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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월 신간 도서 소개(종합) - 매주 업데이트 됩니다.
등록일
2024-06-19
조회수
138
 
신의주 백선 백화점

진저 박 글 / 천미나 역 / 14,000원 / 안녕로빈


일제 강점기인 1944년 한반도 북쪽의 항구 도시 신의주, 열세 살 미옥은 일본인을 상대로 백화점을 운영하는 가족의 고명딸로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자, 일제는 조선인 강제 징병도 모자라 학생들도 공장에 끌고 간다. 염색 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경험하며, 부모 없이 폭력과 학대를 받는 아이들의 처참한 실상을 맞닥뜨린다. 1945년 일본 패망으로 맞은 조선 해방에 미옥은 크게 기뻐하지만, 행복의 순간은 오래가지 못하고 무장한 소련군이 북쪽을 점령하면서 백화점뿐만 아니라 신의주 전체가 폐허로 변한다. 남과 북,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대립으로 전쟁이 임박하면서 가족은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탈주를 고민한다.

1940년대 백화점을 운영하는 가족의 이야기
1940년대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더욱 포악해지고 모든 게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심스러운 이때, 암울한 시대와는 반대로 신의주에서 값비싼 물건이 넘치는 화려한 백화점을 운영하는 남다른 가족의 이야기이다. 가족 구성원은 조선인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일본인조차 선망하는 화려한 삶을 사는 환 오빠, 일제에 반감을 품고 형을 비난하면서 백화점의 실제 운영에 열의를 다하는 훈 오빠, 물려받은 재산과 화려한 물질에 관심을 두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부모님, 집안을 돌보는 아주머니이다. 막내딸 미옥이 가족 개개인의 삶과 관계를 10대 소녀의 감수성으로 들여다본다.

정체성을 고민하며 세상을 알아가는 성장 소설
방미옥과 히메코로 불리는 두 개의 나, 안락한 집 화려한 백화점과 폭력 굶주림이 일상인 두 개의 세상, 세상을 바라보는 두 오빠의 상반된 시선! 미옥은 이 두 개의 세계를 오가며 세상의 선과 악 그리고 인간의 어리석고 아름다운 이중성을 알아가며 성장한다. 일제와 소련군의 약탈과 방화, 폭력과 억압으로 자신이 믿던 세상의 이면을 경험하며 그로 인해 마음에 분노와 악이 자라고 있음을 감지한다. 그런 미옥이 생과 사의 경계에서 ‘머리통 하나가 쌀 한 자루’라고 말하는 경비대의 총구 앞에 서게 되고, 바로 그때, 강제 노역에서 만난 아이에게 건넨 작은 친절로 인해 살아남게 된다. 혼란과 반목, 악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사람이 나누는 친절이 어떤 큰 빛을 만드는지 아름답고 묵직하게 그려져 있다.

한국인의 정서가 스며있는 한 편의 서정 소설
억압과 폭력이 만연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지만, 한국의 문화와 삶의 정서가 소설 곳곳에 스며있다. 헌신, 신뢰, 나눔, 사려 깊음 등 은근한 마음의 표현과 더불어 계절의 다채로운 변화와 우리 음식의 맛갈스러움이 시각과 청각, 후각의 감각을 자극하며 아름다운 문장으로 마음을 차분하고 따뜻하게 만든다.

이런 독자에게 추천한다
⚫해방 전후 근현대사를 배우는 청소년
⚫거대한 역사 앞에 선 개인의 섬세한 시선이 궁금한 독자
⚫한국의 아름다운 정서에 스며들고 싶은 독자

 선정내역
★ 2023 북 라이엇(Book Riot) 선정 꼭 읽어야 할 K-소설
★ 2022 베스트 오브 코리아 선정 올해의 책
★ 2021 국제 여성의 역사 동맹(NWHA) 선정 도서


『신의주 백선 백화점』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 진저 박이 해방 전후 한반도의 혼란을 몸소 겪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소설로 그려 낸 작품이다. 그동안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이 배경인 소설은 많았지만, ‘북쪽의 항구 도시 신의주에서 일본인을 상대로 호화로운 백화점을 운영하는 가족’이라는 설정은 무척 낯설다. 더군다나 그 시기를 살았던 10대 소녀의 시선에 비친 역사와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나는 자체가 새로움이다.
주인공 미옥은 빈곤과 착취가 일상인 또래 아이들의 생활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그런 미옥은 강제 노역에 충격을 받고 외딴 산골 집으로 피신해 고독하지만 서정적인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런데 역으로 주인공의 이 같은 특별한 조건이 야만과 폭압으로 가득한 세상을 더 세심하게 포착해 낼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
주인공은 청소년 시기의 섬세한 감성으로 일제의 억압과 부역자의 배신에 분노하고, 폭력 앞에 무력한 인간에 연민과 슬픔을 느끼며, 주변 인물들을 통해 인간과 세상의 부조리를 관찰하며 성장한다. 독자는 이런 세심한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가며 소설 속 이야기에 공감하게 된다. 잿더미가 되어 버린 터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생사가 오가는 경계 그 어떤 폭압의 시대에도 잃지 말아야 할 인간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쁨, 슬픔, 동경, 사랑, 반목, 그리움, 기다림, 분노, 연민! 더군다나 작가는 주인공의 감정이 일어나고 증폭되는 지점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기에 주인공의 성장에 마음이 아련해진다.
지금도 세계에는 전쟁과 내란으로 고통받는 수없이 많은 미옥과 송호, 환과 훈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 소설이 펼쳐 보이는 이야기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독자들에게도 이 책이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 가치를 생각하는 이야기로 다가가길 기대한다.













자기만 옳다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마리테레즈 브라운 저 / 장혜경 역 / 18,500원 / 갈매나무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불리한 대화에서도 주도권을 가져오는 한마디가 필요하다!


★★ “타인을 이해하고, 섬세하게 논쟁하고, 스스로 확신을 갖는 법을 한 권에 압축했다.” _Cori***
★★ “화술책을 수많이 읽어보았지만, 이 책은 뭔가 다르다! 대화 기술과 심리를 잘 조합한, 논쟁이 두려웠던 나에게 용기를 준 책.” _y***

잘 주고받던 대화가 순식간에 말싸움으로 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자기 주장이 틀렸는데도, 저 사람은 왜 고집을 꺾지 않을까? 나르시시스트, 고집불통, 기분파……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과 얼굴 붉히지 않고 대화할 수 있을까?
중요한 지점에서 의견이 상충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우리는 성급한 결론부터 내리고 본다.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차이점을 들추어 편을 가르며, 때론 도덕적인 우월을 가려 상대를 가르치려 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갈등에 불이 붙는다. 대화의 목표가 존중과 협력이 아닌 승패와 굴복으로 변질하기 때문이다.

