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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신간 도서 소개(종합) - 매주 업데이트 됩니다.
등록일
2024-09-25
조회수
263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저 / 18,000원 / 창비


창경궁 대온실의 비밀을 둘러싼 장엄한 서사
소설이 줄 수 있는 최대의 재미와 감동을 만나다
마침내 탄생한 김금희의 역작!
마음에 이는 무늬를 섬세하게 수놓으며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증명해온 소설가 김금희가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선보인다. 이 작품은 동양 최대의 유리온실이었던 창경궁 대온실을 배경으로, 그 안에 숨어 있는 가슴 저릿한 비밀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려는 신념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작가가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15년 만에 처음 선보이는 역사소설로, 김금희 소설세계를 한차원 새롭게 열며 근래 보기 드문 풍성한 장편소설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작이다. 창경궁과 창덕궁을 둘러싼 자연에 대한 묘사, 한국 최초 유리온실인 대온실의 건축을 아우르는 역사, 일제강점기 창경원에 감춰진 비밀, 오래된 서울의 동네인 원서동이 풍기는 정취,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작품은 소설이 줄 수 있는 최대치의 재미와 감동을 독자에게 선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써내려가는 ‘수리 보고서’는 건축물을 수리하는 과정을 담은 글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아픈 역사와 상처받은 인생의 한 순간을 수리하고 재건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가피하게 경험할 수밖에 없는 어떤 마음의 상처는 건축물을 구성하는 필수요소, 마치 문고리나 창틀이 집을 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소재인 것처럼 삶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작가는 이야기하는 듯하다. 두려운 나머지 잊고 묻어두었던 과거를 다시 마주하게 된 주인공이 보고서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때 이 방대한 이야기를 따라온 독자는 이 작품을 읽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마음의 성장을 실감하는 동시에 가슴 찡한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100년의 시간을 아우르며 몰아치는 매혹적인 이야기

30대 여성 ‘영두’가 창경궁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를 기록하는 일을 맡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두는 석모도 출신으로, 2003년이던 중학생 때 창덕궁 담장을 따라 형성된 서울의 동네인 원서동에서 유학을 한 경험이 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창경궁’이라는 말을 듣고는 마음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처음엔 그 일을 맡기를 꺼린다. 그곳에서 아주 크게 인생이 꺾인 적이 있었다는 듯이. 그러면서 당시 하숙했던 ‘낙원하숙’의 주인 할머니 ‘문자’와 그 할머니의 손녀 ‘리사’와 함께 생활했던 과거의 일을 가슴 아프게 회상한다.
한편 현재의 대온실 보수공사와 더불어 일제강점기에 대온실을 만든 일본인 후쿠다 노보루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된다. 작가는 이러한 서사의 양 축을 통해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더욱 높이는 가운데 다양한 재미를 선사한다. 후쿠다의 이야기는 무언가에 인생을 걸고 몰두한 한 사람의 오랜 여정을 독자로 하여금 찬찬히 따라가게 한다. 이는 실제 창경궁 대온실 공사의 총책임자 후쿠바 하야토와 그의 회고록을 상황 전개의 축으로 삼고 있으나 많은 부분을 작가가 소설적으로 장면화한 것이다. 작가는 이를 비롯해 창경궁과 연관된 다양한 인물들을 근대의 역사적 장면들과 결부지어 생생하게 형상화함으로써 소설 전반의 흥미와 깊이를 탁월하게 더한다.
현재의 보수공사 중 모두를 놀라게 한 비밀이 땅 밑에서 발견되며 이야기는 반전을 맞는다. 그곳에서 발견된 흔적이 문자와 연관이 있음을 영두는 예감하며 그 일을 파고든다. 그러면서 문자가 겪은 어린 시절의 사건을 알게 되는데… 문자는 현대사의 거친 파고 속에서 평생토록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품고 살아온 인물이다. 영두는 문자가 간직해온 그 오래된 비밀을 파헤치며 자신의 상처와도 올곧이 마주하게 된다. 문자 할머니가 오래전 자신에게 “정신을 차갑게 깨우는 사랑”을 주었듯이, 오래도록 용서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비로소 껴안을 수 있게 되면서. 그렇게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상처로 인한 슬픔을 수리하며 삶을 재건하는 영두만의 기록으로 남게 된다.

철저한 고증과 치밀한 취재로 쌓아올린 압도적인 스케일,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찬란한 목소리

추천사를 쓴 시나리오 작가 정서경이 “크고 작은 사건들이 하나의 장소로 모여드는 이 거대한 이야기”라고 쓴바,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는 나뭇잎에 퍼진 자잘한 잎맥처럼 다양한 군상이 망라되어 있다. 특히 강화에서 함께 자라온 친구 은혜와 그의 딸 산아가 영두와 함께 일상을 보내는 대목은 작가가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제안하는 듯도 보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혼자 남게 된 영두와 공인중개사로 일하며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은혜, 그리고 어린 나이임에도 일찍 철이 들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 산아 세 사람이 함께 밥을 먹고 매일매일의 고민을 나누는 대목들은 이야기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때로는 웃음을 주고 때로는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곱씹게 한다.
영두의 성장을 보여주는 방대한 이야기인 만큼 이 안에는 사랑 이야기도 담겨 있다. 원서동에서 만난 영두의 첫사랑 ‘이순신’과의 일화는 이 작품에 또다른 활기를 부여하며 읽는 재미를 높인다. 어린 날의 수치심 때문에 상처를 주고 놓쳐버린 첫사랑과의 에피소드는 사랑하는 이에게 난생처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인 순간 느낀 설레는 감정, 스스로의 마음도 정확히 알지 못해 타인에게 생채기를 내는 순간의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며 영두의 성장을 촘촘히 따라가게 만든다.
그밖에도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는 건축사사무소의 개성적인 사람들, 그들이 작업하는 건축물의 세부묘사와 그 아름다움 등등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고 재미를 더하는 요소가 군데군데 가득 차 있다. 이는 다양한 목소리를 품으면서 다층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걸출한 장편소설만의 힘이기도 하다.
소설 말미에 붙은 긴 참고자료의 목록은 이렇듯 이야기를 겹겹으로 구성하기 위한 작가의 치밀함을 엿보게 한다. 작가는 이 방대한 자료들을 섭렵하고 그것을 토대로 작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 행간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생생한 목소리를 상상력을 통해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일제의 잔재로 각인되어 환영받지 못했으나 많은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창경궁 대온실은 질곡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은 이들의 숭고한 삶과도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잊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과거의 상처를 딛고 끝내 마주하는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보수공사로 보강되어가는 대온실처럼 상처받은 이들의 삶을 다시 세운다.
들여다볼 자신이 없어 묻어버린 과거의 상처는 결국 해결되지 않은 거대한 공동(空洞)으로 남게 될 것이다. 집을 짓는 목수가 나무를 한켜 한켜 쌓아가듯 그때그때의 슬픔을 들여다보고 다독이다보면 튼튼한 집 한채가 우리의 눈앞에서 빛날지도 모른다. 인생이라는 찬란한 비밀의 집을 우뚝 세운 이 압도적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 귀한 작가로 자리매김할 김금희 소설의 저력을 이제 마주할 시간이다.







빌어먹을 어른들의 세계


브래디 미카코 저 / 김영현 역 / 18,000원 / 다다서재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아이들의 계급투쟁』
브래디 미카코의 세계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밑바닥 어린이집 시리즈’의 탄생!
도덕이 무너지고 다양한 정체성이 부딪히는 사회의 밑바닥
난폭한 아이들과 무기력한 어른들의 참담하고 아름다운 세계


『빌어먹을 어른들의 세계』는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아이들의 계급투쟁』을 통해 영국 밑바닥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온 브래디 미카코의 초기작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전작 『꽃을 위한 미래는 없다』가 동양계 이민자이자 저소득 노동자로서 브래디 미카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뷔작이었다면, 이 책은 저자가 무직자와 저소득자를 위한 자선단체의 부설 어린이집에서 일하며 겪은 일을 적어낸 기록이다. 훗날 출간된 『아이들의 계급투쟁』의 전사에 해당되는 이야기로, ‘밑바닥 어린이집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브래디 미카코를 세상에 알린 계기가 된 글이다. 또한 후반부에 저자 특유의 세계관으로 써내려간 영화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수록했다.

아이들이 던지는 인간의 정상성에 대한 의문
누구도 타인의 삶을 판단할 수 없다


아일랜드 이주민 출신 남자와 결혼해 영국 브라이턴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일본인 브래디 미카코. 트럭 기사인 남편과 살며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던 그는 아이를 출산한 뒤 보육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동네의 한 어린이집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다. 무직자와 저소득자를 위한 자선단체의 부설 어린이집인 그곳에는 가난, 폭력, 방임 등 가혹한 환경에 놓여 있는 아이들이 있다. 툭하면 아이들을 때리고 인종차별 발언과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네 살 제이크, 아기 인형을 거꾸로 매달아놓고 고문하며 즐거워하는 다섯 살 네오, 다른 아이들을 잔혹하게 폭행하는 두 살 리애나, 아버지에게 맞은 흉터가 몸에 가득한 세 살 무스타파, 할 줄 아는 말이 “Fuck!”뿐인 한 살 아기 데이지. 저자는 이곳을 ‘밑바닥 어린이집’이라고 부르며 당장이라도 그만두겠다고 상사에게 하소연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점차 그들에게 애정을 갖게 된다.
『빌어먹을 어른들의 세계』에는 기존의 윤리가 붕괴되고 다양한 가치관과 정체성이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어른들과 그런 어른들의 세계에 휘둘리면서도 단단하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체화된 계급 의식과 인종차별, 그에 따른 체념과 좌절, 경제 상황이 나빠질수록 ‘아래쪽’으로 향하는 분노와 그로 인한 또 다른 갈등. 다면적이고 복잡한 사회 갈등을 다루는 브래디 미카코의 펜 끝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날카롭게 파고든다. 저자는 돈도 명예도 도덕도 미래도 다 잃은 무기력한 하층 인간 군상을 차갑게 관찰하면서도 동시에 누구도 그들을 비난할 권리가 없음을 일깨운다. 일을 하지 않고 세금을 내지 않고 제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고 약물에 의존하는 소위 말하는 ‘망가진’ 인간이라 할지라도 누구도 ‘인간의 쓸모’를 논하며 그의 인생을 비난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밑바닥 어린이집의 아이들은 난폭하고 제멋대로이지만 “‘무릇 인간이란 이래야 한다’는 관념에서 자유롭게 해방”되어 있다. ‘가정은 부모와 아이로 이루어져야 한다, 부모는 서로 성별이 달라야 한다, 아이는 학교에 다녀야 한다.’ 같은 소위 ‘정상성’을 강요하는 사회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아이들의 내면에는 “대단히 드물고 귀중한 것”이 자라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을 쓸모만으로 판단하여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생각 그 너머에 있는 것, 때론 인간의 자유의지로, 때론 존엄으로, 때론 인간애로 읽히는 그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사회를 저자는 개탄한다.

돈에 쪼들릴수록 인간의 분노가 아래로, 더욱 아래로 향하는 것은 보편적인 사실이지만, 이토록 세상이 살벌해지니 귓가에 오래전 나사렛의 일용직 목수가 했던 말이 맴돈다.
“인간에게는 도덕과 신앙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낙오자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중요한 것’이 없는 것이다. 너희는 쓸모없는 인간들이야, 쓰레기야. 그 말 너머에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중요한 것’이다.
-본문 중에서

우리 빌어먹을 어른이 되지 않을래?
쇠락한 세계를 반영하는 영화와 음악들


밑바닥 어린이집에서 일하며 보육사로서 쓴 일기가 1장으로 책의 전반부를 이끈다면, 후반부인 2장은 브래디 미카코가 발표했던 영화와 음악에 대한 칼럼으로 채워진다. 1장과 2장은 전혀 다른 성격의 글이지만 놀랍게도 같은 이야기를 이어간다. 1장이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갈 곳을 잃은 어른들과 잔혹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면, 2장은 쇠퇴와 몰락의 조짐으로 가득한 사회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브래디 미카코는 특히 자신이 가장 아끼는 영화감독 셰인 메도우스의 영화, 다큐멘터리,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30년 전 노동자 계급 청년들이 겪은 비극과 여전한 좌절에 빠져 있는 이 시대 ‘루저’들의 삶을 동시에 조명한다. 대처 정권 시절 지방 도시의 몰락으로 인해 정부의 가축으로 전락한 실업자들과 오늘날 기초생활보장으로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들의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지적하며, 저자는 혼란해진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도덕을 따르는 ‘중산층 어른’이 되든지, 혼돈으로 가득한 길을 나아가며 ‘뭐, 할 수 없지.’라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빌어먹을 어른’이 되든지”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앨트제이, 폭시젠, 슬리퍼드 모즈, 모리시, 제이크 버그 등 동시대 여러 뮤지션들의 앨범을 소개하며 격차와 양극화로 비틀거리는 영국 사회의 암울한 시대상을 읽어내고, 데이비드 보위, 닉 케이브, 스콧 워커, 존 라이든 같은 원로 가수들의 행보를 통해 지나간 시대에 대한 상념에 잠기는 한편, 노쇠와 처연하게 마주하는 예술가의 긍지를 예찬하기도 한다.
여러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예술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거의 모든 글을 관통하는 정서는 ‘쇠락해가는 시대와 마주하는 의연함’이다. 찬란했던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암울할 뿐이지만, 그럭저럭 오늘을 살아간다. 대단한 쾌락도 죽을 것 같던 절망도 모두 지나가고 이제는 노화와 쇠퇴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겠지만 그조차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담담한 각오. 그런 각오를 품고 참담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브래디 미카코는 셰인 메도우스의 드라마 「디스 이즈 잉글랜드 ’88」의 대사를 빌려 말한다.

“하지만 우리 말이야, 빌어먹을 어른이 되지 않을래?”
“좋은 생각이야.”








평생 걷고 뛰고 싶다면 생존근육 3가지만 키워라


이상모 저 / 17,500원 / 전나무숲

 
나이 들수록 중요한 건 근육! 생존근육 3가지만 키우면
생존력, 면역력, 마음 건강을 지키고 노화도 늦출 수 있다!
● 저자는 40여 년간 국가대표급 운동선수와 특수요원들의 체력·건강 담당 교수로 근무하면서 근력운동, 인터벌, 크로스컨트리 트레이닝 등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체력 훈련을 지도했으며, 현재는 한양대학교에서 트레이너를 위한 과학적인 맞춤형 운동 지도법인 ‘PT 지도론’ 강의와 건강운동에 대한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 책은 체력ㆍ건강 지도에 평생을 바친 저자의 연구 성과와 현장 경험이 농축된 일반인을 위한 근력운동 안내서로, 100세 시대에 누구나 ‘생존근육 3가지’만 키우면 평생 걷고 뛰며 ‘평생 젊은이’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 인생의 황금기인 60~70대에 왕성하게 활동하고, 70대에도 마라톤에 도전하고, 100세에도 꼿꼿하게 길거리를 활보하려면 근육이 튼튼하고 심폐 기능이 좋아야 한다. 그러려면 생존근육을 단련해야 한다. 생존근육은 생명활동에 가장 중요한 근육으로, 본능적 움직임을 통해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시키는 근육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생존근육 3가지는 ①앉았다 일어서는 데 필요한 다리 앞부분의 대퇴사두근과 다리 뒷부분의 햄스트링근, 엉덩이의 대둔근, ②미는 데 필요한 어깨의 삼각근과 가슴의 대흉근, ③당기는 데 필요한 등의 광배근을 말한다.

● 생존근육을 단련하면 생존을 위한 에너지를 얻고, 내적·외적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며, 관련된 미세근육들도 함께 단련되어 전반적인 퇴행 및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게다가 허리가 꼿꼿하게 세워지고, 무릎·어깨·허리 관절 통증은 물론 신체적 이상 증상들이 사라진다. 생존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30~40대부터 시작하면 중년에 찾아오는 당뇨병·고혈압·비만·심혈관질환 등이 예방되고, 50대부터 시작하면 60~70대 그리고 그 후에 겪을 수 있는 질병들이 예방되는 등 다양한 건강 효과를 누릴 수 있다.

● 저자가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에 관한 연구와 현장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은 일반인이 생존근육 3가지를 키우는 데는 ‘케틀벨 운동’이면 충분하다. 케틀벨 운동은 근력(근력운동)과 심폐 기능(유산소운동)까지 강화할 수 있어 바쁜 직장인, 주부, 은퇴 후 노후 생활을 하는 사람들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짧은 시간만 운동해도 건강 효과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케틀벨 운동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책에서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케틀벨 스윙, 케틀벨 푸시, 케틀벨 로우를 소개한다.

