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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신간 도서 소개(종합) - 매주 업데이트 됩니다.
등록일
2024-12-04
조회수
92
 
창비어린이(2024년 겨울호 제87호)


창작과비평사 편집부 저 / 13,800원 / 창작과비평사


겨울호 특집 “평론가가 읽은 ‘그 책’”은 지금의 어린이·청소년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작가 이현·김리리·보린·이희영·이꽃님의 작품을 꼼꼼하게 살핀다. 날카로운 작품론을 통해 최근 아동청소년문학 비평의 경향과 논점을 두루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경북 구미의 어린이 북클럽 ‘우주인과 그림책 여행’ 운영기, 교사와 학생이 함께 책을 읽고 열띤 토론을 나누며 그들 나름의 ‘청소년문학상’을 선정하는 과정을 담은 ‘교실 속 책 이야기’는 다양한 형태로 문학과 만나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모습을 생생하게 비춘다. 환상성이 두드러지는 동시를 분석한 우경숙의 평론, 기획 동시의 성과와 한계, 가능성을 짚는 이안의 평론도 일독을 권한다. 이 밖에도 제16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과 제18회 창비청소년문학상 발표, 어린이의 일상을 섬세하게 담아낸 창작란, 올겨울 꼭 주목해야 할 책을 살핀 서평란 등 풍부한 읽을거리가 담겼다.


[특집] 평론가가 읽은 ‘그 책’
좋은 문학 작품은 무엇인가? 이번 『창비어린이』 2024년 겨울호 특집 “평론가가 읽은 ‘그 책’”은 서점과 평단이 뽑은 베스트 도서 목록이 엇갈리는 현상에 주목하고, 아동청소년문학의 흥행을 이끈 주요 작가들의 베스트셀러를 심도 깊게 살피며 ‘좋은 책’의 기준을 바로 세우는 한편 어린이에게 건강한 독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비평이 해야 할 일을 모색한다. 김지은은 좋은 아동문학 작품이란 어린이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공동체적 고민을 담아야 하며, 비평가는 작품 속 어린이의 권리와 자유, 해방을 발견해 내고 이를 비평의 언어로 전달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종찬은 작가 이현이 남긴 굵직한 문학 작품들을 일별하며 그의 대표작 ‘푸른 사자 와니니’ 시리즈가 어린이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찾는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어린이들에게 야생의 삶을 엿보게 해 주는 미덕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사자의 삶을 ‘인간화’하지 않고 어린이가 다른 세계를 존중할 수 있도록 돕는 이야기를 이어 가 달라는 제언을 담았다. 조은숙은 『만복이네 떡집』 이후 이어지는 김리리의 ‘떡집’ 시리즈를 통해 어린이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만들어진 맞춤 떡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 떡을 선택할 기회라는 점을 강조하며 저학년 시리즈 동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논한다. 유영진은 보린의 ‘안개초등학교’ 시리즈를 매개로 한국 호러·판타지 장르의 의미를 탐색한다.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를 새롭게 해석해 어린이들에게 전하는 이 시리즈에 애정을 내비치며, 옛이야기에서 발견한 독특한 캐릭터를 독자가 마음껏 상상하며 즐길 수 있도록 작가가 더욱 섬세하게 구성해야 한다고 전한다. 오세란은 이희영의 청소년소설을 읽는 독자와 문학의 관계를 분석하며 작품에 선명한 메시지를 담기보다 독자가 스스로 문학 안에서 삶의 해답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상상의 영역을 남겨 주기를 요청한다. 강수환은 이꽃님의 『죽이고 싶은 아이』에서 드러난 장르적 기법과 문학적 형상화 방식을 짚는다. 자극적인 설정을 넘어 문학적 충격을 선사하는 작품이 결국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아 삶에 닿는다는 것을 명확히 하며 현재 청소년문학 시장의 문제점을 가리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더 나은 아동청소년문학을 위해 마련한 애정 어린 비평의 장으로서 이번 특집에 주목해 주기를 바란다.

[어린이와 세상] 어린이와 북클럽 4: 우주인과 그림책 여행
[어린이와 세상] 교실 속 책 이야기 4: 우리 학교 청소년문학상을 소개합니다
[평론] 스위치를 켜시오 / 스타일 더하기 기획

‘어린이와 북클럽 4’는 경북 구미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우주인과 그림책 여행’ 이야기다. 유치원 원장으로 오래 일한 이숙현은 아이의 성장 과정에 필요한 제철 그림책을 직접 골라 읽어 준 경험을 비롯해 책을 기반으로 펼친 다양한 활동을 소개한다. 특히 지역 서점, 도서관, 작가 들과 함께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들이 함께하는 ‘구미 그림책 잔치’, 팟캐스트 ‘행복한 그림책 놀이터’를 기획해 북클럽의 영역을 확장한 사례가 흥미롭다. ‘교실 속 책 이야기 4’는 학생들이 직접 수상작을 선정하는 ‘우리 학교 청소년문학상’ 프로젝트를 10년 넘게 이끌어 온 중등 교사의 섬세한 현장 기록을 담았다. 작품 속 주인공의 윤리적 문제를 지적하고, 청소년에게 적합한 책인지 아닌지를 격론하며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 열띠게 논하는 청소년의 목소리는 이들이 얼마나 깊이 그리고 열심히 책을 읽고 마음에 담는지를 생생하게 전한다. 이번 호에 실린 평론 두 편은 동시를 더 깊고 넓게 만나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경숙은 송찬호·강기원·임수현의 동시집에서 각 시인의 ‘환상성’이 인물·이미지·이야기로 어떻게 발현되는지 살핀다. 독자 내면의 상상력을 일깨우며 경험의 울타리를 확장하게끔 돕는 ‘환상성’의 기능을 폭넓게 점검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와 어린이가 만나는 방법을 다채롭게 모색해 온 이안은 지금 우리 동시단에 더 많은 ‘기획’이 필요한 이유를 전하며 작가가 자기만의 스타일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재미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제안한다.

[발표] 제16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제18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제16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양슬기(동시), 박청림(동화), 이새벽(청소년소설), 심지섭(평론), 제18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최현진의 수상작과 수상 소감, 심사평을 싣는다. 어린이·청소년의 외로움을 끌어안는 섬세한 시선과 ‘함께’의 아름다움을 유쾌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신인들의 작품, 그리고 오늘날 아동청소년문학의 현황을 검토한 각 분야 심사평이 지면을 더욱 풍성하게 채운다.













타운하우스



전지영 저 / 17,000원 / 창비



신춘문예 동시 석권, 젊은작가상 수상작가 전지영 첫 소설집
현대사회에 정면으로 맞서는 담대함, 일상의 균열을 파헤치는 능란한 필치

2023년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신춘문예 2관왕’으로 화제를 모은 소설가 전지영이 불과 등단 1년여 만에 첫번째 소설집 『타운하우스』를 출간했다. 신중하고도 성숙한 시선이 돋보이며 마지막까지 긴장을 끌고 가는 필력이 남다르다는 평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신인이라고 믿기 어려운 정연하고도 능란한 필치로 현대사회의 일면을 묘파해나간다. 이번 책에는 신춘문예 당선작 「쥐」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과 젊은작가상 수상작 「언캐니 밸리」를 비롯한 총 여덟편의 작품을 묶었다.
‘타운하우스’는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나 작은 틈에서 시작된 붕괴의 조짐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무언가 깨지고 있음에도 그 파열을 드러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거나 일상의 균열을 예감하며 불안해하는 인물의 목소리를 전지영은 차분하고도 태연하게 서술하는 특장점을 발휘한다. 학교폭력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된 아이의 부모, 부대 내 사건 은폐에 가담한 남편을 둔 아내 등 섣부르게 선악을 가를 수 없는 미묘하고도 복잡한 사안을 정면으로 파고드는 작가의 뚝심이 미덥다.


“여기서는 말이야. 눈에 보이는 건 답이 아니야.”
내면에서 고요하게 폭발하는 긴장과 불안의 하모니


작가는 선득한 긴장감이 흐르는 일상과 인식의 사각지대에 놓인 낱낱의 감정들을 세밀한 묘사로 그려내고 단숨에 상황을 뒤흔드는 극적인 전개로 깊은 몰입감을 자아낸다.
책의 맨 앞에 배치한 「말의 눈」은 학교폭력 피해자인 딸 서아의 회복을 위해 낯선 섬의 타운하우스로 이사한 수연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섬에서의 생활 속에서 모녀는 조금씩 회복해가지만 수연이 섬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도와준 학부모 지희의 딸이 학교폭력 사건에 연루되고 해당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로 서아가 지목되면서 불안이 싹튼다. 태풍 북상이 예고된 어느 날, 수연의 집 지붕에서 물이 새기 시작하고 천둥과 번개, 그리고 비바람까지 내리치면서 상황은 악화되어만 간다. 지붕을 수리하러 온 수리공은 “타운하우스가 다 이 모양이지. 우리들은요, 절대 이런 집 안 살아요. 멍청이들만 산단 말입니다”(29면)라는 말로 뭍에서 이주해 온 이들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고, 수연은 비가 새는 지붕, 그리고 서아가 학교폭력위원회에서 증언자로 나서주기를 요구하는 지희가 촉발한 불안을 위태롭게 감당한다.
가해자가 된 아이의 학교폭력 사건으로 일상이 무너진 엄마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남은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에 따라 위치가 달라지는 부모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말의 눈」과 겹쳐 읽어볼 수 있을 듯하다. 「말의 눈」의 화자가 이제 막 회복되려는 일상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면, 「남은 아이」의 화자는 자신이 모르는 진실을 알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남들은 실체가 없다는 진실이 존재한다고 지겹도록 믿는 중이었고 그런 나 자신에게 환멸이 났다”(276면)라고 고백하면서도 그 감춰진 진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는다.
일상의 붕괴를 예감하는 불안의 극단을 보여주는 「쥐」는 해군을 남편으로 둔 아내 윤진의 이야기다. 남편들의 위계가 아내들 사이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해군 관사 단지에서 윤진은 홀로 두 아이를 양육하며 힘겹게 생활해나간다. 어느 날 남편이 예정보다 이른 복귀를 했음에도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던 와중 윤진은 대령의 아내에게서 아파트에 쥐가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부대에서 발생하는 사고가 어떻게 은폐되는지, 그리고 그 은폐에 가담하지 않는 이들이 어떤 식으로 사라져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소설에서는 마지막까지 쥐가 등장하지 않는다. 쥐는 단지 소리나 기척으로만 그 존재를 드러낼 뿐이다. 기실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불안과 위협은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언캐니 밸리」와 「소리 소문 없이」는 ‘청한동’이라는 가상의 부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저택’으로 상징되는 이 비밀스러운 공간에는 매일 그곳을 오가며 노동하는 사람들과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이 공존한다. 먼저 「언캐니 밸리」의 ‘나’는 택시 운전으로 밥벌이를 하는 크로키 화가다. 자신이 흠모해온 한 여성 승객이 염산 테러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경찰에게 전해 듣고 ‘나’는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저택의 노부인을 범인으로 의심한다. 소설의 말미에서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느껴지는 저택의 담벼락을 기어오르며 ‘나’는 진실의 실체에 다가서려 한다. 「소리 소문 없이」는 예술고등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나’가 청한동 저택에서 하숙을 하며 벌어지는 일을 보여준다. ‘나’는 그곳에서 상주하며 가사일을 하는 아주머니와 자신을 구별하고 싶어하지만 저택에서 홈파티가 열리던 날 없는 사람처럼 있어달라는 집주인 교수의 부탁을 듣고 자신의 위치를 서늘하게 자각한다. 이렇듯 사회적 불평등이 야기하는 은밀하고도 태연한 차별은 ‘타운하우스’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을 경계 밖으로 슬쩍 밀어내며 두려움과 수치심을 야기한다.
한편 갑작스러운 폭우로 아들을 잃은 부부가 서로에게 남은 앙금을 지우지 못한 채 살아가다가 마침내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기미를 엿보게 하는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 법망의 맹점을 이용하여 돈을 벌어온 안과의가 자신의 삶 속에 드리워진 맹점을 직시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맹점」, 후배가 가진 재능을 질투하여 한때 그를 모함했음에도 후배를 곁에 두며 결국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예술가의 이야기 「뼈와 살」은 삶에 대한 탁월한 균형감각과 인간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전지영만의 탄탄한 문장으로 보여주는 수작들이다.
이처럼 전지영은 좌고우면의 상황 속에서 인물이 겪는 갈등과 상처를 봉합해주기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왜곡된 인식과 편견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깊이 묻어둔 묵은 감정의 단면이 드러나고, 의심과 불안으로 점철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달픔이 씁쓸하게 배어나기도 한다. 또한 매끈한 플롯이 돋보이는 사실적인 세계에 개성 넘치는 독특한 요소를 적재적소에 끼워넣는 작가의 솜씨는 작품에 긴장감과 흡인력을 더하며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낸다.

진실을 집요하게 추적하던 「남은 아이」의 화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보이는 바를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것만이 내게 부여된 단 하나의 진실임을”(278면) 끝내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면 이 깨달음은 삶을 받아들이는 작가의 태도인 동시에 그 범속한 일상의 장면과 이야기를 써내는 작가의 소설적 태도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숨겨진 일면을 보고자 저택의 담벼락을 힘겹게 오르는 인물의 미약한 몸짓은 이제 우리의 눈앞에 무엇을 펼쳐놓을 것인가. 탄탄한 문장력과 완성도 있는 서사 구조, 그리고 날카로운 지성과 사려 깊은 눈을 동시에 겸비한 전지영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주목할 시간이다.