화술과 협상 트레이너로 오래 활동해온 저자는 ‘함께 공동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긍정적인 대화 문화를 고민하며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하며, 이 책을 ‘협력하는’ 대화 기술이라 칭한다. 과격한 언어를 써서라도 상대를 입 다물게 만들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이 지나치게 중요해진 요즘,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만이 빠른 해결책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상대방 심리 이해에 바탕을 둔 대화가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데에 더 효과적이다. 실제로 클라이언트들의 사례를 들으며, 또 스스로 이 책의 기술을 실험해보며 저자는 제아무리 고집불통이어도 존중을 동반한 대화를 시도하면 귀를 연다는 사실을 절실히 실감했다고 고백한다. 따라서 이 책은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는 대화법, 용기 있게 잘못된 논리를 반박하면서도 대화를 다시 긍정적 방향으로 돌리는 현명한 대화법을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꽉 막힌 이들의 닫힌 귀를 어떻게 하면 열 수 있을까? 고민한 적이 있다면 이 책을 펴자. 저자가 제시한 소통 스킬을 따라가다 보면 명쾌한 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한 가지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 바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기술이다.”
_희렌최ㆍ〈희렌최널〉 유튜버, 《할 말은 합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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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서지 않으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현명한 대화 기술 28


이 책의 다섯 장은 대화의 순서대로 진행된다. 일상적인 대화 속 갈등을 해결하는 법부터 나를 공격하는 무례한 말에 대응하는 법까지 각자의 상황과 처지에 맞게 골라 읽어도 좋다.
이 책의 기술들은 엄청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저자 자신과 그가 만난 사람들이 경험한 사례는 누구라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만큼 현대 사회의 대화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각종 연구 결과와 심리학 이론, 소통의 작동 방식을 소개하니 차근차근 따라가면서 자신에게 맞는 기술을 적용해보자. 그간 갈등이 싫어 논쟁을 피해온 많은 사람에게 이 책이 까다로운 대화도 서둘러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주기를, 공격과 후퇴의 틈을 잘 활용해 합리적인 대화를 이끌어나갈 지혜를 주기를 바란다.


생각이 다른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드는 심리 게임
“먼저 상대의 환심을 얻어라, 드러나지 않게”


인간은 같은 집단으로 묶인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한다. 이런 식의 ‘집단 편견’은 때로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식의 적대감을 부추긴다. 하지만 상대를 설득하고 싶다면 편을 가를 것이 아니라 ‘우리’로 거리를 좁혀 소속감을 강조해야 한다. 저 사람과는 도저히 같은 편이 될 수 없다는 기분이 들수록 더욱 그렇다.

“관계가 없으면 설득도 없다.” 책의 2장은 바로 이 지점에 집중한다. 드러나지 않게 상대의 환심을 얻어 나의 의견에 귀를 열게 만드는 법부터, 진전의 희망이 안 보이는 대화의 불씨를 다시 살리는 방법까지, 여러 기술이 소개된다.
기술 8을 살펴보자. 상대의 부정적인 말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포착해 반복함으로써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긍정 강화’ 기술이다. “그러나”로 이어지는 ‘부정’에 초점을 맞추어 설득하기보다, 그 앞에 오는 ‘인정’에 집중해보는 것이다. 반론에 반응하기보다 “그러나” 앞의 말을 반복하여 심화 질문을 던지면 상대가 알아서 긍정적인 측면을 되짚는다. 이를테면 면접 결과가 부정적일 때 한마디 더 곁들일 수 있다면, 무어라 하겠는가? “제가 떨어진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은 상대방이 당신을 떨어트린 이유를 다시 떠올리게 하므로 전혀 유리하지 않다. 하지만 “제게 면접의 기회를 주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라고 물으면 당신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당신을 좋게 본 지점들을 다시금 상기한다.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현명한 대화 기술
“갈등이 싫어 논쟁을 피해온 사람들을 위한 조언”


어째선지 대화를 나누면 불쾌한 사람이 있다. 말이 안 통하고 대화가 빙빙 돈다는 느낌이 든다. 이유가 무엇일까? 대체로 그 대화가 가치관 차이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성차별, 정치적 진보와 보수와 같은 문제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사람과의 논쟁은 자주 감정이 앞서고 소모적이다. 가치관은 사람을 고집불통으로 만든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사람들과도 끝까지 대화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단, 가치관과 사람을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가치관을 공격하는 것은 인격을 공격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럴 때는 더욱 섬세한 대화가 요구된다. 상대의 가치관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그가 거부감 없이 나의 논리를 따라올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3장의 기술 14와 기술 15에서 소개하는 ‘언어 가치관 프레이밍’과 ‘내용 가치관 프레이밍’이 좋은 예시다. 보수주의자들에게 소수자에 대한 관용을 설득할 때 ‘특권 의식’, ‘피해자’, ‘문제’ 같은 그들이 싫어하는 언어를 사용하면 당연히 반발이 인다. 같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실용적’, ‘문명인’, ‘합리적’ 같은 그들의 가치관과 맞아떨어지는 단어로 대체해서 말하면 설득의 여지가 생긴다.
‘내용 가치관 프레이밍’도 다르지 않다. 언어 가치관 프레이밍이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하는 기술이라면 내용 가치관 프레이밍은 입장은 다르지만 우리는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기술이다. 이때 대화는 이런 양식을 따른다. “저도 같은 입장입니다. 다만 길이 좀 달라서 저는 다른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반론이 먹히지 않았던 사소한 이유
“누구에게 어떤 논리로 접근할 것인가?”


