『멜로디의 섬광』, 『어떤 비스듬 빛 하나』, 『바람의 술꾼』, 『장전된 총』, 『아니면 마자린 블루를 입은 - 정오를?』을 펴냈다.

에밀리 디킨슨을 보는 다양한 해석과 시각, 새로운 접근들
19세기 당시 미국 휘그당을 이끌었던 가문에서 태어나 결혼하지 않고 외부 세계와도 교류 없이 살았던 에밀리 디킨슨. 생전 공개하지 않았던 1,800편이 넘는 시가 침대와 옷장에서 발견되었다. 평생 흰옷만 입고 살았다는 이야기들은 일화를 넘어 시인을 묘사하는 데 늘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아서, 그를 더욱 궁금하고 신비롭고 특별한 존재로 만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를 이상하고 사교성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도록 만들기도 했다.
병원 기록에 의하면, 오래도록 신경쇠약으로 고생했고 1830년 태어나 18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비혼으로 아버지의 저택에서 살았다. 10대를 보낸 애머스트 아카데미에서는 건강 탓에 학교를 쉬는 기간이 많았음에도 매우 총명하고 뛰어난 학생으로, 영어와 고전문학, 식물학, 기하학, 수학, 역사, 철학 등 학업에 열심이었다. 학교에서 수잔 헌팅턴 길버트를 비롯해 평생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는데 친구들에게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수수께끼를 담은 시들을 보내거나 시 쓰기에 대한 애정과 열망을 고백하기도 했다. 가까운 이들에게는 상실과 아픔에 대한 격려와 위로를 담은 쪽지들을 보냈다.
은둔에 들어간 것으로 여겨지는 30대 중반 이후 평생 병석에 있던 어머니를 돌보고 가사를 책임지느라 고되었을 테지만, 56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내내 시 쓰기에 충실했다. 한편 디킨슨의 호밀빵은 유기농 레시피로 유명하고 시인의 정원은 정원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식물표본집도 식물학자들에게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욕망하는 인간과 집착하는 괴물들의 운명적 사투
한국 장르문학의 자존심 『살인자의 쇼핑몰』 강지영 신작!
미스터리, 스릴러, 누아르, 판타지 등 폭넓은 영역을 넘나들며 한국 장르문학계의 손꼽히는 스토리텔러로 활약해온 강지영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 STORY.B에서 출간됐다. 『인간보다 인간적인』은 현대 서울을 배경으로, 매력적인 캐릭터성을 갖춘 ‘크리처’들이 등장하는 판타지 스릴러이자, 동시에 기묘하고도 절대적인 사랑과 인연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강지영 작가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문장들, 마지막 장까지 팽팽하게 내달리는 압도적인 서사로 독자들을 책장 속으로 끌어당기는 한편,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내세워 ‘인간다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든다. 강렬한 개성을 갖춘 캐릭터들의 숨겨진 서사가 얽혀들며 클라이맥스로 내달리는 속도감 가득한 스토리텔링을 선보이며 독자들에게 텍스트에 몰입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천부 인권은 인간만 갖는 거잖아. 괴물한테는 괴물권이라도 있나 봐?”
모든 살아 숨 쉬는 존재들의 욕망이 충돌하는 밤,
이들 중 누가 ‘진짜’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킬러들의 쇼핑몰〉, tvN 〈살인자의 쇼핑목록〉의 원작 소설을 집필한 한국 장르문학계의 최전선, 강지영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 출간됐다. 그간 입체감 가득한 생생한 캐릭터, 속도감 넘치는 문장, 마지막 장까지 무엇도 예측할 수 없는 압도적인 서사를 선보여온 작가가 이번에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이들의 숨 막히는 접전을 펼쳐놓는다.

지난 수백 년간 인간과 함께 살아온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있다. 운명적인 인간에게 종속되어 부귀영화를 가져다준다는 전설을 지닌 매혹적인 존재 ‘이종’ 정수경은 소유주 정춘의가 세상을 떠난 후 ‘변종’으로 전락한 신세다. 수십, 수백 차례 자살해도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이종은 소유주를 잃은 순간부터 재생 기능 또한 잃어버린 변종이 된다. 그녀는 또 다른 변종 박교임의 부에 기대어 인간 세상 한 귀퉁이에서 연명하면서 이종과 변종들의 멸종 또는 영원한 자유를 꿈꾼다.

오래도록 이종들을 관리해온 인간 집단 ‘미티어’에는 자신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변종 사냥에 나선 ‘키퍼’들이 여럿이다. 이들 중에는 교임의 돈에 매수되어 미티어의 내부 정보를 빼돌리는 도일중 같은 첩자도 있고, 이종과 인간의 관계에 환멸을 느껴 그들의 뒤를 집요하게 쫓는 인성진 같은 추적자도 포함돼 있다. 수경과 교임 앞에 아직 자신의 소유주를 너무나 사랑하는 이종 이영이 등장하면서 이들의 신변은 점점 더 위태로워져 가는데…….

“이기적이라 자살하는 게 아니에요. 소유주가 우리한테 실망하면 다시 사랑받기 위해 새 몸으로 돌아오는 것뿐이라고요. 우린 소유주의 취향에 따라 캐릭터를 조금씩 수정하고, 더 완벽해지려고 노력해요.”
_본문에서

상대가 누구라 해도 매혹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생명체 이종에게 인간들은 두당 수십억 원의 가치를 책정했다. 이 타고난 특별함은 이종의 신체를 해부해 값비싸게 팔아먹는 데 혈안이 된 사이코패스 장인철 같은 이들 또한 탄생시켰다. 이종을 차지하려는 자들과 제거하려는 자들, 소유한 이종을 탐하거나 착취하는 자들, 이 괴물들을 몰살시키고자 하는 자들과 자유를 주고자 하는 자들……. 수백 년에 걸쳐 얽히고설킨 인연 속 깊숙이 숨겨둔 비밀들과 각자의 염원들이 부딪히며 모두의 욕망이 충돌하는 핏빛 어린 밤이 펼쳐진다.

운명이라 믿었던 소유주에게 종속되어 부와 명예, 그리고 맹목적 사랑을 바쳤지만 인간 세상에선 괴물로 불렸던 이종과 변종. 과연 이들은 피비린내 나는 밤을 건너 다가오는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또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아귀다툼의 전투를 통해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동시에 묵직하고도 날 선 한 방을 던진다. “여기서 진정 ‘인간다운’ 존재란 누구인가?”











내 마음은 바다에 있어

오지영 저 / 15,000원 / 북노마드



“이게 사랑 아니면 무엇일까?”
희귀난치병 자가면역질환의 기록,
『아픔이 내가 된다는 것』의 작가 오지영의 첫 소설

이별의 계절을 지나온 사람들,
파도가 피고 지는 바닷가 작은 마을
상처가 여물지 않은 낯설고 버거운 하루하루
어느 날, 나를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

불시에 찾아오는 엄청난 고통, 사라지고 싶은 만큼 괴로운 나날. 희귀난치병 자가면역질환의 기록을 담은 산문집 『아픔이 내가 된다는 것』을 펴내고 오지영은 ‘작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100만 명 중 2명이 걸린다는 이 병을 처음 진단받은 날부터 사라지지 않는 고통과 마주하는 하루하루를 담담히 고백한 그의 글은 삶이란 결국 ‘버티는 태도’에 달려 있음을 전해주었다.

 
픽션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드라마적 스토리텔링,
바다에서 느릿느릿 깨달은 ‘우리’

오지영의 첫 장편소설 『내 마음은 바다에 있어』는 이야기를 ‘짓는’ 자로 살겠다는 작가의 오래고 절실한 소망의 두 번째 결실이다. 30대 여성 작가, 저마다 쓸쓸함과 서러움을 감내하는 소설 속 다섯 명의 30대 여성. 오지영의 소설은 오늘날 한국문학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여성’ 소설가들의 얼굴과 자연스레 겹친다. 남성 작가들이 역사적인 서사를 갖고 있는 데 반해 여성 작가들은 개인의 경험을 기록하는 의미에 그친다는 성차별적 해석을 노벨문학상 정도는 받아야 해소할 수 있는 척박한 현실에서 소설가로 버텨온 이름‘들’을 일렬로 호명하게 한다.

하긴 누구의 작품 위에 누구를 포개는 지형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 마음은 바다에 있어』는 ‘탈남성적’ 문장의 종착지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의 연대’에 당도한 또 하나의 성과라고 부를 만하다. 30대는 실사구시적 일의 경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세상. 그러나 작가는 여전히 30대에도 사랑하고, 다투고, 서운해하고, 아파하고, 헤어지는 자신과 자기 옆에 있는 사람들을 기꺼이 보듬기로 했다.


“내가 했던 것, 우리가 했던 것은 분명 사랑이었어.
그것만은 당신이 틀렸어.”

광고 기획자로 한 직장에서 10년을 일한 서른다섯 지안,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서른둘 새봄, 작가 지망생이지만 세상에 떳떳한 글을 내놓지 못해 움츠러든 서른다섯 민, 동료에게 좀처럼 사적인 이야기를 터놓지 않는 와인 가게 부점장 서른여덟 희나, 남편을 떠나보내고 학창 시절부터 결혼 생활까지 모든 기억이 묻혀 있는 양양에 카페를 연 서른아홉 소윤까지.

소설 속 다섯 여성은 ‘결핍’이라는 부력에 떠밀려 강원도 양양의 작은 마을에 우연히 모인다. 아침에도 오후에도 밤에도 바다가 피고 지는 곳,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파도가 일렁이고 부서지는 곳. 저마다 심연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외로움과 두려움은 파도 위로 떠오르고, 서로 독립적이고 무관한 듯 살아가던 다섯 여성의 우연적인 만남은 이내 운명으로 하나가 된다.