갈라떼아


미겔 데 세르반떼스 저 / 최낙원 역 / 21,000원 / 창비



『돈 끼호떼』 이전에 『갈라떼아』가 있었다
유럽 전통의 목가시를 넘어 진짜 ‘이야기’의 시초를 보여주는
세르반떼스의 첫 소설 국내 초역!

상상으로 만들어낸 꿈 같은 세계를 넘어
살과 뼈를 지닌 구체적 인간들이 탐구하는
다채로운 사랑의 의미

불멸의 고전 『돈 끼호떼』의 작가 세르반떼스가 쓴 최초의 소설 『갈라떼아』가 창비세계문학 101번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이 국내에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스페인 16세기 시를 전공한 역자 최낙원의 섬세하고 적확한 번역을 통해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서양 근대소설의 원형’이라 평가받으며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회자되는 『돈 끼호떼』보다 약 20년 앞서 출간된 『갈라떼아』는 작가 세르반떼스의 일생과도 연관이 깊은 작품이다. 세르반떼스는 1571년 벌어진 레빤또 해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으로 왼팔을 잃고 귀국하던 길, 튀르키예 해적에게 납치되어 5년간의 포로 생활을 했다. 한 종교단체의 지원을 받아 가까스로 풀려난 그는 그 빚을 갚기 위해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갈라떼아』의 시작이었다. 문학적 야심이 충만했던 세르반떼스는 당대에 크게 유행했던 목가시 형식에 자신만의 천부적인 소설적 재능을 더해 시와 노래에 산문을 종합한 형식의 목가소설을 구상해냈고, 1585년 마침내 『갈라떼아』를 완성했다.
유럽의 전통적인 목가시에서 모든 여성 인물은 아름답고 덕성 높은 모습으로, 남성 인물은 사려 깊고 늠름한 지식인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대부분의 작품은 이들이 사랑을 나누며 노래하는 형식을 따랐다. 그러나 세르반떼스는 이와 같이 이상적인 면모를 갖춘 인물들을 답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들을 사랑에 끝없이 고뇌하며 몸부림치게끔 만들었다. 이러한 『갈라떼아』만의 특징은 꿈 같은 세계를 넘어 구체적인 세계를 담아내는 현대적인 이야기의 시초를 보여주는 동시에 오늘의 독자로 하여금 시대를 초월한 사랑의 본질을 생각해보게 한다.

이상에서 현실로, 『갈라떼아』의 ‘이야기’

『갈라떼아』는 ‘소설’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구체적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가 되기 전, 이상과 현실의 중간 어디쯤에 자리하던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데다 덕성까지 갖춘 ‘갈라떼아’를 향한 절절한 사랑에 허덕이는 두 주인공 ‘엘리시오’와 ‘에라스뜨로’는 예의 바르고 사려 깊으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닌 양치기 청년들이다. 그들의 풍부한 지식과 재능은 궁중의 기사들도 감탄할 만한 수준인데, 이러한 모습은 이들 양치기가 소설 속 사랑에 대한 관념을 주장할 도구로서 “단지 옷만 그렇게 입은 변장한 존재들”(17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들의 사랑은 당시 유행하던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관념적이고 이성애적인 것인데, 이는 제4권의 ‘사랑에 대한 논쟁’ 대목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해당 대목에서 사랑에 냉담한 양치기 ‘레니오’와 사랑을 옹호하는 기사 ‘띠르시’는 “눈멀고 발가벗은, 활과 화살을 가진 어린 남자아이”(365면)로 그려지는 사랑의 신 에로스(큐피드)를 두고 상반된 해석을 하며 사랑의 가치와 폐해에 대해 논쟁한다. 이처럼 『갈라떼아』 속 인물들은 사랑이라는 관념을 사랑한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사랑을 가치관 삼아 세상을 바라보고 인생을 논한다. 이들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 절절한 노래를 바치고, 상대의 흘기는 눈길 한번에 고뇌에 빠지는가 하면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목숨까지 걸기도 한다. 이는 분명 신화적이고 이상적인 세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에 인간의 현실과 경험을 결합시킨다. 아무리 순수한 열정으로 사랑을 바친다 해도 인간의 사랑은 질투와 배신, 복수심, 싸움과 분란을 피할 수 없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연인의 죽음에 분노한 청년은 자신을 기만한 친구를 죽이고(66면), 연인의 배신을 참지 못한 남자는 연인을 납치하며(452면), 아름다운 갈라떼아는 재산을 위해 자신을 억지로 결혼시키려는 아버지 때문에 절망의 노래를 부른다(445면). 이렇게 현실 세계의 요소들이 이상적인 세계 위에 겹쳐지며 비로소 『갈라떼아』만의 다채롭고 풍성한 ‘이야기’가 완성된다.

신화 속 완벽한 여성, 인간으로 거듭나다

표제이자 주인공인 갈라떼아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 속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빚어낸 조각상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들어낸 조각상을 사랑해 마지않았고, 이 사랑에 감복한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받아 조각상은 마침내 살아 있는 인간으로 탄생했다. 『갈라떼아』의 배경이 되는 따호 강변에서 풍요로운 자연의 축복을 받고 자란 아름다운 갈라떼아는 이 완벽한 여성상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갈라떼아뿐 아니라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른 모든 여성 인물 역시 우아한 태도와 아름다움을 지닌, 고전문학 속 이상화된 여성상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나 소설이 전개됨에 따라 이들은 점차 사랑하고 질투하며 반항하는, 살과 뼈를 지닌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고향의 자연 속에서 자유로운 삶을 꿈꾸던 ‘떼올린다’는 연인을 찾아 고향을 떠나 타지를 헤매고, 원수 같은 집안의 아들을 사랑하게 된 ‘레오니다’는 자신의 명예 따위 개의치 않고 야반도주를 감행한다. ‘니시다’는 연인을 찾아 헤매다 해적에게 붙잡히는 수모까지 겪지만 끝내 사랑을 이루어낸다. 주인공 갈라떼아 역시 자신을 강제로 결혼시키려는 아버지의 뜻에 반해 엘리시오와 에라스뜨로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간다. 연모의 대상에 불과했던 아름다운 여성이 마침내 자신의 인생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살아 있는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처럼 수백년 전에 쓰인 작품임을 믿기 어려울 만큼 주체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좇아가는 『갈라떼아』의 여성 인물들은 이 작품을 읽어나가는 독자들의 선입견을 깨뜨리며 놀라움과 더불어 즐거움을 선사한다.

지금의 『갈라떼아』는 전6권으로 이루어진 1부에 해당한다. 서문 「호기심 많은 독자에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세르반떼스는 당초 『갈라떼아』를 2부작으로 구상하고 집필했다. 그는 1부가 독자를 즐겁게 하려는 의도를 이루지 못하면 2부에서 “더 놀라운 기법으로” 반드시 이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2부는 쓰이지 못했다. 그러나 미완성작으로 남겨진 『갈라떼아』는 시대를 초월하여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의를 지닌 작품이 되었다. 세르반떼스가 제6권 「칼리오페의 노래」를 통해 스페인의 르네상스기를 빛냈던 수많은 시인들을 톺아보고 찬미했듯, 이제 우리는 『갈라떼아』를 통해 세르반떼스의 작품세계와 더불어 스페인 고전문학의 진수를 누리고 또한 기릴 수 있을 것이다.











그대, 우주의 마지막 퍼즐



소창길 저 / 16,800원 / 숨맘



“당신은 지금 어떤 퍼즐들을 맞춰가고 있나요?”
“여기 모든 글은 후회의 기저를 쓸다
날리는 것들을 모은 것이다.”
노력했으나,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한 무질서했던 인생도
결국 걷게 해준 다섯 단계의 길, 작가는 그 길을 발견한다.

10년간의 단상들을 모아 에세이로 엮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상의 박력에서 포기하기 어려워 건져낸 순간의 생각들을 다시 경험과 조합한 일종의 퍼즐 맞춤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자기만의 일상을 살지만 지금이 추억이 된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나 역시 뒤돌아보면 너무나 빈약한 일상에서 깨닫는 것만이 현재의 자원이 된다는 걸 새삼 알게 된다. 그래서 지금 가장 시급하게 갈망해야 하는 건 어쩌면 깨달음일지 모른다. 책은 축적된 일상의 가려진 면을 살펴 갈무리됐던 이면을 찾아 드러낸다. 오래된 추억마저 자기 들여다보기를 통해 지금에 가려진 의미를 찾아 담는다. 결국 자신의 지금이 우주의 마지막 퍼즐임을 자인할 때, 우주는 아름다운 추억의 대상이 된다. [그대, 우주의 마지막 퍼즐]은 5부로 편성한 글이다. 유년 시절부터 이십 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추억에서 또는, 일상에 감춰져 있던 의미를 발견한 이야기들로 구성됐다. 1부, 보이지 않게 일어나는 일들, 5부, 자신이 이 세계에 어떤 존재인가 자각하기까지 어린 시절에서 최근까지 일상의 에피소드에 담았다. 우리는 어떻게 보이지 않는 삶의 궤적을 따라갈까? 지금이라는 퍼즐은 아직도 맞춰지지 않은 채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오래전, 머무름 없는 아이는 보이는 모습과 보이지 않는 모습 사이를 숨 가쁘게 달려 나갔다. 어느 순간 우리는 혼자만 아는 수많은 지금의 시간을 통과해 퍼즐을 만들어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신비로운 가치는 지금의 시간에도 켜켜이 스며있다. 그리고 미래의 자아는 내게 “보고 있는 지금만이라도 행복해지길 바라게 돼!”라고 전언한다. 모든 구간을 달려왔음에도 문득, 지금 다시 새로운 출발을 꿈꿔야 한다는 익숙한 얼굴과 대면한다. 그 의미는 그동안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오지 못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여전히 자유의 방식이 아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왔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아직도 매몰되는 삶이라면 다시금 재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을 보는 순간 우리가 품었던 희망은 실현 가능하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 가득 채워진 우주는 그대만이 채워가야 할 마지막 퍼즐이라 말해주고 있기에.

“우주도 지금 새로운 시작이야. 지금은 결국 똑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거니까!. 그러니 내가 이 우주의 마지막 퍼즐임을 발견한다면, 우주도 나를 환대할 거야!”











놀라운 환대


윌 구이다라 저 / 우혜림 역 / 19,500원 / 더토브



★ 캐비어보다 더 큰 값어치를 한 2달러짜리 핫도그의 비밀
☆ 한 끗의 사소한 차이가 불러오는 거대한 힘
★ ‘환대’를 주제로 경영과 처세를 이야기하는 유일한 책

최근 이슈가 된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는 100명의 요리사가 등장한다. 이미 요리계에서 명성이 높은 유명 셰프부터 그들만큼 명성은 없지만, 나름 지역에서 인정받는 맛집을 운영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본인의 실력을 입증한 실력자들이 요리 최강자가 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에 대중은 감동하고 열광했다.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재료, 조리법, 맛, 색감, 플레이팅 등 아주 세심한 부분부터 전체적인 조화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으로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에서는 마치 하나의 작품을 보는 듯했다. 치열한 경쟁이 이어졌고, 승부는 한 끗 차이로 결정되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요식업계에서 자신만의 실력으로 일인자가 되고 그 명성을 이어나가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윌 구이다라는 26세 때, 성장에 어려움을 겪던 뉴욕의 한 평범한 레스토랑의 경영을 맡았다. 11년 후, 그는 그곳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을 만들어냈을까? 바로 2달러짜리 핫도그 덕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핫도그에서 비롯된 성공 전략 덕에 세계 1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기대 이상의 배려를 통해 만들어낸 ‘파격적인 환대’ 때문에 가능했다. 이 원칙을 통해 그곳을 찾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까지 변화시켰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책은 어느 기업가의 성공담처럼 보일지 모르나, 사실 이 책에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바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호기심을 갖고, 진심으로 대하고, 그 일을 통해 기쁨을 얻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은 호스피탈리티 업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이든, 개인이든 상관없이 일과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독창적인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다. 변하지 않을 사람의 욕망을 파악하여 적용하는 것이기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대의 니즈나 트렌드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실천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환대’라는 낯설지만 중요한 주제를 가지고 경영, 처세의 측면에서 제대로 분석한 유일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손해보는 것은 그 어떤 작은 것이라도 용납지 않으며 효율과 합리성만을 중시하는 시대에, 큰 비용 없이 아주 사소한 변화만으로도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미래 지향적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AI 시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영역
사람과 비즈니스의 관계를 혁신하는 차별화된 전략