● 생존근육 단련에 필요한 근육운동의 기본 상식부터 운동 수칙, 스트레칭, 케틀벨 운동 입문자를 위한 적응 운동, 초보 단계의 운동, 그리고 본격적인 케틀벨 운동 3가지와 단련되는 근육까지 상세히 설명한다. 또한 중도 하차 없이 끝까지 운동할 수 있도록 운동 과정에서 생기는 고비를 잘 넘기는 대안까지 소개한다. 누구든지 6개월만 꾸준히 하면 ‘체력 왕’이 될 수 있다.
● 생존근육을 키우면 신체 건강은 물론 불안증과 우울증, 공황장애 등의 정신질환을 이길 수 있는 힘도 길러준다. 저자도 한때 공황장애 등을 겪고 운동으로 극복했는데, 그 경험을 살려 ‘뇌 기능을 건강하게 만드는 5단계 운동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가벼운 산책부터 케틀벨 운동까지 단계별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음 상태에 따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도 세심히 안내하고 있어 꾸준히 하면 정신 건강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살 빼려고 러닝머신만 열심히? ‘이 운동’도 같이 해야 (헬스조선, 2024.03.28.)
근육 줄면 골다공증 위험 증가… 꾸준한 운동·영양관리를 (국제신문, 2024.05.27.)
근력 운동이 ‘세포 폐기물’ 제거… “심장·신경질환 예방” (동아사이언스, 2024.08.26.)
“약 필요 없다… 매일 ‘이것’만 해도 정상 골밀도 유지 (헬스조선, 2024.09.07.)
심혈관·대사질환에는 ‘달리기’보단 ‘근력 운동’이 효과적 (YTN, 2024.09.13.)
걷기만 열심히 한다고?… 효과 배로 올리는 ‘근력’ 운동법 (코메디닷컴, 2024.09.13.)
2030은 나쁜 식습관 버리고, 40대부턴 근육량 사수해야 (동아일보, 2024.09.19.)


이처럼 언론에서도 집중 조명할 만큼 근력운동은 꼭 챙겨야 할 필수 건강법이 되었다.



평생 병들지 않고 활발하게 활동하며
행복하게 사는 노후의 비결, 근력운동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탄생과 성장, 노화, 질병, 죽음의 ‘생로병사’를 거친다. 그러나 노화 과정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질병에 대한 저항력과 노화 속도가 달라진다.
노화를 지연시키고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것은 생애 기간 중 병든 기간을 최소화하여 노후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해준다. 노화는 막을 수 없지만 지연시킬 수는 있으며, 그렇게만 된다면 병들지 않고 행복한 노후를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고 노화 속도를 늦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운동이다. 그중에서도 근력을 키우는 운동이 최우선이다. 근육은 30대 중반부터 매년 약 1%씩 줄어들기 시작해 70대가 되면 20대의 근육량에 비해 25% 이상 줄어들고, 80대가 되면 50%까지 줄어든다. 근육은 움직임을 일으키는 원동력으로, 근육이 없어지는 정도에 따라 움직임도 줄어들고 약해진다. 그러나 근력운동을 통해 근육에 힘이 생기면 움직일 수 있고, 움직일 수 있으면 만병을 이겨낼 면역력이 강화되고 자연치유력이 생긴다. 하지만 근육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고, 각종 질환을 이겨낼 면역력이 약해져서 질병을 달고 살게 되어 삶의 질도 그만큼 낮아진다. ‘근육이 없으면 중증질환자’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근육 감소는 만병의 근원,
생존근육 3가지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근력운동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근육감소증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근육의 핵심 기능이 생명을 유지하는 일이다. 일어서거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등·엉덩이·다리 근육의 협력이 필요하고, 턱 근육과 내장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통해 음식물을 씹고 소화·흡수하여 에너지를 만든다. 산소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호흡근이라 불리는 횡경막근의 움직임이 필요하고, 혈액 순환을 위해서는 혈관 내장근의 수축과 이완으로 혈류를 조절하고 하체 근육의 수축을 통해 하체의 혈액을 다시 심장으로 보내 원활한 혈액 순환과 체온 유지를 돕는다. 이와 같이 근육은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부터 혈액 순환까지 모든 생명활동에 꼭 필요하다. 따라서 근육이 줄어들면 건강은 큰 위협을 받는다.
그렇게 중요한 기능을 하는 근육이 줄어들고 약해지면 여러 가지 건강 문제가 발생한다. 정상적인 활동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근육이 줄어들면 사코페니아(sarcopenia) 또는 근육 감소증이라고 진단하게 된다. 근육 감소는 곧 근력 감소로 이어져 균형감과 보행 능력을 저하시킨다. 그래서 계단 오르기, 물건 들어올리기, 걷기와 같은 일상적인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에너지 소비가 줄어 비만 및 내장비만으로 이어지고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 등 만병의 근원이 된다.
근육 중에서도 특히 생존근육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근육이다. 생존근육은 생명활동에 가장 중요한 근육을 말한다. 즉 본능적 움직임을 통해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시키는 근육이다. 똑바로 서게 하는 척추기립근, 앉았다 일어서는 데 필요한 다리 앞부분의 대퇴사두근과 다리 뒷부분의 햄스트링근, 엉덩이의 대둔근, 미는 데 필요한 어깨의 삼각근과 가슴의 대흉근, 당기는 데 필요한 등의 광배근이 해당한다.
생존근육을 단련하면 생존을 위한 에너지를 얻고, 내적·외적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며, 관련된 미세근육들도 함께 단련되어 전반적인 퇴행 및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게다가 허리가 꼿꼿하게 세워지고, 무릎·어깨·허리 관절 통증은 물론 신체적 이상 증상들이 사라진다. 생존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30~40대부터 시작하면 중년에 찾아오는 당뇨병, 고혈압, 비만, 심혈관계 질환 등이 예방되고, 50대부터 시작하면 60~70대 그리고 그 후에 겪을 수 있는 질병들이 예방되는 등 다양한 건강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처럼 100세까지 건강과 함께 삶의 질이 높은 상태를 누리기 위해서는 움직임을 일으키는 생존근육을 증진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구나 노후에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병들어 간병을 받는 처지에 놓이거나 치매에 걸리는 상황일 것이다. 근육이 감소하면 그런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평생 근육을 관리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60대와 같은 80대가 있는가 하면, 80대와 같은 60대도 있다. 80대에도 60대와 같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려면 이제라도 근력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케틀벨 운동 3가지만 하면
근육도 늘리고 건강수명도 늘릴 수 있다


그러면 어떤 근력운동을 해야 할까? 근육 감소를 막아주면서 살도 빠지고, 질병도 막아주고, 우울증·불안증·공황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에서 벗어나게 해줄 운동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그런데 근력운동은 유산소운동과는 달리 기구를 사용해야 하니, 헬스클럽에 가야 하지 않을까? PT를 받아야 할까? 헬스클럽에 갈 시간이 없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생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 내가 근력운동을 할 수 있을까?
아마 근력운동이라는 말에 이런 걱정이 먼저 드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의 저자 이상모 교수가 남녀노소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간단히 할 수 있고,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케틀벨 운동’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케틀벨 운동은 대포알 모양의 쇳덩이를 손으로 잡고 앞, 위로 흔들면서 앉았다 일어서는 운동으로 엉덩이와 다리 근육, 허리 부위의 척추기립근, 요추와 고관절을 잡고 있는 대요근, 등의 광배근과 승모근, 어깨의 삼각근, 팔의 전완근까지 사용하는 전신 근력운동이다. 여기에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을 한 번에 30회 이상 반복하면 심박수와 폐활량이 높아져 심폐 기능도 향상된다. 계단 오르기도 유산소운동의 효과가 있지만 케틀벨 운동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케틀벨은 기본 4kg부터 36kg까지 2kg 단위로 있어 자신의 체력이나 근력 수준에 맞게 선택해 30~50회 반복해 스윙하는 동작만으로도 근력은 물론 100m 달리기 수준으로 심박수와 폐활량을 늘릴 수 있다. 좁은 공간에서도 강도 높은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케틀벨 운동의 장점이다.
케틀벨 운동을 비롯한 근력운동은 신체를 강하게 하는 것은 물론, 불안증과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이길 수 있는 힘도 길러준다. 저자 이상모도 한때 공황장애와 우울증 등을 겪었는데, 약물치료를 거부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정신질환을 극복했다고 한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 ‘뇌 기능을 건강하게 만드는 5단계 운동 프로그램’을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 운동 프로그램은 1단계인 가벼운 산책부터 5단계인 케틀벨 운동까지 단계별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음 상태에 따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도 세심히 안내하고 있어 꾸준히 실천하면 정신 건강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케틀벨 운동은 스윙 운동만 해도 충분하지만 푸시 운동과 로우 운동을 추가해서 3개월 이상 점진적으로 중량을 늘려가면서 지속하면 누구나 근육이 늘어 체력이 향상된다. 케틀벨 운동으로 앉았다 일어서고 서서 걷고 달리기에 필요한 근육들이 강해지면 70대에 마라톤에 도전하고 100세에도 꼿꼿하게 길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마법소녀 복직합니다

박서련 저 / 17,000원 / 창비

 
 
한겨레문학상, 젊은작가상,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 작가
장르와 시공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이름,
박서련이 초대하는 가장 현실적인 마법세계
카드 빚도 버거운데, 세상을 (또) 지키라고?
돌아온 마법소녀의 좌충우돌 현실 생존기


최초의 고공 농성 노동자 ‘강주룡’부터 삼국지의 등장인물 ‘초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이십대 청년과 거대 로봇 파일럿 오디션에 참가한 여성 로봇공학도까지, 시대와 공간, 실제와 허구, 장르와 장르를 넘나들며 누구보다 다채롭고 생생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내온 박서련의 소설 『마법소녀 복직합니다』가 출간되었다. 창비의 젊은 경장편 시리즈 소설Q의 신작으로, 지난 2022년 동시리즈를 통해 출간되었던 『마법소녀 은퇴합니다』의 후속작이다. 마법소녀에 대한 기존의 정형화된 프레임을 허물고 새롭고 현실적인 마법소녀의 등장을 알린 이 작품은 미국의 대형 출판사에서 유명 번역가 안톤 허의 번역으로 출간(Harpervia 2024)되는 등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그 독특한 설정과 특유의 재기발랄한 스타일을 인정받은 바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전편에서 은퇴를 선언했던 마법소녀가 복직하게 되며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이번 작품에서 박서련은 세계관을 한층 정교하게 쌓아올리는 동시에 청년실업, 주거난, 사이비 종교 등 우리를 둘러싼 여러 사회문제를 날카롭게 짚어내 보이며 그것을 돌파하는 사랑스러운 위트와 상상력의 힘을 십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읽는 이를 이야기 속으로 거침없이 끌고 들어가 앉은자리에서 모든 페이지를 넘기게끔 하는 흡인력은 『마법소녀 복직합니다』가 지닌 마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더러 계속해서 마법소녀 활동을 하라고?
나 때문에 능력을 잃은 마법소녀들 앞에서?”


때는 오래지 않은 시점의 대한민국, 다양한 능력을 지닌 마법소녀가 범죄자를 소탕하고 재난 상황에 처한 시민들을 구조하는 시대. ‘나’는 이와 무관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스물아홉살, 백수, 리볼빙 카드 빚 삼백만원을 감당 못해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 그런 ‘나’에게 예언의 마법소녀 ‘아로아’가 찾아와 달콤한 한마디를 건넨다. 당신은 마법소녀가 될 운명이라고. 그것도 사상 최강, 시간의 마법소녀가! 마법소녀의 힘을 모아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는 단체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이하 전마협)은 ‘나’의 각성을 응원하고, ‘나’ 역시 그 말에 따라 신용카드 모양의 마구(魔具)까지 맞이하며 마법소녀 세계를 탐방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사이 ‘나’ 아닌 누군가가 진짜 시간의 마법소녀로 각성하는 일이 생기고 만다. 하필이면 인류 멸망을 기도하는 소녀 ‘이미래’가. 재앙을 예고한 사상 최강이자 최악의 마법소녀를 막기 위해 모든 마법소녀들이 분투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무력했던 ‘나’가 기적적으로 각성해 그를 저지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나’의 능력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조건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이미래의 능력을 빼앗는 대가로 모든 마법소녀가 마법의 힘을 내어주고 마는 사태가 생기고, 이에 책임을 느낀 ‘나’는 마법소녀 은퇴를 선언한다.
여기까지가 전작 『마법소녀 은퇴합니다』에서 일어난 이야기라면 『마법소녀 복직합니다』는 이 은퇴 선언이 전마협의 의장 ‘연리지’로부터 반려를 당하는 데서 시작한다. 사유는 ‘나’의 마법으로 모든 마법소녀가 마법의 힘을 잃어 전마협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다. 과거 죽으려던 자신을 구해준 아로아까지 합세해 전마협을 지켜달라고 부탁해오자, ‘나’는 어쩔 수 없이 마법소녀 복직을 결정한다. 하지만 전처럼 대가도 모르는 채 무턱대고 능력을 쓸 수는 없는 일. ‘나’는 아로아와 공간의 마법소녀 ‘최희진’의 도움을 받아 능력을 컨트롤할 수 있게 하는 트레이닝을 시작한다.
그렇게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와 마법 트레이닝을 반복하는 일상을 보내던 중, 어느 화학공장에서 유독물질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에 전마협과 함께 투입된 ‘나’는 즉석에서 떠올린 아이디어로 능력을 발휘해 구조 임무를 완수한다. 그런데 임무 성공의 뿌듯함도 잠시, 혼수상태에 빠졌던 피해자들이 깨어나며 유독물질과는 무관한 부작용을 호소하고, 급기야 언론을 통해 ‘나’와 전마협을 고소하겠다고 밝혀온다.
죄책감과 자괴감(그리고 생활고와 주거난)에 시달리며 하릴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나’에게 다시 아로아가 찾아온다. 무작정 출장을 가야 한다는 아로아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어느 외딴 산속에 위치한 ‘극동마법소녀전진본부’ 앞. 아로아는 그곳에서 ‘모든 것의 마법소녀’라 불리는 이를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들어선 극동마법소녀전진본부의 본거지는 어딘가 이상하다. ‘나’와 아로아를 안내해주던 ‘나달’은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 미심쩍고, 비현실적으로 예쁜 모든 것의 마법소녀 ‘안지아’를 둘러싼 이들은 하나같이 사이비 종교에 빠진 신도들처럼 행동하는데……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고 위태로운 가운데, 일단의 바람은 하나다. 아로아를 지키자!


어두운 현실을 뒤집어엎는 생기발랄한 상상의 힘
매지컬 로맨틱 코미디 대활극!

『마법소녀 복직합니다』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주인공의 이름이 비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작중에서 단 한번도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익명성 덕에 더욱 친밀하게 느껴진다. 여타 마법소녀들과 달리 우리의 현실에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그는 카드 빚을 갚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스물아홉살의 백수이자 어렵게 얻은 전세방에서 부조리하게 내쫓길 위기에 처해도 달리 어찌할 바가 없는 세입자이고, 난처한 상황을 무마하려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에 사과하지만 정작 사과해야 할 상황에는 겁을 먹고 얼어붙어버리는 사람이다. 그는 곧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반지하 방에 살며 리볼빙 빚 때문에 끙끙거리는 사람, 그건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 나는 주인공이 나라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나는 주인공이다. 비슷한 곤경을 겪었던 모든 이들과 함께 나도 주인공이 된다.” (작가 노트)

그러므로 이토록 우리와 닮아 있는 주인공이 좌절과 낙담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무릎을 털고 일어나는 모습, 그러고는 ‘내 코가 석 자’인데도 불구하고 “비슷한 곤경을 겪었던 모든 이들”을 외면하지 못해 기어이 손을 내밀고야 마는 모습은 그가 근사한 마법으로 위기 상황을 극복하거나 악의 무리를 단숨에 소탕하는 장면보다도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마법에 가까운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마법소녀 복직합니다』를 통해 박서련이 하고자 하는 일은 분명하다. 그것은 “‘마법’도 없고 ‘소녀’도 아닌 이”에게 “‘마법소녀’가 되는 비결”을, “혐오와 분노로 가득한 세상에 한줄기 핑크빛 빔을 쏘는 방법”(이유리 추천사)을 알려주는 것. 그러니 이 책을 읽고 난 우리는 모두 마법소녀에, “종말론만 있고 맞서 싸울 이는 없는 이 암울한 세계를 밝힐 촛불”(『마법소녀 은퇴합니다』 작가 노트)에 한걸음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어두운 현실을 몰아낼 마법소녀들이 하나둘 깨어나고 있다. 마법소녀의 시대는 머지않았다.