바다가 어떤 곳이던가. 이브 몽탕이 〈고엽(Les feuilles mortes)〉에서 “삶은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이들을 갈라놓아 버리지, 아주 슬며시 소리소문없이, 그러고 나면 바다는 지워버리지, 그들이 찍어놓은 모래 위 발자국들을”이라고 노래했던 때는 1946년이었고, 쓸쓸한 목소리의 가수 임지훈이 “어느새 사랑 썰물이 되어 내게서 멀리 떠나갔네”라고 절창했던 때는 1987년이었다. 오래전부터 바다는 그런 공간이었다.

한편으로 바다는 음운 그대로 ‘받아들이는’ 곳이다. 반듯한 문장으로 사랑에 패배한 다섯 여성의 무력함을 더없이 담백하게 그려낸 작가에게는 더더욱 그런 곳인가 보다. 아프지 않은 날보다 아픈 날이 흔한 운명의 방해공작에 지칠 때마다 바다를 찾아서였을까. 소설 속 다섯 여성의 결핍과 상처가 헤엄치는 강원도 양양의 바다는 작가 오지영의 실존적 운명도, 소설 속 다섯 여성의 삶의 찢김도 너른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마치 한 편의 담백하고 감각적인 드라마를 본 듯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그들의 기쁨과 슬픔과 절망에 또르르 눈물을 떨구다가, 서로의 눈을 맞추는 아름다운 풍경에 빙긋 웃다가 어느새 바다로 발걸음을 옮기는 자신을 확인할지도 모른다.


“내가 만난 글들이 나를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듯이
누군가에게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기를”

글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저 좋아하는 일로 생각했다는 작가는 여전히 자신의 첫 소설을 어색해하는 듯하다. 현실의 고통과 허구의 욕망이 몸속을 비집고 나와 자신만의 언어로 밀물과 썰물로 교차하는 모습을 편집자의 자격으로 지켜본 자로서 감히 말하련다. 감정의 담백함과 겸손한 어휘의 선택만으로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만약 순문학이라는 게 여전히 존재한다면 당신이 마지막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이다.

소설가 오지영은 몇 해 전 유난히 밝은 봄날, 직장이라는 안전하고 튼튼한 울타리를 자기 손으로 열고 나와 품고 있던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고, 여러 이야기를 서성였지만 결국 ‘사랑’이었다고 고백한다. 사랑을 선택한 작가의 쓰기를 옹호한다. 불안하고, 비겁하고, 옹졸하고, 치졸하고, 두려움과 오해의 연속이더라도 사랑은 사랑이 아니던가. 다른 감정으로, 다른 단어로 애써 숨겨도 사랑은 사랑. 지안에게서, 새봄에게서, 민에게서, 희나에게서, 소윤에게서 ‘이건 내 이야기야’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당신도 기꺼이 옹호해주리라 믿는다.

내친김에 묻는다. 당신은 누구의 이야기에, 누구의 사랑에 공감하는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결국 사랑일 텐데. 누군가의 숨은 구석을 알아채고, 살피고, 보듬고, 내어주는 마음. 상처 입은 기억이 고여 있는 시간을 통해 회복하고 다시 흐르는 기쁨. 기꺼이 다른 사람의 안녕에 도움을 주는 배려. 그렇게 소설을 쓴 자와 읽는 자가 서로 닮았으면 좋겠다. 상처를 보듬고, 회복하고, 무언가로 채우는 ‘다정한’ 사람들.

아픔과 사랑의 힘으로 산문을 쓰고 소설을 짓는,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름 석 자를 부디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오지영 첫 장편소설 『내 마음은 바다에 있어』.







비문 클리닉


정제원 저 / 17,000원 / 몽트

우리는 매일 글을 쓰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 속에는 읽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비문들이 넘쳐납니다. 국어는, 짧은 문장일지라도 문법 구조는 제법 복잡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문장 성분이 쉽게 생략되는 것도 비문이 많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 책은 병든 문장을 치료해 주는 문장 병원입니다. 자신이 쓴 글 중 어느 문장이 비문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분, 어느 문장이 비문인지는 알겠지만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는 분, 이런 비문을 다시는 쓰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알고 싶은 분은 이 책을 통해서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Q1 : 이책은 누가 읽으면 좋을까요?
A1 : ①자기가 쓴 글 중 어느 문장이 비문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분. ②어느 문장이 비문인지는 알겠지만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는 분. ③이런 비문을 다시는 쓰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알고 싶은 분.

Q2 : 비문은 왜 철저히 바로잡아야 할까요?
A2 :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퇴고를 충분히 해야 합니다. 퇴고의 제일 첫 과정은 비문을 고치는 일입니다. 그것이 제대로 되고 나서야, 초고를 정확하고 아름다운 글로 다듬는 본격적인 퇴고의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비문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퇴고를 거듭해도 전달력과 표현력이 좋은 글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Q3 :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A3 : 퇴고할 때 초고에서 썼던 비문을 찾아내는 속도도 빨라지고, 찾아낸 비문을 고치는 일도 쉬워질 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같은 유형의 비문을 계속 쓰는 일이 줄어들 것입니다.

Q4 : 부록으로 띄어쓰기의 원칙을 실어 놓으셨는데?
A4 : 조금 엄격하게 말하면, 띄어쓰기가 틀려도 비문입니다. 국어사전을 가까이하면서 띄어쓰기가 틀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는 일은 비문을 고치고 다듬는 일보다는 덜 까다롭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우리가 정말 얻게 되는 것은 ‘띄어쓰기가 제대로 된 글’이 아니라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사랑’입니다.







세계적 K사상을 위하여

백낙청, 오강남, 백민정, 전도연, 이보현, 고명섭 저 / 25,000원 / 창비

K사상은 세계적이다
동서양 정신문명의 우뚝한 봉우리에서
한반도 개벽사상의 세계성을 검증한다
『세계적 K사상을 위하여: 개벽사상과 종교공부2』는 동학에서 천도교, 원불교, 한국적 기독교까지 K사상의 발현과 전개를 밝힌 『개벽사상과 종교공부』(창비 2024, 이하 『종교공부』)의 후속작이다. 전작이 일반인의 K사상 이해를 북돋고자 백낙청, 도올 김용옥 등 석학들이 모여 기획한 대담집이었다면, 이번엔 종교학자, 유교 연구자, 원불교 교무 등 세대와 전문 분야가 다른 5인이 『종교공부』에 사회자로 참여했던 백낙청과 함께 대화하며 K사상의 세계화를 위한 ‘심화공부’의 장을 열었다. 유튜브 방송 ‘백낙청TV’에서 2024년 한해 진행한 다섯편의 대담에 참여한 이들은 동시대를 비판하고 재고하는 변혁적 사유이자 현대사상으로서 한반도 개벽사상의 역량과 세계적 보편성을 검증했다.
제목이 가리키는 대로, 이 책은 한반도 고유의 사상적 자원으로서 개벽사상에 대한 기초지식을 전할 뿐 아니라 세계화의 가능성을 논한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세계종교와 개벽사상의 교차점을 조명함으로써 풍요로운 종교 간 대화를 성취했다. 전통 한국사상과 탈근대 담론의 한계를 묘파함으로써 개벽사상이 그것을 어떻게 넘어섰는지 탐색한다. 나아가 세상의 변혁을 기도했던 ‘서양의 개벽사상가들’을 열거하고 직접 사상 대 사상으로 맞붙어보며 K사상의 확장성과 세계성을 실험한다.
최근 K문학이 한반도 고유의 서사로 세계적인 반열에 올랐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인이 K사상의 원전을 직접 읽고 인용하며 소통하는 시대 또한 기대해볼 만하다. 물론 그 첫 번째 독자이자 탐색자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은 우리의 언어로 나와 세계를 변혁하길 꿈꾸는 이들에게 긴요한 열쇠를 제공할 것이다.

개벽사상이 세계적인 이유
K사상의 보편성을 찾다

K사상의 현재성과 세계성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동서고금의 사유와 한반도 개벽사상을 견주어보아야 했다. 1장 「세계종교에 담겨 있는 개벽사상」은 이러한 기초 작업을 수행하면서 책의 주제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글이다. 비교종교학의 세계적 석학이자 사상사에도 두루 해박한 종교학자 오강남은 『종교공부』에 담긴 동학과 개벽사상의 의미를 ‘우리 바깥의 눈’으로 논평한다. 구태여 바깥의 시각이 필요한 까닭은 서구 담론을 향한 우리의 집착과 인정 욕구를 무시할 수 없을뿐더러 개벽종교인 천도교나 원불교를 한발 물러나 세계적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오강남은 종교의 정의를 ‘궁극적 변혁을 위한 수단’(means for ultimate transformation)으로 이해한다면 나와 세계의 변혁을 말하는 개벽 개념을 종교 일반에 적용할 수 있겠다고 말한다. 여러 종교에 내재된 개벽적 요소를 공통언어로 삼으면 종교다원주의에 입각한 ‘종교 간 대화’(inter-religious dialogue) 또한 풍성하게 이루어지리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백낙청은 생각이 다르다. 종교 간 대화를 시작할 때는 서로의 공통점과 보편성을 찾아 출발점으로 삼는 것도 좋겠으나, 더 풍성한 ‘종교 내적 대화’(intra-religious dialogue)를 위해서는 종교 간 차이를 살피고 한반도 후천개벽사상의 특별한 의미를 부각하는 작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벽과 세계사상 사이의 공통점을 발굴해 소통하는 것(오강남)과 개벽만의 특징을 부각해 이를 세계로 전파하는 것(백낙청).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생각의 차이는 뚜렷한 두 사람의 대화는 K사상의 세계화를 위한 두 가지 방향을 제안하면서도 이를 병행할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과제를 남긴다.