AI의 발전은 많은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서비스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 AI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며, 서비스의 질과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AI의 확산이 모든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인간의 고유한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서비스 산업이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AI가 잘하지 못하는 영역, 즉 복잡한 문제 해결, 창의적 사고, 윤리적 판단, 그리고 인간적인 감정 교류와 같은 영역에서 인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특히 고급 고객 서비스에서는 AI가 제공할 수 없는 인간적인 터치와 공감이 더욱 중요한 차별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즉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 산업에서 인간이 제공하는 따뜻함과 진정성 있는 서비스는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주목할 만한 책이 출간되었다. 바로 기대 이상의 파격적인 환대를 통해 놀라운 성공을 일구어낸 저자의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쓰인『놀라운 환대(Unreasonable Hospitality)』다. 이 책에서는 ‘환대’란 무엇인지, 환대가 비즈니스와 개인의 성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환대를 우리의 일과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윌 구이다라(Will Guidara)는 26세에 뉴욕의 평범한 레스토랑이었던 ‘Eleven Madison Park’의 경영을 맡았고, 11년 만에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그는 레스토랑의 고객 경험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으며, 그의 비전과 리더십 아래 ‘Eleven Madison Park’는 여러 차례 ‘미슐랭 3스타’를 획득하고, 세계적인 레스토랑 랭킹에서도 상위에 오르는 놀라운 기록을 거두었다. 이러한 그의 성공 중심에는 ‘놀라운 환대(Unreasonable Hospitality)’라는 개념이 존재했다.
모든 서비스 직종의 목표는 고객과의 관계 형성이다. 책에서는 고객과 진정한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체계적이고 의도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저자는 ‘진정성 있는 환대’, 또는 ‘파격적인 수준의 환대’야말로 비즈니스와 인간관계에서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놀라운 환대』는 단순한 리더십 가이드가 아니다. 이 책은 ‘환대’라는 주제를 통해 단순한 고객 서비스의 개념을 넘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혁신함으로써 진정한 관계를 구축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조직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도 강력하고 의미 있는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차별화된 접근법을 경험할 수 있다.
『놀라운 환대』는 단순히 성공한 한 사업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윌 구이다라의 경영 여정은 끊임없는 성공과 실패, 도전과 혁신을 통해 어떻게 평범함을 뛰어넘어 비범한 성공을 이루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새롭게 목표를 설정하고, 단순한 정보 이상의 영감과 꿈을 이루기 위한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다.
『놀라운 환대』는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다. 윌 구이다라는 ‘Eleven Madison Park’를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이끈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실제 현장에서 검증된 그의 경영 철학과 서비스 전략은 각종 비즈니스와 개인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독창적인 조언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일상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사람들은 당신의 말과 행동을 잊을 수 있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는지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뉴욕에서의 여행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 위해 식당을 찾은 스페인 가족이 눈이 내리는 광경을 보고 신기해하자, 그들을 센트럴 파크로 안내해 눈썰매를 즐길 수 있도록 한 일. 뉴욕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러 찾아온 방문객이 뉴욕의 길거리 핫도그를 먹어보지 못했다며 아쉬워하자, 식당 근처 카트에서 직접 사온 핫도그를 예술적으로 세팅해 서비스한 일. 휴가 비행기 표가 취소되어 비싼 저녁 식사로 위안을 받으러 온 커플을 위해 별도의 식사 공간을 마련하여 해변 의자, 모래, 유아용 풀장, 상큼한 칵테일 등으로 꾸며 실제 해변에 온 듯 즐길 수 있도록 해준 일. 결혼기념일을 맞이한 커플이 근처 호텔에 묵고 있다고 하자, 호텔 방 안에 샴페인과 감사 손 편지를 준비해 놓은 일.
이처럼 환대는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마법 같은 기적을 선사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진정한 환대는 작은 행동에서 시작되지만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저자가 강조한 이 같은 ‘놀라운 환대’는 고객 경험을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객이 특별한 존재로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의 이런 접근법은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서비스와 경험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다.

“행동과학 전문가 로리 서덜랜드는 좋은 아이디어의 반대도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놀라운 환대’가 매력적인 이유다. ‘놀라운 환대’의 반대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합리적인 환대’라 할 수 있다. 이는 사업을 하는 데 있어 괜찮은 방법이긴 하지만, 평범하고 합리적인 방법만으로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다. … 우리를 뛰어나게 만들어준 세부 사항들, 즉 세련미, 우수한 기술, 완성도는 너무나 중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환대를 정의하는 세부 사항들이 ‘평범한 수준을 뛰어넘는, 합리적이지 않을 만큼 높은 수준’이 되길 바랐다.
_본문 255~256쪽”

세부적인 사항에 주의를 기울이며 완벽을 추구하면 훌륭한 수준에 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이제 ‘완벽’만으로는 독보적인 위치에 오를 수 없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하고 독창적인, 기대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만드는 것이 환대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다양한 방법과 고객 경험을 최우선시하는 차별화된 전략을 제시한다.
환대의 원칙은 리더십과 팀워크에 큰 영향을 미친다. 환대를 개선하려면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며,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일관된 환대를 실천해야 한다. 독자들은 저자의 경험을 통해 팀원들 간에 서로 협력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문화를 조성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를 통해 직장이나 조직 내에서 더 높은 성과를 이끌어내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강력한 팀을 구축할 수 있는 비법을 찾을 수 있다.


“호사는 더 많이 주는 걸 의미하지만,
환대는 더 사려 깊은 것을 뜻한다.”


저자는 레스토랑 경영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환대가 사람과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며 이를 통해 긍정적인 사회적 변화를 이루고자 했다. 그의 이런 독창적인 접근법과 리더십은 서비스 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아이디어는 장르를 초월하여 다양한 분야와 조직에 적용될 수 있는 가치 있는 메시지를 제공한다.
『놀라운 환대』는 결국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제시한다. 단순한 서비스 제공을 넘어, 타인에게 진정성 있고 따뜻한 환대를 베푸는 법을 배우게 되며, 이를 통해 가족, 친구, 동료 등과의 관계가 깊고 의미 있게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폭넓게는 현대 사회에서 점차 약해져 가는 신뢰와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책에서 제시하는 ‘환대의 힘’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강화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독자들은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일의 작은 행동에서도 의미를 찾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이는 일상에서의 만족감과 성취감을 높이고, 더 나아가 삶의 전반적인 행복도를 증진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환대를 통해 사람과의 관계를 혁신하고, 비즈니스와 개인의 성공을 이끌어내는 리더십 전략을 제시하는 이 책은, 레스토랑이나 호텔 업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 리더, 서비스 업계 종사자, 그리고 일상에서 더 나은 인간관계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독서가 될 것이다.












소설 보다: 겨울 2024



성혜령, 이주혜, 이희주 저 / 5,500원 / 문학과지성사



새로운 세대가 그려내는 겨울의 소설적 풍경

독자에게 늘 기대 이상의 가치를 전하는 특별 기획, 『소설 보다: 겨울 2024』가 출간되었다. <소설 보다>는 문학과지성사가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 홈페이지에 그 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계절마다 엮어 출간하는 단행본 프로젝트로 2018년에 시작되었다. 선정된 작품은 문지문학상 후보로 삼는다.
<소설 보다> 시리즈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은 물론 선정위원이 직접 참여한 작가와의 인터뷰를 수록하여 7년째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앞으로도 계절마다 간행되는 ‘소설 보다’는 주목받는 젊은 작가와 독자를 가장 신속하고 긴밀하게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다.
『소설 보다: 겨울 2024』에는 2024년 겨울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인 성혜령의 「운석」, 이주혜의 「여름 손님입니까」, 이희주의 「최애의 아이」 총 세 편과 작가 인터뷰가 실렸다. 해당 작품은 제14회 문지문학상 후보에 포함되었다. 선정위원(강동호, 소유정, 이소, 이희우, 조연정, 홍성희)의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선정한 작품들의 심사평은 문학과지성사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겨울, 이 계절의 소설
치열했던 계절들이 지나고 몸을 움츠리게 되는 겨울. 한 해가 저무는 시점에서 지나간 것을 돌이켜보며 새롭게 시작되는 마음들을 다룬 세 편의 작품들과 함께 『소설 보다: 겨울 2024』가 찾아왔다. 이별, 그리움, 갈망이 낳은 오해, 갈등, 환상이 현실의 균열을 불러오고 돌이킬 수 없는 세계의 문턱으로 이끄는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성혜령, 「운석」
“ 어느 순간 감정이 아예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마음이란 게 통째로 사라진 것 같다고”

2021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2023년 젊은작가상, 올해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거머쥔 성혜령은 2022년 겨울에 이어 두번째로 ‘이 계절의 소설’에 선정되었다. 전작 「버섯 농장」에서 선의와 악의가 주는 분열과 고립, 공모와 책임을 긴장감 있게 그려냈던 작가는 이번 선정작 「운석」에서도 미스터리한 상상력에서 출발해 극적인 감정의 파고 속 고요한 서스펜스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백주’는 남편 ‘인한’이 세상을 떠난 후 거처를 옮기고 무기력한 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이자 남편의 동생인 ‘설경’이 쇼핑백에 담긴 돌을 들고 그녀를 찾아온다. 시어머니 집안의 가보와 같은 희귀한 운석인데, 설경은 인한이 죽은 후부터 그 돌에서 인한의 음성이 “꺼내줘”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전한다. 믿지 않던 백주 역시 똑같은 음성을 들은 후, 비석 판매점에 찾아가 돌을 깨고 인한을 꺼내주리라 결심한다. 자신과 결혼한 뒤로 시들어가다 세상을 떠나버린 인한, 이 모든 걸 지켜본 백주의 복잡한 감정과 얽힌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우리의 것이 되는 동안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휘발되거나 유폐되는 장면들에서 공유되는 마음의 방법을 생각하게”(홍성희 문학평론가) 한다.

외계에서 떨어진 돌 안에 수천 년이 아닌 수억 년 동안 어떤 물질 혹은 생명이 돌 안에 남아 있었고, 아주 오랫동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꿔왔다면…… 그것이 램프에 갇힌 지니 혹은 판도라 상자에 갇힌 불행일 수도 있지만, 꺼내지고 싶은 욕망은 똑같이 크고 강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연히 떠올린 이 “꺼내줘”란 단말마의 명령, 부탁 혹은 주술에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아 소설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 성혜령×소유정」에서

이주혜, 「여름 손님입니까」
“확실한 것은 종소리가 들려오는 한
이곳에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로서 활동해온 이주혜를 2022년 봄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2023년 가을 「이소 중입니다」에 이어 세번째로 <소설 보다>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간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빚어지는 문제들을 섬세하게 포착해 빈틈없는 구성 안에 녹여온 작가는 「여름 손님입니까」에서 “기억에 관해 기억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소설”을 선보인다. 그 기억은 ‘손님’이라는 상징이 되어 낯설고도 익숙한 감각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나’는 ‘영란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라는 엄마의 부탁으로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 손님”이 되어 일본의 어느 한적한 호텔에 도착한다. 유년 시절에 ‘나’는 아빠의 성씨를, 언니는 엄마의 성씨를 따르며 한집에서 지냈는데 “언니가 스무 살이 되자마자 일본으로 가겠다고 선언했”고, 그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지금 “자신의 딸 결혼식에 엄마를 초대”한 것이다. 호텔 안과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벌어진 일들은 실재와 허구,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기억들과 겹치며, 그곳에서 자신을 “손님입니다”라고 소개하는 ‘노부인’과 ‘여학생’을 만난다. 이제 누가 손님이고 주인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 이 여정은 절정으로 향하면서 “기억에 대한 정확하고 아름다운 은유를 완성한다”(이소 문학평론가).

‘아포리아’라는 개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타자를 환대하는 행위에는 정해진 길이 없고, 길이 없다는 것은 길을 잃고 헤맬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요. 손님은 환대의 대상이지만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 손님”으로 대변되는 궁극의 타자를 환대하는 일에는 ‘길 없음’ 혹은 ‘길 잃음’의 각오가 단단히 필요하겠지요.
「인터뷰 이주혜×조연정」에서

이희주, 「최애의 아이」
“우미는 어떤 충동 없이, 삼십대 여자의 냉정한 판단력으로
유리의 아이를 가지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이희주는 연작소설 『사랑의 세계』, 장편소설『환상통』 『성소년』 『나의 천사』 등을 출간하며 꾸밈없는 사랑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독자적인 작품 세계로 구현해왔다. 이번 수록작 「최애의 아이」에서도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혹은 집념이 다른 모든 관심사를 압도해버”리는 화자 ‘우미’가 등장한다. 이 작품은 아이돌 가수 ‘유리’에게 반한 뒤 사회적 시스템이 낳은 욕망의 메커니즘 속에서 맹목적 사랑을 실천하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환상 요소가 가미된 소재나 설정,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상상력, 가벼운 듯 예리한 문장들이 “요즘 소설”(이희우 문학평론가)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고무지우개 위에 유리의 이니셜을 새기고, 회사 회의 시간에 유리의 이름을 반복해서 적고, 유리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우미는 유리에게 빠져 있다. 결국 우미는 유리의 정자를 공여받아 인공수정 시술에 성공한다. 하지만 아이돌 산업처럼 임신과 출산도 상품화되어 있는 세계에서조차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은 “소름이 끼”치는 “인간들”로 치부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 장학금을 받고 대기업에 입사하는 등 “겉으론 진짜 멀쩡한”, 친구 ‘은정’을 제외한 모두에게 이런 사실을 완벽하게 숨기며 원하는 미래를 얻을 것 같은 우미이지만, 출산과 동시에 이야기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으며 “논쟁적이면서도 파괴적인 사랑의 테러 행위”(강동호 문학평론가)의 근원을 생각하게 한다.