푸르른 날엔 푸르게 살고 흐린 날엔 힘껏 산다

양광모 저 / 15,000원 / 푸른길
 
 
작은 날갯짓이 태풍이 되기를

친근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시어로 사랑받고 있는 시인 양광모의 인생 시집 『푸르른 날엔 푸르게 살고 흐린 날엔 힘껏 산다』가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들을 담은 시들을 모으고, 시인 양광모의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것들을 노래하는 시들을 엮었다. 한편으로는 독자들이 詩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도 가득 담겨 있다. 무엇이든 작은 것부터라도 시작해 행동해 보길 바라며 시인은 “반드시 첫 번째 도미노를 쓰러뜨릴 것”(「그대가 태풍을 원한다면」)이라고 조언한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도전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벽 앞에 서는 것이지만, 시도하기 전의 도전은 너무나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 작은 발걸음이라도 내딛어보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래도 너무 힘에 부칠 때는 소나무를 떠올리자. 소나무의 “그 뿌리가 겪었을 절망과 좌절을 생각”(「소나무를 생각한다」)해 보면 결국은 커다란 바위를 뚫어내고 자신의 자리를 만들었듯이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이 된다고 믿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자고, 나아갈 수 있다고 위로와 격려를 건넨다.

인과율을 믿을 것/작은 나비의 날갯짓이/거대한 태풍을 불러일으킨다는/나비 효과 이론을 신봉할 것/그렇다면 그대의 할 일은/오직 한 가지뿐/그대의 두 팔 높이 들어올려/힘차게 날갯짓을 할 것
「그대가 태풍을 원한다면」 中에서


“지금 괜찮지는 않겠지만, 괜찮아도 됩니다.”

시인은 詩로 살아가 보며 인생을 노래하고자 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밥을 먹으면서, 자연물을 관찰하면서, 시간을 느끼면서 詩로 살아가고 있다. 이번 인생 시집은 시인이 나의 벗, 나의 애인, 나의 스승들이라고 독자들을 칭하며 인생의 많은 굴곡을 겪으며 깨달았던 것을 나누고자 시를 쓰고 모아 선보인다. 시인은 그동안 쓴 1,600여 편의 시 중에서 한 그릇 따뜻한 밥과 국, 슬픔의 눈물을 닦아줄 손수건, 고통과 상처를 치료해 줄 약, 운명에 맞서 싸울 창과 방패,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 가야 할 항구를 찾게 해줄 지혜의 나침반을 모아 한 권의 시집으로 묶었다고 전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인생의 어려움이 있는가, 막막하다고 느낄 때 이 시집을 가슴에 품고 언제든 읽었으면 한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위로해주고 싶고 나아가는 방법을 알려 주고 싶어 했다. 일상의 언어로 삶을 덧칠해 온 시인이 알려주고 싶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나는 몰랐다/인생이라는 나무에는/슬픔도 한 송이 꽃이라는 것을/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펄럭이는 날개가 아니라 펄떡이는 심장이라는 것을/진정한 비상이란/대지가 아니라 나를 벗어나는 것이라는 것을/인생에는 창공을 날아오르는 모험보다/절벽을 뛰어내려야 하는 모험이 더 많다는 것을/절망이란 불청객과 같지만/희망이란 초대를 받아야만 찾아오는 손님과 같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中에서









말문이 막힐 때 나를 구하는 한마디

마티아스 뇔케 저 / 장혜경 역 / 18,800원 / 갈매나무
 
 
 
아,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여전히 대화가 어려운 어른들에게 공개하는
뛰어난 순발력의 비밀

순발력 있는 말솜씨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하는 것이다!
최근 대면뿐만 아니라 비대면에서도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화 통화를 할 때 긴장과 불안, 두려움을 느끼는 ‘콜 포비아’ 증상을 겪는 MZ세대가 10명 중 3명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전화 통화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생각을 정리할 틈 없이 바로 대답해야 해서’라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콜 포비아가 직장 생활에서도 이어져 갈등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타인과의 소통에서 오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다면, 당연히 말하고 응대하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머리를 쥐어짜면 재치 있는 답변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잘못되었다. 순발력 있는 대답의 비밀은 바로 철저한 ‘사전 준비’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순발력이란 ‘더 철저한 준비’의 다른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누구나 순발력을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독일에서 신뢰받는 언론인이자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로 국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많은 독자에게 영감을 준 마티아스 뇔케는 대화법 분야에서 통찰력 넘치는 책들을 다수 펴낸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순발력 있는 말솜씨는 ‘학습’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대화에서조차도 어려움을 느끼는 현대인들을 위해 펴낸 그의 대표작 《말문이 막힐 때 나를 구하는 한마디》는 독일에서 십수 년간 베스트셀러로 호평을 받았다.

살다 보면 바로 그 딱 맞는 말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고, 그로 인해 내가 분명히 옳은 상황에서도 말 잘하는 사람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만다. 특히 직장에서는 상대를 설득할 시간이 많지 않은 데다 날로 거칠어지고 비열해지는 공격에 대응해야 한다. 순발력을 다룬 책과 강의의 수요가 날로 높아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 저자의 말에서

할 말 다 하며 관계의 변화를 가져오는
새로운 대화의 기술

저자는 다양한 대화법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왜 말문이 막히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말문이 트이는지에 대한 여러 단서를 제시한다. 이는 곧 어떻게 하면 뛰어난 순발력을 갖출 수 있을지에 대한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난감한 상황에 놓이면 즉각적으로 맞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두뇌 회전이 빠른 사람이라도 기습 공격을 당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나 순발력 있게 대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 불쾌한 상황에 압도당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또한 순발력이 곧 유려하고 화려한 말솜씨를 의미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핵심은 상황에 걸맞은 신속하고 정확한, 효과 있는 대응이다.
이 책은 순발력을 기를 수 있도록 일상생활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하고도 생생한 상황들을 신(scene)으로 안내하고, 그에 따른 대화의 기술을 설명한 뒤 다시 한번 팁(tip)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함으로써 실전 대응력을 높여준다.

결정적 순간에는 왜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을까?
 
 
불쾌한 상황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인드셋이 먼저다!

scene 1. 〇〇이 자리에 앉아 일하고 있다. 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동료가 한마디 던진다. “〇〇, 책상이 폭탄 맞았네. 대체 언제 청소하고 안 했어요?”
scene 2. “오늘 신문을 보니 여자들이 지도를 잘 못 본다는 게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었더라고요.”
scene 3. 이웃이 괜히 시비를 건다. “어머나, 며칠 사이에 살이 더 찐 것 같네.”

만약 당신이 이와 같은 말을 들었다면 무어라 맞받아쳤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얼굴 붉히며 상대를 인신공격하지 않고도 세련되게 이길 수 있는 한마디 말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터널 시각tunnel vision’이 형성된다. 다시 말해 생각이 단 2가지 가능성으로 축약되는 것이다.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공격할 것인가? 하지만 도망칠 수도, 공격할 수도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머리는 돌아가지 않고, 이렇다 할 대책은 없고……. 자신이 한없이 무능하고 유약해 보인다. 무엇을 하든 좋은 방법이 아닐 것 같다. 마음이 한없이 움츠러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부담스러운 상황이 종결되면 갑자기 눈이 확 뜨인다. 그렇게 떠오르지 않던 대답들이 입에서 술술 흘러나온다. 문제는 때가 너무 늦었다는 것! (48쪽)

아무리 똑똑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일지라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놓이면 상대의 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우리의 뇌는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맞닥뜨리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하는데, 코르티솔 수치가 증가하게 되면 불안 지수가 상승해 생각하고 추론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뇌 기능이 저하된다.
그렇기에 마티아스 뇔케는 언제 어디서든 써먹을 수 있는 여러 대화법을 익히고 연습하면서 ‘마음의 충돌 방지 유리막’을 미리 만들어두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렇게 되면 불쾌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뇌는 유리막을 작동시켜,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대화들을 즉각적으로 떠오르게 해주기 때문이다.
심리학, 뇌과학, 상황 분석력, 인간관계론 등을 비롯, 여러 과학적 이론에 근거한 대화의 기술들은, 무례한 이들에게 말 한마디 하지 못해 돌아서서 늘 상처받기만 하던 선량한 사람들이 세상의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생생한 대화로 구성된 다양한 상황(scene) 제시
→ 현실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솔루션 제공
→ 팁(Tip)으로 정리한 뒤 나만의 대화법 만들기


아무리 재치 있는 말이라도 정작 그 순간에 떠오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또한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내뱉는다면 그 역시 소용이 없다. 《말문이 막힐 때 나를 구하는 한마디》의 저자 마티아스 뇔케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능력이 ‘순발력’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순발력을 기를 수 있을까? 마티아스 뇔케에 따르면 부단한 연습과 훈련, 철저한 사전 준비가 순발력의 핵심이다. 그래서 이 책은 순발력 기르기에 집중하고 있다. 저자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scene)들을 실감 나는 대화로 소개함으로써 몰입을 높이며, 현실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알맞고 명쾌한 대화법을 제공한다. 그런 다음에 팁(tip)을 통해 앞에서 배운 대화법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연습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체화되도록 할 뿐 아니라 실전 대응력을 높여준다.
이 책을 통해 순발력 있게 말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불리한 상황도 단숨에 반전시킬 수 있고, 남들이 하는 말에 끌려다니지 않으며, 갈등을 유연하고 부드럽게 해소함으로써 나의 사회적 평판도 드높일 수 있을 것이다.


무례하고 불합리한 상대에게 맞서
헐뜯지 않으며 우아하게 이기는 어른의 대화법


혹시 주변에 괜한 트집이나 시비를 걸면서 말도 안 되는 비난을 퍼붓는 사람이 있는가? 아니면 ‘칭찬의 탈’을 교묘하게 쓴 채 당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다며 당신을 괜한 화풀이 대상으로 삼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사람을 마주하면 대놓고 싫은 소리는 하지 못한 채 속에서는 부아가 치밀어오를 것이다. 게다가 왠지 상대의 말이 나의 가치와 인격을 훼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도 상대의 악의적인 비난은 나의 존엄성과 자의식을 위협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라 그저 당하고만 있거나, 상대는 오히려 농담으로 한 말인데 괜히 예민하게 대응하는 거 아니냐면서 몰아붙일 때다.
이럴 때 적절한 한마디를 날려야지, 괜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나 화가 치민다고 속마음을 다 내뱉으면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 수도 있다. 《말문이 막힐 때 나를 구하는 한마디》는 제목처럼, 위기 상황에 빠진 나를 구해줄 적절한 한마디들을 안내한다. 눈길을 끄는 대화법인 반박문 기술, 번역 기술 등을 한번 살펴보자.
먼저 ‘반박문 기술’은 신문의 ‘반론문’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 기술은 창의적인 대답을 고민하느라 머리를 쥐어짤 필요가 없다. ‘상대의 그릇된 판단을 바로잡는다’는 원칙을 염두에 두면 된다.
그다음 ‘번역 기술’은 이름 그대로 번역가가 되어 상대의 악의적 공격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상대가 나를 ‘돌머리’라고 비아냥거렸다면, 돌의 특성과 장점에 착안한 ‘주춧돌’이라는 말로 맞서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독설을 달콤한 말로 바꾸는 ‘꿀벌의 혓바닥’ 기술을 쓰는 것이다. 번역 기술에는 상대의 독설을 더 독한 말로 옮기는 ‘독사의 혓바닥’ 기술과 상대의 공격 날을 무디게 만들고 나를 내세우는 ‘외교관의 혓바닥’ 기술도 있다.

‘독사의 혓바닥’은 약간의 과장이 필요하다. 상대의 말을 원래보다 약간 더 악의적으로 해석해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의 말에 숨은 비열함을 끄집어내어 상대의 코앞에 들이미는 것이다. 아무리 둔한 상대도 자기가 지나쳤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확실하게 대꾸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의 무례한 언사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꾹 참아야 할 때 치밀어 오르는 불쾌한 감정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 (148쪽)


어떻게 해야 말문이 트일까?
대화의 고수로 거듭날 9단계 순발력 훈련


저자는 순발력을 기를 수 있는 다양한 훈련법들을 9단계에 걸쳐 체계적으로 소개한다. 특히 비열한 공격을 받았거나 불쾌하거나 난감한 상황에 놓였을 때 유머를 통해 재치 있고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방법을 비중 있게 다룬다. 예를 들어 새로 산 옷을 친구에게 자랑할 때, 친구의 말투에 비아냥거림이 섞여 있다면 어떨까? 상대의 무례한 언사를 그냥 지나친다면,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 상황에서는 상대의 말에 숨은 비열함을 끄집어내어 상대의 코앞에 들이밀어야 한다. 물론 상대가 당장 사과할 수도 있지만, “왜 내 말을 그렇게 해석해?”라며 과민하게 반응하냐는 식으로 몰아붙일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내가 과민한 게 아니라 네 말투가 그랬어”라고 반박하면 된다.

Q가 V에게 시비를 건다. “화장이 너무 진한 거 아닌가? 완전 피에로가 따로 없네.” V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맞아. 환한 웃음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눈물이 있지.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동료가 많아서 말이지.”
문제의 Q가 P에게 또 이렇게 말한다. “자넨 늘 꼴찌를 맡아서 하는군.” P가 대답한다. “맞아.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거든.” (146쪽)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대화의 기술들은 상대가 오물을 투척한다고 해서 나까지 그 오물을 뒤집어쓰는 방식이 아닌, 할 말 다 하면서도 적을 만들지 않는 깔끔하고 우아하며 사회적 지위와 품위를 훼손하지 않는 방법들이다.
이 책이 전하는 순발력 있는 대화법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이상한 말을 내뱉어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거나 결정적 순간에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해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말들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여러 상황에 어울리는 대화법들을 꾸준히 연습해보는 것만으로도 입이 트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지 못해 그에 맞는 적절한 말들을 찾지 못했던 이들이 이 책에 나와 있는 여러 가지 대화법들을 따라 해보고 체화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르게, 좀 더 자신 있는 나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설득해야 하는 비즈니스, 서비스 종사자들에게도 유용한 ‘대화법 지침서’가 되리라 믿는다.








AI영화 제작론

심은록 저 / 28,000원 / 북바이북
 
 
 
장비, 인력, 장소 등 수많은 제작 비용과 절차가 필요한 영화를 개인이 생성형 AI로 만들 수 있는 ‘개인 AI영화 제작 시대’가 도래했다. 『AI영화 제작론』에서는 영화관에 상영된 최초의 AI영화 〈AI 수로부인〉의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200여 개의 생성형 AI를 소개하며 종합예술로서의 영화 제작법을 알려준다. 더불어 일반인공지능(AGI)의 도상에서 21세기 신인류인 ‘호모 AI’의 인간론을 바탕으로 ‘AI영화 이론’을 구축하며, 미래 영화에 대한 청사진까지 제시한다. 『AI영화 제작론』은 생성형 AI 툴의 활용법을 이해하기 쉽게 살펴보고 싶은 일반인이나, AI영화를 제작하고자 하는 영화업계 전문가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이 책의 으뜸 덕목은 저자가 더 이상 그럴 수 없으리만치 자세하며 겸허하게 〈AI 수로부인〉을 만들면서 깨달은 시행착오들과 한계를 전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을 읽다 보면, 저자와 동료 들이 흘렸을 ‘피, 땀, 눈물’이 생생히 떠올라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_ 전찬일(영화비평가, 경기영상위원회 위원장)

총제작 기간 한 달, 총장비 노트북
AI영화 최초 국제영화제 상영작 〈AI 수로부인〉


“이 영화는 한 달 만에, 세 명이 노트북 세 대로 만들었다.”

2023년 10월 AI가 만든 영화 〈AI 수로부인〉이 극장에서 공개됐다. 〈AI 수로부인〉은 AI가 시나리오를 쓰고, 캐릭터를 생성하고, 영상·배경음악·음향효과를 만들고, 수정까지 하면서 전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이 과정에서 최소 52개의 생성형 AI 툴이 사용됐고, 참조한 것까지 합하면 100여 개에 달한다. 바야흐로 장비, 인력, 장소 등 수많은 제작 비용과 절차가 필요한 영화를 개인이 생성형 AI로 만들 수 있는 ‘개인 AI영화 제작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에 발맞춰 생성형 AI 툴을 다루는 도서가 다수 나오고 있지만, 기본적인 사용법을 안내하는 데 그치고 있어 AI영화를 제작하려는 이들에게 영화를 제작할 만큼의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를 감안해 『AI영화 제작론』에는 〈AI 수로부인〉 제작진이 영화를 만들면서 사용한 생성형 AI 툴의 사용법을 비롯해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정보들을 여실히 담고자 했다.