현대사상의 최전선, 개벽
전통 한국사상과 탈근대 담론을 넘어서

백낙청ㆍ백민정이 대화한 2장 「물질개벽의 시대, 유교의 현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는 유학의 현대적 의미를 고찰하며 그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현대사상으로서 개벽을 말한다. 조선시대 유교를 연구하며 그 현대적 활용을 탐색하는 여성 철학자인 백민정은 자본주의 경쟁논리에 은근히 찬동하는 유교적 근대성론의 맹점을 날카롭게 비판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개벽의 맥락에서 전통 유학에 내재된 한계를 근본적으로 반성한다. 합리적인 실학자로 알려진 정약용의 경세론 또한 신분 차별과 위계적 상하관계로 고착된 예치 질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예의 근본 의미를 되살린 것은 번다하게 꾸민 형식을 걷어치우고 ‘향아설위(向我設位)’, 즉 천지의 신령이 깃든 나를 진정으로 돌보라고 주문한 동학이었다. 백낙청은 그의 논의를 이어받아 전통 유학자들이 간과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도래였음을 지적한다. 서구 사유의 영향을 받은 근대 유학자들조차 새로운 과학 지식과 사회계약론을 흡수하면서도 서구의 경제체제와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별다른 성찰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소태산 박중빈을 비롯한 개벽사상가들은 생산력의 무한 증대에서 비롯된 ‘물질개벽’의 폐해를 간파하고 어떻게 하면 그 과실을 골고루 나눠 가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는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의 말기 국면에서 위기를 타개할 대안을 찾자면 여기에 희망이 있겠다는 주장이다. 탈근대 담론과 견주어보면 개벽사상의 현대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민족이나 계급, 정체성 등 고정된 ‘주체’나 ‘본질’을 해체하고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해체론적 논의는 ‘유무초월(有無超越)’의 경지와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 어디에나 부처가 있고 가는 자리마다 회상 아닌 곳이 없다)’을 말한 개벽적 사유가 이미 확보해놓은 현대성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K사상의 세계화를 실천하는
개벽종교 원불교

3장 「K사상의 세계화를 모색하는 원불교」는 원불교대학원대학교 총장이자 교무인 전도연과 백낙청의 대화다. 앞서 『종교공부』에서 원불교의 교무로 봉직 중인 방길튼, 허석이 원불교의 역사와 기본교리를 친절하고 상세하게 소개한 바 있다면, 이번 대화에서 두 사람은 개벽종교 원불교가 어떻게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는지 그 경과를 되짚는다. 한반도의 후천개벽사상이 수운 최제우의 동학에서 시작해 민중이 중심이 되는 큰 흐름을 이루었으며, 특히 소태산 박중빈이 후천개벽사상을 보편종교인 불교와 융합해 새로운 경지에 올려놓았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한편 공(空) 사상과 윤회, 전무출신 제도 등 교리와 실행의 세목을 검토하는 논의에서는 다소 이견도 보인다. ‘원불교가 세계적 주도가 되고 한국이 정신의 지도국이 될 것’이라는 소태산의 예언을 소개하는 대목도 흥미로운데, 이에 발맞춰 현재 원불교가 실행하고 있는 K사상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을 러시아 모스크바 교당에서 활동한 바 있는 전도연 교무가 자신의 경험을 담아 생생하게 전한다.

예수ㆍ로런스ㆍ하이데거…
변혁의 길 찾은 서양의 개벽사상가들

이 책은 예수, 로런스, 하이데거 등 변혁의 길을 찾은 서양의 사상가들을 ‘개벽사상가’로 열거하고 호명한다. 이 작업은 『종교공부』에서 착수된 바 있고 이 책이 본격적으로 실행한다. 앞서 1장에서는 불의에 맞서 싸운 예수의 모습을 혁명가 수운 최제우의 모습과 포개어 놓았고 4장 「인간해방의 논리와 개벽사상」에서는 D. H. 로런스가 성찰한 죽음론을 윤회론에 투영해 살펴보았다. 고명섭과 백낙청이 함께한 보론 「하이데거와 후천개벽사상의 만남」에서는 제목 그대로 하이데거와 후천개벽사상의 연관성을 검토한다. 하이데거의 기술시대 인식 및 휴머니즘 비판은 소태산의 물질문명에 대한 인식, 그리고 동아시아의 천지인 사상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존재 자체(Sein selbst)와 존재자(Seiendes)를 비롯한 하이데거의 복잡한 용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문제와 그의 ‘언어의 집’ 개념을 둘러싼 토론은 서구사상을 K사상과 맞붙이고자 할 때 어떤 주체적 자세와 태도가 필요한지 성찰하게 한다. 토론 끝에 도출된 “우리의 문제를 풀어야겠다는 발심이 강해야 서양 사상과의 만남도 더 충실해질 것”(290면)이라는 결론이 뜻깊다.

한반도 개벽사상은
새 시대의 교양이다

다소 성격이 다른 기획인 4장 「인간해방의 논리와 개벽사상」은 백낙청의 작업을 꾸준히 좇아온 이보현이 백낙청의 저서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1979)를 다시 읽는다. 이 책에서 이미 K사상의 맹아가 발현되고 있을 뿐 아니라 개벽사상의 실천은 결국 진정한 자기해방과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기 위해서다. 자본과 권력의 논리 앞에 “온갖 단단한 것이 연기처럼 사라지는”(8면) 물질문명의 시대에는 과거에 좋았던 사상을 많이 알고 익히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세상의 주인으로서 진정한 교양을 갖추기가 힘들다는 진단도 같은 맥락 속에 있다. 이 책의 논의를 따라 우리가 가진 사상적 자원의 세계성과 현대성을 검토하다보면, 그것을 살아 있는 사상으로 다루기 위해선 당면한 과제를 우리 자신의 문제로 떠안고 토론하는 자세가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오랜 시간 세계를 주도한 서구의 사상적 작업이 현실에서 크게 흔들리고 있는 지금, 도래할 새 시대를 능히 감당할 새로운 교양 공부의 길잡이로서 이 책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이유다.








그만둘 수 없는 마음

김가지 글/그림 / 17,000원 / 책폴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도 없을 때, 어쨌든 계속해 나가야 할 때…
나의 마음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청소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강연가, 강사… 청소하는 N잡러 작가의 삶의 방향 찾기!
『저 청소일 하는데요?』의 김가지 작가가 전하는 달콤쌉쌀 현재 진행 성장기. 작가는 첫 책의 성공 이후 청소부에서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강연가, 강사 등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다양한 세계를 흥미롭게 넘나들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작가는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이 처음만 못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서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고 여긴다. ‘코피루왁’이라는 활동명은 그의 가치관과 충돌을 겪게 되고, 청소일을 하며 느끼는 시선의 무게와 직업에 대한 사회적 통념도 크게 나아진 게 없는 듯하다. 잘 알지 못해서 더 씩씩했던 데뷔 시절 에너지가 사라지고 남은 건, 오늘의 막막함과 내일의 두려움뿐.
10년 차 청소부이자 6년 차 작가인 김가지는 바로 이 현실로부터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지금’을 과장 없이 촘촘하게 그려내며 ‘두려움이 앞설 때 노력의 씨앗을 새롭게 심는’ 과정을 기록한다. 지치고 힘들어도 그만둘 수 없는 일상의 루틴은 그 자체로 동력이 되어 그를 건강히 이끈다. 몸과 마음으로 직접 부딪히며 체득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작가는 우리 삶에 필요한 용기가 멀리 있지 않음을 안다. 청소일 그리고 그다음, 작가가 가닿은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차례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타래처럼 엮어내는 이 멋진 삶의 모험담을 함께 만나주시기를.


“작은 날갯짓이 나를 여기로 데려와줬다.”
인생은 정말 예상할 수 없다, 기쁨도 슬픔도

우리 삶에 우연과 필연의 총량은 얼마큼일까.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연과 필연의 ‘케미’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몇 가지 꼽자면, ‘이런 이야기도 좋아할까’ 반신반의하며 만들었던 청소일에 관한 독립출판물이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정식 출간으로 이어졌다. 좋아서 시작한 그림 일은 오래 지속하고 싶은 직업이자 포기할 수 없는 미래가 되었다.

그 ‘우연한’ 출발들은 새롭고 넓은 세계로 그를 데려다주었다. 청소부에서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강연가, 강사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모든 것이 마치 ‘필연적’으로 예고된 듯 그의 일상에 차곡차곡 안착해갔다. (이런 걸 ‘운명’이라고들 하던가!) 하지만 반복되는 ‘현생’을 살다 보면 고단함과 자책이 밀려오기 마련이다. 작가는 첫 책 이후 몇 권 더 책을 냈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이 처음만 못하다고 느낀다. 그동안 일러스트레이터로 참여한 작업물이 적지 않으나 제대로 자리를 못 잡았다고 털어놓는다. 호기롭게 지은 ‘코피루왁’이라는 활동명은 그의 가치관과 충돌을 겪게 되고, 청소일을 하며 느끼는 시선의 무게와 직업에 대한 사회적 통념도 크게 나아진 게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이젠 무엇 하나 쉽게 그만둘 수 없다. 하나둘 소중한 것이 늘어가서일까. ‘삶의 많은 것들이 무거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일까. 잘 알지 못해서 더 씩씩했던 데뷔 시절 에너지가 사라지고 남은 건, 오늘의 막막함과 내일의 두려움이 커져가는 현실뿐. 10년 차 청소부이자 6년 차 작가인 김가지는 바로 이 현실로부터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지금의 내 현실이 미래와 닿을 연결고리가 아니면 어쩌지?”
괜찮아, 계속할 마음은 충분해,
청소일 그다음의 또 다른 세상을 그려갈 준비


1장 ‘진로 고민은 영원히’는 ‘직업’에 관한 속 깊은 이야기다. 진로와 직업에 대한 고민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숙제다. 나에게 잘 맞는 일이 뭘까?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의 간극은 얼마큼일까? 지금의 선택에 후회는 없을까? “사회 속의 나라는 사람이 ‘대접’을 받는지 ‘취급’을 받는지 결정되고 자아상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직업이기에, 사람들은 직업을 정할 때 다양한 조건을 염두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청소일을 선택한 작가는 “아이러니하게 주목받는” 일이 많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기도 한다. 과거 계급사회가 존재했을 때는 존재 자체로 귀천이 정해졌지만, 요즘은 ‘직업’ 자체가 계급처럼 여겨지기 때문일까?