3장이 가치관을 활용해 소모적인 대화를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리는 방법을 알아보았다면, 4장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어떻게 반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나의 입장이 가장 합리적으로 들리도록 포장할 수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방법은 총 여섯 가지이다. 사람마다 욕망이 다르고, 욕망에 따라 혹하는 지점이 다르니 각각의 특성에 맞는 논리로 접근할 것을 제안하는 ‘맞춤 논리’ 기술, 반론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낚아채서 선수를 치는 ‘예변법’ 기술, 주제(T), 논리(A), 결론(C) 순으로 말해서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도 나의 입장에 동의하게끔 만드는 TAC 기술, 중도를 좋아하는 심리를 이용해 나의 주장이 양극단 사이의 중도인 것처럼 포장하는 ‘극단적 중도’ 기술, 객관적 사실보다 경험과 감정이 가진 힘을 적극 활용하는 ‘정서적 나의 입장’ 기술, 자주 접한 정보를 더 진실이라 믿는 ‘환상 진실 효과’를 노려 핵심 메시지를 단순하게, 반복해서 말하는 ‘망가진 레코드판’ 기술이 그것이다.
여기서도 볼 수 있듯, 사람을 설득하는 데에는 말 뒤에 숨은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결국 소통의 작동 방식을 더 잘 아는 사람이 유리한 지점을 선점한다. 4장의 별면에서는 목소리, 자세, 표정, 단어 선택 등 말에 힘을 싣는 비언어적 표현들까지 알아보니, 둘을 접목하여 나의 말에 신뢰도를 더욱 높여보자.


무례한 말, 무식한 말, 비꼬는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
“뭔가 느낌이 이상하고 압박감이 들 때 해야 할 말”


그 어떤 대화 기술을 동원해도 요지부동인 사람도 있다.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우기고, 자신의 신념을 객관적 증거인 양 들이대는가 하면 대놓고 당신을 비난하기도 한다. 이럴 땐 앞의 기술보다 더 강력한 ‘자기주장 모드’가 필요하다. 5장은 이렇듯 나를 조종하려 드는 사람에게 저항하면서도 협력하는 대화를 하는 법을 살펴본다.

‘심리화’는 상대를 조종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자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상대에게 잘못을 돌린다. “자신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세요. 트라우마가 있으신 건 아닌지” 같은 말이 대표적이다. 혹은 가치관과 요구를 엮는 방식도 있다. “상사를 존경하고 지원한다면 위에서 내려오는 업무를 마다하지 않아야지.”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는, 긍정적 역할을 잃게 될까 봐 서둘러 상대의 요구에 응한다.
어떻게 해야 이런 말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바를 얻어낼 수 있을까? 회의 도중 타 부서 직원이 당신의 의견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부서도 다른데, 뭘 안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주제가 아닌 당신이라는 사람을 노리는 인신공격이다. 이럴 땐 기술 25 ‘까발려 멈추기’를 적용해보자. 상대의 대화법을 짧게 요약해 까발린 후 그 대화를 멈춰 세우고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는 기술이다. “제 개인의 의견이라고 말씀하고 싶으신가 본데, 그렇지 않습니다. 부서 차원에서 나온 의견이라서…….” 상대의 전략을 알아채고 그 사실을 언급하는 순간 심리화는 효력을 잃는다. 뿐만 아니라 상대의 비난에 ‘저 사람 말이 맞을지도 몰라’ 하는 식으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자기확신을 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유익하다.

부록으로 실린 미국의 흑인 음악가 대릴 데이비스의 사례는 긍정적인 대화 문화가 어디까지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니 꼭 읽어보길 권한다. 그가 수백 인종주의자를 설득하는 과정에 이 책의 기술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분석하는 이 파트는 독자들이 실전 연습으로 삼을 만한 매우 친절한 참고 자료다. 나아가 극단주의자들과도 기꺼이 관계를 맺으며 오로지 대화로 그들의 생각을 바꾼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포기하지 않는 이상 설득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는 깨달음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푸른 호수 밤 시나몬롤

김성은 글/사진 / 17,500원 / 어반북스


“서울과 파리, 그리고 코펜하겐까지!
세계적인 레스토랑 노마 NOMA 출신 푸드 디렉터의
눈부신 세 달의 여름과 고요한 아홉 달의 겨울”

● ‘푸드 디렉터’라는 생소한 직업적 이야기
● ‘이렇게 살 수도 있다’는 새로운 삶의 방식 제안
● 도시생활자이자, 이방인 작가가 겪는 생생한 현실
● 이상적인 북유럽 휘게 라이프에 대한 로망
● 북유럽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여름!


“당신의 삶은 지금, ‘휘겔리’한가요?”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나의 일에 대한 고민,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나’, ‘이 길이 맞는걸까’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잊었던 꿈에 대한 동기부여를 주는 이야기.

노오란 야생 꾀꼬리 버섯 수프 한 입
냄비 가득 따뜻하고 달콤한 밀크 포리지 위에 상큼한 체리 소스를!

살결에 닿는 바람에 느지막히 일어나 가벼운 아침을 챙겨 먹고,
집 앞 호숫가를 거닐다, 이내 바다에 몸을 맡기며 구름의 여행을 바라보는 그런 삶!

직접 구운 몰트향 가득한 빵 한 조각,
사랑하는 이들과 긴긴 밤을 보내며 매일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나누는 일.

〈도시수필: 코펜하겐〉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노르딕라이프를 즐기며 살아가는 푸드 디렉터, 김성은의 나른하고 반짝거리는 계절과 특별한 음식에 대한 기록을 담은 에세이다. 파리에서의 꿈에 부푼 유학 생활을 마치고, 우연히 떠난 여행에 이끌려 타지에 정착한 지 5년째. 도시 생활자이자 이방인으로서 겪는 생생한 순간들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어릴 적 파리에 대한 동경과 디저트에 대한 학구열이 맞물려 떠난 유학 생활, 낭만적인 미래를 꿈꿀 때쯤 한밤의 꿈처럼 끝이 나 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떠난 북유럽 여행에서 저자는 대단할 것 없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일상에 위로를 받게 되고, 조급했던 마음 위에 ‘이 곳에 살고 싶다’는 또다른 꿈을 갖게 된다.

 
모든 게 끝난 것만 같았을 때 찾아온 기회는 그렇게 삶을 다시 바꾸어 놓았다. 코펜하겐의 독특한 계절 변화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영감을 가져다주었고, 작은 숲에 서 있듯 자연과 하나가 된 일상은 매일을 더 설레고 소중하게 만들었다. 근교의 바다 수영부터 숲 속 피크닉, 편안한 이들과 집에서 함께 나누는 식사, 사계절 감각을 채우는 신선한 식재료들까지 다채로운 풍경과 맛을 음미하며 삶의 변화에 한발 다가간다. 우리의 삶은 이렇듯 예기치 않은 순간에 변화한다.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나아갈 용기가 생겼다”

어쩌면 나도,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은 너무 다채롭고, 내 세상만 지루한 것 같을 때


누구나 동경하는 다른 곳에서의 새로운 삶!
사진과 영상으로 북유럽의 아름다운 일상을 전해온 작가는
시각 매체로는 담기 힘든 찰나의 순간과 깊은 감정을 글로 풀어 적기 시작했습니다.
독특한 식문화에 뛰어들어 흥미로운 북유럽의 식재료를 몸소 겪고, 자연과의 일상을 더욱 의미
있고 다채롭게 가꾸어 갑니다. 음식을 중심으로 소통하는 일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매일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법을 전합니다.

