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유홍준 저 / 22,000원 / 창비
“그의 문장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그가 걸은 곳마다 이야기가 피어난다”
한국의 대표 글쟁이, 국보급 역마살
유홍준이 인생만사 답사로 돌아왔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이 30여년만에 산문집으로 독자를 찾아왔다. 문화유산 전도사, 문화재청장 등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는 500만 부 판매의 신화를 쓴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수십년 동안 베스트셀러 작가의 자리를 내려놓은 적 없는 유홍준의 글쓰기 비법과 그의 ‘문장수업’의 이력을 낱낱이 공개하고, 신문 등 다양한 지면을 통해 발표해온 유홍준의 산문 중 백미를 엄선해 묶어 시대와 호흡하는 지성인의 고뇌와 서정을 느낄 수 있다.
작가 스스로 ‘잡문’이라고 말하는 이 글들은 길지 않은 분량 속에서도 촌철살인의 메시지가 빛을 발하며 유홍준의 인간미 넘치는 매력과 특유의 입말을 살린 문체가 글에 윤기를 더한다. 금연 결심을 공개적으로 선언해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고별연」에서는 복잡한 세상사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유머감각과 인문정신이, 50년 지기 홍세화·김민기 등을 떠나보내며 쓴 추도사에서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세월을 뛰어넘은 우정이, 자신의 주례 선생인 리영희 선생에 대한 회고에서는 질곡 많은 현대사 속에서도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지식인들의 교류가 감명 깊게 펼쳐진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글쓰기 비법뿐만 아니라 삶에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누구보다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유홍준의 태도를 통해 인생의 지혜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사라져가는 존재는 말이 없다
정의동 저 / 18,800원 / 어티피컬
“멸종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멸종동물 조형작가 정의동이 전하는 생명과 예술, 인간의 이야기
소외된 존재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 이정모, 김선우 추천 ★★
6차 대멸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멸종의 공포가 피부까지 전해진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멸종 이전에 이미 많은 생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기관과 단체들이 생물종 보호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많은 종들이 그 보호에서조차 배제되어 있다. 〈하트시그널〉을 통해 ‘멸종동물 조형작가’로 알려진 정의동은 주로 금개구리, 남생이, 상괭이 같은 멸종위기의 한반도 토종 생물들 모형을 제작한다. 그들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름을 알면 관심이 생기고, 많은 사람의 관심이 모이면 보호를 위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라져가는 존재는 말이 없다》는 작가가 8년간 멸종위기 동물들을 만들면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한 작업일지다. 동물을 사랑하는 소년이 사업에 실패하고 조형작가가 된 순간부터 전시와 판매를 통해 어엿한 작가로 성장해나가는 과정, 코로나19로 일이 끊겨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버텨야 했던 시간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소외된 존재들을 비추는 예술인이 되기까지. 멸종위기 동물을 만들다가 멸종할 뻔했던 한 청년의 드라마틱한 생존일지이기도 하다.
그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예술인의 삶과 고뇌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사연을 통해 생명의 아름다움, 공존의 가치,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한 예술가의 일기를 넘어 소멸의 두려움을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멸종은 당연한 이치가 무너진 결과다”
잊혀진 동물들의 소리 없는 외침
작가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동물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한반도는 불과 100여 년 전까지도 고래의 천국이었고 또 표범과 호랑이의 땅이었다. 고양이 한 마리에 의해 한 종이 멸종되어버린 스티븐스 굴뚝새, 제대로 된 표본 하나 남지 않아 상상 속에서만 그 모습이 존재하는 도도새, 밀렵꾼의 총탄에 죽은 한반도의 마지막 황새부부 등 우리의 관심 밖에 있던 동물들의 사연은 사라짐이란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인간의 탐욕 때문임을 고발한다.
기후변화를 말하면서 멸종을 걱정하지만, 그전에 생물들을 멸종으로 내모는 것은 인간이다. 대부분의 멸종은 생물들의 서식지 파괴가 그 원인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인간의 필요를 채우면서도 동물들을 보호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에 더욱 안타깝다. 지구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하며 생태계를 이루는 곳이라는, 이 단순한 이치를 무시한 결과 가장 약한 존재들부터 사라지는 것이다.