일과 삶에 관한 작가의 생각은 2장 ‘계속하고 있습니다, 청소일’에서 풍성히 이어진다. 청소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희로애락은 소소하고 다채롭다. 모두의 직업 세계가 그러하듯 웃을 일이 있으면 피곤한 일도 있고, 못하겠다 싶다가도 그래도 또 이 정도면 괜찮은 듯하다. 성향이 닮은 사람도 만나고 전혀 다른 사람도 만난다. 우리는 사회적 기준에 맞춘 삶만이 정답이 아님을 모르지 않는다. 작가는 “내 기준에 맞는 선택과 책임”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유연히 실천한다.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스스로를 더 사랑하고 지지하게 되니까. 판단의 기준과 잣대가 나의 ‘바깥’에 있으면 내가 나를 충족하지 못할 테니까.

그러므로 3장 ‘미래는 불안을 닮아서’에서는 책을 내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이후를 톺아보며, 다시 마음을 다지는 시간으로 나아간다. 데뷔 6년 차가 된 작가는 “청소일을 말하지 않는 나는 작가로서 여전히 유효할까?” 물음표를 띄운다. 책을 내기 전까지 “매우 사적인” 일상을 지냈지만 책을 낸 뒤 “하나의 사례로, 인생의 지표로” 많은 사람에게 다가갔고 다양한 일을 하는 N잡러로 살고 있다. 청소일 그다음의 세계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몸과 마음으로 직접 부딪히며 체득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작가는 우리 삶에 필요한 용기가 멀리 있지 않음을 안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지나온 날들과 지금 그리고 나아갈 미래의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만날 수 있다. 어른이 되는 먼 미래를 꿈꾸던 10대의 예지,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았던 20대의 예지, 지금의 나를 응원하는 30대의 예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미래의 예지… 운명의 수레바퀴가 타래처럼 엮어내는 이 멋진 삶의 모험담에 진한 공감과 위안을 느끼게 될 것이다.











보헤미아 유리

최하연 저 / 12,000원 / 문학과지성사

“나는 보았다
모든 것이 컷 속에 멈춰 있다는 것을”
무의식이 아닌 의식의 편에서 꾸는 꿈
시공간을 투과하는 투명하고 반짝이는 시적 도정

고독한 상상력을 꿈결 같은 허공 위에 직조해내는 시인 최하연의 네번째 시집 『보헤미아 유리』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611번으로 출간되었다. 200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하연은 『피아노』(문학과지성사, 2007), 『팅커벨 꽃집』(문학과지성사, 2013), 『디스코팡팡 위의 해시계』(문학실험실, 2018)를 출간하는 동안 이상과 현실, 욕망과 억압의 거리를 측량하고 자기 파괴적 실험을 아름답고 위트 있는 시어들 속에 감춰놓는 방식으로 미학적인 시의 지평을 확장해왔다. 그리고 전작 이후 6년 만에 마흔아홉 편의 시를 엮은 『보헤미아 유리』를 선보인다.

이번 시집은 그간 시인의 시적 도정에 함께 놓인 듯하면서도 조금 다른 움직임으로 우리 곁에 도착했다. 이 새로운 움직임을 제목에서 두 가지로 유추해볼 수 있다. 하나는 관습과 구속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영혼 ‘보헤미아’와 어떤 물체를 보이는 그대로 투과하는 ‘유리’의 결합, 다른 하나는 빛의 예술이라 불리는 체코 보헤미아 지역의 크리스털 공예 ‘보헤미아 유리’다. 수록된 시들은 이 모두를 아우르며, 투명하고 고요한 듯 보이지만 고독하고 괴로운 시인의 손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각되고 탄생한다. 빛과 시선의 각도에 따라 그 색채로 모습을 바꾸고, 너머의 형상만 보여주며 이곳과 저곳의 경계로 남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허공에서 만들어낸 투명한 결정체이며, 허공인 듯하지만 벽처럼 존재하는 유리의 속성을 활용해 보이지 않았던 것을 훤히 비추는 작업을 오롯이 수행해낸 결과물이다.


“먼지가 되리라
당신은 젖은 채로 너무 오래 살았어요”
-입자들이 탄생하고 움트는 허공 만들기

물고기 모양의 신발과
신발 모양의 물고기가
대롱 끝에서 부풀어 오른다

신발 속 모래 한 알
털어내려면 한 발로 서야 한다

[……]

물방울 두 개가 얼굴을 마주 보며 식어갈 때

먼저 마른 물방울이 나머지 물방울의 신발이 되고
남은 물방울은 홀로 물고기가 될 때

신발 안에 모래 한 알 숨겨놓고
두물머리 깊은 강물 속 이야기를 듣는다
-「보헤미아 유리」 부분

『보헤미아 유리』 속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단어로 ‘물(빗)방울’ ‘모래’ ‘먼지’를 꼽을 수 있다. 이 단어들은 하늘, 벽면, 바닥에 존재하는 최소 단위이자 바람이 불거나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허공에서 포착되고 사라지는 사소한 형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하연의 시 세계에서 “먼지 속 먼지와 먼지 밖 먼지는 사이가 너무 멀”어서 “먼지 하나/먼지 둘/먼지 셋” 하고 번호를 붙여줘야 할 만큼 중요하다. 먼지는 곧 일생의 기억을 껴안은 ‘노인’과 ‘나무’ 쪽으로 옮겨 간다. “노인 하나, 나무 하나, 노인나무 하나, 나무노인 하나, 허공 하나 번호 끝”(「파」)을 외치며. 한편 “물방울은 홀로 물고기가” 되고 “마른 물방울”은 “신발”이 된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떤 모양으로든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물방울은 “깊은 강물 속”으로 전이된다. 물방울이 포착한 이미지들에서 장면이 바뀌어 단단한 입자인 모래가 신발 속에서 화자의 의식을 건드리고, “모래 한 알”이 “크고 단단한 성벽이었”고 “강을 밝히는 석등이었”(「보헤미아 유리」)다는 상상력으로 뻗어나간다.
허공을 떠도는 작은 요소 하나가 자유롭게 몸을 바꾸고,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이 금세 허물어지는 모습은 시집 곳곳에서 포착된다. “물안개가 피어올라 하늘과 물의 경계를 지”(「펜데믹」)우는가 하면 “머리통만 한 돌이 바로 눈앞 떡갈나무를 찍고서는 어느덧/모래알만큼 작아져 양말 속에서 까끌거”(「돌의 돌-돌돌」)리기도 한다. “망치질 한 번에 물고기가 사방으로 튀고/깨진 돌 틈으로 새 떼가 솟아”(「채석장-돌돌」)오른다. “빨간 벽돌로 태어나 잠을 청”하다 보면 누수로 “물이 흐”르고 물은 “얼룩이”되기도 하는데, “그 직전엔 빈 의자 위의 얼룩이었고, 그 훨씬 전엔 의자를 만들던 목수였으며, 그다음엔 벽돌에 맞아 죽은 행인이었다”(「망치」). 이처럼 시인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입자들의 과거를 들여다보고 미래의 형태를 무질서하게 예측하며 “허공을 일구고 가꾼다”. “허공의 얼룩을 따라 입자들이 저들만의 체계를 그었다가 지우는 것을 그의 시가 살뜰하게 기록”(해설)하는 동안, 어느새 우리 발밑에는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모래”(「보헤미아 유리」)가 가득하다.


“식의 좌변이 망각이면 우변은 반드시 슬픔이 뒤따라야 한다”
-꿈과 현실, 죽음과 삶의 경계 만들기

나는 거미의 꿈이다

한라산 중턱에서 만난 무당거미는 내 꿈을 파먹은 민자가게거미의 회상몽이다
눈물이 거미줄에 이슬처럼 맺힌다
-「거미」 부분

시인 최하연이 꾸준히 그려온 세계의 중심 키워드 중 하나는 ‘꿈’이다. 꿈은 잠든 뒤 꾸는 것이기도 하지만 의식과 구분되는 무의식의 영역, 실현하고 싶은 이상, 헛된 생각과 같은 의미도 담고 있다. 시인은 각각의 의미를 섞거나 시 속 배경 자체를 입자들이 부유하는 몽환적인 장소로 표현하며 시에서 현실과 꿈을 애써 구분하지 않는다. 해설을 쓴 이은지 평론가의 말처럼 “의식을 무의식에 가깝게 변모시키는 일, 의식의 체계에 무의식의 체계를 이식하여 자라나게 하는 일”을 꿋꿋하게 수행할 뿐이다. 「당집」속 꿈은 “숙면 베개를 물어뜯”는 “강아지”가 “꿈의 한 틀을 파괴하는” 공간이며 “베개가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날” “단 하나의 꿈이 모든 꿈을 덮어쓰는 그날”을 두려워하는 곳이다. 화자는 “검은 돌들도 흰 구름을 베고 다들 눕”자 “잠이 베개에 매달”리는 것을 보다가 “두루미”가 “발톱 빠지는 꿈을 꾸고 낙방하여 텃새가”되는 광경과 마주한다. 화자는 “닻도 달지 않고”(「닻」) 허공 속으로 섞여 들어가며 보고 느끼는 모든 감각을 기록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한 세계는 영원한 잠, 즉 ‘죽음’과 맞닿기도 한다. 처음 배치된 시 「흰 꽃」은 “낯선 도시의 장례식장 앞에서” 시작하는데 사방으로 펼쳐진 “들춰야 보이는 곳들은/발 없는 것들의 무덤”이고 “나도옥잠화 하얀 꽃 안에 길고 검은 나비 한 마리가” “고인의 얼굴”을 가늠하게 한다.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무심코 창문을 열 때” “훅 끼쳐 오는/물컹한 죽음의 냄새”는 피할 수 없다. 사실 “나는 매일 죽었고 매일 밤 엘리베이터에 태워져/밤새 끌려다니다가/엘리베이터 앞에 다시 선”(「외박」)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꾸준하게 일궈온 상상력의 나날이 무너지고 영원한 이별 앞에 섰을 때 “자국은 말이 없”이 “잠을 잔다”. 화자는 “깬 적이 없어서 잠을 모르는 잠 속에서 자국을 걷어내고 닦고 닦고 말”리면서 “먼지 공이 자국 위로 떨어”(「잠 없는 자국」)지는 광경을 바라본다.
시인은 현실과 꿈, 삶과 죽음 사이에 얇고 투명한 “보헤미아 유리”를 세워놓고 이승 전의 세계와 이승 이후의 세계를 반짝거리는 빛과 함께 훤히 보여준다. 그러고 나서 “망치 든 남자가” 되어 지속적으로 “물속에서 돌을 깨”(「채석장」)며 눈에 보이는 현실에 지친 우리에게 허공의 입자를 닮은 “구근을 겨우내 꼭 품”(「망치」)도록 건네며 위로한다. “두드리듯이가 아니고 있는 힘을 다해”(「채석장」) 만들어진 이 시집은 우리 안에서 곧 끝도 없이 새로 태어나고 부서지고 자라날 것이다.