우미는 젊은 여성들이 동경할 만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런 여성도 부딪힐 때가 옵니다. 유리 천장뿐만 아닌 유리 벽, 유리 바닥이 우미라는 인물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선 처절하게 부딪혀야 합니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욕망이든 아니든, 여자가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싸우듯 대립해야 합니다.
「인터뷰 이희주×이희우」에서












밑바닥에서 전합니다!


브래디 미카코 저 / 김영현 역 / 18,000원 / 다다서재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아이들의 계급투쟁』
인간과 체제를 동시에 저격하는 브래디 미카코 시사 칼럼의 시작
정치의 우경화, 빈부 고착, 정체성 갈등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21세기 세계 정치의 축소판과 같은 영국 사회
밑바닥에서 올려다본 정치 사회 문화의 천태만상


『밑바닥에서 전합니다!』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각광받는 에세이스트로 한국 독자들 사이에서도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아이들의 계급투쟁』 등으로 ‘믿고 읽는 작가’라는 평을 받는 브래디 미카코의 사회 평론집이다.
일본에서 영국으로 이주해 빈민가라는 사회의 밑바닥에 발을 딛고 위를 올려다보는 브래디 미카코의 펜 끝은 영국 사회의 명암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보수당 정권의 긴축정책으로 깊은 절망에 빠진 노동자들, 이주민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며 급작스레 극우로 돌아선 하층민들, 태어날 때부터 인생이 정해진다고 할 만큼 고착화된 계급, 상류층 엘리트 자제들의 전유물이 된 대중문화 등 놀라울 만큼 오늘날 한국 사회와 비슷한 10여 년 전 영국 사회의 풍경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밑바닥 칼럼니스트’ 브래디 미카코의 정치 사회 평론
당사자이자 관찰자로서, 아래에서 위를 보는 관점


일본의 가난한 육체노동자 집안에서 나고 자라 젊은 시절 펑크에 심취해 혈혈단신 영국에 건너간 브래디 미카코. 그는 아일랜드 이주민 집안의 남자와 결혼해 브라이턴 빈민가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생활기를 블로그에 적다가 우연히 책을 출간하며 작가가 되었다. 그간 한국 독자들에게는 브래디 미카코가 펑크 보육사이자 에세이스트로 알려졌지만, 이 책에는 시사 평론가로서 쓴 현실감 넘치는 평론들이 담겨 있다.
칼럼니스트 브래디 미카코의 정체성은 여느 평론가들과 남다른 점이 있다. 동양에서 건너와 또 다른 아일랜드인 이주민 남자와 결혼한 이주민,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노동자, 혼혈 아이를 키우는 엄마…. 그처럼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브래디 미카코의 글에는 이른바 ‘밑바닥 사회’의 숨결이 생생히 담겨 있다. 기존 평론가들의 글이 위쪽에서 사회 전체를 내려다보는 관점으로 쓰였다면, 브래디 미카코의 글은 사회 한구석의 바닥에 굳게 발을 딛고 위를 올려다보며 쓰인 동시에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한 발 물러나서 바라보는 관점으로 쓰였다. 당사자이자 관찰자의 관점을 동시에 갖추었기에 브래디 미카코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사회의 양상을 단순화하지 않고 구석구석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다.


무너진 과거의 영광, 우경화하는 사회
배외주의와 계급 사이에서 신음하는 빈민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제2의 미국이 될 것처럼 활기가 넘쳤던 1990~2000년대 영국. 토니 블레어라는 스타 총리의 포퓰리즘 정치에 눈멀었던 영국은 어느새 이라크 전쟁의 주범이자 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토니 블레어 이후 정책 노선이 보수당에 가까워진 노동당, 긴축재정으로 인해 침체된 사회의 분위기, ‘복지 강국’의 위상은 어느새 옛일이 되어버린 민영화와 복지 축소.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자포자기가 횡행하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갑자기 급부상한 것은 반(反)이주민, 반EU 정책을 앞세운 극우 정당이다.
전통적으로 노동당 지지층이던 노동자 계급과 빈민층은 이주민과의 일자리 싸움에 지쳐 극우 정당으로 돌아선다. 낮은 시급으로도 기꺼이 일하고 돈을 모아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주 노동자들과 같은 임금을 받고는 도저히 물가 높은 영국에서 살아갈 수 없는 영국인 노동자들. 트럭 운전사인 브래디 미카코의 배우자 역시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평생을 노동당에 투표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극우 정당 지지를 선언한다. 저자는 이런 문제가 이주민이 영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며, 저임금 일자리를 놓고 싸우는 이주민과 영국인 노동자들 위에서 인건비를 줄이며 이익만 좇는 ‘상류층의 자본주의 정신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일갈한다. 이주민 대 영국인이라는 배외주의 측면이 아니라 자본가 대 노동자, 혹은 상류층 대 빈민층이라는 계급적 구도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다.
브래디 미카코는 이 책의 후기에서 “정말로 쓰고 싶은 것은 오래전부터 고집스러울 만큼 하나밖에 없”으며, 그것은 바로 “계급”이라고 밝히기도 한다. 가난한 육체노동자의 딸로 태어나 존재를 부정당하며 자란 저자는 영국에 와서야 비로소 노동자 계급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긍지와 도덕을 잃지 않으며 가난해도 정갈하게 일상을 꾸려나가던 영국 노동자 계급은 사라지고, 기초생활보장을 수급하며 술과 약물에 탐닉하는 밑바닥 사람들만 남았다. 오늘날 빈민가의 혼란스러운 풍경은 노동의 가치를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자아냄과 동시에 노동자 계급의 공동체를 파괴한 기득권 정치의 오랜 실정을 돌아보게 한다.


다양성과 신선함을 잃어가는 정치 사회 문화…
혼탁해지는 사회의 전조를 발견하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약 10년 전에 머나먼 이국에서 쓰였지만, 지금 한국에서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긴축정책과 끝없는 경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탓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깊은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 젊은 시절 유혈을 불사하면서 사회의 변화를 촉구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대중과 멀어져 설 자리를 잃은 좌파들,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는 특권층을 비판하지 않고 부러움과 환호를 보내는 대중들, 갈수록 우경화하며 자극적인 슬로건을 내거는 정치와 기꺼이 지지하는 하층민들, 어린 시절부터 영재 교육을 받은 상류층 엘리트의 전유물이 된 대중문화…. 이 책에 담긴 건 10여 년 전 영국의 풍경이지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우리 사회의 현실과 유사하다.
브래디 미카코는 이 책에 “점점 혼탁해지는 사회”의 전조가 담겨 있다고 했다. 우리 사회 역시 갈수록 혼란스러워지며 비현실적이라 할 만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그리는 데 일종의 참고서가 될 것이다.














녹색평론



녹색평론사 편집부 저 / 17,000원 / 녹색평론사



130년 전 갑오년 동학운동은 지배층에 대한 민중의 반란이 아니었다. 동학농민들은 유무상자(有無相資)를 내세우며 서로 돕고 사는 새로운 세상을 제안했던 것이다. 정치엘리트들이 국가를 사유화하고, 기본적인 사회적 합의를 일방적으로 깨고 있는 오늘날, 동학이 추구했던 새로운 세상이 오늘의 우리가 처해 있는 난국을 헤쳐나가는 데 실마리를 던져줄 수 있을까?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표상되는 생태적 위기에 더해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혼란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녹색평론 188호는 그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부터 이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 또한 인류사회 공통의 화급한 문제, 기후파국을 피하기 위한 비상시 대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짚어보고자 했다.


지금 다시, 동학운동이 요청되는 까닭

130년 전 동학농민혁명은 이 땅에서 일어난 최초의 근대적 민주화운동이었다.
2024년 끝자락에 이 땅에서 다시 타오르고 있는 ‘촛불’의 역사적인 과제는 무엇일까?


국가가 정치지도자들에 의해서 사유화되고 있다. 국가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성립시켜 놓은 최소한의 규칙인 사회계약이 지배계급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파기되고 있다. 한 나라의 경제가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요는 외면한 채 기득권층의 배 불리기에 골몰하 고 해외 세력들(글로벌 자본)의 이해관계에 봉사하고 있다 ―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 이 땅에서 갑오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거칠게 요약한 것이다. 그런데 2024년 한반도의 현실과도 놀랄 만큼 유사하지 않은가.

정치적 무능에 더해 위법행위의 정황까지 하나둘 드러나면서 민심을 잃은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안위와 영달에 집착한 나머지 친위 정변(政變)을 일으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민 을 대의한다고 하는 입법부가 저마다 잇속 챙기기에 바쁜 와중에 상황이 조속히 수습되지 않자 급 기야 경제공황에 대한 경고마저 나오고 있다. 이 초유의 사태가 국내 증시나 환율에 커다란 여파 를 가져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2024년 12월 3일 이전에는 우리 경제에 아무 문제 가 없었을까? 말할 것도 없을 테지만, 한국 경제는 어떤 의미에서도 순항 중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불황은 거시적으로 본다면 한반도에 국한된 문제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 면, 세계경제를 궁극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지구생태계의 회복력이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과, 그와 함께 산업경제의 근본적 동력이었던 값싼 화석연료의 시대가 이미 저물어가고 있다는 엄연한 현 실에서 파생된 하나의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상실 같은 전대미문의 심각한 생태적 위기와 맞물려 있는 경 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위기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그리고 다른 것은 모두 제쳐둔다고 하더라도, ‘기후위기’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서라도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인류 가 광범위하게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야 할 비상상황이라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를 할 것이다. 그런 데, 이토록 엄중한 시기에 오히려 전쟁은 빈발하고, 국가와 인종과 종교 간에는 갈등이 갈수록 고 조되는 것처럼 보이고, 극단적인 구호를 외치는 선동가 정치세력들이 세계 곳곳에서 부상하고 있 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우리가 이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기는 한 것일까? 한시라도 빨리 인류사회를 통합하여, 그야말로 ‘문명적인 전환’을 가져올 비전을 우리는 늦지 않게 찾을 수 있을까? 근대 산업문명의 깊은 어둠을 조목조목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것 이상으로, 생태문명으로 가는 길을 구체적으로 열어 보여줄 사상체계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녹색평론》 2024년 겨울호에서는 다름 아닌 동학(東學)이 바로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해줄 수 있지 않을지 검토 해보고자 했다. 130년 전 바로 이 땅에서, 철저하게 민주적인 원리로 만물의 근원적인 평등과 조 화를 추구했던 사례를 소개하면서 21세기의 동학운동, ‘촛불’의 진정한 과제는 무엇일지 확인해보 려고 한다. 










림 문학상 수상작품집



성수진, 이돌별, 고하나, 이서현, 장진영 저 / 15,000원 / 열림원



1980년에 설립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청준 전집 등을 포함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우수한 문학 작품들을 펴내 온 열림원에서 2024년 제1회 림 문학상을 시작한다. 경계 없음, 다양성, 펼쳐짐을 지향하는 림 문학상은 응모 자격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에 호응하듯 도착한 894편의 작품을 대상으로 연령과 등단 여부, 장르와 형식에 관계없이 블라인드 심사가 진행되었다. 김병운 소설가, 안윤 소설가, 심완선 SF 평론가, 소영현 문학평론가가 심사를 맡았으며,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개성적인 작품 세계를 확보하고 있으며 신뢰할 만한 쓰기 역량을 갖추고 있는”(소영현 문학평론가, 심사 총평 중에서) 성수진의 「눈사람들, 눈사람들」을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성수진의 「눈사람들, 눈사람들」은 한국소설에서 빈번히 배경이 되곤 하는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 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대전은 단순히 배경으로만 존재하지 않으며, 소설 속 존재들이 먹고, 견디고, 산책하는 곳으로 역사와 의미를 품은 채 아름답고 생생하게 펼쳐진다. 차곡차곡 그려 낸 대전의 풍경 속에서 누군가가 떠난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돌아오는 장면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며 “일상적 공간에서 소설적 공간을 포착해 내는 섬세한 시선과 천천히 걸어가듯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고유한 리듬, 인물의 정서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이미지와 문장 모두가 탁월”(김병운 소설가), “백로의 이미지를 활용해 정석적으로 완성된 소설, 문장과 구성이 안정적”(심완선 SF 평론가), “상실의 불가피함과 삶을 향한 긍정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 수작”(안윤 소설가)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 세계에 그어진 구획을 담대하게 넘나드는 이야기들”

또한 우수상에는 이돌별의 「포도알만큼의 거짓」, 가작에는 고하나의 「우주 순례」, 이서현의 「얼얼한 밤」, 장진영의 「날아갈 수 있습니다」을 선정하였다. “문학상의 취지를 생각해 보자면 수상작 선정 못지않게 좀 더 다양한 세계를 구상하는 소설들이 지면을 얻거나 독자와 만날 수 있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 림 문학상을 제정한 의도 한편에는 문학상 제도 자체에 대한 이러한 성찰이 놓여 있다. 림 문학상이 3편의 가작을 선정한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이다.”(소영현 문학평론가, 심사 총평 중에서)

2024 제1회 림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어디에도 선보인 적 없는 이 이야기들을 한 권에 묶어 선보인다.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다양한 독법을 요청하는 개성적인 작품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저마다의 색과 형태를 가진 다채로운 이야기가 지금 여기에서 움트기 시작한다.

“백로들은 떠났다. 하지만 아주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떠났지만 어딘가엔 도착했을 거란 걸 수현은 알았다.”