멸종위기 동물들을 대하는 모습이 우리 사회의 진짜 모습은 아닐까? 동물들을 멸종으로 내몰았던 눈빛과 행동으로 사람을 대하니까 사람도 멸종으로 향하는 것은 아닐까? (245쪽)
작가는 폭력 앞에서 사라지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들을 통해 인간의 이기심을 고발하는 동시에 생명의 가치를 역설한다. 생명은 그 자체로 보호받아야 한다.
“이러다가 우리가 멸종하겠다”
젊은 예술인의 좌충우돌 생존기
동물조형을 실제 모습으로 구현하는 일은 복잡하다. 작가는 동물들의 서식지, 멸종원, 생김새, 색상, 질감 등을 면밀히 연구한다. 특히 멸종위기 동물은 실제로 보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과 소통하며 한 종의 동물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한 겹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거기서 나의 무지를 발견하거나 혹은 흥미롭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기도 하는 것 같다. 대상을 깊숙하게 바라보는 것. 그곳에서 내 작업은 시작된다. (50~51쪽)
이책은 성장해가는 젊은 예술인의 고뇌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저자에게 작가라는 직업은 소위 ‘폼 나는’일이 아니었다. 전시회에 나가 무시를 당하고, 사기꾼에게 돈을 떼이고, 악플에 상처받는 일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코로나 팬데믹 기간은 예술인들에게는 ‘대멸종의 시기’였다. 하루하루를 ‘내일은 뭐하지?’라는 생각으로 버텨야 했다. 특히 작가를 힘들게 했던 건 주변 작가들이 하나둘씩 예술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을 보는 일이었다.
예술작가, 특히 조형작가라는 직업은 멸종위기의 소동물들과 비슷한 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동물들 중에서, 그리고 수많은 직업들 중에서 가장 개체 수가 적고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모종의 동질감이 느껴졌다. (224쪽)
작가와예술가의 차이는 무엇일까? 예술이 배고픈 직업으로 인식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만둘까? 이러한 고민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작가의 마음에 남은 건 두 가지다. 작업을 하는 것과 주변 작가들을 돕는 것. 그렇게 개인전과 단체전, 콜라보레이션 활동을 통해 정의동 작가의 작업세계는 깊어지고 넓어졌다.
“넌 혼자가 아니야”
소외된 당신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
멸종에 대한 작가의 성찰은 인간 사회로 확장된다. 수많은 멸종 이야기를 연구한 작가는 멸종을 ‘잊혀짐’의 다른 말로 해석한다. 그리고 잊혀짐은 ‘소외됨’ 이후에 오는 것이다.
존재는 언제 사라지는가? 잊혀진 순간부터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라짐이 쌓이면 그것이 곧 멸종이다. (176쪽)
그렇게 작가의 시선은 모든 소외된 존재들을 향한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 쓸쓸하게 고독사를 맞이하는 사람들, 조용히 꿈을 포기하는 예술가들. 멸종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종에서도 소외된 채 사라져가는 존재들이 있다. 멸종이 집단의 일이라면 소멸은 개별 존재의 일이다. 단위만 다를 뿐 같은 현상이다.
점점 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철저히 고립되어 홀로 생을 마감하는 청년들과 노인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소외된 존재들이 있었다. 결국엔 인간도 동물이 아닌가. (14쪽)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이러한 통찰은 멸종의 시작 단계에 선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인’이라는 종은 왜 감소하기 시작했을까? 왜 동물들이 사라져가는지를 들여다보면 왜 인구가 감소하는지가 드러난다. 생물들은 서식지 환경이 파괴되면 서서히 사라져간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그들을 향한 반응이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경쟁에서 밀려난 너희들 잘못이 아닌가’와 같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이상 그 어떤 해결책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정의동 작가는 잊혀진 동물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외된 존재들에게 말한다. 너희 잘못이 아니라고, 우리가 너희를 잊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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