챗봇, 이미지, 영상, 음악, 더빙, 3D까지
200여 개의 생성형 AI 소개

『AI영화 제작론』에서는 〈AI 수로부인〉의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200여 개의 생성형 AI를 소개하며 종합예술로서의 영화 제작법을 알려준다. 1부 ‘서론’에서는 AI영화의 역사와 현주소를 조망하며, 〈AI 수로부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2부 ‘〈AI 수로부인〉 제작 과정과 제1세대 AI영화 툴’에서는 2023년 10월을 기준으로 챗GPT, 빙, 바드, 클로바X, 스테이블 디퓨전, 달리, 미드저니, 젠모, 캣컷 등 생성형 AI 툴을 주로 분석하며, 〈AI 수로부인〉 제작 과정의 노하우와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소개한다. 3부 ‘제2~3세대 AI영화 툴’에서는 2024년 상반기에 나온 빅테크 기업의 생성형 AI 툴을 위주로 소개한다. 4부 ‘AGI 도상에서의 AI영화 이론’에서는 생성형 AI 툴의 진화를 예상하며 ‘AI영화 이론’과 21세기 인간학인 ‘호모 AI’를 간단하게나마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5부 ‘결론’에서는 AI영화의 미래에 대한 문제 제기와 청사진을 제시한다. 더불어 부록에서는 생성형 AI 툴의 발전 향상과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관련 백서를 소개하고, AI영화 제작에 쓰이는 기술의 장단점과 보완점을 짚어본다.

AI영화 제작 과정과 이론적 배경이 담긴
세계 최초 AI영화 전문서

“AI는 예술의 새로운 붓과 팔레트가 될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AI영화의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하자면, 아직 1세대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분야에서 이미 AI 시대에 대해 여러 가지 예상과 우려를 하고 있기에, 이 시대의 AI영화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미래의 AI영화를 그려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AI는 바쁜 세상에 스쳐 지나가며 놓친 것을 상기시켜줄 수도 있고, 소소한 것 뒤에 숨겨져 보지 못했던 것을 드러낼 수도 있다. AI가 이러한 것들을 담아 영화로 구현하여 우리 모두 향유할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꿈꿀 수 있는 미래의 AI영화이다. 『AI영화 제작론』은 생성형 AI 툴의 활용법을 이해하기 쉽게 살펴보고 싶은 일반인이나, AI영화를 제작하고자 하는 영화업계 전문가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AI영화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려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시밥을 지으며

진선미 저 / 14,000원 / 사도행전

 
 
 
삶과 자연을 노래하는 음유시인, 진선미의 첫 시집
“맑은 영혼 살려내는 따뜻한 시밥 한상 차림”
진선미 시인이 《시밥을 지으며》라는 첫 시집을 냈다. 그는 시인의 마음이 담긴 언어들을 품고 살아가며 때로는 힘을 얻고, 때로는 위로를 받고, 때로는 온기를 끌어안았다. 이름 모를 들풀부터 복잡다단한 인생사까지 모든 것을 사랑의 마음으로 품었다. 이렇게 하나 둘 모은 시로 밥을 짓듯이 가슴속에서 뜸들인 시밥을 갓 지어 첫 상을 차려냈다.

곱고 정갈한 시 100여 편을 담은 이 시집에는 자연과 삶을 노래하는 시가 가득하다. 저자가 직접 그린 파스텔 톤의 삽화가 시와 어우러져 정감을 자아낸다. 시인은 “이 시밥이 누군가의 영혼에 허기를 달래 주고, 그늘을 벗어날 힘을 주어 단 한 사람이라도 살맛나게 해 줄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라고 말한다.

이 시집의 시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묵상과 사유의 열매들이다. 그의 시는 생활과 삶에 밀착되어 있어 자연스럽고 편하다. 생수처럼 목마른 영혼을 만족시키고, 단비처럼 곤고한 이에게 위로를 준다. 이 시집에 실린 아름다운 시편을 통해 많은 이들이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생수처럼 목마른 영혼을 만족시키고
단비처럼 곤고한 이에게 위로를 주는 아름다운 시편

한 편의 시에는 시인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반영되어 있다. 《시밥을 지으며》에 실린 아름답고 정갈한 시편들을 통해 시인의 장점과 특징을 볼 수 있다. 먼저 시인은 번역하고 ‘해석’한다. 그에게 삼라만상은 모두 해독해야 할 텍스트다. 시인은 언어의 집을 짓는 건축가다. 그는 오감으로 응답하고 언어로 색을 입히고 생명을 불어넣는다. 시인은 새로운 세상, 오늘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작가다. 그는 사랑과 진리를 믿는다.

시인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귀히 여기고 눈에 안 띄는 들풀에게도 다가가고 공감한다. 이러한 마음에서 나온 시만이 독자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 물신주의와 실용주의, 그리고 자본주의가 모든 이를 삼켜 버리는 시대에 ‘사랑과 진리가 입 맞추는’ 세상을 꿈꾼다.

이 시집의 발문(跋文)을 쓴 송광택 출판평론가는 시인의 ‘공감력’을 여러 시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인은 밖의 변화를 안에서 느끼고 내면으로 받아들인다. 이 시집에는 안과 밖이 소통하는 시들이 가득하다. 시인에게 ‘자연’은 무엇인가? 자연 만물은 그의 스승이고, 삶의 내비게이션이기도 하다. 시인은 삶의 소소한 일상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평범하게 보이는 사물에서도 지혜의 빛을 발견하곤 한다. 이런 사유를 통해 빚어진 시들은 생수처럼 목마른 영혼을 만족시키고, 단비처럼 곤고한 이에게 위로를 준다.”

전체 5장으로 구성된 이 시집은 1장에 ‘사계절 산책’이란 테마로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의 변화와 삶의 이모저모를 담았고, 2장은 ‘일상에 쉼표를’ 찍고, 오늘이란 시공간 안에서 받은 선물을 반추해 보며, 3장은 ‘자연 예찬’이란 주제로 캠핑과 여행, 산행을 통해 자연과 소통하며 느낀 것을 풀어내고 있다. 4장 ‘사람꽃이 피었네’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파생되는 이야기와 사색을 통해 ‘생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포착했으며, 5장 ‘시밥을 짓다’는 창작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 마음여행을 그려냈다.











반계수록 1

유형원 저 / 임형택, 익선재 강독회 역주 / 42,000원 / 창비



조선 실학 최초의 고전을 만난다!

영조를 감동시키고 정약용의 인생을 바꾼
불후의 역작을 최고의 번역으로
조선 후기 실학의 비조(鼻祖)로 불리는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의 대표작 『반계수록(磻溪隨錄)』의 원문 권1~8을 묶은 현대어 번역본 『반계수록 1: 토지제도』가 출간되었다. 『반계수록』은 반계 선생의 대표작인 동시에 조선 후기를 찬란히 수놓았던 실학사상의 원천으로 평가받는다.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 등으로 이어지는 중농학파 실학의 주요한 사상은 바로 이 책에서 비롯하였다고 할 수 있다. 전26권에 달하는 분량에 토지, 교육ㆍ선발, 관직, 녹봉, 군사 등 전 영역에 걸친 국가제도를 설계한 이 책은 그야말로 우리 정치사상사에서 돋보이는 역작이다. 특히 고금을 아우르는 방대한 참고자료와 사례를 제시하고 실제 제도 운영까지 세세하게 고민한 구성과 서술에서는 후대의 지성들을 매료시킨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번 번역본은 전26권 중 토지제도〔田制〕를 다룬 권1~8을 묶어 ‘토지제도’라는 부제를 달아 출간되었다.

실학을 태동시킨 고전 『반계수록』의 유일한 시판본 출간

반계 선생은 평생을 전라북도 부안 우반동에 거주하며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저술에 전념했다. 수십권의 저술을 남겼다고 알려져 있으나 주저 『반계수록』 외에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와 몇몇 소수의 글들만 전한다. 선생 생전에는 그 사상이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인데, 『반계수록』은 집필 100여년 만에 그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국왕 영조의 관심을 받아 책이 간행되어 세상에 널리 전해질 수 있었다.
그간 우리 실학사상과 한문고전 번역ㆍ출간을 선도해왔고, 2017년에는 반계의 문집 『반계유고』(창비 펴냄)를 엮고 옮긴 임형택 교수와 익선재강독회는 지난 수년간 진행한 강독회를 통해 원문의 정확한 번역뿐 아니라 입체적인 학술 연구까지 가미한 『반계수록』 번역본 마련에 주력해왔다. 역자진은 유독 복잡한 체재를 갖춘 이 책의 원문 취지를 충실히 살리는 번역에 공을 들였을 뿐 아니라, 본문 이해를 돕는 체재를 구상하고 주석을 세심하게 첨가하는 등 연구자와 독자 모두에게 귀한 자료가 되는 번역본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2024년 현재 시중에서는 원문 영인본만 구할 수 있고, 현대어 번역본은 도서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더욱 귀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익선재강독회는 『반계수록』의 나머지 부분을 앞으로 수년에 걸쳐 같은 방식으로 강독ㆍ연구ㆍ번역하여 순차적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토지는 천하의 대본이다”
『반계수록』대(大)기획의 출발이자 기초인 토지제도


이번 번역본 1권에서 다룬 토지제도는 반계의 출발점이자 조선 실학이 주장한 개혁의 핵심주제다. 반계는 본문에서 토지제도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정치를 아무리 잘하려는 임금이 있다 하더라도 토지제도가 바르지 않으면, 민생은 끝내 안정을 얻을 수 없고, 부역은 끝내 고르게 될 수 없고, 호구는 끝내 분명하게 될 수 없고, 군대는 끝내 정비될 수 없고, 송사는 끝내 그쳐질 수 없고, 형벌은 끝내 줄어들 수 없고, 뇌물은 끝내 근절될 수 없으며, 풍속은 끝내 순후해질 수 없다. 이와 같은 상태로 능히 정치와 교화를 행할 수 있는 경우는 예로부터 일찍이 없었다.
무릇 이와 같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토지는 천하의 대본(大本)이다. 대본이 잘 잡히면 백 가지 문제가 이를 따라 어느 하나 마땅함을 얻지 못할 것이 없으며, 대본이 문란하게 되면 백 가지 문제가 이를 따라 어느 하나 마땅함을 잃지 않을 것이 없다. (28면)

“토지는 천하의 대본”이라는 반계의 생각은 이 책 토지제도 편의 체재에서도 드러난다. 권1~2로 구성된 ‘전제(田制)’에는 토지제도에서 핵심이 되는 토지분배 방식과 함께 토지를 기초로 설계하는 세금과 군역, 토지의 소산을 유통하고 작물 재배와 산물 수확에 필요한 상업과 공업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나라 살림살이의 기본적인 틀이 토지제도 정비를 통해 이뤄진다고 보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본편에서 설계한 저자 자신의 구상에 대한 반론이나 이견을 예상하고 미리 검토하는 치밀함도 살펴볼 수 있다.
권3~4로 편성돼 있는 ‘전제후록(田制後錄)’에는 “향당(鄕黨, 향촌)과 호구(戶口) 및 국가의 재정을 운영하고 인민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데 관련된 제반 제도를 논의하여 붙인 것”이라는 취지가 밝혀져 있다. 말하자면 기본 토지제도 구상에서 파생되는 제반 제도를 세세히 살펴 설계한 것이다. 향촌과 호구 외에 조운과 조창 등 유통제도와 관련한 의견, 세금 수취 이후의 국가 재정 운용, 춘황ㆍ흉작ㆍ재난 시의 구황 및 환곡제도, 빈민 구휼제도, 화폐제도 등 ‘전제’의 살을 풍성하게 붙이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 참고가 되는 문헌을 본문과 붙임으로 상세히 밝히고 있음은 물론이다.
권5~8은 ‘전제’와 ‘전제후록’의 제도 설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전대의 논의를 발췌한 ‘고설(古說)’로 편성되어 있다. 『주례』와 『시경』에서부터 고려와 조선의 제도까지, 춘추전국시대 관중에서 100여년 전의 율곡 이이까지, 중국과 한반도의 역대 왕조의 제도와 그 제도에 대한 성현ㆍ학자ㆍ경세가 들의 언급을 체계적이고 세세하게 나열하고 있어 그 꼼꼼함과 방대함에 놀라게 된다. 또한 나열에 그치지 않고 문헌이 작성된 당대의 배경이나 인용한 입장에 대한 평가, 우리나라와 중국의 사정이 다른 점들 비평적으로 접근한 점 역시 ‘역작’의 칭호에 어울리는 엄밀함이다.
옮긴이 임형택은 이 ‘고설’을 조선 실학을 관통하는 ‘상고주의’로 해석한다. ‘근대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활용되는 이 말을 통해 역자가 읽어내는 것은, 실학의 개혁은 동아시아 유교사회가 공유했던 고대의 이상적인 국가를 목표로 삼았다는 점이다. ‘옛날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기 위한 개혁에서 출발한 실학사상은 성리학의 사변주의에 대한 도전(다산 정약용)으로 이어지고 종래에는 상고주의 자체에 대한 재고(혜강 최한기)로까지 연결된다는 것이 역자의 입장이다.

조선 후기 개혁사상의 원류 『반계수록』

적폐가 수백 년 동안 쌓였음에도 더욱더 행하려고 들면서 변통할 줄을 모르니 무엇 때문인가? (298면)
위 구절에서 볼 수 있듯, 『반계수록』의 집필 목적과 논조는 분명하다. 조선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기존의 관성적인 제도를 바꾸고, 나라가 더욱더 세심하게 사회와 제도를 살필 것을 주문하기 위함이다. 기존 성리학이 군주와 사대부의 ‘수신’에 무게를 두어 성학과 도학에 천착했던 것과는 달리, 반계가 평생을 걸쳐 중시한 작업의 핵심은 이 책 『반계수록』에서 결실을 맺은 경세학이었다. ‘실학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다시금 활발해진 요즘, 이 책이야말로 조선 후기 실학의 개혁적 성격이 어떠했는지, 그러므로 ‘실학’이 무엇인지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이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


박희병 저 / 17,000원 / 창비


흔들리는 나를 다스리는 동양 고전의 힘
서울대 명강의 국문학자 박희병이 엄선한
위대한 동양 사상가 15인의 변하지 않는 지혜
 

한국 고전문학계의 뛰어난 연구자이자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고전 읽는 법을 가르치며 옛것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을 해온 서울대 박희병 교수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가 출간되었다. 1998년 발간된 이래 20년 넘게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아온 저작 『선인들의 공부법』의 제목과 목차를 손보고 새옷을 입혀 고전에서 삶의 답을 찾는 지금의 독자들에게 다시금 선보이는 책이다. 공자부터 주자, 이황, 이이, 박지원, 정약용, 김정희 등 옛 성현들의 말씀 속에서 ‘공부’에 관한 잠언을 가려 묶었다. 저자는 무엇보다 동아시아에서 일컫는 ‘공부’의 의미에 주목한다. 공부가 좁은 의미의 학문이 아니라 남녀노소 자신의 인간적 완성을 위해 삶의 과정에서 수반하는 행위 일반을 의미하며, 삶의 과정 그 자체가 공부의 과정이고 삶과 공부는 별개의 것으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대생 등 타과생도 그의 고전문학 수업을 들을 만큼 서울대 명강의로 소문난 저자가 우리나라 사상사의 명맥을 이루는 고전 속에서 오늘날에도 빛을 잃지 않는 현재적 의미를 지니는 경구를 엄선해 의미가 깊다. 일상생활의 언행을 비롯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 독서의 방법, 글쓰기의 원리, 마음을 다스리는 법, 벗을 사귀는 법 등 세계와 우주 속의 모든 일에 대한 선인들의 말씀이 하나하나 살아 있는 지침으로 다가오는 동시에 깊이있는 마음의 위로를 제공한다.

삶과 공부는 둘이 아니다
‘진정한 나’를 찾는 무용(無用)의 공부

‘공부’라고 하면 흔히 시험공부나 입시, 자격증 같은 것을 따기 위한 실용적인 것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어렵고 하기 싫은 무엇이거나, 특정 직군의 사람들이 전문 분야에서 지식을 쌓는 행위를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동아시아 전통에서 공부(工夫)는 즐거움 속에서 평생 해나가야 하는 것으로서, 나의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는 과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것으로 나의 삶 전체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바로 공부의 참뜻이다. 저자가 삶의 모든 것이 공부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라는 제목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난 치는 데 손을 대자면 마땅히 자신을 속이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추사 김정희의 말에서 가져온 제목은 남의 기준이나 잣대에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원칙에 철저하게 임할 때 비로소 남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까지 내포하고 있다. 남을 속이지 않는 것보다 나를 속이지 않는 것은 때에 따라 더욱 어렵기도 할 테지만, 이와 같은 자세를 견지해야만 학문뿐 아니라 삶 자체를 대하는 태도, 진실한 인간관계 등 모든 면에서 나다운 삶을 살 수 있고, 인간다운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밖에도 이 책에는 “군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데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공자), “출세할 생각으로 공부한다면 공부에 해가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면 반드시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서 견강부회하게 되므로 문제를 일으킨다”(장자), “자만하면 남의 말을 듣지 않게 되고, 빨리 이루고자 하면 뭇 이치를 궁구하지 않게 된다”(이황), “말이 많고 잡념이 많은 것이 마음 공부에 가장 해롭다”(이이), “안다는 것은 곧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다”(이익), “설사 의견이 서로 다르더라도 살피고 정정하기에 힘써 마침내 올바른 데로 귀결되게 함이 옳다”(정약용) 등 지금 우리에게 귀감이 될 만한 말들로 가득 차 있다. 하나하나 어떻게 하면 삶의 올바른 길[道]을 갈 수 있을지에 대한 한마디다.