‘차회’라는 생소한 문화와 북유럽 식자재를 활용한 다양한 테이블 스토리로 독자의 감각을 확장합니다. 여행자에서 생활자로 녹아들며, 덴마크인들이 삶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살아가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엿보고 그들의 삶에 융화되어 하루하루 ‘나답게’ 살아가는 자신을 마주합니다.

“음식을 중심으로 직접 만나 소통하는 일의 소중함을 느껴요.”
“이곳의 독특한 계절의 변화가 많은 아이디어를 가져다줘요. 도심에서도 자연을 만날 수 있고 근교에 바다와 숲이 펼쳐져 있어서 자연에서 위안과 영감을 얻을 수 있어요. 덴마크인의 실용적이고 미니멀한 삶의 방식이 삶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만드는 법에 대해 매번 생각하게 해요.”
“덴마크에서의 생활이 제 성향과 잘 맞아 행복하지만, 덴마크에 사는 모두가 행복하거나 도시 자체가 행복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작가와의 대화 중












미나리아재비

박경희 저 / 10,000원 / 창비


“달려가보니 집 앞 개울가
미나리아재비 잎에 앉은 별이 반짝거렸다”

무한히 연결되고 조응하는 생명의 흐름 속에서
아픔과 슬픔을 그러안는 애틋하고 진실한 목소리

고향을 배경으로 한 농촌 서사를 구체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과 애잔한 서정으로 펼쳐온 박경희 시인의 시집 『미나리아재비』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능청과 해학”으로 “슬픔을 걷어내는 방식이 가히 독보적”이라는 평을 받았던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창비 2019)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세번째 시집에서 시인은 찰지고 구성진 충청도 사투리와 걸쭉한 입담으로 고향 마을의 “자연과 사람살이의 애틋한 정경들”(문동만, 발문)을 그려내면서 토속적인 서정과 서사가 어우러진 ‘이야기 시’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질박한 삶의 애환이 담긴 다정다감한 시편들이 잔잔한 울림으로 여울지면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는 따뜻한 시집이다.

“돌담 사이에 핀 민들레 바라보다가
엄니의 뒷짐에 얹힌 서글픔에

앵두꽃이 피었는지
살구꽃이 피었는지“


박경희의 시는 쉽게 읽힌다. 따로 해석할 필요 없이, 세밀하고 감성적인 필치로 그려내는 삶의 풍경을 바라보고, 익살과 해학을 곁들여 살갑고 능청스럽게 펼쳐놓는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하면 된다. “살아생전 목돈 한번 쥔 적 없는 손에는 늘 쭉정이만 가득했던”(「상강에 이르다」) ‘아부지’, 그렇게 돌아가신 ‘아부지’가 꿈에 나타나자 “살았을 적에 그리 모질게 마음고생시키더니/무슨 할 말이 있어서 이승 문턱을 넘느냐고 사발째 욕을 퍼붓는”(「꿈자리」) ‘엄니’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들과 마치 한집에서 오래 살아온 듯 친근한 느낌을 받게 된다.
시인은 그런 ‘아부지’와 ‘엄니’로부터 이어받은 대지적 감수성과 공생·공유의 세계관을 바탕에 두고 마을 사람들의 삶에 귀를 기울인다. 시인은 ‘나’가 아닌 대상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기거나, 인간의 고독과 슬픔에 조응하는 자연의 모습을 그리는 방식으로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참말로 지랄맞은 시상”(「워쩌겄어」)을 살다 쓸쓸히 사라져간 이웃들의 곡진한 사연이 “마을회관에서 이야기를 한 소쿠리 내놓”(「이야기 한 소쿠리」)는 이웃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한편 “그늘 깊은 집”(「그늘 깊은 집」)을 그림자로 끌어안으며 슬픔에 조응하는 감나무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정성을 들였던 것들은
아픔도 죽음도 함께한다”


시인은 ‘나’를 넘어서는 곳에 자리 잡은 시적인 순간들을 포착하여 겸손하게 노래한다. 삶 도처에서 인간과 자연이 공명하고, 사람과 사람이 관계 맺으며 감정의 너울을 일으키는 순간들이다. 시인은 ‘온양댁 할머니’가 “저승 가시자 어찌 알았는지/탱자나무가 한달 만에 죽”어버리는 것을 보고 “정성을 들였던 것들은/아픔도 죽음도 함께한다”(「집이 돌아가셨다」)는 자연의 섭리를 깨닫기도 하고,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고사리 끊으러 다녔던/산이 사라”진 자리를 “당신도 곧 사라질 것처럼 여러날째/빈 하늘만 보고 있”는 ‘석남이네 할머니’(「산이 사라졌다」)의 모습을 보며 쓸쓸해하기도 한다. “스무살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에 밤길 밟아 달려”온 ‘누이’(「구석에서」)와 “허방 가득한 세상”(「가르랑 소리에 묻히다」)에서 “살고 싶어 용을 쓰긴 쓰는디” “허는 일마다 엎어지”곤 하던 ‘사거리집 아들’(「외로운 허수아비」)의 이야기는 서글프고 애잔하기만 하다.

“나는 절실하지 않았기에
아직도 여기에 있다”


문동만 시인은 발문에서 “박경희 시인은 ‘짠한 사연’을 널리 퍼뜨려 같이 울게 하려는 사람이고,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내력과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는 장삼이사들의 축약된 행장기를 흐르는 물살에 손가락으로 그어서라도 적어두려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오래전 비구니가 되겠다며 법당에 앉아 합장”하다가 결국은 “머리 긴 비구니가 되어/그늘 많은 도시로 돌아”(「폐사지를 걷다가」)온 내밀한 사연을 은근살짝 고백하기도 하지만, 짐승과 인간과 식물의 곁에서 전할 이야기가 많은 지금의 자리에서 시인은 굳건해 보인다. “절실하지 않았기에” 떠나지 못하고 “아직도 여기에 있다”(「나의 바다」)고 말하지만 실은 절실한 마음이 있기에 그는 고향에 남아 여전히 “대지의 공동체와 함께 사는 농민의 삶에 천착”(김해자,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발문)하는 것이다.
시인은 공동체의 사람들과, 그들과 연결되어 조응하는 생명의 흐름을 포착함으로써 현실의 모습과 의미를 한층 선명하고 두텁게 만든다. 근래 보기 드문 서정적인 이야기꾼으로서 그는 그만이 쓸 수 있는 “순량하고도 고유한 마음의 ‘볍씨’들”(발문)을 잘 갈무리하여 자연과 인간에 대한 공경의 마음으로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나갈 것이다.