일본의 전쟁범죄

김재명 저 / 27,000원 / 진실의 힘

역사 전쟁 중인 한국사회에서
다시 한일 과거사를 말하다

‘위안부’에서 731부대까지,
한 권으로 읽는 일본의 전쟁범죄
한국은 지금 역사 전쟁 중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뉴라이트 계열 인사가 연달아 주요 교육·역사 관련 기관 수장이 됐고,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놓고 논란 끝에 독립기념관이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 “일본이 수십 차례 사과해 피로감이 많이 쌓였다”(대통령실) 같은 발언까지 쏟아졌다. 이런 발언들이 비단 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과거 독재정권 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친일 행위가 부끄러운, 그래서 말해서는 안 되는”(한홍구 성공회대 석좌교수) 일이었다는 점이다. 지금 뉴라이트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번영은 일본, 그리고 일본에서 신문물을 배운 친일파 덕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는 지금 다시 치열한 역사 전쟁의 한복판에 들어섰다.
국제분쟁 전문기자 김재명의 신간 『일본의 전쟁범죄』는“조금 더 빨리 출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오늘 우리 현실에 꼭 필요한 책”(한홍구)이다. 저자는 생생한 사례를 중심으로 ‘위안부’, 역사 교과서, 독도 영유권, 야스쿠니 신사 등 여전히 뜨거운 한일 과거사에 얽힌 여러 주제를 객관적 자료와 취재에 기반해 깊이 파고든다.
팔레스타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동티모르 등 분쟁 현장을 심층 취재해 『오늘의 세계 분쟁』『눈물의 땅, 팔레스타인』등의 책을 낸 저자는 오랫동안 전 세계 분쟁지역을 돌아본 경험에 바탕을 둔 보편적 관점에서 일본이 저지른 잔혹행위를 고발한다. 국제분쟁 전문가답게 저자의 시선은 좁은 민족주의의 시각을 벗어나 동아시아 전반으로 향한다. 『일본의 전쟁범죄』는 731부대의 생체실험, 난징 학살 등 “동아시아의 어두운 과거사가 지닌 문제점”을 제대로 살피고 있다. 지구촌 곳곳을 찾아다니며 수많은 참상과 비극을 취재한 경험에 바탕해 일본의 전쟁범죄를 분석한 저자는 “분쟁지역을 취재하면서 폭력과 죽음이 일상화된 모습들을 보긴 했지만, 막상 일본의 만행 기록들은 훨씬 끔찍했다”(626쪽)고 평가한다.
『일본의 전쟁범죄』는 일본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미국이 전쟁범죄를 선택적으로 처벌한 과정의 부정의를 짚으며 복잡하게 꼬인 과거사 문제의 해법까지 모색하고 있어 일본의 전쟁범죄를 둘러싼 거의 모든 문제를 총망라한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일본 극우와 뉴라이트의 논리가 왜 문제인지,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이런 주장을 펴는지, 소모적인 역사 전쟁을 끝내고 미래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일본의 전쟁범죄』가 그 답을 제시할 것이다.

역사 교과서에서 전쟁범죄 지운 일본 극우와 한국 신친일파

‘역사 전쟁’의 주요 전장은 역사 교과서다. 역사 교과서에서 일본 전쟁범죄를 축소·왜곡·미화하려는 시도가 한국, 일본에서 모두 있었다.
일본에서는 후소샤의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대표적이다. ‘조선반도는 일본에 흉기가 되기 쉬운 위치에 있다’는 ‘한반도 흉기론’, 일본 전쟁범죄가 ‘전쟁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라는 주장 등 극우 세력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교과서다.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적었지만, 전쟁범죄와 식민 지배를 지우려는 이들의 노력은 성과를 거뒀다. ‘위안부’ 문제를 비교적 충실히 다룬 교과서를 내던 니혼쇼세키는 극우 세력의 항의에 시달리다 2003년 문을 닫았다. 그 뒤 대부분의 교과서가 ‘위안부’ 문제를 다루지 않고, 극우 시각을 담은 교과서 채택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일본 극우 세력은 이를 두고 “역사 전쟁에서 우리가 이겼다”라고 자축한다.
한국에서는 ‘교학사 파동’이 있었다. 뉴라이트 계열 연구자들이 집필한 교학사 교과서는 일제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일제에 협력했다는 ‘친일공범론’, 식민 지배 덕분에 조선에 철도와 학교가 많이 세워졌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담았다. “교학사 교과서가 후소샤 교과서보다 더 노골적으로 일제 식민 통치를 미화하고 친일파를 옹호한다”(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고 비판받았을 정도다. 『일본의 전쟁범죄』가 뉴라이트를 ‘신친일파’라 칭하는 이유다.
신친일파 뒤에 일본이 있다. 『반일 종족주의』 공저자 이우연은 일본 극우파 후지키 슌이치가 지원한 항공표와 체류비로 UN인권이사회에 참석해 “일제 식민지 시기에 강제 동원은 없었다”고 연설했다. 『반일 종족주의』 대표 필자 이영훈, 그의 스승 안병직이 속한 낙성대경제연구소는 도요타재단의 지원을 받은 적이 있다. 저자는 일본 지원을 받아 신친일파가 펴는 주장에 대해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극우들의 기분을 맞춰주는 ‘위안’의 논리나 다름없다”(11쪽)고 꼬집는다. 『일본의 전쟁범죄』는 야스쿠니 신사, 독도 영유권, 강제 동원 등의 문제에서도 일본 극우와 신친일파의 논리가 왜 틀렸는지 조목조목 반박하며 그들의 주장을 논파한다.

신친일파는 어떻게 역사를 왜곡하는가

『일본의 전쟁범죄』는 토지조사사업, ‘위안부’ 문제 등을 중심으로 신친일파가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방법을 분석한다.
신친일파는 토지조사사업에 대해 일본이 강제로 뺏은 땅은 거의 없고, 토지조사사업 당시 만든 각종 자료가 지금도 요긴하게 쓰인다는 식으로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다. 이들은 물리적 폭력만 문제 삼으며 ‘강제와 폭력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식민 지배라는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폭력 속에서 ‘제도와 정책을 통한 수탈’이 벌어졌다. 일본인이 소유한 땅 면적 증가가 이를 입증한다. 1910년 일본인이 소유한 논 면적은 조선 전체 논의 5.1퍼센트였는데, 1932년에는 16.1퍼센트가 됐다. 일제강점기 후반에는 조선 농업인구의 0.2퍼센트밖에 안 되는 일본인이 조선 논의 5분의 1가량을 소유했다.
경제학자 전강수는 일본인들의 토지 소유가 많이 늘어난 데는 “토지조사사업이 창출한 제도적 환경, 일제의 권력적 강제와 지주 중심적 농업정책, 그리고 일본인 대지주의 토지 겸병 의지가 함께 작용했음이 틀림없다”며 “이를 토지 수탈이라 하지 않으면 도대체 뭐라 불러야 할까?”라고 반문한다.
신친일파의 주장과 달리 물리적 폭력도 있었다. 토지 소유권 분쟁 과정에서 일본 경찰이 농민에게 곤장 90대를 때리거나, 일본 헌병이 여성을 군홧발로 차서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위안부’에 대해서도 신친일파는 ‘좁은 의미의 강제’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업자들이 여성을 속이거나 유괴해 ‘위안부’로 만들었을 뿐, 일본군이 직접 강제로 여성들을 끌고 가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학자 야스마루 요시오의 입을 빌어‘좁은 의미의 강제’가 핵심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야스마루는 일본 극우 세력이 ‘좁은 의미의 강제’를 들먹이며 과거사를 지우려 하는 교활한 행태에 매우 비판적이다. 그는 “속아서든 강제로든 그 지옥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 ‘위안부’ 여성들이 끝내 체념하고 상황에 적응해간 것도 강제나 폭력과 무관하지 않다”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감언, 인신매매, 유괴와 현지에서의 일상적 관리 등은 ‘강제’가 아니냐”라고 되묻는다.(182쪽)

또, 진중일지(일본군 공식 기록물)를 연구한 역사학자 하종문을 인용해 일본군의 작전, 이동과 위안소의 설치, 운영이 깊숙이 결부돼 있었다고 지적한다.

진중일지에서 ‘위안부’ 개인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진중일지를 꼼꼼히 살펴보면 군부대의 이동, 주둔, 작전, 훈련 등 통상적인 움직임과 위안소의 설치·이용이 서로 떼놓을 수 없는 일본군 행동의 ‘일부’였음이 분명히 드러난다.(178쪽)

신친일파들은 이처럼 “헐값이라도 대가를 지불했으니 수탈은 아니다”, “‘좁은 의미의 강제’는 없었다”며 수탈, 강제의 의미를 좁게 해석해 일본이 벌인 전쟁범죄를 축소하려 든다. 식민 지배라는 구조적 폭력에는 눈 감고, 분명히 존재했던 폭력과 일본군 개입조차 없었다고 주장하며 역사를 왜곡한다.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전쟁범죄 - 난징 학살과 731부대의 생체실험

국제분쟁 전문기자인 저자의 시선은 한일 양국을 넘어 동아시아 전반에서 벌어진 전쟁범죄로 향한다. 1937년~1938년 일본군이 벌인 난징 학살은 일본의 수많은 전쟁범죄 중에서도 유난히 잔혹했다.