최고의 권위자가 전하는 선인들의 공부법
동양 고전을 읽으며 발견하는 ‘내 삶의 존엄성’


국내 고전문학의 최고 권위자라 할 수 있는 저자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인생의 지침이 되는 조언을 해주며 두루 존경을 받아왔다. 동시에 그의 수업은 정년퇴임 직전까지 최고 인기 강좌 중 하나였다. 그 비결은 공부란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는 그의 지론이 강의에 녹아 있기 때문이며 그것이 많은 학생들의 마음에 진심으로 가닿은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정수를 모은 책이 바로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다.

저자는 이번에 개정판을 펴내며 “밥 먹고 잠자고 생각하고 말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고 만나고 헤어지고 길을 가고 하릴없이 누워 있고 고민하고 한탄하고 절망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기뻐하고 늙고 죽어가는 것, 이 모두가 공부와 무관하지 않다. 이렇듯 이 공부는 나의 삶과 조금도 분리되지 않는다”라고 썼다. 이는 공부라고 하면 ‘입시지옥’을 떠올리는 우리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며,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알고 조금 더 성적이 좋다고 귀한 대접을 받는 풍토에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도 상당하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궁극적인 메시지, 즉 공부를 통해 추구해야 하는 바는 바로 ‘내 삶의 존엄성’이다. 살아가기 막막한 세상에 ‘실용적인’ 조언을 건네는 책은 넘쳐나지만, 이토록 마음을 다독이며 무게감 있는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책은 드물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가 역설적으로 모두에게 실용적인 책인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여행은 끝났는데 길은 시작됐다


제이림 글/사진 / 17,500원 / 이타북스


 
“당장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날,
당신을 위로해 줄 문장이나
꺼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나요?”
세계 30여 개국, 120여 개의 도시를 다녀온
여행 크리에이터 겸 현직 사진작가가 전하는
삶이라는 여정 속 고단한 하루를 보낸 당신을 토닥여 줄
감성 힐링 포토 에세이

‘지금, 여기’가 아닌 곳의 기억들을 ‘지금, 여기’로 끌어오는 마법

이 책을 쓴 제이림 작가는 4만 팔로워를 보유한 여행 크리에이터이자, 제주도에서 활동 중인 현직 스냅사진 작가이다.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힘들 때마다 발걸음 닿는 대로 길을 떠나다 보니 어느새 세계 30여 개국, 120여 개의 도시를 다녀온 여행 크리에이터가 되어있었던 것.
하지만 이 책은 “여행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행 전, 수많은 날을 우울의 파도에 잠식당해 가라앉다가, 여행 중, 부딪히고 단단해지고, 여행 후, 다시 꿈을 꾸는 그런 이야기다.
그녀는 자신의 글과 사진이 힘든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다시 꿈꿀 수 있는 불을 지펴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그녀 역시 일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너무나 많은 일들과, 이곳에서 만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 치여 지쳤을 때 훌쩍 떠났다. 일본,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조지아, 크로아티아…. 그렇게 여행지에 도착하면, 비로소 그곳이 ‘지금, 여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여행만이 가능케 하는 마법이다.
이 책에는 그녀가 여행지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과, 그곳에서 생각한 것들을 담은 글들이 담겨있다. 이제는 ‘지금, 여기’가 아니게 된 그 여행지들 속 기억들이 다시금 ‘지금, 여기’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한 사람의 기억에 불과했던 것이 우리를 어루만지는 위로가 되어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번 삶이라는 여정에 올라설 용기를 얻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만이 가능케 하는 마법이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가르쳐 줄래?”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렸지.”
“어디든 상관없는데.”
“그럼 아무 데나 가면 되지.”
“어디든 도착하기만 한다면.”
“그럼 너는 분명히 도착하게 되어있어. 오래 걷다 보면 말이야.”

“안녕. 오랜만이네. 그래서 길은 찾았어?”
“계속 헤맸는데 걷다 보니 도착은 하게 되더라.”
“어디에 도착했는데?”
“새로운 길.”


‘지금, 여기’가 아닌 곳의 기억들을 ‘지금, 여기’로 끌어오는 마법
여행만이 가능케 하는 위로를 담은 힐링 포토 에세이

여행 크리에이터 겸 현직 스냅사진 작가인 제이림
그녀가 힘들 때마다 스스로 버티는 힘이 되어준,
이제 당신의 하루를 어루만져 줄
80여 개의 풍경과 글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주 단순하고 명료하게 표현한다면 바로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존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제이림 역시 살아가다 힘이 들어 당장 무너져 버릴 것 같을 때, 여행을 떠나곤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홀연히 떠나버렸을 때도 “너 지금 여행 중이구나?” 하고 알아챈 지인이 있었다니, 그녀의 여행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만하다.
그렇게 그녀는 일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너무나 많은 일들과, 이곳에서 만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 치여 지쳤을 때 훌쩍 떠났다. 일본,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조지아, 크로아티아…. 그렇게 여행지에 도착하면, 비로소 그곳이 ‘지금, 여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여행만이 가능케 하는 마법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행이 반드시 행복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곳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일들과 사람들을 만만찮게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이 책을 “여행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담은 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 책을 “여행 전, 수많은 날을 우울의 파도에 잠식당해 가라앉다가, 여행 중, 부딪히고 단단해지고, 여행 후, 다시 꿈을 꾸는 그런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녀가 여행지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과, 그곳에서 생각한 것들을 담은 글들을 보자. 이제는 ‘지금, 여기’가 아니게 된 그 여행지들 속 기억들이 다시금 ‘지금, 여기’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한 사람의 기억에 불과했던 것이 우리를 어루만지는 위로가 되어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번 삶이라는 여정에 나설 용기를 얻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만이 가능케 하는 마법이다.












트렁크


김려령 저 / 17,000원 / 창비


 
넷플릭스 드라마 「트렁크」 원작소설
품격 있는 파격, 모두를 사로잡은 로맨스 스릴러!
“이제는 배우자도 임대하는 세상이 됐구나.”
사랑과 폭력이 맞닿아 있는 그곳에서
김려령이 드러낸 결혼과 사랑의 맨얼굴


개성 넘치는 문체와 폭 넓은 사유로 문학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등의 작품을 통해 우리 삶의 기저에 가닿는 깊이 있는 서사를 구축해온 김려령의 장편소설 『트렁크』가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으로 출간되었다.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트렁크』는 미국 영국 중국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 여러 언어로 번역 수출되었고, 동명의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2024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활력’ ‘비범한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김려령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강한 흡인력과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트렁크』는 ‘배우자 임대 서비스’라는 도발적인 설정에서 출발한다. 김려령은 생동감 넘치는 대화와 질주하듯 뻗어나가는 문장으로 ‘기간제 아내’인 주인공의 결혼생활을 생생하게 그리며 사랑과 결혼, 인간관계의 맨얼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우리 삶을 옥죄는 사회의 ‘정상성’ 개념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파격적인 로맨스 서사와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식 전개는 놀라운 몰입감을 선사한다. 제도와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폭력을 신랄하게 꼬집으며 세계를 색다른 시각으로 재해석한다. 새롭게 발간되는 리마스터판에서는 이처럼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에 질문하고 완고한 정답에 균열을 내는 작품의 매력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도록 표현과 대화를 한층 정교하고 다부지게 다듬었다. 아울러 인물들 간의 비밀스러운 서사가 더욱 탄력을 받게끔 섬세한 맥락을 추가해 새단장을 마쳤다.


서른살, 다섯 개의 결혼반지
‘이번 결혼에도 사랑은 하지 않았습니다’

올해 스물아홉살의 주인공 ‘인지’는 결혼정보업체 웨딩라이프의 비밀 자회사인 NM(new marriage) VIP팀에서 입사 육년차 차장으로 일하고 있다. 다른 부서의 직원들이 미혼 남녀의 결혼을 연결하는 일을 하는 것과 달리 인지는 직접 VIP회원의 기간제 부인인 FW(field wife)가 되어주는 업무를 맡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출판사 면접에서 떨어진 날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입사 제의를 받았을 때만 해도 인지는 NM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하지만 대학시절, 사랑하는 사람이 동성애자였다는 이유로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고 결국 떠나게 만든 어머니에 대한 반감과 취업의 어려움으로 망명하듯 NM에 입사한다.
네번째 결혼을 마친 인지는 전남편으로부터 재결합 신청을 받고 다섯번째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종전의 결혼생활에 비해 순탄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인지 앞에 ‘엄태성’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절친한 친구인 ‘시정’의 부탁으로 휴가기간 중 한번 소개팅을 가졌을 뿐인데, 엄태성은 자신을 단칼에 거절한 인지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호기심을 품고 스토킹을 시작한다. NM보안팀은 인지가 계약 남편과 함께 사는 집까지 집요하게 찾아온 엄태성을 제압한 뒤 인지 몰래 격리시킨다. 이후 그의 행방이 궁금해진 인지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불법으로 납치되어 학대받고 있던 그를 풀어주는데……

폭력과 부조리로 가득한 삶
그럼에도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트렁크』는 결혼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여러 관습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해온 김려령 문학의 중요한 성취다. 작품은 결혼과 사랑의 현실을 들여다보며 그 형식과 내용을 꼬집고 비틀고 속살을 들춰낸다. 계약결혼, 성소수자 등의 소재를 전면에 내세워 사회적 규범의 이면을 바라보면서 관습이 얼마나 고루한 것인지 증명한다. 규범을 전복하려는 이러한 시선을 ‘비딱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비딱한 시선은 이미 비딱해진 세계를 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방법론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청년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삶과 사랑에 ‘보편’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 얼마나 야만적인 올가미가 되는지 잘 알고 있다. 인과로는 설명되지 않는, 횡액과도 같은 인물 엄태성은 그러한 세계의 폭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단 엄태성뿐 아니라 주인공 인지를 둘러싼 위태로운 상황과 사연 많은 인물 들은 폭력의 문제를 또렷이 형상화한다. 타인의 삶에 무책임한 호기심을 갖고 개입하는 것 자체가 거대한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나아가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타인의 삶에 간섭하고 영향력을 끼치려는 욕망이 결국 삶을 그르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사랑’의 어두운 이면인 것이다. 그럼에도 김려령은 “이런 사랑, 모두 꺼내어 볕에 널고 싶다”고 말한다. 응달진 마음 한구석에서도 한송이 꽃처럼 피어날 사랑을 응원한다. 결국 다시 사랑에 서툰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끌어안으며 연민한다. 멈추려 해도 멈춰지지 않는 사랑처럼.

작품 속 트렁크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파란만장한 다섯번의 결혼생활을 거쳐온 누군가의 청춘 그 자체이기도 하고,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극단의 도피처이기도 하며, 또 원하지 않는 현실에 안주하려던 나약한 마음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김려령의 트렁크 안에 담긴 것은 보편이라는 얄팍한 범주에 속박되고 싶지 않다는 자유로운 결단과 예리한 통찰, 무엇보다도 포근한 사랑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도 자신의 청춘을 담은 트렁크 하나쯤 있을 것이다. 김려령은 묻는다. 당신의 트렁크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당신은 행복합니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당신의 트렁크의 견고한 자물쇠를 풀어줄 작품으로, 통념을 거스르는 신선하고 통쾌한 작품으로 김려령의 『트렁크』를 지금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소개하는 이유다.












행복은 발가락 사이로


이광이 저 / 16,800원 / 삐삐북스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오는 구릿한 삶의 향연!
중년의 마음에 쓰나미처럼 휘몰아친 고독과 쓸쓸함을 능청스럽게 풀어냈다
『행복은 발가락 사이로』는 〈한겨레〉 ‘삶의 창’에 연재하며 인기를 끌었던 작가의 글과 10여 년 동안 써 놓은 글들을 모은 것이다. 삶의 희로애락을 종일 열심히 뛰어다닌 양말 속 발가락의 구릿함으로 승화시키고 ‘탱탱하던 삶의 테두리가 서서히 오그라드는 그 궁한 틈’을 예리한 통찰력과 찰진 언어로 맛깔나게 풀어냈다.
작가는 인생의 늦가을 중년의 마음에 쓰나미처럼 휘몰아친 고독과 쓸쓸함을 능청스럽게 펼쳐 보인다. 또한 본가로 내려가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는 노모와 함께하며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은 순간의 다정한 기록이기도 하다.
길이도 사연도 제각각인 글은 포복절도할 정도로 웃기고 어처구니없게 허망하다. 밤새 베갯잇에 안녕을 고하고 야멸차게 떠나버린 머리카락들을 향한 ‘헤어 소수자’의 애달픈 몸부림처럼 능청스럽고, 노인들의 집 문고리에 걸려 매일매일 안부를 묻는 야쿠르트 담은 비닐봉지처럼 다정하다. 과거와 현재, 인간의 나약함과 힘, 유머와 엄숙함 사이의 섬세한 균형을 탐구하는 이야기들은 가벼우면서도 심오하고, 단순하면서도 풍성하다.
 
삶의 순간들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종종 서둘러 지나가 버리고 만다. 이 책은 은행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노화에 대한 고요한 성찰 등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순간 속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삶은 고고하지 않다, 베토벤 작곡에 이미자 노래 같은 것
일상의 소란 속에서 잠시 멈춰 서면, 비로소 보이는 찰나의 깨달음

작가는 행복이란 ‘퇴근하고 소주 한 잔 하는 것, 밥 먹고 담배 한 대 깊게 피우는 것, 그리고 아름다운 어떤 것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상의 소란 속에서 잠시 멈춰 서면, 그제야 보이는 찰나의 순간을 성찰하도록 한다. 그러고는 그 순간 느낀 위안에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불교에서 육바라밀은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길’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초월의 경지로 가는 수행 방법이라고 하는데, 삶 자체가 어떤 경지에 이르는 수행 과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문득 베토벤의 웅장한 연주를 들으며 이미자의 노래를 흥얼거린다면, 이것이 바로 어떤 경지에 이르는 순간이 아닐까. 뻘뻘뻘뻘 사방으로 도망치는 펄 밭의 칠게처럼 우리네 삶 역시 종잡을 수 없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만다. 그 가운데 누군가는 그냥 지나쳤을 소소한 일상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감칠맛 나는 문장이 빚어낸 기막힌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무엇이 전해지는 순간, 무엇을 깨닫고자 하는
무지가 만들어낸 몸부림의 기록들

“도대체 깨달음은 무엇이고, 깨달은 자는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습니다.”
제자의 물음에 스승은 ‘정천각지 안횡비직 반래개구 수래합안’ 열여섯 글자로 ‘배고프면 먹고, 잠 오면 자는, 사람이 서 있는 모양’으로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그러고는 제자에게 질문한다.
“우리는 하루의 어디에 서 있느냐?”
“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새벽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새벽을 한 그릇 가져오너라.” 스승이 말한다.
작가는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통해 삶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현재와 미래 사이, 순간을 살며 영원을 좇는 인간은 발끝으로 서서 도달할 수 없는 것을 갈망하며 괴로워한다. 관념 속의 개가 짖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은 관념 속을 찾아오는 수많은 개로 근심한다. 새벽을 길어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시간을 잡으려고 아등거린다.
‘인생은 한 조각의 꿈이려니, 그동안 살아온 삶이 세월 따라갔고 세월 속에 나도 따라갈 뿐이다. 맑은 바람 밝은 달 너무도 풍족하니 나그넷길 가볍고 즐겁구나. 달빛 긷는 한 겨울, 복사꽃이 나를 보고 웃는다’ 이두 스님의 말처럼 작가는 세월을 따라 흐르며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안내한다. 현대인의 고단함을 작가 특유의 비유와 은유로 풀어낸 글을 읽다 보면 무심하게 떠나보낸 일상의 순간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옴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움이 있어 행복하다


이성기 저 / 18,800원 / 학민사


 
확인하고 싶어질수록 멀어지는 메아리 같지만
한없이 별을 쳐다보고 나의 내면에 전사傳寫하고 싶은 까닭은
그 원초적 그리움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야 쌓이는 것들, 삶이 흘러야 깨닫는 것들을
평범한 하루하루의 반복 속에서도 ‘내면의 불꽃’으로
기억된 그 순간들이 있어 행복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자기의 생각을 외부로 발산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곧 인간은 자기의 생각과 느낌, 알고 있는 사실을 표현하고, 또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어 한다.

지은이 이성기는 대학에서 식육학(食肉學) 교수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임을 한 후 아쉬움과 홀가분함 속에서 인생 후반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식육학은 자연과학 중에서도 응용과학의 영역이다. 강의용 교재 등 식육학 관련 저서는 많이 있지만, 그것은 드라이한 과학서일 뿐이다. 평생 식육학 속에서 살아온 지은이가 인간의 삶, 곧 인간과 사회를 아우르는 삶의 넓은 스펙트럼을 사유의 목표로 삼아 쓴 글들을 모아 에세이집을 냈다.