대상 수상작인 성수진의 「눈사람들, 눈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낯선 곳에 도착하고 또 낯선 곳으로 떠나야 하는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화재라는 우연한 사건과 오해를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 두 사람은 함께 대전의 원도심을 산책하며 재건축을 앞둔 건물,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온 구조물, 백로 등을 본다. 둘의 발자취와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떠난다는 것은 아주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딘가로 도착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겨우내 내린 눈이 녹고 봄이 오듯이 서서히 알아차리게 된다. “상실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이 닥쳐오지만 좋은 것들은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다면 소설을 쓰고 싶었다. 잃어버린 것들을 곱씹어 생각하며 의미를 찾고 싶었다”(수상 소감 중에서)는 작가의 말처럼, 소설은 이미 우리를 떠난 것과 앞으로 떠나게 될 것들을 담담하게 보듬는다.

“가끔 어떤 순간들에 아이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리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우수상 수상작인 이돌별의 「포도알만큼의 거짓」은 교권 침해, 학부모의 민원, 보호받지 못하는 교사 등 동시대 학교 풍경을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그려 낸 이야기로 여러 화두를 던져 주며 독자를 흡입하는 힘이 느껴진다는 호평을 받았다. 초등학교 과학 전담 교사인 ‘나’는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 그들의 담임 교사, 학부모 모두와 멀찍이 거리를 두고 관찰한다. 삼국지 속 순욱의 빈 찬합 에피소드와 연결되는 병든 포도, 과학 비중계 실험 재료인 포도알, 교육적 보상 체제로 이용되는 포도알 스티커로 포도의 이미지와 의미가 반복 변주되며, 지금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보답 없는 희생을 강요받고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돌아보게 한다. 또한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그 간극을 채우는 거짓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세계에 그어진 구획을 담대하게 넘나드는 이야기들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다양한 독법을 요청하는 개성적인 작품들”


고하나의 「우주 순례」 속 ‘나’는 온라인으로 구한 동행과 함께 미국의 사막을 여행 중이다. 그러는 틈틈이 자서전 클래스에서 받은 과제로 유년기를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마주친 좀비 이야기는 인과가 매끄럽고 맥락이 분명한 삶의 궤적에 틈입하여 과거를 모호하고 무질서하게 만든다. 유년기에 만난 좀비라는 비현실적 존재, 광활한 사막의 풍경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CG에 관한 이야기가 교차하며 현실과 진실의 차이를, 비현실이 진실이 될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서현의 「얼얼한 밤」은 오래전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엄마의 부고를 듣고 모인 세 남매의 이야기이다. 엄마가 재혼해서 키운 피 한 방울 안 섞인 자식들은, 화장터 사정으로 오갈 데 없어진 엄마의 시체를 세 남매보고 해결하라고 한다. 마음껏 슬퍼하지도, 그렇다고 마음껏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세 남매의 서로 다른 성격과 말투, 관계의 온도 차가 대화를 통해 실감나게 펼쳐진다. 끝끝내 삶에 대한 긍정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들의 대화와 태도가 용기를 주며, 얼얼한 마음의 고통을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으로 변화시키는 작가의 명랑한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장진영의 「날아갈 수 있습니다」는 투신 이후 하반신이 마비된 무용수 대영과 그 곁을 지키는 아영의 이야기이다. 대영은 사고 이후에도 휠체어에 앉은 채로 상반신을 이용해 춤을 춘다. 대영의 사생팬이었던 아영은, 대영의 매니저 노릇을 하며 돈을 받는다. 어느 날 그들이 사는 동네에 헬륨 풍선 자판기가 설치되고 대영과 아영은 이제껏 드러나지 않았던 진실을 직시하게 된다. 툭툭 던지는 듯한 짧은 문장과 대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각자가 가진 흉터의 모양이 비슷할지라도 그것이 완전하게 겹쳐지지는 않으며 이별하기 위해서는 이별에 앞서 사랑의 과정이 필요함을 이해하게 된다.












스페인 모로코 인문 기행


김종엽 저 / 48,000원 / 창비




스페인의 낮, 모로코의 밤은 더없이 매혹적이다
여행에서 만난 정점의 예술들
『스페인 모로코 인문 기행』은 관광화된 세계에서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질문했던 한신대 교수 김종엽의 『타오르는 시간: 여행자의 인문학』(2022, 이하 『타오르는 시간』)의 후속작이다. 저자는 사회학 연구자이자 문화평론가로서 역량을 발휘해 스페인과 모로코를 여행하며 마주한 ‘정점 체험(peak experience)’의 순간들을 담았다. 이는 전작의 제목 ‘타오르는 시간’의 또다른 표현으로서, 체험의 주체를 매혹할 뿐 아니라 그의 존재를 완전히 뒤흔들어버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한참이나 빛나고 있는 ‘사건(event)’에 가까운 경험이 응결되는 순간을 말한다.
어쩌면 신비 체험에 가까울 정점 체험 속으로 저자를 몰아넣은 것은 스페인의 예술 작품과 모로코 사막의 풍경이었다. 예컨대 벨라스케스와 고야, 가우디의 작품들, 사막을 수놓은 은하수를 헤집고 치솟는 듯한 오리온자리의 모습 같은 것들이 그랬다. 최고의 예술과 자연 풍광이 구사하는 시공간 속에서 강렬한 체험에 몸을 떨었던 기억은 그 앞에 서 있던 순간 속으로 계속해서 주체를 데려간다. 이에 저자는 자신을 흔들어놓았을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비슷한 체험을 선사하기에 충분한 매혹적 대상들을 중심에 놓는, 새로운 형식의 여행기를 쓰고자 했다. 개인의 체험이 고립을 깨고 공동의 차원으로 이행할 때 더욱 풍요로운 경험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약 320컷에 달하는 컬러 도판과 750면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우리를 전율케 할 명작과 명소의 얼굴을 섬세하게 담았다. 감흥을 맥락화하기 위해 역사와 문화적 배경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을 붙여 이 책만으로도 스페인과 모로코를 알차게 둘러보았다는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사전 답사가, 이미 다녀온 이들에게는 자신만의 고유한 추억을 풍부하게 되살리는 체험의 독서가 될 것이다.

스페인과 모로코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순간들을 한 권에 담다!

“왜 나는 그곳에 가려고 하는가?” “그곳에 가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여행지를 정할 때는 자기 욕망을 점검하게 된다. 하지만 숙고하기는 쉽지 않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힘이 든다는 이유로, 쉬운 답을 얻기 위해 여행 블로그를 검색한다. 맛집 추천을 받고 그곳에 가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찾아본다. 그렇게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다 보면 고유한 자기 경험을 잃어버리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경험이 빈곤해지는 문제를 지적하고 힘껏 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자기만의 여행기를 쓰는 것이다. 여행을 하며 느낀 감흥을 기술하고 작품 또는 풍경과의 마주침에서 일어난 일을 언어화하는 작업은 고유한 정점 체험을 최대한 자기 곁으로 끌어오려는 시도다.
예컨대 저자는 스페인과 모로코에서 본 불후의 명작과 잊을 수 없는 풍경들 속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간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1장), 고야의 「마드리드의 1808년 5월 3일」(2장), 피카소의 「게르니카」(3장),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4장), 엘 그레코의 「엘 엑스폴리오」(5장), 네르비온 강가의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안젤름 키퍼의 「두 강 사이의 땅」(6장), 토옌의 「휴식」(7장), 무리요의 「냅킨의 성모」(8장), 그리고 모로코의 막막한 사막에서 본 일몰 풍경(9장) 등을 중심에 놓고 철저히 자기 경험에 몰입한 여행기를 써내려간다. 완결성 높은 한권의 도록을 연상케 할 정도로 자신이 감상한 작품들을 방대하고 촘촘하게 나열한 뒤 이를 해석할 새로운 의미 자원을 얻기 위해 다양한 미학 논문과 예술비평을 검토했다. 나아가 이를 자기 경험과 대조해보며 문학적 표현과 특유의 상상력을 동원해 여행 중의 감흥에 살을 붙였다.
넘쳐나는 체험을 갈무리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주권적 능력을 되찾으려는 저자의 글쓰기를 따라가다 보면 스페인과 모로코에서 얻은 그의 정점의 순간들을 일종의 공유재(commons)로서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다. 흥미진진한 여행기이자 깊이 있는 예술교양서로서 이 책의 매력이다.


여행의 시간 속에서
정점 체험을 누리는 법을 안내한다

여행에서 경험하는 모든 장소에서 고유한 의미와 즐거움을 길어 올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는 자기가 마주하는 대상을 감식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여행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확장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광대한 훈련장이다. 가령 안젤름 키퍼의 작품 「줄라미트」가 불러일으키는 감흥을 말하기 위해 저자는 파울 첼란의 시 세계를 참고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벌어진 유대인의 비극을 끌어들인다.(475~79면) 작품 하나에서 비롯된 이야기는 역사와 문화, 철학을 아우르는 인문학적 사유로 확장된다. 우리는 저자의 풍부한 연상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여러 질문을 감당하게 된다. “나는 이 작품을 왜 감상하고 있는가?” “이 작품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작품에 대한 질문은 자연히 삶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자기 삶을 수동태로 대하던 독자들이라면 여기에 진지하게 답하고 숙고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히 자기 경험의 주권자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나를 되찾는 집중의 기술


샘 혼 저 / 이상원 역 / 19,000원 / 갈매나무




 
”세상이 무너질 때,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울 집중력“

‘너 자신을 알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지금, 이 순간을 알라’이다!

베스트셀러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저자
세계적 커뮤니케이션 코치 샘 혼이 전하는 집중의 정석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로 진료받은 성인이 최근 5년간(2018년 대비 2023년 기준) 5배로 급증했다고 한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특히 연령대별 유병률은 20대 7.7%, 30대 3.1%로 20~30대 발생 위험이 60대 이상 1.1%보다 4배 가까이 높다고 추산된다.
사실 현대인에게 집중력 문제가 하루 이틀 숙제는 아니다. 게다가 온라인 환경이 그 속도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음을 누구나 알지만, 디지털 디톡스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개인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노력부터 정보화 사회 시스템의 어두운 그림자를 분석하는 시도까지, 오늘날 다각도의 접근이 이뤄지고 있는 이유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작가 샘 혼은 일찍부터 ‘집중이란 삶의 초점을 맞추는 것’임을 환기하며 집중수행(ConZentration; Concentrate와 선禪을 의미하는 Zen의 합성어) 워크숍을 운영해 왔다. 커뮤니케이션 전문 코치답게 자아와의 소통에 중점을 두고 참가자들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이었고, 현실을 떠날 수는 없는 수많은 현대인이 이곳을 거치며 자신을 되찾고 삶을 뒤바꾼 이야기와 방법론을 집대성한 책이 바로 《나를 되찾는 집중의 기술》(원제 ConZentrate)이다.

우리 삶은 누구에 그리고 무엇에
T.I.M.E.를 쏟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샘 혼이 던지는 질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당신의 T.I.M.E.를 어떻게 쓸 것인가?”이다. ‘시간’으로 연상되는 이 키워드는 Thoughts(생각), Interest(관심), Moments(순간), Emotions(감정)를 의미한다. 생각과 싸우지 않고, 관심을 단순화하고, 순간에 몰두하고, 감정을 알아차리는 선(禪)의 지혜를 바탕으로, 구체적 체크리스트를 활용해 일상 속 사고와 행동의 루틴을 점검할 수 있도록 본문을 구성하였다. 미루는 습관을 버리는 전념의 기술부터 온전히 사로잡히는 몰입의 황홀경까지, 철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샘 혼의 조언을 따라 ‘지금, 여기’의 삶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에 인용한 수많은 명언을 곱씹어 보거나 필사해 보아도, 좋은 수행이 될 법하다. 정신없이 산만한 일상에 지친 독자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되리라 기대한다.