꽃을 위한 미래는 없다

브래디 미카고 저 / 김영현 역 / 17,000원 / 다다서재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브래디 미카코의 시작!

예리한 포착, 거침없는 사유, 처절한 유머…
계급, 이념, 정체성, 다양성 갈등의 한복판에서
불온하고 청량한 ‘밑바닥’ 사회평론이 시작되다

★ 작가 김혼비 강력 추천 “경이롭고 역사적인 데뷔작이다!”


『꽃을 위한 미래는 없다』는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아이들의 계급투쟁』을 통해 영국 밑바닥 사회의 현실을 그려온 브래디 미카코의 데뷔작이다. 가난한 육체노동자 집안에서 나고 자랐고 영국으로 건너가서도 브라이턴의 빈민가에서 살아가던 브래디 미카코는 지긋지긋한 가난과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쓰기 시작한다. 그 글들은 일본 출판사의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2005년 책으로 출간된다.
이 책은 그가 마흔에 발표한 데뷔작을 가필하고 새로운 글을 추가해 2017년 출간한 문고본의 한국어판이다. 빈부 격차와 세대 갈등, 복잡해지는 차별과 혐오 등 오늘날과 다르지 않은 당시의 풍경을 브래디 미카코 특유의 ‘미시적 글쓰기’로 담아냈다.

빈민가에 두 발을 붙인 채 사회문제를 통찰하다
브래디 미카코만의 미시적 글쓰기가 시작되다


일본의 가난한 육체노동자 집안에서 나고 자란 브래디 미카코는 젊은 시절 펑크에 심취해 혈혈단신 영국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아일랜드 이주민 출신 남자와 결혼해 브라이턴의 빈민가에서 일하며 살아간다. 그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가난과 영국 사회의 복잡다단한 풍경, 그리고 이주민, 홈리스, 동성애자, 육체노동자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쓰기 시작하고 그 글들은 일본 출판사의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2005년 책으로 출간된다. 브래디 미카코라는 걸출한 작가는 그렇게 탄생했다.
『꽃을 위한 미래는 없다』에 담긴 글들은 대부분 20년 전에 쓰였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빛바랜 느낌이 없다. 모두가 부정하지만 사회 내부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계급 격차, 다양한 층위로 벌어지는 정체성 갈등, 교묘해지고 복잡해지는 차별, 사회적 갈등을 교묘하게 부추기고 이용하는 정치 등 오늘날 사회문제의 씨앗들이 이미 도처에 퍼져 있었다. 분노의 방향을 잘못 잡은 청년들의 행태, 민간의료와 공공의료 문제, 다인종 다문화 사회의 명암, 중산층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현실적인 충돌뿐 아니라 부동산 투기 등으로 졸부가 된 노동자 계급이라는 신흥 계급까지 끼어든 다층적 갈등은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과도 일맥상통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거시적으로 정리해버리는 사회평론으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직접 살아가고 부딪히고 절망해본 자만이 쓸 수 있는 ‘미시적 글쓰기’로 브래디 미카코는 자신을 둘러싼 복잡 미묘한 세계를 논평한다. 훗날 아이를 낳아 키우고 보육사가 되어 일하며 쓰게 될 ‘밑바닥 사회평론’의 초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미래는 없어, 희망도 없어,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어차피 무참히 죽겠지만, 그래도 몸을 흔들며 살아간다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출간한 데뷔작에서 저자는 영국 사회의 이른바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여러 인간 군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은 대물림되고, 어떻게든 정부를 속여 돈을 뜯어내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빈민가의 삶. 좋은 일이라곤 일어나지 않는 ‘낙오자들의 더러운 동네’로 낙인찍힌 곳이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단순하지만은 않다.
동네의 문제아로 기물 파손을 일삼지만 이른 나이에 아버지가 되자 다르게 살 궁리를 시작하는 소년,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며 혼란을 겪지만 점차 환경을 받아들이며 강해지는 아이들, 죽음을 앞에 두고도 인간으로서 기품을 잃지 않는 에이즈 병동의 게이들, 미래에 희망 따위 없지만 독한 술 한 잔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가난뱅이들. 그들의 모습은 무엇에도 지배당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펑크’ 그 자체와도 같다.
너무 암울하고 되는 일이 없어 오히려 웃음이 나올 지경인 궁상맞은 삶. 해고를 당해도 머리가 벗어져도 배우자가 바람나 집을 나가도 아빠가 친아빠가 아닌 걸 알게 되어도, 그래도 술을 마시고 웃고 음악에 몸을 흔들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작가는 때로는 처절한 유머로 때로는 따듯한 긍정으로 감싸안는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신격화되길 거부하고 B급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굴욕을 자처하는 펑크 록의 거물 존 라이든처럼, 끝까지 현역으로 남아 일하고 싸우고 욕심내고 추하게 늙어가는 모습이야말로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현실이 시궁창 같고 미래 따위 없어도 사람은 계속 살아가기에 삶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통찰. 정치와 사회를 저격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는 작가. ‘브래디 미카코 월드’는 여기서 출발한다.













인생독서

김영란 글 / 12,000원 / 창비


복잡한 세상을 가볍게 읽는 ‘교양 100그램’ 시리즈 출간!
김영란이 말하는 삶을 위한 유일한 투자, 독서

프로의 지식을 충실히 담는 동시에 가벼운 무게와 가격을 갖춘 새로운 창비 인문교양 시리즈가 독자들을 찾아간다. 복잡한 세상을 가볍게 읽는 ‘교양 100그램’ 시리즈다. 바쁜 일상에서도 교양을 쌓고 싶은 현대인을 위해 기획된 이 시리즈는 출퇴근길이나 여행 중에, 가사와 육아 중에 틈틈이 휴대하며 읽을 수 있는 100그램 대의 가벼운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분야의 명사들이 이야기하듯 편안한 말투로 집필해 유튜브나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한 독자들도 부담 없이 독서의 재미에 빠져들 수 있도록 했다.
‘교양 100그램’ 시리즈의 첫번째 책은 대한민국 사법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입법에 힘쓴 김영란 전 대법관의 『인생독서』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온 것이 쓸모없는 독서였다고 고백하며 자신의 독서편력을 경유해 책 읽기의 의미를 탐문한다. 독서의 즐거움을 일깨우고 성숙한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책이다.