지은이는 바쁜 업무 속에서도 사회적 이슈나 개인적 삶에서 느낀 생각, 또 자연에서 받은 단상을 틈틈이 적어 두었다. 일종의 취미로서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는데, 지은이는 이를 통해 많은 위안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아마도 글쓰기는 지은이에게 본향에 대한 그리움이었고, 고달픈 삶의 안식처이면서 이 모두를 풀어내는 놀이였다. 곧 글을 통해 자신과 소통하며 위로받고 싶었지만, 글들이 쌓여 지은이의 작은 역사가 되고, 삶을 바라보는 눈이 된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버리지 못하고 끌고 온 것을 차근차근 버려야 하는 나이에, 그동안 간간이 써 놓은 이런 글들은 계륵(鷄肋)이 되었다. 그러나 본향에 대한 그리움, 나이를 먹어가며 변해가는 일상사에 대한 소박한 고찰, 산과 들을 돌아다니면서 얻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사색, 대학 시절부터 몸담아 온 흥사단 활동과 민족에 관한 관심 등은 지은이에게 있어 인생 자체였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유년과 청소년 시절부터 중장년에 접어들기까지 가슴에 머물렀던 속살을 모두 들추어냈다. 하루하루의 평범한 삶의 반복 속에서도 ‘내면의 불꽃’으로 기억된 그 순간들이 있어 행복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으니, 이 책은 지은이의 전반기 삶의 정리이자 후반기를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자신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나침반이다.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김윤식 저 / 44,000원 / 문학과지성사


‘사실의 학(學)’으로 집대성한
한국 근대 문예비평의 역사

50여 년 만에 새로이 만나는
불후의 한국 근대문학 연구서
김윤식 6주기 기념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개정 출간


한국 근현대문학이 제기하는 시대적 물음에 평생을 바쳐 ‘정면 돌파’로 응답한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김윤식(1936~2018)의 6주기를 맞아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가 문학과지성사에서 개정 출간되었다. 김윤식은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하며 한국 근현대문학이 남긴 발자취를 진단하는 데 힘썼던 문학평론가이자 다양한 연구와 강의, 저술 활동을 전개해나가며 문학사와 문학이론, 개별 작가론과 작품론 등을 폭넓게 아울렀던 국문학자이다. 특히 그의 저서가 총 100종이 훌쩍 넘고 공저ㆍ편저ㆍ역저 등을 합하면 200여 종에 달한다는 사실은 김윤식의 뜨거웠던 학자적 열정과 분투를 보여준다.
1973년 한얼문고판과 1976년 일지사판에 이어 또 한 번 새 단장을 마친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는 성근한 문학인이었던 그의 대표 저술이자 여전히 후학의 기둥이 되어주는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바이블로 손꼽힌다. 김윤식은 “사실 자체를 가능한 한도에서 정리하고 분류하여 기술하는 것에 그치고, 비판이나 해석은 될 수 있는 한 보류”(p. 8)하는 등 이 책의 집필에 있어 “면밀한 자료의 확인과 분석을 통한 ‘사실의 학(學)’”을 강조하며 “사실로서의 한국 문예비평사의 구조 복원”(p. 13)에 몰두했다. 비평에 국한된 분야사가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문학 전반을 관통하는 ‘문학사’ 서술이라고 이야기해도 무방할 만큼 방대한 자료를 망라하는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는 1920~40년대의 문학적 흐름을 살피는 데 요긴한 결정적 작업이며, 이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한국 근현대문학사 연구가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학술적 중요성이 크다. 원텍스트를 현대어로 다듬되 정확성을 기하고 자료의 출처와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여 오류를 바로잡음으로써 더욱 완전하게 거듭난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는 현시대와 맞물리며 문학이란 “그 자신의 한계를 깨고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시도를 감행함에 의해 존속해온 제도”(김윤식,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문학사』, 문학과지성사, 2009, p. 30)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줄 것이다.

치열하게 역동해온 한국 문예비평의 어제와 오늘
이를 돌아보는 시선 안에서 움트는 우리 문학의 내일

한국 근대문학이란 근대의 보편성(국민국가와 자본제 생산양식)과 특수성(반제 투쟁과 반자본제 투쟁) 그리고 그 모순에 관계하는 문자의 형상화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김윤식은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를 통해 여러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그 실체를 규명하고 얼개를 정리하는 데 주력하였다. 1920년대부터 해방 전까지의 한국 문예비평 전개 과정을 직접적으로 서술하며 총체적인 구조를 파악해나가는 이 책은, “체계 확립상 과거형이지만 그것이 다시 출발되어야 할 미래형이라는” 입장 아래 “빌려온 이론의 전개가 어떻게 역사 앞에 패배해갔는가를 실증해 보임으로써” 그간 한국문학이 걸어온 길을 더듬어보고 오늘날 문학 현장의 풍경을 환기한다. “앞으로 전개될 한국문학의 이론이 뒷날에 가서 돌이켜볼 때 역사 앞에 또 하나의 패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p. 12) 그의 단호한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제Ⅰ부 프로문학운동을 중심으로 한 문예비평’은 1920년대 초 프롤레타리아문학운동을 중핵으로 하여 유독 긴밀했던 당대의 문학 전반과 사회운동 간 관계를 포착한다. 프로문학은 물론 그 대타의식에서 출발한 민족주의문학론, 또 해외문학파와 전향론 등까지 두루 살펴보며 각각의 성립과 전개 양상, 관련 논쟁 및 한계를 고찰하고, 과학주의와 ‘대중’ 개념을 도입하여 비평의 현대화 과정에 일조한 프로문학비평이 남긴 의의를 꼼꼼하게 밝혀 내려간다.
‘제Ⅱ부 전형기의 비평’은 프로문학이 퇴조하던 무렵부터 일제 말기까지의 ‘전형기’ 동안 비평계에 펼쳐졌던 여러 가지 국면을 다룬다. 서구적 사조에 거점을 둔 휴머니즘론, 지성론 및 비평예술론, 문화 옹호 현상이라는 당시의 세계적 풍조와 식민지하의 특수한 의식이 결부된 고전론과 동양문화론, 반성적 흐름에서 기인하여 신세대와 30대 사이 문학정신의 순수/비순수 시비를 중심으로 점화되었던 세대론, 『국민문학』지 중심의 신체제론 등,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문학의 공백을 해소하고 정론성과 지도성을 회복할 새로운 주류를 모색하고자 했던 1930~40년대 평단의 노력을 너르게 톺아본다.
‘제Ⅲ부 비평의 내용론과 형태론’은 최재서가 제시한 ‘비평의 아르바이트화’ 개념을 가져와 1940년 전후 비평의 내용론으로 서술의 포문을 연다. 이 방면의 실질적인 업적이 다소 빈약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그것이 외국 문학의 피상적 이식 과정을 극복하려는 과정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당시의 시론, 소설론, 문예론, 문학사, 작법류 등을 개관한다. 한편 형태론의 측면에서는 한국 문예비평이 짧은 기간 안에 수다한 형식을 실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점, 또 그 형태가 발표지의 변천과 밀접하게 관계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짚으며 1930년대에 성행한 비평의 리뷰화 및 촌철비평 등의 성격을 들여다본다.






 

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 1
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 2


도올 김용옥 저 / 각 18,000원 / 통나무


《님의 침묵》 탄생 100년! 다시, 만해이다!!
도올, 한국문학 백년의 시작과 만해를 이야기한다!
만해 한용운은 오천년 우리 민족 최고의 지성이며, 조국 독립의 열혈 투사이고,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매력적인 시인이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사상과 불꽃 같은 의지와 우리의 가슴에 촉촉이 스며드는 섬세한 감성이 그의 거대한 인격 속에서 하나가 되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이 위대한 인물 만해를 저자 도올은 지금 이 땅에 다시 불러내어 현재적 가르침과 깨달음을 간구懇求한다. 독자는 이 책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 만해를 만나게 된다. 함께 님의 노래를 부르며, 문학과 역사와 철학이 어우러지는 짙은 향연을 즐길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다시 만해가 필요하다.

이 책은 만해 한용운의 생평生平일 뿐 아니라, 그의 방대한 《한용운전집》에 대한 전면적 해부이고, 그의 시집 《님의 침묵》의 심층구조적 독해이며, 그의 삶의 전 과정을 추적하게 만드는 연표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만해의 한글시가 단순히 서구적 의미의 시라는 개념을 초월하며, 우리민족에게 이미 누적되어 온 문화의 깊이에서 발양된 것임을 확인시킨다. 그래서 만해의 시는 21세기에도 계속하여 한국인에게 새로운 문학의 숨결을 불어넣을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만해 한용운, 그는 누구인가?
만해부터 한강까지, 한국문학 그 100년의 시작!!

우리는 만해라는 20세기 우리민족 정신사의 벽두劈頭를 너무 몰랐다.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으니 알 수가 없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그러니 만해가 우리 역사에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만해는 너무도 거대하여 그 전모를 파악하기에는 10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 했다. 이제 만해는 서서히 그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

한국문학평론의 거두인 염무웅과 백낙청은 일찍이, 문학의 가치는 시간이라는 달리기현장에 누가 먼저 테이프를 끊었느냐로써 논할 수 없다고 평했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신체시의 시발점이니, 이광수의 작품이 일찍 주도권을 쥐었다는 것으로써 그 가치를 형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가 나오고,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나온 바로 그 시점에 전혀 시단의 족보가 없이 불쑥 만해라는 스님에 의해 《님의 침묵》이 출간되었다(1925년 집필, 1926년 출간). 문단과 관계 없이 불쑥 세상에 머리를 들이밀었다는 이 돌연한 사태야말로 한국문학의 축복이라고 염무웅은 말한다.

〈승무〉라는 너무도 아름다운 시를 쓴 조지훈은 이렇게 말한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근대 한국이 낳은 고사高士였다. 선생은 애국지사요, 불학의 석덕碩德이며, 문단의 거벽巨擘이었다. 선생의 진면목은 이 세 가지 면을 아울러 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만해라 하면, 3·1만세혁명의 주역으로서 33인 중의 하나, 그리고 《님의 침묵》이라는 선시를 쓴 시인 정도로만 안다. 일제강점기시대를 통해 그가 낸 방대한 작품의 전모를 접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한글문학 몇 편 외에 방대한 그의 한학세계를 전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어릴 적부터 만해의 지성과 항일정신을 존경해왔던 조지훈과 그의 고대 국문과 제자들 그리고 《친일문학론》의 저자 임종국이 함께, 잊혀진 만해의 작품들을 수집하고 편집하여 《한용운전집》6권(1973년)으로 출간하였다. 50년 전의 기적 같은 일이였다.

위대한 만해의 시집 《님의 침묵》 탄생 100년을 맞이하면서 여기 내놓는 이 책 《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는 우리시대의 철학자 도올이 《한용운전집》 전체를 소화하고 분해하여 되씹어 내놓은 것으로, 기존의 만해에 대한 담론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평론이다.

도올은 말한다: “나는 만해와 해후함으로써 비로소 내가 왜 이 조선땅에 태어났는지, 나의 존재의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의 대결상대는 버트란드 러셀, 화이트헤드, 비트겐슈타인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의 철학을 뛰어넘는 철학을 구유한 대사상가가 이 땅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20세기 우리 정신사를 근본적으로 다시 보게 만들었다. 나는 만해가 산 땅에 태어나서 행복하다.”

조국의 암울한 시대를 앞장서 돌파해나가는 선구자!
우리 민족의 가장 위대한 시인詩人!
깨달음으로 삶을 변혁시키는 불퇴전의 선승禪僧!!
한학漢學, 불학佛學, 서양학을 아우른 탁월한 민족의 지성!


이 책은 도올이 만해를 만나게 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자세히 쉬운 인생이야기로써 그려지며, 그 과정에서 20세기 한국문단의 혜맥을 이어간 위대한 인물들이 소묘된다. 그리고 만해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집의 핵을 이루는 30여 편의 시들이 한줄한줄 모조리 해석된다.

만해의 시는 여태까지 송욱 교수의 한 작품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 전모를 한줄한줄 다 해석한 사례가 없었다. 쉬운 우리말 같아도 실상은 난해하기 그지없는, 문·사·철의 증도가證道歌인 것이다. 도올은 만해의 시를 모두 오늘 우리의 일상언어로 바꾸어놓는다. 그 바뀜 속에서 우리는 눈물과 웃음을 짓게 되고 해탈을 얻는다.

도올은 말한다: “이 책은 내가 쓴 90여 권의 책 중에서 가장 읽기 쉽고 재미있는 책이다. 요즈음 한강의 노벨상 수상으로 젊은 독서인구가 책을 읽는 기풍을 부활시키고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난다고 하는데, 한강의 소설의 원류에도 만해의 시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 깨닫게 될 것이다.”

만해의 삶 속에는 선승으로서의 수행과 학자로서의 학문 활동 그리고 항일독립투쟁이 하나였다. 그 하나 된 삶의 자세는 조국해방 한 해전 그가 생명을 다할 때까지 치열하게 계속되었다. 3.1만세혁명의 주동자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을 때, 고통스런 감옥생활도 만해에게는 수행의 일환이었다. 조국독립이라는 화두를 움켜쥐고 감옥 안의 용맹정진을 했던 것이다. 그 깨달음의 결과로 그는 “님”을 그의 존재 거점으로 확보하였다.

“님”은 자신이 발 딛고 서있는 이 산하, 곧 조국에 대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경건하고도 애틋한 사랑의 이름이다. 그 사랑은 한 점 회의와 의심이 없는 깨달음의 성취이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만해가 “님”을 변절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러기에 만해는 끝까지 자신의 양심과 지조를 지키고 형형하게 살다 간,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족지도자로 남아있다.

그가 일제의 감옥살이를 끝내고 나올 때 출감한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내가 옥중에서 느낀 것은 고통 속에서 쾌락을 얻고, 지옥 속에서 천당을 구하라는 말이올시다.”라고 답하였다. 생사일여의 해탈인 만해는 바로 이런 깨달음의 경지에서 《님의 침묵》의 시들을 지었고, 그 외로도 수많은 조국을 위한 일들을 하였던 것이다.

이 책은 만해의 《님의 침묵》 1926년 초판본이 원래의 모습 그대로 실려 있으며, 또 여태까지 만해에 관하여 출간된 연보 중에서 가장 치밀하고 자세한 연보와 그의 시대를 말해주는 연표가 실려 있다. 만해 연구가들에게 더없는 지침이 될 것이다.

만해가 태어난 해인 1879년부터 시작되어 20세기를 관통하는 이 “만해 한용운 연표”에는 우리민족에게 밀어닥친 엄혹한 충격과 절망 속에서 그 시대를 돌파해 나가는 만해를 위시한 무수한 민족혼을 지닌 선구자들의 영웅적 고투가 처절하게 펼쳐진다.

이 책에서 우리는 절망의 암흑인 일제강점기를 광명의 예술로 승화시킨 몇 명의 선각자들을 만난다. 그중에서도 저항의 행동과 시적인 통찰과 미래에 대한 예언적 확신이 일치된 삶을 살아간 만해 한용운의 모습은 태고의 장승처럼 이 대지에 생명의 거름을 부여하고 있다.
 








대한민국 순례길 여행


이준휘 저 / 22,000원 / 덕주


새롭게 걷는 대한민국 순례의 길,
인연, 고행, 성찰 등 순례의 미학을 한 권으로 만나다!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소의 통계에 따르면, 2023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한국인 순례자의 수는 7,563명으로 국가별 순위에서는 무려 9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득히 먼 곳이고 한 달 정도의 휴가가 필요한데도 굳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순례의 고행을 직접 경험하고 순례의 의미를 깨닫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산티아고 순례길 못지 않은 순례길은 없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여행 작가인 저자는 대한민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순례의 길을 찾고 걷고 발견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대한민국 순례길은 크게 네 가지 주제로 나뉜다. 신비로운 자연과의 만남, 삶의 자취를 찾는 마을 탐색,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 탐방, 종교의 신실함을 만나는 종교 순례길이다. 각각의 길에 담긴 의미와 저마다의 매력은 다르지만 모든 길은 걸을수록 더욱 아름다워지고, 걸을수록 또 걷고 싶어지며 그 안에서 우리 내면의 힘을 찾게 만든다.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만날 수 있는 길, 순례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길을 걸으며 걷기와 삶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대한민국 곳곳의 아름다움을 만나다

대한민국 곳곳에는 여느 해외 못지않은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길이 존재한다. 높은 산 위에 존재하는 습지, 도시에서는 쉽게 지나쳤던 야생화가 주인공이 되는 산, 절벽과 바다를 함께 끌어안은 섬, 붉은 노을이 길을 열어주는 바다 등 사시사철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며 여행자를 끌어당긴다.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꼭 찾아가야 할 50곳의 순례길을 소개하며 순례길의 의미에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을 더하고자 한다. 아무리 큰 의미가 있는 길이라도 눈과 마음이 즐겁지 않다면 그저 지루하고 평범한 길일 뿐이다. 시선으로는 황홀한 풍경을 따라가고 마음으로는 벅차오르는 기쁨을 채우는 대한민국 순례길을 꼭 한 번 걸어보길 바란다.