“원할 때마다 원하는 대로 집중할 수 있다!”
당신은 무엇에 시간(T.I.M.E.)을 쏟고 있는가?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도저히 일을 끝마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짓눌리다 보면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들곤 한다. ‘나는 왜 이렇게 집중하질 못할까?’ 그러나 우리는 살면서 한 번은 ‘완벽한 몰입의 순간’을 경험한다. 과거 언젠가 분명 게임, 운동, 영화 감상 등에 몰입하여 주변을 완벽히 잊어버린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그 순간을 돌아보면 우리에게 집중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잃어버렸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 어떻게 해야 사라져 버린 집중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저자 샘 혼은 말한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집중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 나에게 초점을 맞추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일상에서, 직장에서 불필요한 것을 최소화하고 삶에서 정말 중요한 일에만 집중하고 싶은 현대인을 위한 ‘집중수행(ConZentration)’을 제안하면서, 가장 먼저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권한다. 그리고 본인의 깨달음과 강조하고 싶은 바를 단 한 가지 질문으로 요약한다. “당신의 T.I.M.E.를 어떻게 쓸 것인가?” 즉, 생각(Thoughts), 관심(Interest). 순간(Moments). 감정(Emotions)을 잘 관리하고 다스리면, 산만한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고 진정한 몰입에 이르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집중의 개념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나는 재미있는 결론에 도달했다. 시간 개념을 재정립하면 인생에서 경주를 벌여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생각 대신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누리는 시간을 깨닫게 된다고 할까? 그러면 시간을 최고로 쓰는 방법은 곧 이 순간을 즐기는 것임을 알게 된다.
_16쪽(‘집중이란, T.I.M.E. 관리다’ 중에서)


”집중할 곳과 때를 알면, 인생의 해상도가 높아진다!“
집중수행, 선(禪)의 지혜로 ‘지금, 여기’에 몰두하는 방법

Thoughts 생각과 싸우지 않는 법, 몰입
Interest 관심을 관리하는 법, 마음챙김
Moments 순간을 장악하는 법, 전념
Emotions 감정을 다스리는 법, 알아차림


현재 이곳이 중요하다! 우리가 찾는 행복, 열망하는 삶은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쏟고 온전히 경험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이 사실을 간과한다. 너무 많은 선택지, 걱정과 불안, 게으름과 조급함으로 ‘지금, 여기’에 있지 못하고 지나버린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 이곳과 저곳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혼란한 마음은 우리에게서 몰입의 순간을 앗아가고 ‘지금, 여기’를 오히려 지옥으로 만든다.
우리 마음은 훈련받지 않은 강아지와 닮았다.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놀거리를 찾고,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인다. 우리가 마음에게 ‘스마트폰을 놓고 이제 공부해야지’라고 명령을 내려도, 제멋대로 통제 불능인 것과 참으로 비슷하지 않은가? 샘 혼이 선(禪)의 지혜를 빌리는 이유도, 집중이란 결국 마음 다스리기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말하는 ‘집중수행’이 눈을 감고 도를 닦자는 의미는 아니다. 저자는 신발 끈 매는 방법을 배우듯 일상에서 주의 집중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예로 ‘하루 5분 두뇌 훈련’이라는 집중수행 연습은, 잠들기 전 잠깐의 시간을 투자하여 집중력을 크게 향상하는 방법이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따라서 할 수 있는 몇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방해받지 않고 혼자 있을 곳을 찾아 간단하면서도 긍정적인 문장, 가령 ‘나는 집중을 잘한다’ 같은 지시문을 반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딱 5분 동안 이 문장에 집중하고, 잡념이 떠오르면 그 순간 ‘안 돼!’라고 생각한 뒤 다시 지시문으로 주의를 돌린다. 중요한 것은 정신이 분산되는 것을 자책하지도, 잡생각을 하지 말자고 자꾸 다짐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며 마음이 괜히 반항하지 않도록 다스리면, 나중에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저절로 실행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책에는 이 외에도 다양하고 실용적인 집중수행 연습이 실려 있다. 가령 넓게 퍼진 시야를 좁혀 원하는 곳에 초점을 맞추는 훈련, 마음에 막대기를 끼워 넣어 생각의 흐름을 바꾸는 훈련, 원치 않는 생각을 교체ㆍ재해석ㆍ삭제하여 바로잡는 훈련 등 순간에 집중하는 루틴으로 산만한 마음을 다스릴 방법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러한 집중수행은 일상적인 혼란이나 갈등은 물론 인생의 위기를 맞닥뜨렸을 때도 평정심을 되찾고 만족스러운 삶을 꾸려나가는 데 큰 힘이 되어줄 터다.

힘든 날을 대비해 무언가 아껴두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게으르거나 불안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제법 합리적인 이유를 대면서 의도적으로 일을 미룰 때가 있다. 문제는 기회가 있을 때 행동하지 않으면 다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 미루고 또 미루며, 삶의 물결에 허망하게 떠밀려 가지 말라. 오늘 당장 행동하여 당신 삶을 한층 더 의미 있게 만들어야 한다. _215쪽(‘회의주의를 다루는 법’ 중)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여 나에게로 되돌아가자!“
우리가 겪는 크고 작은 위기와 갈등을 이겨내는 마법


샘 혼은 세계 곳곳을 다니며 ‘딴생각’에 주의를 빼앗기고 ‘마음’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이들을 수없이 만나 상담해 왔다. 자신을 찾는 동료나 고객에게 온 시간을 소모하느라 정작 본인의 업무에는 소홀해진 직장인, 다음 날 업무 일정을 생각하느라 하루 중 유일하게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허비한 부모 등,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독자에게 마치 간접적으로 상담받는 느낌을 주면서, 지금의 고민과 문제를 돌아보도록 돕는다. 또한 독자 스스로 생각과 관심과 감정을 어떤 순간, 무엇을 위해 쏟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질문들을 별면에 따로 정리해 두어(하지 말아야 할 생각과 행동 VS. 해야 할 생각과 행동) 집중수행에 체크리스트로서 활용하도록 돕는다. 본문 틈틈이 인용한 명언들 속에서도, 그들 삶에 녹아 있는 집중력의 내공과 통찰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내 정신을 흩트리는 물리적, 정신적, 감정적, 영적 요소를 원망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은 매일, 매년, 평생 우리가 겪는 크고 작은 위기와 갈등을 이겨내는 마법 같은 방법이다.”(댄 웨이크필드, 작가) _160쪽(‘하루 5분 두뇌 훈련’ 중)

우리는 집중력이 필요하다고는 느끼지만, 자신감부터 삶의 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친다고까지는 깨닫지 못한다. 마음의 상처, 인생의 위기 등으로 정말 중요한 것에 최선을 다할 힘을 잃어버렸을 때,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길 위에서 “부디 이 책이 권하는 집중수행을 통해 가슴 뛰는 삶을 이어가기를 기원한다.”(샘 혼)








김종성 교수의 우리 바다 우리 생물


김종성 저 / 20,000원 / 베토


 
기후위기 시대에 꼭 알아야 할, 세계적 해양학자가 재밌게 쓴 우리 바다 이야기
“지금은 전 인류가 바다 구하기에 동참해야 할 때”
_탤런트 박진희 추천


“지금은 전 인류가 바다 구하기에 동참해야 할 때다!”
고철현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국내 갯벌 연구 최고 권위자로 잘 알려진 김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바다의 가치’, ‘해양생태계의 위기’, ‘개발과 보전의 화두’, ‘숙제와 도전’이란 4개의 연결된 테마 중심으로 저술한 책이다. ▲KBS ‘이슈 픽 쌤과 함께’ ▲SBS ‘에코아일랜드 천사도’ ▲KBS라디오 ‘정관용의 지금, 이 사람’ 등 방송에도 출연해 기후위기와 해양, 갯벌의 중요성을 널리 알린 김종성 교수가 지난 30년간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내용을 알기 쉽고 재밌게 담았다.
이 책에는 ‘객관성’과 ‘전달력’에 중점을 두면서 바다의 가치를 담았다. 그동안 바다와 관련된 좋은 책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 책은 ‘사례’ 연구 중심으로 실감 나는 차별성을 두었다.
지금 바다는 아프다. 과거보다 너무 많이 변했다. 기후가 급변하고 해양생태계가 붕괴 위기에 놓였다. 최근 바다의 새로운 가치가 꽤 많이 알려졌지만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바다의 미래가 궁금하다. 개발과 보전의 ‘딜레마’는 여전히 큰 숙제다. 그러나 ‘개발’만 내세우던 구시대적 발상과 명분은 이제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선택은 늘 우리의 몫이었다. 바다 알기를 넘어 바다 구하기에 전 인류가 동참해야 할 때다. 우리가 망가뜨린 바다, 우리 손으로 다시 건강한 상태로 돌려놓아야 하는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인류는 바다에서 왔다고 한다. 인류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바다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바다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바다를 구하려면 이 책을 보아야 한다. 인류가 건강하려면 바다가 먼저 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 김종성 교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양학자이다. 지난 20여 년간 300여 편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SCI)에 게재했고, 한국인 최초로 해양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편집장이 되었으며, 환경모니터링 분야 0.01% World Expert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해양 분야 굵직한 국책연구과제들을 이끌고 있다.
저자는 그동안 해양학 연구에 열중해 왔지만 이제 일반 국민에게 우리 바다를 제대로 알리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에 입각해 대중을 위해 쉽고 읽기 쉽게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여기서 저자의 우리 바다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해양 연구에의 불타는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우리 바다를 대상으로 한 깊이 있는 연구의 결과물이라는 것에도 의미를 둘 수 있다. ‘우리 바다가 특별한 이유’를 시작으로 ‘K-갯벌의 경제적 가치’, ‘K-해양생물의 다양성’, ‘제주바다·울릉도·독도의 해양생물 다양성’, ‘간척의 희생양 갯벌생물’, ‘K-철새의 처절한 비상’, ‘K-리빙 쇼어라인’, ‘해양과학의 대중화 소명’ 등 저자가 직접 연구해 과학적으로 증명한 우리 바다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잘 정리한 보기 드문 해양과학 교양서이다.
일반국민들에게 우리 바다를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김종성 교수의 노력과 도전에 ‘현대해양’이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여러분의 많은 응원을 기대한다.











다른 방식으로 먹기

메리 I. 화이트, 벤저민 A. 워개프 저 / 천상명 역 / 22,000원 / 현암사


문화인류학자 엄마와 역사학자 아들이 안내하는 음식의 새로운 세계
그 모든 여정이 지금, 식탁에서 시작된다!
음식과 요리에 대한 관심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먹방, 맛집 탐방 등의 콘텐츠 유행과 소비가 이를 증명한다. 그중에서도 요리 대결을 내세운 콘텐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최근에 이슈가 된 〈흑백요리사〉를 비롯해 저마다 비슷한 포맷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주목받아 왔다. 아마도 재료를 선택하고, 손질해 요리하는 모든 과정에서 묻어나는 개인의 고유성과 정체성 때문일 것이다. 한 접시의 음식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우리 앞에 왔다.
『다른 방식으로 먹기』는 그런 음식의 이야기들을 시대와 나라를 가로질러 풀어낸다. 특히 문화인류학자 엄마 메리 I. 화이트와 역사학자 아들 벤저민 A. 워개프트 모자(母子)가 함께 쓴 음식 인문 교양서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두 명의 저자는 농업의 기원에서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속에서 음식이 어떻게 다뤄졌고, 어떤 기능을 해왔는지를 야망, 호기심, 무모함 등으로 점철된 인류 역사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이 책은 특별한 것 없는 음식들을 다룬다. 일상적으로 먹고, 마시고, 요리하는 음식과 그 재료들을 우리의 식탁을 규정해 온 사회적 규범과 연관 지어 음식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이로써 음식이란 아주 오래된 사회, 문화적 산물이자 매개체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


영토 전쟁과 권력, 식민지와 향신료, 요리법과 도구, 소울푸드의 등장까지….
음식으로 다시 읽는 세계사
허쉬는 오늘날 어떻게 초콜릿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베네딕토회 수도승들은 왜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맥주를 추천했을까? 일본 도쿄에서 요리를 할 때 절대 생선 배부터 가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흥미로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음식이 생존 문제를 넘어 역사적으로 다양한 욕망과 이해관계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대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의 묘한 기싸움 또한 다름 아닌 음식에서 시작되고, 발현되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비옥한 영토, 지리적인 이점, 목축의 발달 등으로 생태-문화적으로 풍부하고 균형 잡힌 요리가 발전했다. 그 시기는 당시 그리스 아테네 전성기와 겹쳤고, 페르시아는 그런 그리스인들을 초대해 코스별 고기와 설탕, 꿀로 범벅된 디저트를 대접하는 등 세련된 식문화를 보여주며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고자 했다. 그들의 식문화를 두고 그리스는 지나치게 화려하며 탐욕적인 것으로 평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페르시아에서 쓰였던 양념으로 만든 고상한 요리들이 그리스에 발전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페르시아의 식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음식을 통해 고대 페르시아 왕국의 영토 장악력과 영향력을 직관적으로 잘 보여준다. 페르시아뿐만 아니라 연회석에서 지배국의 음식을 전시한 로마 상류층, 산 정상으로 노예를 보내 얼음 간식을 가져오게 한 중국 왕족에 관한 이야기 또한 음식의 상징성을 드러내고 있다.

내가 먹는 음식을 생각한다는 건
곧 ‘나’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다
같은 식재료를 두고도 사람마다 떠올리는 추억이 다 다르다. 그 재료들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음식은 더더욱 그렇다. 지역별로, 세대별로 경험한 식재료와 식문화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떡’에 대해 이야기하려 할 때 누군가는 하굣길에 친구들과 함께 사서 나눠 먹던 떡꼬치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온 가족이 다 같이 모여 먹던 새해의 떡국을 떠올릴지 모른다. 또 누군가는 할머니 방앗간에서 갓 뽑아 꿀에 찍어 먹던 가래떡을 떠올릴지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들은 어떤 것들보다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이는 결국 우리가 어떤 음식을 기억하는 데 단순히 무엇을 먹었는지가 아닌 무엇을 ‘언제’ ‘누구’와 먹었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음식은 그저 취향과 기호의 영역으로만 설명되는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져 온 한 사람의 발자취다. 이러한 사실을, 음식이 하나의 트렌드처럼 금세 뜨거워졌다가 금세 식어버리고 마는 오늘날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마인드업

하늘산 저 / 18,000원 / 힐링스쿨


읽기만 해도 마음이 한 단계 성장하는 마법 같은 책
네이버 최대역학카페 ‘역학사랑방’ 16만 회원의 멘토 하늘산의 신작
16만 회원이 활동하는 ‘역학사랑방’에서 저자는 수많은 사람의 인생의 멘토가 되어왔다. 운명을 알고 싶은 사람, 미래가 궁금한 사람, 행복하고 싶은 사람들은 저자를 찾아온다. 저자는 역학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상담하며 도움을 주고 있다. 저자는 역학을 통해 우리가 삶 속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을 더욱 명확하게 알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을 전한다. 이 책은 저자가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면서 얻은 경험을 모은 것으로 삶 속에서 긍정적인 변화와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가져다줄 메시지를 담고 있다.