프로의 지식을 핵심만, 독서와 필사를 한권에 담다
‘교양 100그램’ 시리즈에 참여한 첫번째 저자들은 전 대법관 김영란, 영화감독 변영주, 작가 유시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혜신이다. 권말의 부록 ‘기억할 만한 문장’에는 대표적인 명문장들을 저자 자신의 필적으로 담아, 독자들이 책의 내용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며 필사할 수 있게 했다. 독서 초심자부터 평생학습을 추구하는 이들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이 시리즈는 가볍고 효과적인 지식 영양제로서 언제 어디서나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것이다.
‘교양 100그램’의 서막을 알리는 『인생독서』(김영란 지음)『창작수업』(변영주 지음)『공감필법』(유시민 지음)『애도연습』(정혜신 지음)은 초판 출간 이후 꾸준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책들로, 이 시리즈에서는 개정판으로 소개된다. 주머니 속에 휴대할 만한 작은 크기에 손에 쥐기 좋은 만듦새로 태어난 ‘교양 100그램’은 이번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선공개되어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책에 부담을 느끼지만 독서습관을 기르고 싶은 사람들, 유튜브로 지식을 얻는 것에 익숙하지만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얻고자 하는 이들, 나아가 일상에서 틈틈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더없이 충실하고 알찬 독서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나를 찾는 독서를 위하여
『인생독서』에서 저자는 지식 욕구를 채우거나 어디에 써먹을 수 있는 공부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책에 대한 탐닉은 쓸모있는 공부라고 할 수 없지만, 책을 읽는 것이 그 자체로 자신을 수양하고 나 자신을 찾는 길이었다고 말한다.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등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오가며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책들을 하나하나 짚는다. 이 쓸모없는 독서의 여정에서 책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곱씹으며 결국 책 읽기야말로 인생을 찾아나가는 평생 공부임을 증명해 보인다.











창작수업

변영주 글 / 11,000원 / 창비


“낚싯대를 드리울 여러분만의 호수를 만드세요”
연대하는 영화감독 변영주가 말하는 ‘창작자의 호수’ 만드는 법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기여한 「낮은 목소리」 3부작 등의 다큐멘터리로 소외된 이들에게 주목하고, 「화차」 등의 장편 극영화를 연출하며 현대 사회의 실상을 깊이 있게 탐구해온 변영주는 영화와 사회의 관계를 살펴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는 사회에 종속된 대중예술로서, 좋은 사회에서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게 창작이란 ‘내면에 있는 호수에서 물고기를 낚는 일’이다. 내면의 호수에는 그간 접해왔던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에서 인상적이었던 것들이 섞여 있는데, 그 호수에서 지금 자신에게 화두가 되는 담론을 잡아낼 때 창작이 시작된다는 뜻에서다. 그러니 창작자를 꿈꾼다면 일단 영화든 소설이든 가리지 않고 접하며 내면의 호수를 풍족하게 만들어야 한다. 저자는 창작자로서 자신만의 철학을 들려준 끝에 자신의 호수에서 만들어낸 영화를 본 이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힌다. 창작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작품을 창조하고 싶은 당신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줄 책이다.


연대하는 영화감독, 변영주가 말하는 ‘창작자의 호수’ 만드는 법

프로의 지식을 충실히 담는 동시에 가벼운 무게와 가격을 갖춘 새로운 창비 인문교양 시리즈가 독자들을 찾아간다. 복잡한 세상을 가볍게 읽는 ‘교양 100그램’ 시리즈다. 바쁜 일상에서도 교양을 쌓고 싶은 현대인을 위해 기획된 이 시리즈는 출퇴근길이나 여행 중에, 가사와 육아 중에 틈틈이 휴대하며 읽을 수 있는 100그램 대의 가벼운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분야의 명사들이 이야기하듯 편안한 말투로 집필해 유튜브나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한 독자들도 부담 없이 독서의 재미에 빠져들 수 있도록 했다.
‘교양 100그램’ 시리즈의 두번째 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기여한 「낮은 목소리」 3부작 등의 다큐멘터리로 소외된 이들에게 주목하고, 「화차」 등의 장편 극영화를 연출하며 현대 사회의 실상을 깊이 있게 탐구해온 변영주 감독의『창작수업』이다. 저자는 고유의 창작 철학을 펼치며 자신의 호수에서 만들어낸 영화를 본 이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힌다. 창작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작품을 창조하고 싶은 당신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줄 책이다.

프로의 지식을 핵심만, 독서와 필사를 한권에 담다
‘교양 100그램’ 시리즈에 참여한 첫번째 저자들은 전 대법관 김영란, 영화감독 변영주, 작가 유시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혜신이다. 권말의 부록 ‘기억할 만한 문장’에는 대표적인 명문장들을 저자 자신의 필적으로 담아, 독자들이 책의 내용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며 필사할 수 있게 했다. 독서 초심자부터 평생학습을 추구하는 이들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이 시리즈는 가볍고 효과적인 지식 영양제로서 언제 어디서나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것이다.
‘교양 100그램’의 서막을 알리는 『인생독서』(김영란 지음)『창작수업』(변영주 지음)『공감필법』(유시민 지음)『애도연습』(정혜신 지음)은 초판 출간 이후 꾸준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책들로, 이 시리즈에서는 개정판으로 소개된다. 주머니 속에 휴대할 만한 작은 크기에 손에 쥐기 좋은 만듦새로 태어난 ‘교양 100그램’은 이번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선공개되어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책에 부담을 느끼지만 독서습관을 기르고 싶은 사람들, 유튜브로 지식을 얻는 것에 익숙하지만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얻고자 하는 이들, 나아가 일상에서 틈틈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더없이 충실하고 알찬 독서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창작, 내 안의 문장을 낚는 일
 
 








 



공감필법

유시민 저 / 12,000원 / 창비


복잡한 세상을 가볍게 읽는 ‘교양 100그램’ 시리즈 출간!
하루 한 문장이라도 꾸준히, 유시민이 말하는 글쓰기의 묘
프로의 지식을 충실히 담는 동시에 가벼운 무게와 가격을 갖춘 새로운 창비 인문교양 시리즈가 독자들을 찾아간다. 복잡한 세상을 가볍게 읽는 ‘교양 100그램’ 시리즈다. 바쁜 일상에서도 교양을 쌓고 싶은 현대인을 위해 기획된 이 시리즈는 출퇴근길이나 여행 중에, 가사와 육아 중에 틈틈이 휴대하며 읽을 수 있는 100그램 대의 가벼운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분야의 명사들이 이야기하듯 편안한 말투로 집필해 유튜브나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한 독자들도 부담 없이 독서의 재미에 빠져들 수 있도록 했다.
‘교양 100그램’ 시리즈의 세번째 책은 작가 유시민이 자신의 글쓰기 비법을 말하는 『공감필법』이다. 그는 공부한 것을 표현하는 행위인 동시에 공부하는 방법으로서 글쓰기를 강조하면서,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휘력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하루 한 문장이라도 말하듯이 쓰는 습관을 들일 것을 권한다. 쓰고 싶은 당신에게 당장의 힘이 되어줄 든든한 영양제 같은 책이다.