길을 걷고 삶을 발견하며 존재의 의미를 찾다

우리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달아나고 싶을 때,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난다. 나를 찾고 싶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더없이 알맞은 여행이다. 걷다 보면 때로는 편한 평지를 걷기도 하고 힘든 오르막을 지나기도 한다. 가끔은 헤매기도 하고 뜻밖의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어느새 자연은 한 폭의 풍경화로, 가슴 벅찬 신비로움으로, 눈물 나는 존재의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장 자크 루소는 “걸어야만 명상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나 보다. 걷고 명상하며 헤매고 만나며 자신만의 길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순례의 길을 한 권에 담다
미디어에서 보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분명 아름답고 걷고 싶은 길이지만 좀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순례길은 없을까? 그래서 이 책에서는 고르고 고른 우리나라의 걷고 싶은 순례길을 소개한다. 산티아고처럼 종교의 의미를 만날 수 있는 버그내 순례길, 고행의 뜻을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는 봉정암 순례길 등 종교적 색채가 있는 곳도 있지만, 전쟁의 역사를 담은 한반도 역사길, 변방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괴산 산막이옛길, 생명을 머금은 우포늪 생명길 등 순례의 의미를 확장하고 조합하고 새롭게 발견하는 길을 소개한다. 걸을수록 헤맬수록 고행의 의미를 찾고 사유의 목마름이 해갈되는, 더없이 아름다운 대한민국 순례의 길을 만나보길 바란다.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유선혜 저 / 12,000원 / 문학과지성사


“우리의 언어는 멸종에 관한 것이었는지 사랑에 관한 것이었는지”

끝을 상정하는 사랑의 위기 속에서
오늘도 힘껏 멸종해, 너를 멸종해

사랑의 화석을 더듬는 멸종의 고고학
유선혜 첫 시집 출간

2022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유선혜의 첫 시집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608번으로 출간되었다. “지금 여기 이곳에 발 딛고 서 있으면서 보고 듣고 만지고자 하는 열정”(심사평)으로 써 내려간 시 43편을 총 4부로 나눠 묶었다.


공룡은 운석 충돌로 사랑했다고 추정된다
현재 사랑이 임박한 생물은 5백 종이 넘는다
우리 모두 사랑 위기종을 보호합시다

어젯밤 우리가 멸종의 말을 속삭이는 장면
아주 조심스럽게
멸종해, 나의 멸종을 받아줘
우리가 딛고 있는 행성, 멸종의 보금자리에서

공룡들은 사랑했다 번식했다 그리하여 멸종했다
어린아이들은 사랑한 공룡들의 이름을 외우고
분류하고 그려내고 상상하고 그리워하고 아이들은 멸종하고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부분

표제작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에서 시인은 ‘사랑’과 ‘멸종’의 자리를 고정해놓지 않는데, 이에 따라 시어의 위치를 부러 바꿔 읽다 보면 언뜻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둘 사이의 접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이란 “이별이라는 단어를/이해해본 적 없다는 듯이/끝을 상상하는 능력을 모두 잃은”(「빈맥」) 감정이기도 하지만, “싱거운 미래”(「우리의 아이는 혼자서 낳고 싶다」)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요즈음에는 차라리 “끝으로 간다는 것에 대해/그러나 끝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리미트 영의 마음”(「영으로 갈 때」)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을 전제하게 되었다고 해서 사랑을 멈추거나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흐릿한 마음”일지언정 그것을 “우리가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여전히/여전하”고 “서로를 흐린 눈으로 바라보는” 일은 “우리의 임무”(「그게 우리의 임무지」)이므로 사랑은 계속된다. 마치 “고고학자”처럼, “운석이 떨어지기까지 어떤 비밀스러운 일들이 벌어졌는지 말해주지 않”(「뼈의 음악」)을지라도 지금껏 사랑하다 멸종해간 존재들이 남긴 뼛조각을 추스르는 데 골몰하며, 결국 우리는 멸종할 때까지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사랑해,라고 발음하는 수밖에 없다”(「마녀와 로봇의 사랑」). 이 시집은 바로 유선혜의 목소리가 처음 전하는 사랑과 멸종의 발화이다.

“우주는 팽창하고 모든 점은 멀어진다고 해도
다가가는 찰나가 있어”

잡종의 별자리와 기울어진 행성이
증명을 거스르며 날아와 지구에 건네는 믿음


타당하지 않다고 해도
증명할 수 없다고 해도
믿게 되는 구절들이 있어
전제와 결론의 나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번짐이 있어

[……]

내면이 멸종한 행성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거대한 외로움이 있어

어제 우리가 나눈 대화
당신이 나에게 몸짓으로 전한 인사와 내가 침묵으로 대답한 질문 침묵을 이해하는 눈빛과 독특한 말의 리듬
이 모든 게 거짓인 행성을 상상할 수 있니?
―「충돌에 관한 사고실험」 부분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순간에” 다가와 “지구에 새로운 멸종을 가져”(「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오기 전 운석의 원래 모습은 너른 우주를 떠다니는 유성체이다. “쓸모없는 것들만 사랑하는 너를 사랑하는 나와/자꾸만 절뚝이는 반쪽짜리 나를 사랑하는 네가/섞여 들어”간 모습으로 “허무하게 반짝이는”(「잡종의 별자리」) 별의 조각과 “한 대 맞아 찌그러져/기울어진 궤도를 가진” 채 “불규칙한 박자에 맞춰/끔찍하고 괴상한 주기로 회전하는”(「사이비 리듬」) 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 뭉쳐진, 이상하고 아름다운 덩어리.
우주 저편을 부유하던 유성체가 머나먼 지구의 대기권 안으로 뛰어드는 까닭은 “우리의 몸과 몸이 만날 때/오로지 물질로 구성된 육체들이 부딪힐 때/함께 충돌”해야만 “만들” 수 있는 무엇의 존재를 믿기 때문일 것이다. 내면과 의미가 사라진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고 증명하려 하는 시대를 들이받음으로써 감히 그 “증명을 거스르”기 위해, 반인반수의 별자리와 어긋난 리듬의 행성은 기꺼이 운석이 되어 지구와 부딪으며 “우리를 입자의 덩어리가 아니게 하는/입술로 흘러나온 파동 너머의 그것을”(「충돌에 관한 사고실험」) 창조한다. 단단한 믿음을 안고 지구로 날아드는 이 별똥돌의 충돌은 다분히 의도적이므로, 그것이 그리는 궤적은 “하늘에서” 추락의 포물선이 아니라 “댄스처럼 보일”(「멸종의 댄스」)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영혼에도 구멍이 있다고 믿고 있어요”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존재의 구멍
그 실체를 찬찬히 감각하는 생의 손아귀


누군가는 영혼의 구멍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고, 그러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론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구멍이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는 것들을 보세요. 우리에게 빈 곳을 채워 넣으라고 명령하는 구멍의 중력. 비어 있는 것의 질량. 갈구하는 묵직함.

이것들을 느낄 수 없나요?
―「구멍의 존재론」 부분

“우주를 가득 채”우던 “미지의 물질이” 지구에 도착하여 반드시 거치게 되는 곳은 바로 인간의 ‘구멍’이다. 이 구멍은 “사랑이나 정의, 투쟁 혹은 혁명으로도/틀어막을 수 없는 틈새/없는 것들로 정의되는/여집합으로만 서술할 수 있는/고집스러운 빈자리”여서, 우주의 물질조차 그저 “구멍을 관통”하며 “훑고 지나”갈 뿐 이를 채우지는 못한다.
“인간이라면 구멍을 감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구멍의 존재론」)지만 시인은 제 “머리에 구멍이 났”(「괄호가 사랑하는 구멍」)음을 시집의 가장 첫 작품에서부터 고백한다. “귀엽지 않은 개체는 인간이 다 죽여버”(「원룸에서 추는 춤」)리기 때문인지 그의 구멍은 “조금 더 커지면 야옹 하고 울지도” 모를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괄호 칠 수 없는 생각’들을 먹고 “점점 크게”(「괄호가 사랑하는 구멍」) 자라난다.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조연정이 짚고 있듯 시인에게 있어 구멍은, 즉 “영혼의 허기와 존재의 결핍”은 이토록 “당연하게 그리고 명백하게 존재”하여 “언제나 분명히 감각되는 실체”인 것이다.
시인은 구멍을 단순히 드러내는 데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키운다’고 표현한다. “펄펄 뛰며/채워 넣기를 명령하”다가도 막상 무언가를 “욱여넣으면 토해내는” 이 까다로운 ‘반려 구멍’을 도넛 반죽 다루듯 따뜻한 손으로 “이리저리 주무르”(「구멍의 존재론」)고 도닥인다. “뭐든 잔뜩 부풀면” 다시 또 “구멍이 난”(「악의 문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밀가루가 부풀어 오를 때 나는 찰나의 달콤한 냄새”를 맡으며 잠시나마 “살아 있다고 느끼”기 위해. 가만한 손길로 “살아가는 모든 것의/타고난 결핍”(「구멍의 존재론」)을 느끼는 데 집중하는 유선혜의 “취미는 살아 있기, 특기는 고요하기”(「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이다.








히틀러의 법률가들

헤린더 파우어-스투더 저 / 박경선 역 / 23,000원 / 진실의 힘


엘리트 법률가들은 왜 나치에 동조했고,
어떻게 그들을 정당화했는가?

민주주의 파괴에 앞장선 나치 법률가들을 통해
법과 도덕의 딜레마를 돌아보다.


‘현대 민주주의를 확립한 바이마르공화국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한 나치로 이어졌을까? 어쩌다가 인류 역사에 다시 없을 온갖 참상과 홀로코스트로 치달았을까?’

나치 독일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히틀러의 법률가들』은 나치 독일의 숨은 조연, 히틀러와 나치에 동조하고 정당화했던 법률가들에 초점을 맞춰 답을 구한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경멸”한 바이마르공화국 법률가들이 히틀러의 전제권력과 나치의 법체제 수립을 위한 이론을 제시하고 폭력적 권력 행사를 정당화한 과정을 상세히 살펴본다. 저자는 법 ㆍ 역사 ㆍ 정치 분야의 최신 연구를 기초로 나치 법률가들이 저지른 법 규범의 전복을 정밀히 추적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창안한 기괴한 법사상과 이론을 낱낱이 밝힌다. 그 결과 “민주주의 규범의 전복과 제도의 파괴에 팔을 걷고 나선 나치 법률가들의 화려한 이력서”(이동기 강원대 대학원 평화학과 교수)가 태어났다.

이 책의 미덕은 나치 법률가와 사법제도에 대한 평면적 연구에 그치지 않고, 나치의 법 규범과 제도가 만들어진 사회적 ㆍ 정치적 맥락을 기초로 법철학적 평가를 새롭게 했다는 점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나치의 법은 전후 법학자들이 일반적으로 평가해온 것처럼 “도덕과 분리된 ‘악법’ 체계”가 아니라 도덕과 법을 전면적으로 통합한 체계임을 밝히고 법이 정치 이데올로기에 굴복하다 보면 국가권력이 일반적인 도덕과 법 기준을 전부 위반해도 이를 막는 데 실패할 수 있다”(17~18쪽)는 사실을 입증한다.

“드디어 나치 법에 관한 믿을 만한 입문서가 나왔다”(옌스 메르헨리치, 런던정치경제대학 국제연구센터 소장)거나 “복잡한 역사적 현실에 우리의 주의를 환기함으로써 나치 법에 대한 법학적 논의에 엄청나게 가치 있는 기여를 했다”(라르스 빈크스 케임브리지대학 법학 교수)는 연구자들의 평가는 이 책의 가치를 가늠케 한다.

저자인 헤린더 파우어-스투더는 나치 독일을 사례로 법의 합리성과 규범성을 연구하는 정치학자로, 스탠퍼드대학을 거쳐 오스트리아 빈대학의 윤리학 ㆍ 정치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콘라트 모르겐: 나치 판사의 양심』(J. 데이비드 벨레만 공저, 2015), 「한스 켈젠의 법실증주의와 나치 법의 도전」(2014) 등 나치 독일의 법을 다룬 다수의 책과 논문을 쓴 나치 법 전문가다. 저자는 나치 법률가들이 쓴 원전을 풍부하게 인용해 그들의 생각과 주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도 어렵고 까다로운 법개념과 이론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게 썼다. 90여 쪽(745개, 한국어판 기준)에 달하는 미주는 연구의 폭과 깊이를 보여준다.

『히틀러의 법률가들』은 과거 독일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위기상황에서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에도 의미 있는 준거가 될 수 있다. 이 책이 그려낸, 민주주의를 경멸하는 법률가들이 어떻게 정치 권력을 정당화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한국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을 마주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법’의 이름으로 폭력과 인권 침해를 저지르며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정치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법률가들이 앞장서온 어두운 역사는 말할 것도 없지만, 엘리트 법관들이 정권과 결탁해 사법부의 존재근거를 무너뜨린 ‘사법농단’ 사태와 “법치주의”를 내세우며 집권한 정권이 검찰 권력을 바탕으로 법치를 무너뜨리는 현재의 모습과 나치 법률가들의 행태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의문이다. “20세기 전반 독일처럼 21세기 전반 한국에도 인권의 깊이와 민주주의의 무게를 채 채어보지 못한 채 법전만을 급히 외운 법률가들”(이동기)은 물론 과거의 국가폭력을 성찰하고 법이 정치의 도구로 악용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에게도 이 책은 깊이 있는 성찰의 지점을 제시할 것이다.

바이마르공화국 사법제도와 나치 사법제도의 연속성

『히틀러의 법률가들』은 나치 사법제도를 도덕과 분리된 ‘악법’ 체계로만 이해하던 기존 인식에 이의를 제기한다.

히틀러에게 절대권력을 부여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수권법」, 「민족과 국가 수호를 위한 제국 대통령령」 등은 ‘독재조항’이라 불리던 바이마르공화국 헌법 제48조에 기반했다. 제48조는 대통령에게 긴급명령을 통해 군사력 지원을 요청할 권한, 거주의 자유 ㆍ 표현의 자유 ㆍ 집회의 자유 등을 보장하는 헌법 조항을 폐지할 권한을 부여했고 사민당 정부는 실제로 이 권한을 활용해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히틀러 역시 이 조항을 활용해 긴급명령을 공포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박탈했다. 나치 법률가들은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여러 차례 있었던 긴급명령에 의한 통치와의 연속성을 지적하며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것은 적법하다”고 주장했고(73~74쪽) 독일 국민들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물론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바이마르공화국은 극우파와 급진좌파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대통령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했지만, 나치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긴급명령을 악용했다. 그렇다고 해도, 나치가 외형으로나마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나치 사법제도를 그저 일탈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나치 시대의 사법제도는 심각하게 왜곡됐지만 ‘합법성’의 외피를 두르고 있었다. 나치는 자신들의 권력 강탈을 정당화하려 했고, 실제로 형식적이나마 합법성의 외피를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그 일을 가능케 했던 이들이 바로 ‘히틀러의 법률가들’이었다. “나치 성향의 법률가들은 의회민주주의를 ‘공허한 법적 형식주의’라 공격했고 가치다원주의와 자유주의적 관용을 ‘윤리적 혼란’의 원흉이라고 비판했다.”(39쪽) 이들은 나치의 집권을 ‘합법적 혁명’이란 말로 호도했다.