불안정한 시대, 행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공감
인생의 여러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힘들고 지친 사람, 왜 사는지 모르겠는 사람, 불행한 사람 등 운명의 벽 앞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이 책에는 수많은 역경과 고난 앞에 절망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하고 따뜻한 위로와 깊은 공감을 전한다. 때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되고 위안을 얻는다. 이 책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얻은 통찰과 지혜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와 공감을 건넨다. 이 책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운명을 개척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답과 같은 책
〈마인드업〉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실생활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공한다. 저자가 그동안 제자들과 함께 삶에 적용해 온 원칙을 안내한다. ‘마인드업’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마음을 성장시키고, 삶을 바꿀 수 있는 안내서이다. ‘날새롬’, ‘날새김’, ‘초월명상’ 등 저자와 제자들의 경험이 담긴 실천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책을 읽고 하나씩 적용하다 보면 어느새 달라진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성공하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을 찾고 성공과 행복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네이버카페 ‘역학사랑방’을 찾는 16만 회원의 후기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답답하거나 인생에 대해 궁금한 분들에게 강추합니다!”
“나를 알아가고,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는 인생 공부가 되는 수업입니다.”
“모든 것이 명확해진 느낌입니다. ‘왜 그러한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마음을 그대로 읽어내는 기분, 이제 확신이 생겼습니다.”


역학사랑방의 16만 회원이 기다려온 멘토 하늘산의 새로운 책. ‘날아가는 용을 타는 방법’이라는 제목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책이다. 저자를 만난 사람들은 현실을 돌아보고,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소중한 인연을 맺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긴 시간 동안 연구하고 경험한 것들을 담아냈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에서 용기를 잃고 방황하는 시기,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순간을 만난다. 이 책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극복하고 한 발짝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게 한다. 용은 꿈과 목표를 뜻한다. 용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저자는 역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내면의 힘을 발견하고 진정한 용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을 통해 힘을 얻고 용이 날개를 펼쳐 자신의 길을 찾아 날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역학사랑방’은 함께 소통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힘이 되어주는 커뮤니티이다. 이 책은 누구나 겪는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삶을 잠시 멈추게 되는 순간에 그러한 마음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힘을 키워준다. 저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신적인 힘을 키우고 자신을 지키며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하기를 바란다.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


염무웅 저 / 28,000원 / 창비


한국문학계의 거장 염무웅, 60년 비평활동의 결산
‘우리 것다운’ 문학을 향한 치열한 탐구와 깊이 있는 통찰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이자 우리 문학비평의 ‘살아 있는 역사’ 염무웅이 비평활동 60년을 기념하는 새 평론집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을 출간했다. 한국 근현대문학에 대한 놀랄 만한 해박함을 바탕으로 작품 이면에 놓인 작가 개인의 삶과 시대의 명암을 종횡으로 엮어 통찰하는 저자의 비평문은 우리 문단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 지 오래다.
9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평론집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1960, 70년대 작품활동을 시작해 고단한 시대에 힘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당한 문학적 평가를 겨냥한 글들이 그 한 축이다. 민족과 민족문학,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오랜 숙고와 성찰이 빛나는 글들이 다른 한 축을 이룬다. 남북작가대회와 국립한국문학관 설립 등 우리 문학사에 획을 긋는 사건을 현장에서 경험하며 정리한 글들은 문학비평과 더불어 평생 활발하게 현실 참여를 병행했던 저자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각 부 끝에 실린 후배 평론가들과의 인터뷰는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저자가 마주한 우리 출판계와 문단의 생생한 일화와 더불어 현대시의 난해함, 독자에게서 소외되어가는 비평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 등을 담고 있는 귀한 읽을거리이다. 굴곡 많은 역사 속에 일그러진 우리 문학사를 ‘우리 것답게’ 재구성하고자 하는 한결같은 비평 정신을 느낄 수 있다.

독자에게 소외된 비평을 구출해
한국문학의 ‘있어야 할 모습’을 제시하는 빛나는 지성

전체 3부로 구성된 이번 평론집의 1부와 2부는 1945년 해방기부터 1960, 70년대에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들을 주로 다룬다. 사회와 개인이 모두 고난의 역사에 휘둘려 삶이 ‘팍팍한 사막 같던’ 시기에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며 독자에게 위로를, 때로 용기를 전해준 이들로, 김수영·강민·민영·신경림·김지하·이성선·김남주 등이다. 이들 평문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정밀한 작품 읽기와 함께 작품이 쓰인 시간적·공간적 배경, 당시 작가가 처한 개인적·사회적 상황을 두루 살펴 작품을 읽으면서 그 시대의 한 장면을 마주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필치다. 분단과 월남, 전쟁과 피난의 역경을 헤치고 평생 고된 노동으로 삶을 일구면서도 “안으로 타오르는 정신의 오연함으로”(31면) 빛나는 시세계를 이룩한 민영 시인의 시전집 서평 「뿌리 뽑힌 자의 노래」는 시인의 생애 고비와 그때마다 쓰인 작품,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엮어 시의 역사성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보여준다. 동시대 작가와 작품을 풍부하게 참조하며 문단 상황과 현대사, 개인적 일화를 곁들임으로써 독자가 그저 작품을 읽는 수동성에서 벗어나 그 작품이 놓인 시공간을 직접 살아보게 이끄는 글들이 여러편이다.
이런 특징은 김지하·신경림·송기숙 등 저자와 긴 시간 교류했던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다룰 때 더욱 선명하다. 「시인 김지하가 이룩한 문학적 성과와 남긴 유산」은 감옥 자체였던 유신체제하에서 문화운동의 새 길을 연 김지하 활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중요한 국면마다 시인의 내면으로 들어가 작품을 해석한다. 그럼으로써 가볍게 떠도는 세간의 평가를 넘어 생애 내내 시대와 맞섰던 한 예술가의 삶에 깊이 공감하게 만든다. 「송기숙의 실천적 삶과 문학적 성취」 「오늘 다시 호출된 김남주」는 모두 삶과 작품으로 시대와 함께 호흡한 작가와 작품에 대한 경의를 바탕으로 작품세계의 특장과 한계를 객관적으로 평하며 진정한 비평의 자세를 보여주는 글들이다. 「신경림 시인과 헤어지는 시간」은 다소 결을 달리한다. 시인의 임종과 장례의 순간, 그리고 이 시기가 지나 작품세계를 개관한 글들이 차례로 이어지며 이 ‘국민 시인’에 대한 한없는 애도와 애정을 곱씹게 한다. 1970년 가을 잡지 편집자로 시인의 시를 『창작과비평』에 소개하고, 처음 만나자마자 어떤 문제를 얘기하든 “금방공감이되었고,말로나타내기이전에감정으로통”했던(181면) 50여년이 시인의 삶과 시세계에 대한 정밀하고 깊은 이해로 표현되어 독자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3부에 묶인 것은 저자가 서문에서 이 책의 “또 하나의 주제”라고 말한 민족문학(론)과 이 문제의식을 연결, 확장한 글들이다. 이는 물론 지난 시대 주장의 되풀이가 아니다. 민족/민족주의가 한편으로 배제와 혐오의 무기가 되고 다른 한편 세계화의 물결 속에 사실상의 개념적 해체를 맞이하고 있지만, 분단 상황이 해소되지 않은 우리로서는 여전히 거기에서 취할 것은 취하면서 새로운 제국주의 시대를 헤쳐가야 한다는 뜻이다. 「민족문학의 시대는 갔는가」를 비롯한 여러 글과 발언에서 저자는 식민지문학관의 극복을 위해 근대문학 형성기에 활동한 작가들을 단칼에 자르듯 친일과 저항으로 구분하지 말고 진정으로 계승할 문학적 유산을 섬세하게 분별할 것을 거듭 요청한다. 소설 『임꺽정』에서 왜 모든 등장인물이 지역과 출신 계급에 상관없이 점잖은 교양어를 쓰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답을 찾아가는 글 「소설 『임꺽정』의 언어에 대한 논란」 또한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 표준어와 정서법 규정이 미비하던 시기 조선 팔도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언어’를 추구한 작가의 의식적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 저자가 도달한 결론이다. 일제와 서구의 압도적 영향 아래 신문물을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소화하고 ‘우리다운 예술’을 꽃피우고자 분투한 이들을 되풀이 조명하는 가운데 저자는 우리 문학의 ‘있어야 할 모습’을 전하고자 한다.
또한 이 책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이사장, 국립한국문학관 초대 관장 등 글로만 아니라 실천으로 문학사의 현장에 참여한 저자의 행적을 증언하는 글들이 함께 실렸다. 오늘날은 꿈같이 여겨지지만 언젠가 벼락처럼 재현될지 모를 남북작가대회(2005.7.)가 확정되어 감격 속에 그 의미를 짚어본 글 「남북작가대회의 성사(2005.7.)에 즈음하여」와 우리 문학계의 숙원 사업이던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의 역사적 의미를 고찰한 글 「국립한국문학관에 대하여」가 그것이다. 각 부 끝에 실린 후배 평론가들과의 인터뷰에서 펼쳐지는 1960, 70년대 문단사, 독자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가짜 난해시’와 설익은 비평 풍토에 대한 비판은 다시없을 조언으로 다가온다. 더욱이 3부 끝의 두 인터뷰는 1970, 80년대 우리 문학운동·문화운동의 기록으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1964년 비평활동을 시작한 이래 한국 현대문학의 최전선에서 우리 문학의 지평을 넓혀온 평론가 염무웅. 문학평론가, 출판편집자, 교수, 번역가 등 다양한 활동을 겸해온 그이기에 염무웅의 평론에는 언제나 일상적인 삶과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삶과 글로 역사와 함께 호흡한 작가와 작품에 대한 경의를 넘어 한국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저자의 글은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을 이토록 총체적이고도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문학에 대한 저자의 치열한 탐구와 애정 어린 경륜은 앞으로 우리 문학이 나아가야 할 귀한 본보기가 되어줄 것이다.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

남현지 저 / 12,000원 / 창비


“이 무수한 우주에 계속해서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절망도 슬픔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단단하고 안전한 시적 공간의 등장
겹겹이 쌓인 생의 조각들 속에서 선명한 오늘을 포착하는 예리한 시선
2021년 창비신인시인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남현지 시인의 첫 시집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이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언뜻 수월하게 읽히는 말을 맵시 있게 엮어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고 “생활에 깃드는 외딴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침착하게 궁리하는 이의 면모가 근사하게 드러났다”는 평을 받았던 시인은 착실히 다져온 자신만의 고유한 화법을 펼쳐 보인다. 등단 3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에서 시인은 화려한 수사보다는 담담하고 직접적인 일상의 언어로 삶의 익숙한 풍경들을 불현듯 낯설게 감각하도록 그려낸다. 차분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불가해한 삶의 순간순간들을 응시하는 시편들은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삶의 존엄이 무너지려 하는 자리에서 “손쉬운 방법으로 뭉뚱그려놓은 세계가 어떤 고통으로 제각각의 세부를 가시 돋치는지”(유계영, 추천사)를 이야기하며 삶의 본질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에 가서 닿는다.


어두운 곳을 떠돌던 외로운 혼잣말이
시가 되어 멀리 날아갈 때

생활 속의 소소한 경험들로부터 시작하여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수기”(전승민, 해설)로 써내려간 남현지의 시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사뭇 쓸쓸한 기운이 감돈다. 시인은 “혼자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밤이 계속”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못할 것”(「오늘 서울 날씨」) 같은 세계에서 우리의 삶은 안녕한지 묻는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는 아무리 조심하고 “신중해도/문제가 생길 수 있다”(「거래처에서 배운 것」)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시인은 고통 가득한 세계의 흐름이 바뀌기를 바라지만 때로 현실은 들끓는 “고뇌, 열망, 후회"(「피서」) 앞에서 눈을 감거나 간절한 “기도에 가까웠던 것을/자기계발식으로 다시 작성”(「워크숍」)하도록 만든다. 결국 남현지 시의 화자는 “깜깜해질 때까지 자신을/종일처럼”(「오늘의 기도」) 지켜보기를 택하며 자아가 지워져가는 한복판에서 깊은 사색의 결과물들을 건져낸다.
이 화자는 수많은 고뇌의 밤을 건너오며 “밤마다 번영을 꿈꾸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우주를 떠돌고 고래가 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꿈은 늘 “적절하게 실패한 채로 끝”나기 마련이지만 시인은 쉽게 낙담하지 않는다. “이런 꿈이라도 사라지지 않길 바라면서” 차분히 “뜨거운 아침 햇살을 맞이”(「꿈의 번영」)하겠노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시인은 냉소에 빠지지 않고 삶을 긍정할 때에 생기는 일들을 상상하고 자신의 안에 갇힐까봐 두려워하며 다른 세계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나아가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우리가 같은 영혼을 가졌다고/지금부터 믿어버릴 것”(「하나의 문만 열린다면」)이라 기대한다. 결국 시인이 열망하는 것은 바로 “분별 없이는 싸움도 없다는/평화가 함께하”는 곳에서 망설임 없이 “즉각적으로/사랑”(「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하는 일, “자신을 인정하는 데서”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워크숍」)는 믿음이 훼손되지 않는 세상이다.