프로의 지식을 핵심만, 독서와 필사를 한권에 담다
‘교양 100그램’ 시리즈에 참여한 첫번째 저자들은 전 대법관 김영란, 영화감독 변영주, 작가 유시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혜신이다. 권말의 부록 ‘기억할 만한 문장’에는 대표적인 명문장들을 저자 자신의 필적으로 담아, 독자들이 책의 내용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며 필사할 수 있게 했다. 독서 초심자부터 평생학습을 추구하는 이들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이 시리즈는 가볍고 효과적인 지식 영양제로서 언제 어디서나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것이다.
‘교양 100그램’의 서막을 알리는 『인생독서』(김영란 지음)『창작수업』(변영주 지음)『공감필법』(유시민 지음)『애도연습』(정혜신 지음)은 초판 출간 이후 꾸준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책들로, 이 시리즈에서는 개정판으로 소개된다. 주머니 속에 휴대할 만한 작은 크기에 손에 쥐기 좋은 만듦새로 태어난 ‘교양 100그램’은 이번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선공개되어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책에 부담을 느끼지만 독서습관을 기르고 싶은 사람들, 유튜브로 지식을 얻는 것에 익숙하지만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얻고자 하는 이들, 나아가 일상에서 틈틈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더없이 충실하고 알찬 독서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글쓰기, 공존하는 인간이 되기 위한 방법
유시민은 『공감필법』에서 이 시대의 공부를 이렇게 정의한다.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고 그 인생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남을 이해하고 서로 공감하면서 공존하는 인간이 되기 위한 방법으로 독서와 글쓰기를 함께 해나가기를 제안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책이든 글쓴이와 심리적 거리를 두지 말고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을 텍스트에 담긴 그대로 이해하는 ‘공감’의 독서임을 강조한다. 그래야 책에서 얻은 것이 세상과 타인과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형성하는 토대가 될 수 있고, 그를 통해 스스로 지적·정서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시민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읽기와 쓰기의 세계를 유영하다보면 어느덧 책상에 앉아 자연스럽게 첫 문장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하는 스스로의 모습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애도연습

정혜신 저 / 11,000원 / 창비


복잡한 세상을 가볍게 읽는 ‘교양 100그램’ 시리즈 출간!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이를 위한 정혜신의 마음 심폐소생술
프로의 지식을 충실히 담는 동시에 가벼운 무게와 가격을 갖춘 새로운 창비 인문교양 시리즈가 독자들을 찾아간다. 복잡한 세상을 가볍게 읽는 ‘교양 100그램’ 시리즈다. 바쁜 일상에서도 교양을 쌓고 싶은 현대인을 위해 기획된 이 시리즈는 출퇴근길이나 여행 중에, 가사와 육아 중에 틈틈이 휴대하며 읽을 수 있는 100그램 대의 가벼운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분야의 명사들이 이야기하듯 편안한 말투로 집필해 유튜브나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한 독자들도 부담 없이 독서의 재미에 빠져들 수 있도록 했다.
‘교양 100그램’ 시리즈의 네번째 책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사회적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해온 정혜신이 죽음과 애도라는 화두를 다루는 『애도연습』이다. 저자는 동료나 부모의 죽음에 대해 고민을 토로하거나 어린아이에게 죽음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묻는 이들에게 죽음과 애도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이것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주제인지 보여준다. 진솔한 경험을 바탕으로 건네는 저자의 조언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어찌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해줄 것이다.

프로의 지식을 핵심만, 독서와 필사를 한권에 담다
‘교양 100그램’ 시리즈에 참여한 첫번째 저자들은 전 대법관 김영란, 영화감독 변영주, 작가 유시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혜신이다. 권말의 부록 ‘기억할 만한 문장’에는 대표적인 명문장들을 저자 자신의 필적으로 담아, 독자들이 책의 내용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며 필사할 수 있게 했다. 독서 초심자부터 평생학습을 추구하는 이들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이 시리즈는 가볍고 효과적인 지식 영양제로서 언제 어디서나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것이다.
‘교양 100그램’의 서막을 알리는 『인생독서』(김영란 지음)『창작수업』(변영주 지음)『공감필법』(유시민 지음)『애도연습』(정혜신 지음)은 초판 출간 이후 꾸준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책들로, 이 시리즈에서는 개정판으로 소개된다. 주머니 속에 휴대할 만한 작은 크기에 손에 쥐기 좋은 만듦새로 태어난 ‘교양 100그램’은 이번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선공개되어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책에 부담을 느끼지만 독서습관을 기르고 싶은 사람들, 유튜브로 지식을 얻는 것에 익숙하지만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얻고자 하는 이들, 나아가 일상에서 틈틈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더없이 충실하고 알찬 독서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슬퍼하는 자신을 존중하는 법
『애도연습』에서 정혜신은 자신이 오랫동안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온 죽음들을 사례로 들어가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에 대처하는 법을 알려준다. 누구든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 목 놓아 울 수 있고 충분히 슬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단단하게 슬픔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주변 사람들은 섣불리 애도를 그만두라거나 잊으라는 말 대신 슬퍼하는 이의 아픔을 온전히 받아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을 둘러싼 마음들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저자의 따뜻한 목소리를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애도를 연습하며 슬픔을 지나보내는, 어느새 단단해진 자신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창비 한국사상전
정도전부터 김대중까지 한반도를 흔들어 깨운 '시대의 사상자'들을 만난다!
1차분 10종 (1~5권, 16~20권) 출시