일본군은 포로로 잡은 중국군(당시 장제스 휘하의 국민당군)을 양쯔강 변에 일렬로 세워놓고 기관총으로 집단 학살했다. 일본군 장교들은 군도로 누가 빨리 더 많은 포로의 목을 베느냐며 ‘100인 목 베기’ 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길 가던 민간인들도 붙잡혀 생매장당했다. 한마디로 온갖 잔혹한 전쟁범죄들이 한꺼번에 난징에서 저질러졌다.(266~267쪽)
성폭행도 심각했는데, 피해자가 최소 2만 명에서 최대 8만 명으로 추정된다. 난징 학살을 대중에게 알린 작가 아이리스 장은 “난징의 강간은 역사상 가장 엄청난 집단 강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썼다.
731부대가 벌인 생체실험도 유례를 찾기 힘든 잔인한 전쟁범죄다. 일본군은 세균무기가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 방안이라고 여겨, 세균무기 개발을 위해 살아 있는 사람들을 생체실험 도구로 사용했다. 최소 3,000명에서 최대 1만 명으로 추정되는 ‘마루타’들이 반복되는 생체실험 끝에 죽어갔다.

일단 731부대 건물로 잡혀 들어간 사람들은 ‘마루타(통나무)’ 취급을 받고 고통 속에 여러 생체실험을 거치며 죽어서야 그곳을 벗어났다. … 한 생체실험에서 살아남으면, 그다음 실험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렇게 이어진 여러 가학적인 과정을 겪으면서 끝내는 숨을 거두었다. 그래도 살아남았다면 독가스 실험으로 죽고 소각로로 실려 갔다.
‘마루타’로 있다가 살아서 나간 이는 없다. 731부대로 붙잡혀 들어가 ‘인간 모르모트’가 된 사람들은 죽음의 공정 속에서 짧든 길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 죽었다.(279~280쪽)

‘마루타’는 대부분 반일 성향의 비일본인이었지만, 예외도 있다. 731부대는 같이 일하던 일본인 요원이 생체실험 과정에서 페스트균에 감염되자 “이는 모두 천황 폐하에게 충성을 하기 위해서다!”라며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저자는 “세균 연구에 미쳐 있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295쪽)이라고 지적한다.

처벌받지 않은 범죄와 뒤틀린 피해의식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전쟁범죄는 그 자체로도 정의를 심각하게 훼손했지만, 미국이 전쟁범죄를 다룬 방식에도 정의가 없었다.
미국은 일본을 냉전의 파트너로 삼기 위해 전쟁범죄 처벌을 최소화했다. 총책임자인 히로히토 일왕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세균 정보를 받는 대가로 731부대원들도 처벌하지 않았다. 육군대신,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도조 히데키 등 일부 고위급 인사들이 처벌받았지만, 일본이 저지른 범죄에 비하면 가벼운 처벌이었다. 오히려 포로수용소 감시원 등으로 원치 않게 전쟁에 동원된 조선인 전범자의 사형자 수(23명)가 일본인 전범의 사형자 수(7명)보다 많았다.
히로히토 등 주요 전범들이 처벌받지 않은 결과 일본인들은 일본의 전쟁범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자신들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느끼지 못하게 됐다.

무엇보다 히로히토가 ‘천황’ 자리에 그냥 머무는 것을 본 일본인들은 전쟁범죄에 대한 공범 의식을 덜 느끼게 됐다. ‘국왕이 전쟁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우리도 책임이 없다’는 분위기가 퍼져갔다. 1948년 12월 주요 범죄자들이 불기소로 풀려남으로써 ‘전범 처벌은 이제 모두 마무리됐다’고 여기게 됐다.
… 미국이 전쟁 주범 히로히토를 비롯해 일본의 전쟁범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여러 안건들이 ‘과거사’라는 이름의 미결 상태로 남게 됐다.(240쪽)

처벌은커녕 전쟁범죄 이력을 수단 삼아 승승장구한 이들도 있었다. 731부대 고급 장교들은 고액의 군인연금을 받는가 하면 생체실험을 통해 쌓은 지식과 수술 기술을 살려 의과대학 교수나 거대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전범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면서 죄의식 대신 일본인도 전쟁 피해자라는 인식이 퍼졌다. 특히 피해자가 1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도쿄 대공습과 두 차례의 원자폭탄 투하가 피해의식을 부추겼다. 일본이 벌인 침략전쟁 피해자가 2천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망각하고 자신들의 고난만 앞세우는 뒤틀린 피해의식 속에서 사과와 반성은 설 자리가 없었다. 오히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전쟁범죄를 반성하는 이들이 ‘자학 사관에 붙잡혔다’고 손가락질받고 있다.

역사 전쟁을 끝내는 방법

일본 사회의 이런 인식에 힘입어 극우 세력과 정치인들은 ‘한일 병합이 합법적이었다’, ‘일본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했다’, ‘식민통치는 한국인에게도 유익했다’ 같은 망언으로 전쟁범죄를 합리화해왔다.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에 관여했음을 인정한 ‘고노 담화’, 식민 지배와 전쟁 책임을 정부 차원에서 인정한 ‘무라야마 담화’ 등 횟수만 따지면 일본은 수십 차례 사과했지만, 진심 어린 사과라 보기 힘들다. 의례적으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해놓고 금세 망언을 내뱉기 일쑤다.

결국 초점은 일본의 사과 행태에 모아진다. 지난날 저지른 전쟁범죄를 두고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떼거나, 사과를 하더라도 ‘립서비스’ 수준으로 사과의 진정성이 없거나, 사과 뒤 곧바로 망언을 하는 일들이 쳇바퀴처럼 되풀이되어 왔다는 점이다. 총리가 사과를 하면 각료가 뒤집는 망언을 하고, 그런 사실을 선거에서 훈장처럼 내거는 일들이 ‘일본식 사과’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606쪽)

그런데도 ‘이제 지난 일이니 다 잊고 용서하자’는 이들을 향해 『일본의 전쟁범죄』는 ‘피해자만이 용서할 수 있는 주체’라고 강조하며,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말을 끌어온다.

용서하지 않을 권리도, 용서할 권리도, 범죄자와의 관계에서 오직 피해자가 갖는 권리이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범죄자 가족들도, 후손들도, 친구들도, 더군다나 정치가들이 용서를 구할 수는 없다.(621쪽)

역사 전쟁을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 등의 조치가 있을 때만 그 일이 가능하고, 그래야 화해도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한일 두 나라의 화해, 좀 더 범위를 넓혀 동아시아의 화해를 위해선 ‘용서’라는 길목을 지나야 한다. 용서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진상규명, 그에 합당한 배상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이뤄질 것이다. 피해자(또는 그 유가족)가 아닌 제3자가 이래라저래라 용서와 화해를 말할 수 없다.(623쪽)

『일본의 전쟁범죄』는 일본 식민 지배와 전쟁범죄에 대한 고발을 넘어 지금의 역사 전쟁을 끝내고, 미래 동아시아의 화해와 연대를 이끌 방법을 모색한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읽는 일은 여전히 뜨겁기만 한 한일 과거사의 주요 논쟁을 차분히 짚는 일이자 “지금도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과거사 문제를 비판적 시각으로 돌아보고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평화의 내일을 생각해보는 계기”(626쪽)가 될 것이다.
『일본의 전쟁범죄』가 던지는 메시지는 자신들이 당한 피해만 곱씹으며 자신들이 저지른 가해를 외면하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우리, 여전히 전쟁범죄가 벌어지는 수많은 분쟁지역의 시민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나만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평화로 한발 다가가는 고통의 연대의 출발점”(한홍구)이기 때문이다.







나보다 불행한 아이

유니게 저 / 13,000원 / 문학과지성사

“찬을 만나기 전,
달아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비밀을 공유했다는 동질감
나보다 불쌍한 아이가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남의 불행을 위로하며 스스로 위로받는 알 수 없는 마음