“오늘 네게 닿지 않고 떨어진 눈이
다시 눈으로 돌아올 겨울의 미래”

“이웃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도/아침이면 연어가 도착”(「전자랜드」)하는 기괴한 세계의 실상을 직시하며 시인은 우리의 삶은 건강한지, 세계는 평화로운지 다시금 묻는다. “이상한 춤을 추는 세계”(「우리가 작고 어두운 것이었을 때」)의 한복판에서 시인은 아늑한 평온과 건강한 삶을 도모한다. “고통 없는 세계”(「빛의 생산」) 같은 것은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을지라도 때로는 장난스럽게, 때로는 애통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계속해나가며 고통과 절망 너머의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어본다. 남현지 시의 화자를 따라 이곳저곳을 누비다보면 지나간 불행을 잊기 위해 애쓰면서도 “그 모든 시간이/나의 선택이었다고” 받아들이면 남은 날들을 충실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는 내일의 가능성이 어느새 마음 가득 차오른다. 시집을 읽어나가며 우리는 감추어져 있던 내밀한 이야기가 발화되는 환희와 “우리 자신의 고통을 지켜볼 수 있는 담대한 용기”(추천사)를 얻게 될 것이다.









노벨문학상의 도전, 한강의 탄생

이봉호 저 / 17,000원 / 북오션


#한강 작가, 문학의 새로운 혁명
#문학으로 세상을 바꾼 놀라운 여정
#노벨문학상을 넘어 한국문학을 새롭게 정리하다
#한강과 함께 성장하는 우리 문학의 흐름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의 쾌거!
한강 작가의 놀라운 여정

저자인 문화평론가 이봉호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강 작가의 모든 작품을 쉽고 흥미롭게 정리했다. 《소년이 온다》부터 《채식주의자》, 《흰》까지 한강 작가의 전 작품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한다. 특히 한국문학의 역사적 흐름을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별로 생생하게 정리하여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과정부터 한강 작가의 문학적 여정까지 일반 독자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세계를 감동시킨 한국문학의 힘
한강 작가의 전 작품을 쉽게 흥미롭게 정리한 책!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받은 한강 작가의 문학 세계를 심도 있게 조명한 책이 출간됐다. 이 책은 노벨상의 시초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로 시작해, 한국문학의 흐름을 정리하고, 한강의 전 작품들을 보여줌으로써 문학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모두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친절한 문학 안내서다.
저자는 한강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을 비롯해 그의 전 작품을 정리했다.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문학에 더 가깝고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 책이다. 복잡한 문학 이론이나 학술적 접근 대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해설로 한강 작가의 문학 세계를 탐험한다.
또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문학의 변천사를 시대별로 흥미롭게 풀어내며,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와 한강 작가의 문학적 성취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냈다. 문학에 관심은 있지만 어렵게만 느껴졌던 독자들에게 딱 맞는 책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한국 현대문학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








증명과 변명

안희제 저 / 18,000원 / 다다서재

 
‘이대남’ 혹은 ‘잉여’… 동질적이고 단일적인 존재로 규정되었던 한국 청년 남성. 『난치의 상상력』 『망설이는 사랑』의 작가 안희제가 한국 사회에서 폭력과 차별의 주체로 기능할 뿐 서사를 갖지 못하는 청년 남성의 생애사를 다시 쓰고자 한다. 『증명과 변명』은 오랫동안 우울과 강박에 시달리다 스스로에게 시한부 선고를 내리고 죽음을 계획한 20대 남성 우진과의 내밀한 대화를 통해 한국 사회가 구조화하는 전형적인 청년 남성의 삶을 그려내는 동시에 평범하게 살고자 했던 한 청년이 사회로 진입하며 어떻게 희망을 잃고 좌절해가는지 추적한 기록이다. 문화인류학, 사회학, 철학, 정신분석학 이론에 기대어, 특히 퀴어 이론의 언어를 빌려 친구를 이해하고 분석하려 한 이 작업은 망설임과 고뇌로 가득하지만 저자는 절실한 마음으로 세계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이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고 젠더, 계급, 세대에 대한 이야기이며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 청년 남성의 삶에서 우울과 강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난치의 상상력』 『망설이는 사랑』 안희제 작가 신작
권김현영, 조문영 추천!

증명해야 살아남고 실패해도 변명할 수 없는 사회
소수자의 언어로 한국 청년 남성의 서사를 다시 쓰다

‘이대남’ 혹은 ‘잉여’… 동질적이고 단일적인 존재로 규정되었던 한국 청년 남성. 『난치의 상상력』 『망설이는 사랑』의 작가 안희제가 한국 사회에서 폭력과 차별의 주체로 기능할 뿐 서사를 갖지 못하는 청년 남성의 생애사를 다시 쓰고자 한다. 『증명과 변명』은 오랫동안 우울과 강박에 시달리다 스스로에게 시한부 선고를 내리고 죽음을 계획한 20대 남성 우진과의 내밀한 대화를 통해 한국 사회가 구조화하는 전형적인 청년 남성의 삶을 그려내는 동시에 평범하게 살고자 했던 한 청년이 사회로 진입하며 어떻게 희망을 잃고 좌절해가는지 추적한 기록이다. 문화인류학, 사회학, 철학, 정신분석학 이론에 기대어, 특히 퀴어 이론의 언어를 빌려 친구를 이해하고 분석하려 한 이 작업은 망설임과 고뇌로 가득하지만 저자는 절실한 마음으로 세계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이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고 젠더, 계급, 세대에 대한 이야기이며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죽음을 계획한 친구와 인터뷰를 시작하다
이대남 혹은 잉여… 한국 남성에게는 서사가 없다?

수능 준비 과정에서 시작된 우울과 강박으로 오랫동안 고통받다가 스스로 ‘K-타임라인’이라고 칭한 ‘대입-연애-군대-취업-결혼’의 생애 주기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는 우진. 그는 좌절을 거듭하다 결국 자신이 정한 시일 안에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생을 끝내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른다. 십년지기인 우진의 폭탄선언을 듣고 저자는 친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이 책을 쓰기로 한다.
‘이대남’, ‘여혐’, ‘청년’, ‘시민’… 한국 사회는 청년 남성을 여러 방식으로 호명한다. 한국 청년 남성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와 대척점에 놓이기도 하고, 때로는 ‘정상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떠맡기도 한다. 청년 남성들은 ‘학벌’, ‘군복무’, ‘취업’, ‘연애’ 같은 몇 가지 틀을 기준으로 스스로에게 점수를 매기고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배제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잉여’, ‘루저’ 같은 말로 자신을 명명한다. 청년 남성들이 자신의 삶을 설명할 때, “그 이야기들은 기괴할 만큼 비슷해 보인다”. 저자는 한국 “남성들에게는 서사가 없다”고 말한다.
동질적이고 단일적인 존재로 규정되었던 한국 남성의 서사화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저자는 “너무 평범해서 책으로 만들어질 가치가 없다”는 걱정과 함께 “청년 남성들이 연루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지만 청년 남성에 대한 다른 해석과 비판을 하기 위해 이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친구 우진과 장시간 나눈 대화를 통해 저자는 한국의 교육 정책, 성차별, 금융 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한 사람의 삶에 켜켜이 쌓여 초래하는 결과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는 연구를 위해 친구를 섭외한 인터뷰가 아니라 생각이 다른 친구를 이해하기 위해 저자가 “배운 것들을 동원”하는 과정이다.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한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사회가 필요한 것이다.

끊임없이 증명을 요구하는 사회의 이면
‘보통의 삶’에 대한 낙관은 어떻게 고통이 되는가

우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증명’이다. 자신의 매력을 증명해야 하는 연애, 학습 능력과 노력을 증명해야 하는 수능, 그리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 증명인 주식. 저자는 우진과 연애, 수능, 군대, 주식 등을 주제로 긴 시간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청년을 절망과 체념에 이르게 한 이 ‘증명 사회’의 모순적인 욕망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성에게는 순결을, 남성에게는 경험을 요구하면서도 이성 간의 연애를 종용하는 섹스중심사회에서 배제된 모태솔로 남성이 어떻게 여성을 비인격화하는 ‘이상한 놈들’이 되는지, 단 한 명의 1등을 제외한 모두를 패배자로 만드는 시험 사회가 어떻게 개개인에게 자기책임론을 주입하며 학벌로 계급을 만드는 괴물들을 키워내는지, 군대 내에서 ‘폐급 신병’을 선별하는 과정을 통해 군대가 어떻게 자신이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피해자로 만들어야 하는 ‘소극적 가해자들’을 양산해내는지를 저자는 지적한다.
오직 ‘좋은 대학’이라는 환상을 좇으며 이어간 수험 생활은 우진에게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기며 평생 따라다닐 우울과 강박을 남겼다. 구체적인 목표가 아니라 그저 ‘좋은 대학’에 진학하면 모든 고통이 끝날 거라는 막연한 낙관은 성공 혹은 실패만으로 삶을 정의하는 사회의 명령과 만나 우진이 여섯 번의 수능을 보게 만들었다. 대입 실패와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거듭된 연애 실패로 이어졌고, 만족스럽지 않았던 대학을 자퇴하고 시작한 주식에서 타고난 잠재력을 발휘하며 성공을 거두지만 매일 새로운 장이 열리는 주식은 그에게 ‘매일 치러야 하는 수능’일 뿐이었다.
좋은 대학에 가야 행복을 생각이라도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수능을 준비했다는 우진의 말은, 아직 의미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의미는 돈을 번 뒤에 생각해도 된다, 하는 주식 투자에 대한 우진의 말과도 이어진다. ‘정상적인 삶’, ‘보통의 삶’이라고 일컬어지는 삶들-연애하고 결혼한 사람들, 능력 있는 가장들, 수험 생활에 성공해 명문대에 진학한 친구-은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막연하기만 한 ‘성공’에 대한 희망을 주입한다. “‘정상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럭저럭 괜찮은 실패, 혹은 나만의 것이 아닌 실패에 대한 상상력을 차단한” 것이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청년 남성이 자신의 언어나 욕망을 발견, 혹은 발명할 기회 자체를 포착하지 못하거나 포기하는 이유다.”

경계에 서서 바라본 망설임의 기록
자긍심이 아닌 수치심으로 만들어갈 세계를 위해

저자는 친구의 삶을 기록하면서 “지금 한국에서 살아가는 청년, 특히 청년 남성의 삶 안에서 어떻게 우울과 강박이 만들어지는지, 그것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어떻게 좌절되는지”를 이해하고자 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자가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이성애자 남성인 우진은 분명 소수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타인의 눈에 안락해 보이는 조건을 갖춘 사람의 “마음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마모되면서 실존적 빈곤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또한 “사회가 그어둔 직선과 우진이 들어맞지 않는 지점”들을 분석하기 위해 저자는 퀴어 이론을 가져온다. 소수자의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지는 한국 청년 남성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해보기 위한 시도이며, “위태로움이나 취약성 혹은 ‘불행’을 포착”하는 데에는 퀴어 이론이 적절한 언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이자 크론병 당사자이며 장애인권과 소수자 이슈에 발언해온 저자는 SKY를 졸업한 중산층 청년 남성이라는 정체성도 갖고 있기에 내부자도 제3자도 아닌 자신의 위치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나 내부도 외부도 아닌 경계에서 발화한 질문이기에 그 깊이와 파장은 더욱 커진다. 저자는 이 책이 ‘망설임’이라는 태도에서 출발하길 바란다. 매 장 하나의 주제로 우진과 이야기를 나눈 글의 앞뒤에 ‘○장에 앞서’와 ‘○장에 부쳐’라는 거대한 각주를 붙인 이유다. 특히 ‘○장에 부쳐’는 논리라는 무기로 무장한 글쓰기가 위험한 프레임을 만드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인터뷰이 우진에게 준 반박의 무대다. 인터뷰어, 글쓴이로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권력을 방지하고자 함이며, 더욱 ‘윤리적인 대상화’를 고민하기 위함이다. 저자는 우진과 마찬가지로 한국 청년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자신이, 자신과 우진을, 나아가 자신과 한국 청년 남성을 구분 짓기 하려는 욕망을 글에 드러내는 것을 경계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비판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우진이 이 책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내 잘못이다”이다. 실패와 좌절을 거듭 겪으면서도 한순간도 사회를 원망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우진에게 저자는 끊임없이 말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자기 잘못이라고 착각하는 그 생각조차 이 사회가 주입한 것이라고.
이 책의 기획은 저자가 2022년 발표한 「질병갓생」이라는 칼럼의 마지막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안의 수치심을 직면할 때만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이 열린다고 나는 믿는다. 자긍심이 아닌 수치심이 만들어갈 세계를 상상한다.” 세대, 젠더, 빈부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해진 시대에 개개인의 상처, 그리고 이 사회의 손상과 균열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세상은 조금씩 진보할 것이다. 이 책이 그 변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이 세상의 우진들이 부디 ‘그럭저럭 괜찮은 실패자’로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