쇼이너는 혁명은 법을 위반하기 마련이지만, 민족사회주의 혁명은 달랐다고 주장했다. 그 신중한 계획, 치밀한 정치조직, 통제 불가능한 세력을 풀어두지 않은 것에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치 혁명은 민족공동체의 사후 인정과 동의로 그 정당성과 합법성을 확보했다고도 역설했다.(76쪽)

형법의 도덕화, ‘의도’ 중심의 나치 형법 탄생

개인의 윤리적 성향, 태도, 동기 등과 같은 도덕의 영역과 법의 영역을 구분하고 도덕의 영역에 대해 중립을 지킨 바이마르공화국과 달리 나치는 “민족사회주의 세계관에 부합하도록 독일법을 재정비”(한스 프랑크 독일법학술원장)한다는 명목으로 법과 도덕을 통합했다. 법과 도덕의 통합은 법을 ‘도덕적으로 옳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 속하는 가치판단과 생각, 즉 정신적 영역을 국가가 통제하고 양심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제3제국은 전체주의 특색이 뚜렷한 국가로 빠르게 변모했다. 기본적인 시민권과 자유를 제한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적이던 바이마르 시대에는 국가의 통제 바깥에 있던 사회적 삶의 영역들, 이를테면 여가 활용, 배우자 선택, 자녀계획 등까지도 직접 개입하고 나섰다.(27쪽)

법과 도덕의 통합이라는 나치 사법제도의 특성은 형법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나치 체제에서 형법은 국가가 시민을 지키기 위한 사법적 수단이라기보다, 민족공동체의 순수성과 정권이 가진 불가침의 권위를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범죄자’들을 겨냥했다. 나치 법사상가들은 “법률뿐 아니라 민족공동체에 대한 충성 의무를 위반한 경우까지도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을 수정할 방법을 찾았다.”(106쪽)

대표적 수단이 ‘의도’ 중심으로 형법을 바꾼 것이다. 전통적 형법은 범죄의 구성요건과 사실을 중시했지만, 나치 법률가들은 범죄자의 의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범죄의 성공 여부는 대개 운에 달렸기에 성공과 실패에 따라 형량 차이를 두는 것은 부당하며, 범죄자의 의도 자체를 파악해 의도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범죄와 범죄자 개인의 특성을 연결하는 범죄자 유형론 개발로 이어졌다. 또한 사회를 방위하려면 범죄가 저질러진 다음에 진압하는 대신 범죄 의도가 발현되기 전에 억지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기존 자유주의 형법에서는 허용되지 않던 과도한 형사 조치들을 도입했다.

각종 처벌은 권위주의적 국가의 정치적 조치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판사는 총통의 의지를 실행하는 거수기가 돼버렸다. 점차 판사들의 주된 관심사는 범죄자가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가 되어버렸다. 피고가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릴 사악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의심이 들면 사형도 적절한 처벌이라고 여겼다.

형법의 도덕화는 정치적 악용을 부추겼다. 저명한 법이론가들이 윤리적 의무로 간주하며 “민족의 건전하고 올바른 인식”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던 것들이 무수히 많은 형사사건들로 이어졌고, 저지른 ‘범죄’라고는 민족의 풍속과 질서라는 기준을 공유하지 않거나 그에 부합하지 못했을 뿐인 사람들이 사형까지 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144~145쪽)

사실과 규범을 뒤섞어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다

인종주의는 초창기부터 나치 운동의 핵심이었다. 나치당 강령 제4조는 “오직 민족동지만이 시민이 될 수 있다. 민족동지는 신앙과는 상관없이 독일혈통이어야만 한다”라고 명시했다. 나치 법률가들도 인종을 법의 핵심 개념으로 삼았다. 독일법학술원 회원이던 오토 쾰로이터는 “민족의 생활질서로서 민족주의적 법치국가의 토대는 민족이며, 그 인종적 본질 및 신체 건강한 구성원의 보존이야말로 모든 정치적ㆍ문화적 진보의 토대다”라고 주장했다. 독일의 법과 정의에 따를 수 없는 이질적 인종, 특히 유대인에 대한 차별을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아리아인 혈통이 아닌 공무원은 퇴직처분한다”라고 규정한 「직업공무원제의 재건을 위한 법」, “유대인과 독일인 또는 독일 관련 혈통의 국민” 간의 결혼을 금지한 「독일혈통 및 독일명예 수호를 위한 법」 등을 만들었다.

나치 법률가들은 당시 유행하던 인종차별적 담론을 자연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했고, 그 ‘사실’을 토대로 다른 인종의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는 ‘당위’를 끌어냈다.

나치 사상가들은 ‘사실’과 ‘당위’의 구분을 인정하지 않은 채 경험적 차원에서 규범적 차원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도움이 되면 두 차원을 쉽게 뒤섞어버렸다. 이들 사고방식의 내적 논리에 따르면, ‘자연과학적’ 전제로부터 규범적 결론과 의무적 명제를 도출하는 것은 전적으로 허용되는 것이었다. 이런 전략은 이후 통과된 인종주의 법에 사이비 과학적 근거를 부여했다.(168쪽)

나치 국가의 구조와 나치 법률가들의 역할

나치 법률가들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나치 법을 주도적으로 기획한 이는 나치고, 관료와 법률가들은 그 부작용을 완화하려 최선을 다했다는, 이른바 ‘깨끗한 관료 체제’신화에 대해 저자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 신화에 따르면 “대량 학살로 직결된 나치 정권의 인종 이데올로기 실행에 대한 책임”(178쪽)은 나치당, 나치 친위대, 보안국, 게슈타포 등의 기관들에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유대인 말살의 실행방법을 논했던 반제회의에는 롤란트 프라이슬러, 빌헬름 슈투카르트 등의 관료들과 법률가들이 참석했다. 또한 “행정기관, 특히 슈투카르트 관할의 인종 문제 담당부서는 반유대주의 정책에 큰 관심을 가졌으며 ‘최종 해결’ 실행에 계속 적극 관여하고자 했다.”(181쪽)

이 사례는 나치 독일의 작동 방식을 잘 보여준다. 정치학자 에른스트 프랭켈은 나치 독일을 법에 따라 작동하는 규범적 국가와 법 바깥에서 자의적 개입, 조치, 명령을 통해 권한을 행사하는 특권적 국가로 구성된 ‘이중국가’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중국가’ 개념은 나치 정권 내에 존재한 두 국가가 아니라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두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최종 해결’처럼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린 것은 나치당 등의 특권적 국가였지만, 규범적 국가에 속한 관료들과 법률가들도 그 실행에 협력했다.

행정 각료들이 대규모 집단학살의 결정과정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행정과 ‘최종 해결’이 무관하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다. 행정 관료, 특히 내무부의 법률가들이 만들고 작성한 유대인 말살 계획에는 법률 용어 이면의 숨은 의미가 있었다. 행정 당국의 법률가들이 인종학살을 막기는커녕 더욱 수월하게 만든 셈이다.(179쪽)

나치 법률가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 중 일부는 나치 친위대, 제국 보안본부 등의 특권적 국가에도 참여했다. 또한 모든 사회 영역을 아우르는 ‘전체국가’를 개념화한 카를 슈미트, “국가의 전체성은 전체 사상과 전체 인민을 지켜낸다”라는 말로 전체국가를 옹호한 에른스트 루돌프 후버, 경찰이 “모두가 민족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민족의 가치를 유지하고 창출하는 역할을 준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한 발터 하멜, “독일 정치체의 위생을 신중하게 감독하는 기관”으로 경찰이 ‘인종 위생’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 베르너 베스트 등 여러 법률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나치 이데올로기 정당화에 앞장섰다.

전반적으로 법률가들은 악명높은 인종 이데올로기와 총통에 대한 사실상의 신화적 지위 등을 포함한 국가사회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국가기관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 법이론가들은 국가의 기반을 의도적으로 나치 운동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개념에 결부시킴으로써 이런 상황이 전개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당과 국가의 통합 원칙을 받아들여 당의 법을 국가의 법으로 격상했다. 그리고 이들은 힘, 통합, 정의 면에서 구식체계보다 우월하다는 새로운 정치질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총통에게 광범위한 권력을 부여하는 것도 정당화했다.(103~104쪽)

법과 도덕의 딜레마

『히틀러의 법률가들』은 나치 법의 문제가 잘못된 도덕 관념에 있다는 주장도 반박한다. 도덕적 진실은 사회적 관행과 맥락 속에서 해석되기 때문에 온전한 도덕과 왜곡된 도덕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치 사법제도의 왜곡은 바로 이 단계에서 이뤄졌다. 법과 도덕을 통합하면서 선과 악, 옳고 그름에 관한 전통적 도덕률을 완전히 재해석함으로써 법의 의미를 왜곡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나치는 ‘품위 ㆍ 명예 ㆍ 충성 ㆍ 용기 ㆍ 정직’등의 덕목을 강조했는데, 이런 덕목은 그 자체로 비윤리적이거나 부도덕하지 않다. 나치는 이런 덕목의 의미를 재해석해서 법치 사회의 전통적 도덕에 따라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의미와 나치 이데올로기에 따라 왜곡한 - 법치 사회에서는 금지된 내용의 - 의미를 뒤섞었다. 예컨대, 충성은 총통과 ‘독일적인 것’에 대한 충성, 용기는 그를 위해 유대인 같은 국가의 적을 배제하고 학살할 용기로 해석했다. 그 범위에서는 품위와 명예, 정직을 찬양했다. 그 결과 무제한적 전쟁과 학살이 오히려 윤리적 의무인 것처럼 간주되는 전복된 규범 체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 나치 치하에서 사람들의 양심이 쉽게 마비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체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덕 질서를 변형시킨 나치 국가, 특히 나치 친위대는 윤리적 의무가 무제한적 전쟁, 그리고 심지어 정치적 살인과도 혼동되는 규범 체계를 창조했다. 이 같은 새로운 규범 세계는 완전한 무도덕주의나 무한한 범죄의 세계가 아니라, 범죄행위와 살인이 윤리적 의무와 요건에 부합하는 것과 같은 전복된 질서였다.(245쪽)

나치 사법제도의 교훈

“범죄적 정치체계가 법을 도구화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히틀러의 법률가들』은 나치와 같은 사법제도의 타락을 막으려면 법과 도덕을 분리함으로써 국가권력의 한계를 설정하고 개인의 내면을 보호하는 한편, 법체계의 규범적 요건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철학자 론 풀러의 제안에 따라 저자가 제시하는 법체계의 규범적 요건은 공표성 ㆍ 투명성 ㆍ 이해 가능성 ㆍ 신뢰성 ㆍ 예측 가능성 ㆍ 일관성 ㆍ 자의적 소급 입법 방지 등이다.

예컨대, 나치 법률은 범죄 구성요건을 추상적으로 정해 처벌받는 행위와 처벌받지 않는 행위 사이의 구분을 모호하게 했을 뿐 아니라 ‘유추’를 허용해 처벌 규정이 없는 행위도 처벌할 수 있게 함으로써 예측 가능성을 훼손했다. 일부 법률가들은 “법적으로 규제되지 않은 사실에 전체 법질서에 내재된 법 관념을 적용하는 것”(카를 지게르트)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민족의 건전한 인식’이었는데 이는 나치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판사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 자의적 처벌로 이어졌다.

저자는 유대인과 소수 민족, 장애인에 대한 집단학살이 공식적으로 공포된 법령이 아니라 히틀러의 비밀 지시에 따라 저질러진 사실을 언급하면서 법체계의 규범적 요건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히틀러조차도 공포된 법령의 형태로 집단학살을 명령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공포된 법령만 효력을 가진다는 조건을 지켰을 경우 나치의 범죄가 역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것은 막을 수도 있었음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비밀주의야말로 전체주의 체제가 정치적 범죄성을 드러내는 주요 도구라는 점을 지적한다.

전체주의 체제가 권력을 행사하고 정치적 범죄성을 드러내는 주요 도구는 비밀주의다. 총통의 명령을 공포하라는 요건만으로도 나치 정권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270쪽)

『히틀러의 법률가들』은 단지 나치에 영합한 일부 법률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법이 있는 한 영원히 존재할 보편적 딜레마에 관한 이야기다. 그 딜레마 앞에서 고민하며 때론 권력에 영합하고 굴종하는 법률가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퇴행이 현실화하는 위기 상황에서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억압에 맞서 자유를 지키려는 모든 나라의 시민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나는 천추태후다

윤선미 저 / 14,800원 / 일송북


송나라와 거란에 맞서 민심을 모으며 고려를 지켜낸 여인
고구려와 백제를 건국한 여걸 소서노에 대한 연구와 소설로 많은 독자에게 호응받고 있는 작가 윤선미 씨가 이번에는 고려 초기의 여걸 천추태후의 삶을 재조명한 『나는 천추태후다』를 펴냈다. 천추태후는 태조 왕건의 손녀로 고려 제5대 경종의 왕후이자, 제6대 성종의 누이였고, 제7대 목종의 어머니로 섭정하며 정치적·외교적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여걸이다.
천추태후는 사대주의와 유교에 매몰된 성종이 폐지했던 연등회와 팔관회를 부활시켜 민심을 한군데로 모았다. 송나라와 거란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적절히 펼치는 한편, 북진 정책의 요충지인 평양을 중심으로 여러 성곽을 쌓아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며 황제국으로서의 자존을 지켜냈다.
그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중국 사대주의와 유교관에 바탕한 많은 역사서는 천추태후를 사통한 여인, 권력욕의 화신 등으로 비하했고 여전히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나는 천추태후다』는 고려 초기 사회, 특히 자유로운 성 풍속 등과 국제 질서에 비춰보며 천추태후를 황제국의 위상을 지켜낸 여걸로 복권하고 있어 많은 관심을 갖게 한다.









나는 김자야다


이동순 저 / 14,800원 / 일송북


조선권번 출신 기생의 사랑과 통 큰 기부의 삶
월북해 잊혔던 백석 시인을 민족 최고의 시인으로 자리매김한 이동순 시인이 백석의 애인 김자야와의 오랜 만남과 취재의 실감으로 쓴 『나는 김자야다』를 펴냈다. 김자야는 조선권번 출신의 기생이자 여창 가곡의 명인. 서울 최고의 요릿집 대원각을 길상사란 사찰로 바꾸게 한 장본인이다. 수백억 원대의 그 대원각이 백석의 시 한 줄보다 못하다고 하는 통 큰 사랑과 시주로 장안의 화제를 불렀던 인물이다.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자야(본명 김영한)는 조선권번 소속의 예인으로 가무에 뛰어났다. 전설적으로 널리 알려진 백석 시인과의 사랑을 김자야 입장에서 실감나게 토로하고 있다. 또 국악의 명인으로서의 국악 계승과 발전에 힘써온 사실도 취재를 바탕으로 쓰고 있다.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시주해 길상사라는 도심 사찰로 거듭나게 한 내막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법정 스님께 대원각이란 큰 자산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았던 점과, 정작 그토록 사랑했던 백석을 위해서는 문학관 하나 짓지 못한 실책도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말년에 큰 재산을 카이스트에 기증해 많은 인재가 장학금 혜택을 받고 있는 내력 등도 다루며 한국인의 올곧은 심성을 찾게 하고 있는 책이 『나는 김자야다』다.









나는 삼한갑족이다


박상하 저 / 14,800원 / 일송북


민족의식의 강심수로 흘러내리고 있는 삼한갑족 명문 의식
퇴계와 율곡 등 역사적 인물에서 오늘의 의미를 찾고 있는 작가 박상하 씨가 이번에는 우리 민족을 뿌리 깊고 융숭하게 이끌어온 명문가들을 살핀 『나는 삼한갑족이다』를 펴냈다. ‘삼한갑족三韓甲族’이란 문자 그대로 삼한, 즉 역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으뜸가는 집안을 뜻한다.
온겨레가 추앙하는 인물이 많이 나온 집안, 정승이나 청백리, 그리고 학문이 깊은 대제학을 많이 배출한 집안 등이 삼한갑족으로 불린다. 『나는 삼한갑족이다』에서는 이 중 나라를 대표하는 학문이라야만 가능해‘벼슬의 꽃’으로 불린 대제학을 3대 이상 배출한 다섯 집안의 내력과 교육과 가훈 등을 살피고 있다.
그러면서 삼한갑족은 오늘의 삶과 사회에 귀한 신분에 올랐어도 절대 교만하지 말라는 충고를 보내고 있다. 또 딱한 처지에 놓일지라도 위축되거나 민망하게 여기지 말라 하고 있다. 이런 삼한갑족의 명문가 의식이 민족의식의 강심수로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박완서다

이경식 저 / 14,800원 / 일송북


오늘날 한국에 펄펄 살아있는 양반 의식과 중산층 의식
소설가 박완서에 대한 최초의 학위 논문을 쓴 작가 이경식 씨가 박완서의 삶과 작품을 다룬 『나는 박완서다』를 펴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 전쟁 당시 가족을 잃고 군부 독재 시대에 옳은 목소리를 내며 현대사의 질곡을 헤쳐온 끈질긴 생명력과 소설 작품으로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는 작가가 박완서다.
그런 박완서의 삶과 작품을 『나는 박완서다』에서는 박완서 자신의 육성으로 생생하게 살피고 있다. 박완서가 쓴 박완서 평전 형식을 취한 것이다. 하여 작가가 어쩌다 그렇게 살게 되었는지, 또 어쩌다 소설이 그런 삶의 가치를 담게 되었는지를 스스로 살펴보게 했다.
그런 삶과 작품에 드러난 것은 줏대 있는 한국인으로서의 ‘양반 의식’과 끈질긴 생명력의 원천으로서의 ‘아줌마 의식’이다. 아울러 좀 더 나은 삶과 사회를 위한 ‘중산층 의식’과 ‘역사의식’이 박완서 삶과 작품의 특장이었음을 저자는 설득력 있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