아이들의 미묘한 심리를 절묘하게 그려낸 공감과 치유의 이야기


남의 불행을 위로하며 스스로 위로받는 마음은 나쁜 것일까. 삶에서 맞닥뜨리는 청소년기 아이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탁월하게 포착하여 공감과 치유의 이야기로 그려낸 유니게의 장편소설 「나보다 불행한 아이」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엄마 아빠를 한꺼번에 잃고 홀로 된 친구를 내버려 둘 수 없는 소녀의 심리를 입체적으로 담아낸 『원 테이블 식당』에 이어, 인공지능을 소재로 갈등 없이 완벽하기만 한 인간관계가 정말 좋은 것인지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50일간의 썸머』 이후 3년 만에 출간하는 여섯번째 성장소설이다. 그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의 예민하고도 혼란한 심리를 간결한 문장과 재치 넘치는 표현, 따뜻한 감성으로 섬세하게 풀어냈다는 평을 받는 작가 유니게는 이번 작품에서 더욱 성숙하게 무르익은 재능으로, ‘남의 불행을 보고 위로받는’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나보다 불행한 아이」의 주인공인 ‘달아’와 ‘찬’은 기구한 사연을 가진 중학생 아이들이다. 미혼모의 딸로 태어난 달아는 새아빠가 떠난 후 우울증을 앓고 있는 무기력한 엄마와 아빠가 다른 어린 남동생을 돌보며 일찍 철이 든 아이로, 자신의 결핍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 새침하고 당돌하게 행동한다. 찬 또한 어릴 적 교회 앞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로 따뜻하고 자상한 부모님의 돌봄 아래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또다시 버림받을까 봐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캐릭터다. 두 아이의 공통점은 각자가 처한 불우한 환경을 학교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교회에서 만난 두 아이는 우연한 계기로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되고, 비밀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 누구에게도 가져보지 못한 특별한 동질감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달아는 찬을 만나기 전까지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억울하다고 여겼는데 자신보다 불쌍한 아이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자신은 아빠 얼굴만 모르지만 부모님이 누구인지 얼굴조차 모르는 찬을 위로하며 이상하게도 자신이 위로받는 느낌을 갖는다.
소설은 달아와 찬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이 처한 불우한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아이들의 심리를 흥미롭게 그려낸다. 외적인 조건에 구애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러한 노력 자체가 사실은 거기 얽매여 있다는 점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달아가 찬에게 갖는 감정인 ‘나보다 불쌍한 아이’를 보는 듯한 마음은 완벽해 보이기만 했던 착한 소녀에서 벗어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부모님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존경하며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한 번도 부끄럽게 여겨본 적 없다고 생각했던 찬이 형과의 갈등을 겪으며 자신이야말로 부모님의 사랑을 의심해왔음을 깨닫게 되는 대목은, 그 결핍과 결함을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이 껍질을 깨고 세상으로 한 발짝 내딛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새삼 일깨워준다.
소설은 기구한 사연을 가진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불안정하고 서툴기 짝이 없는 청소년기 아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결핍과 결함이라는 주제를 작가 특유의 재치와 발랄함으로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그려내며, 그러한 결핍과 결함이야말로 크나큰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공감 어린 시선으로 따뜻하게 펼쳐 보인다. 앞으로도 아이들은 살아가는 내내 불안과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으로 용기 있게 나아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컴퍼스의 중심축”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지켜봐주는 응원이면 족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달아는 여느 보통의 아이들처럼 보이고 싶었다. 사랑과 보살핌을 충분히 받고 자란 아이로 보이고 싶었다. 어둡고 우울하고 초라하고 불행한 것은 모조리 감추고 싶었다. 그래서 진짜 달아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 보일 수 없었다. 어쩌면 달아는 자신을 잃어버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달아는 단 한 사람, 성찬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진짜 달아를 보여줄 수 없었다.” (135쪽)


세렌디피타스, 뜻밖의 행운!

이 책에서 작가 유니게는 “어둡고 우울하고 초라하고 불행한 것은 모조리 감추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절묘하게 그려내며, 부족하고 모자란 점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게 되는 아이들의 성장담을 유머러스하면서도 가슴 뭉클하게 펼쳐 보인다. 소설은 달아와 찬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가 예기치 못한 갈등과 이별을 겪은 후 화해의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성장통을 담고 있지만, 그 성장은 비단 두 아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과의 이별 후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무기력하게 알코올에만 의존해온 달아의 ‘엄마’는 비로소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러한 엄마 대신 달아와 유지를 잠시 맡아 키우게 된 ‘할머니’는 평생 해본 적 없는 고된 나날을 보내지만,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동안 자신에게 붙어 있던 위선이나 체면, 상처받은 자존심 같은 불순물이 떨어져 나가고 남의 평가를 의식하지 않는 진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입양아인 찬이 부모님의 친아들인 형을 계속 의식해왔던 것처럼 ‘형’도 모범생인 찬을 의식하고 비교하며 반항심을 키워온 장면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찬과 마찬가지로 형 또한 긴 방황을 끝내고 훌쩍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달아와 찬과 더불어 성장하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흐뭇한 감정을 선사하며 작품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든다. 달아의 남동생인 ‘유지’의 세상 모를 귀여움은 작품에 매력을 한층 더해주는 덤이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 소설이 내가 쓴 어느 소설보다도 좋은 소설이 될 것 같았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울고 웃으며 재미와 공감, 진한 감동까지 버무려진 이 작품은 삶에 속고 지친 독자들에게도 ‘뜻밖의 행운’을 만나게 해줄 것이다.









플라스틱, 쓰레기 그리고 나

하인리히 뵐 재단 저 / 손어진, 유진, 윤혜진, 움벨트 역 / 강신호 감수 / 작은것이 아름답다 기획 / 18,000원 / 작은것이아름답다


《플라스틱, 쓰레기 그리고 나 ­ 숨은 얼굴 찾기!》
(사)작은것이 아름답다는 기후위기시대 중요한 전환점으로 이끌어내야 할 유엔플라스틱협약 부산회의를 즈음해서 〈플라스틱아틀라스〉에 이어 미래세대와 시민들이 알아야 할 플라스틱에 대한 70가지 질문과 답을 담아낸 《플라스틱, 쓰레기 그리고 나-숨은 얼굴 찾기!》를 펴냅니다.
2018년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을 기억하시나요?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지구가 플라스틱 쓰레기로 넘쳐나지 않기 위해 세계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2024년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대한민국 부산에서 지구가 맞닥뜨린 플라스틱 쓰레기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유엔 플라스틱협약 5차 회의(INC-5)가 열렸습니다. 과연 세계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문제를 위한 해결점을 찾았을까요? 어떠한 구속력 있는 합의를 이끌어냈을까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의 시작은 생산량 감축을 위한 결론을 내렸을까요?
(사)작은것이 아름답다는 2019년부터 하인리히 뵐 재단 지구환경보고서 〈아틀라스〉 시리즈 한국어판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2년 플라스틱 관련 세계 데이터와 사실을 담은 〈플라스틱아틀라스〉 세계판과 아시아판을 아시아 최초로 우리말로 번역 출간해 ‘플라스틱지구’의 실체를 낱낱이 알렸습니다.

플라스틱이 등장한 지 116년, 우리는 플라스틱으로 먹고 입고 살아갑니다. 도시와 농촌, 산과 바다, 지구 어디에서나 플라스틱 쓰레기를 발견합니다. 흘러들어간 플라스틱은 자연생태계를 오염시키고 밥상을 통해 우리 몸속으로 되돌아옵니다. 어쩌다 플라스틱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게 되었을까요? 최근 몇 년 플라스틱은 모두의 문제로 뜨겁게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플라스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의미 있는 크고 작은 움직임이 다양하게 일어났습니다.

《플라스틱, 쓰레기 그리고 나》는 '플라스틱의 생애주기'가 시작되는 곳, 플라스틱 원료인 석유와 천연가스가 나오는 유전에서 플라스틱공장, 슈퍼마켓까지 플라스틱이 우리 일상에 오기까지 복잡하고 긴 과정, 수많은 플라스틱 종류와 첨가제 문제를 살펴보고, ‘일회용'플라스틱이 일으킨 건강과 불평등, 기후문제를 짚었습니다. 세계 나라들이 겪은 플라스틱 위기의 실태, 플라스틱 쓰레기가 인간, 기후, 자연, 야생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또한 플라스틱 문제의 해법으로 나타난 대안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따져보며, 플라스틱 위기를 풀어가기 위한 진짜 해결법은 무엇인지 찾아봅니다.
세계 곳곳에서 마주하는 플라스틱 문제의 민낯이 무엇인지, 오해와 진실, 성찰과 대안을 청소년 눈높이에서 살폈습니다. 미래세대이자 플라스틱 위기를 겪고 있는 당사자인 어린이, 청소년을 비롯해 플라스틱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기획한, ‘플라스틱의 숨은 진실을 찾아가는 길잡이’ 책입니다.
플라스틱 위기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모두가 같은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이 책에서 특히 관심을 갖고 다루는 부분은 정의와 다양성 문제들입니다. 플라스틱 문제의 이면에는 이윤을 앞세운 자본의 태도가 있고,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플라스틱에 대한 젊은 세대의 70가지 질문에 이해하기 쉬운 시각 자료와 이야기로 대답합니다. 플라스틱의 역사, 플라스틱의 개념, 생산 과정, 여러 나라에서 겪고 있는 플라스틱 위기의 실태, 지구 생태계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플라스틱의 영향을 이야기하며,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되묻습니다. 이 책을 위해 플라스틱 문제에 관심이 있는 세계 청소년들이 ‘청소년자문위원회’로 모였습니다. 플라스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플라스틱 문제를 알고 있는지, 소개한 시각 자료들은 이해하기 쉽고 적절한지 의견을 보탰습니다.

책의 구성 - 70개의 질문과 답, 플라스틱과 나, 숨은 진실을 찾아서
- 이 책은 플라스틱-무엇에 대한 것일까? 플라스틱 쓰레기,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정말 해결책이 있을까? 네 개 큰 질문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 그 많은 플라스틱은 어디에 있는 걸까? 플라스틱 재활용은 왜 진짜 해결책이 될 수 없을까? 어떻게 우리가 먹는 음식에 플라스틱이 들어올까? 더 적은 플라스틱으로 살 수 있을까? 이와 같이 플라스틱에 대한 70가지 질문과 답으로 구성되었습니다.
- 70가지 질문과 답은 한 장씩 펼침면에 담겨 한눈에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질문마다 연결된 다른 질문들을 배치해 함께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이 책에는 '플라스틱을 적게 쓴 예전 우리 삶은 어땠을까'를 비롯해 플라스틱과 삶을 다룬 6개 주제 대해 세계 시민들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와 실제 일어났던 역사 속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책의 특징 - 내용은 쉽고 깊게, 방식은 다양성과 상상력을 키우도록!
- 이 책은 핵심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글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독창적인 그래픽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플라스틱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깊이 있으면서도 흥미롭게 전달합니다.
- 책에 등장하는 플라스틱 그림은 주황색으로 색깔을 지정해 복잡하게 얽혀있는 플라스틱 문제를 알아보기 편하게 했습니다.
- 이 책은 플라스틱 문제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모두가 같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현실에 정의와 다양성 문제를 관심을 가지고 다뤘습니다.
- 특별히 플라스틱 문제에 관심 있는 세계 청소년들로 이뤄진 '청소년자문위원회'를 만들어 플라스틱에 대한 생각과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이해, 시각자료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반영했습니다.

《플라스틱, 쓰레기 그리고 나-숨은 얼굴 찾기!》는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의 상징이 된 플라스틱의 사용과 그에 따른 건강과 불평등, 식품과 의류, 지구 생태계, 멸종위기 동물,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살폈습니다. 나아가 기후변화와 물, 토양처럼 플라스틱이 지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다뤘습니다. 플라스틱은 생태계 먹이 사슬을 따라 발견되며 심지어 심해 가장 작은 갑각류에서도 발견됩니다. 이는 자연을 보호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접근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결과입니다.
《플라스틱, 쓰레기 그리고 나》는 플라스틱 생산에 필요한 석유와 천연 가스가 나오는 유정, 곧 플라스틱 생애주기가 시작되는 곳에서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습니다. 어떤 종류의 플라스틱이 있는지, 플라스틱 쓰레기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인간, 기후, 자연 그리고 동물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합니다. 그리고 대안과 해결책 또한 모색하고자 합니다. 이 책의 목표는 플라스틱의 범람을 멈추는 것입니다.

플라스틱이 처음 등장했을 때 플라스틱은 진보와 현대성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이 플라스틱으로 대체됐습니다. 1979년에 이미 플라스틱은 철강 분야를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50년 전보다 20배나 더 많게 플라스틱을 쓰고 있습니다.
1950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에서 플라스틱 830억 톤이 생산됐습니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1톤 넘게 소비한 수치입니다. 일회용품과 포장재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지금까지 생산된 플라스틱 가운데 10퍼센트 넘는 양은 재활용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1950년부터 2019년까지 세계 플라스틱 사용량을 보면, 79억 톤 정도가 플라스틱 쓰레기가 됐습니다. 플라스틱 제품 가운데 절반은 한 달도 안 돼서 쓰레기가 됩니다. 74퍼센트는 매립지에 묻히거나 자연 곳곳에 버려집니다.
또한 플라스틱 종류에 따라 분해되는 시간이 50년, 500년 걸린다고 말하지만, 이에 대한 아무런 과학적 근거는 없습니다. 이는 막연한 가정일 뿐입니다. 어쩌면 영원히 썩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플라스틱 분해는 인간이 감당할 있는 시간을 넘어서는데, 만들어지는 것은 한순간이고 버려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플라스틱, 쓰레기 그리고 나》에서 플라스틱의 숨은 얼굴, 숨겨진 진실을 찾아갑니다.









우리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로이 밀스 저 / 고현석 역 / 20,000원 / 해나무


인체 해부학의 기원에서 근력운동에 관한 최신 과학까지
정형외과 의사가 들려주는 근육 교양 강의!
근육은 인체에서 움직임을 담당하는 가장 다재다능한 일꾼이다. 근육은 달리기를 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 때만 쓰이지 않는다. 눈을 깜빡이고, 호흡하고, 소화하고, 혈액을 운반할 때도 근육이 관여한다. 또한 근육은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근육은 어떻게 작동할까? 근육통은 왜 생기는 것일까? 운동을 하지 않고 근육을 키울 수 있을까? 화성 여행에서 근육이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정형외과 의사가 직접 쓴, 근육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담은 교양과학서다. 저자는 근육의 신비를 풀기 위해 해부학, 생리학, 생물학, 역사, 그리고 피트니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탐험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근육의 종류와 작동 원리부터 근육 통증과 근육 건강 관리법까지 근육에 관한 과학 지식을 탄탄히 다질 수 있을 것이다.


○ 근육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 근육통은 왜 생기는 것일까?
○ 운동을 하지 않고도 근육을 키울 방법은 없을까?
○ 근육이 화성 여행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 근육은 왜 건강한 삶에 필수적일까?

근육은 왜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까?
인체의 가장 다재다능한 일꾼의 비밀을 파헤친다!


‘근육’이라고 하면 올림픽에 출전한 운동선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나 데드 리프트, 팔굽혀펴기 같은 근력운동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근육은 보이는 곳에서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열심히 일하며 삶을 지탱하고 있다.
해나무 신간 『우리는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우리 삶에 필수적이면서도 그동안 간과되었던 근육의 새로운 모습들을 조명하는 책이다. 정형외과 의사 로이 밀스는 전작 『숨겨진 뼈, 드러난 뼈』에 이어 새 책에서 인체를 구성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인 근육의 모든 것을 다룬다.
로이 밀스는 생명의 일곱 가지 특성을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생물 교사들은 생명의 특성을 외우기 쉽도록 “MRS GREN(그렌 부인)”이라는 약자로 가르친다. MRS GREN은 각각 움직임(Movement), 생식(Reproduction), 감각(Sensitivity), 성장(Growth), 호흡(Respiration), 배설(Excretion), 영양(Nutrition)을 뜻한다. 근육은 이 중에서 움직임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지만, 근육의 진정한 기능은 달리거나 무거운 물건을 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근육은 홍채와 수정체를 조절해서 우리가 무언가를 볼 수 있게 해주고, 횡격막을 움직임으로써 호흡을 가능케 한다. 생식 과정에서는 나팔관의 연동운동으로 정자가 난자를 향해 이동할 수 있게 해주며, 위장관 곳곳에 있는 괄약근으로 음식물의 소화ㆍ배설 과정을 통제한다. 근육은 심지어 성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포 분열 과정에서 근육을 구성하는 단백질인 액틴과 미오신 사슬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근육의 활약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근육은 움직임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뼈와 함께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하나의 재료가 된다. 혈관은 그 자체가 근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혈관을 이루는 근육은 움직이지는 않지만 혈액을 운반하는 신축성 있고 질긴 관을 만든다. 식도, 위, 소장, 대장 등의 위장도 역시 근육이며, 연동운동을 통해 음식물이 역류하지 않고 소화관을 통과하며 소화액과 잘 섞이도록 한다.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인 심장 역시 전체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장의 근육 세포들은 자체적으로 내뿜는 전기 신호에 따라 율동적으로 움직이며 온몸에 혈액을 공급한다.

근육 질환의 원인과 치료법은 무엇인가
근육과 관련된 의학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다


인체에는 뼈에 붙어 있는 400여 개의 골격근, 혈관과 위장관 등 내부 장기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250여 개의 민무늬근, 그리고 심장근육 등 650여 개의 근육이 있다. 정교하게 움직이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수많은 근육이 있는 만큼, 근육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우 희귀한 유전 질환인 ‘진행성 골화성 섬유이형성증’이 있다. 인간은 태아일 때는 뼈 성장을 자극하는 단백질이 작용하다가 골격이 형성된 후에는 이 단백질을 방해하는 다른 단백질이 합성되어 새로운 뼈의 형성이 멈춘다. 하지만 이 두 번째 단백질을 코딩하는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뼈 형성이 통제를 벗어나게 된다. 이 질환에 걸린 환자는 온몸의 근육이 서서히 뼈로 변하게 되고 결국 호흡을 할 수 없어 사망하게 된다.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누구나 겪는, 그러나 원인과 치료법이 베일에 싸여 있는 질환도 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또는 차에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내릴 때 근육과 관절에서 느껴지는 뻣뻣함은 도대체 무엇일까? 통증이 느껴지면서 딱딱하게 굳어 있으며 균형을 잡기도 힘들다가, 조금씩 움직이면서 스트레칭을 하면 어느새 뻣뻣함이 사라진다. 비슷한 예로는 ‘지연성 근통증’이 있다. 익숙하지 않거나 과도한 운동을 하고 나면 그 다음날에 근육통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콘서트장에서 헤드뱅잉을 하거나 등산을 갔다 온 다음날이 그렇다. 아침에 느껴지는 뻣뻣함과 지연성 근통증의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치료법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근육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근육은 여러 화학전달물질을 분비하는 내분비 기관이기도 하다. 한쪽 팔에 깁스를 해서 움직일 수 없는 환자의 다른 쪽 팔을 훈련시키면 깁스를 한 팔에도 훈련 효과가 전해진다. 근력 운동은 암, 심혈관계, 심장, 폐의 기능을 개선하고, 당뇨병과 같은 대사성 질환, 뇌졸중, 우울증, 치매 같은 신경계 질환을 완화하거나 예방한다. 노화 과정에 있으면서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쥐의 피를 운동을 하지 않는 쥐에게 주입하면 운동의 유익한 효과가 전달된다. 근육이 정확히 어떤 기전으로 이런 유익한 효과를 만들어내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관련 연구가 진전된다면 알약을 하나 삼키는 것만으로 근육을 키우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근육질의 날씬한 몸매를 선망하지만, 일상의 삶에서 근육이 차지하는 진정한 의미를 아는 이들은 드물다. 근육은 인체의 외적인 움직임과 함께 생존에 필수적인 내적 움직임도 담당하며, 인체를 구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재료이기도 하다. 활동적이고 건강한 삶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근육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근육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이 책이 바로 그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동창회

김성금 저 / 15,000원 / 우인북스


자퇴하고 학교를 떠난 일곱 명의 여고생,
그들의 각자도생과 삶의 궤도를 수정하는 이야기.


김성금 작가의 소설 속 인물은 특별하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 익숙하게 보아 온, 끊임없이 상처를 받으면서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다. ≪우리들의 동창회≫의 경아, 미애, 혜성, 병선, 그리고 김진경과 박진경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통해 우리의 옛상처를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들은 우리를 회복의 자리로 인도해 줄 것이다.
 

묻어둔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았다.
그들은 시간을 되짚어가서 삶의 궤도를 수정했고 상처에 새살이 돋았다.

선생님은 출석부로 그들의 머리를 하나씩 후려치며 “네놈들 앞날은 유리창이야. 멀리까지 잘 보이는 것 같아도 코앞에서 딱 막혔거든.” 하고 말한다. 그 말은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팠고, 일곱 명의 여학생은 자퇴하고 학교를 떠난다. 고등학교 졸업장조차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움츠리고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난 그들은 인생의 궤도를 수정해 보기로 한다. 갇혀 있던 유리 벽에서 벗어나자 그들에게 새롭게 꿈이 찾아온다. 믿고 기다려 준 인생의 멘토 민 선생님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김성금 작가의 소설 속 인물은 특별하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 익숙하게 보아 온, 끊임없이 상처를 받으면서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다. ≪우리들의 동창회≫의 경아, 미애, 혜성, 병선, 그리고 김진경과 박진경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통해 우리의 옛상처를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들은 우리를 회복의 자리로 인도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