창비 한국사상전 간행위원회 저 / 220,000원 / 창비


전기편 '민본의 이상을 펼치다'
전 5권 세트 / 110,000원


1권 정도전: 백성을 위한 나라 만들기 / 이익주 편저 / 21,000원
2권 세종, 정조: 유교 문명국의 두 군주 / 임형택 편저 / 22,000원
3권 김시습, 서경덕: 조선사상의 새 지평 / 박희병 편저 / 23,000원
4권 함허기화, 청허휴정, 경허성우: 불교사상의 계승자들 / 김용태 편저 / 22,000원
5권 이황: 조선 유학의 분수령: 이봉규 편저 / 22,000원

후기편 '문명의 전환을 사유하다'
전 5권 세트 / 112,000원


16권 최제우, 최시형, 강일순: 개벽 세상을 꿈꾸다 / 박맹수 편저 / 23,000원
17권 김옥균, 유길준, 주시경: 조선의 근대를 개척하다 / 최원식 편저 / 22,000원
18권 박은식, 신규식: 시대의 아픔과 역사의 구원 / 22,000원
19권 안창호: 민족혁명의 이정표 / 강경석 편저 / 21,000원
20권 박중빈, 송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 허석 편저 / 24,000원



 
현대 독자들이 쉽게 읽도록 번역하고 친절하게 해설한 교양 필독서

전지구적 위기와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맞서 어떻게 사유하고 살아갈 것인지 묻는 질문이 절실한 때다. ‘창비 한국사상선’은 창비 60주년을 앞두고 한국의 위대한 사상적 거장들의 사유와 철학에서 우리 앞에 닥친 이 거대한 질문의 답을 찾아보려는 특별기획이다. 조선 건국기 정도전부터 한국 현대사의 김대중까지 각 시대의 나침반이 되어주었던 당대의 인물들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냉정히 살피고 새로운 삶의 보편적 비전을 제시하고자 붓과 펜을 들었다. 그들의 사상적 고투 덕택에 우리는 오늘의 한국을 이루어냈고 전세계적인 K문화 또한 이같은 토대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이 시리즈는 창비 60주년을 맞는 2026년 완간을 목표로 3년 동안, 총 59명의 사상을 전30권에 담을 예정이다. 그중 1차분 10종을 2024년 7월 발간한다. 유교 문명국 조선의 수립이라는 사회적 변혁을 이끈 정도전을 필두로 세종, 김시습, 이황, 정조를 거쳐 근대의 개벽사상가 최제우, 박중빈과 혁명가 김옥균, 안창호까지 한국 대표 사상가 20명의 삶과 사유를 선보인다. 문명적 대전환에 기여할 사상으로서, 그리고 대항논리에 그치지 않는 대안담론으로서 한국사상이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음을 증명하기 위해 기획과 편집작업에 세심한 공을 들였다. 각권마다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편저자로 위촉하여 수록인물의 ‘핵심저작’을 선별하여 현대적으로 번역하여 수록하고, ‘서문’에서 그 사상을 입체적이고 충실히 해설함으로써 독본이자 입문서로서 몫을 다하도록 했다. 또한 ‘부록’과 ‘연보’로 관련한 문헌과 인물들의 행적 및 당대 국내외의 역사적 맥락을 보충했다.
창비 한국사상선이 꼽은 인물들은 당대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그리고 과학적인 변화를 몸소 겪으며 각 분야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갔다. 그들은 한 사람의 정신을 갈고닦는 일이 곧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맞닿아 있음을 절감하고 그 깨달음을 널리 펼치고자 분투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이들 사상가의 글과 말을 되찾아나서는 일은 고전 읽기의 교양에 그치지 않고 현대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함께 모색하는 능동적인 참여로 나아가는 셈이기도 하다.

우리 사상사의 거장들을 새롭게 불러낸 정전
특색 있는 큐레이션으로 읽는 한국의 지적 전통

창비 한국사상선은 우리 사상사의 면면한 전통에 입각하면서도, 기존 정전의 파괴와 갱신을 통해 새로운 정전을 추구하고자 한다. 명실상부 명성 있는 사상가뿐 아니라, 기존 사상서 연구에서 잘 다루지 않던 인물들도 과감히 끌어들여 한국사상의 외연을 확장하려 했다. 이제껏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소홀하게 다뤄진 20세기 후반의 인물까지를 포함했으며, ‘사상가’의 범주에서 제외되어온 군주, 여성, 문학인, 정치인, 종교인을 망라했다. 1차분에 이은 2차분과 3차분에도 이이, 박지원, 정약용, 김구, 함석헌, 김대중 등 한국사를 대표하는 거인들의 이름과 함께, 조광조, 임윤지당, 조소앙, 한용운, 임화, 이효재 등 창비 한국사상선만의 특색을 보여주는 인물들의 목록이 예정되어 있다.
전30권 목록은 조선의 건국을 시점으로, 근대 전환기를 분기로 삼아 전기편 ‘민본의 이상을 펼치다’(1~15권)와 후기편 ‘문명의 전환을 사유하다’(16~30권)로 구분했다. 조선의 건국은 단순한 왕조교체를 넘어 사회적 개혁의 전망이 작동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조선 500년의 마지막 시기 역시 한반도 역사에서 손꼽을 만한 전환의 시기였다. 1차분 전/후기편 각 다섯권은 바로 이 시기를 살아간 사상적 거인들의 지적 여정을 담고 있다. 2~3차분 역시 전/후기 다섯권씩 묶어서 선보인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라는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나 최제우, 박중빈의 개벽사상 등으로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여기 실린 한국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정도전

이익주 편저 / 21,000원 / 창비



정도전, 유교 문명국 조선을 구현하다

창비 한국사상선 제1권 『정도전: 백성을 위한 나라 만들기』는 1392년 조선 건국의 설계자이자 정치관료 중심의 중앙집권제를 통치철학으로 제시한 사상가인 정도전의 핵심저작을 정리한 책이다. 정도전은 민본(民本), 위민(爲民)의 이념을 토대로 왕권의 보완재이자 동반자로서 신권(臣權)에 무게를 더하는 정치질서를 구상하고 이를 현실정치로 구현하고자 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촉망받는 성리학자로서 유교 숭배와 불교 배척에 관심을 두었으며, 유배 기간 목격하고 경험한 백성들의 일상에 깊이 착안하여 국가운영 지침을 세세하게 정초했다. 결국 그의 생애 내에는 정치적 기획에 그치고 말았지만 정도전이 구상한 재상 중심의 ‘책임정치’는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로써 한반도 군주국가는 절대적 왕권 중심의 경직된 전제국가를 탈피할 가능성을 얻은 것이다.

책임정치의 씨앗을 뿌린 혁명적 정치사상가

정도전이 태어난 1342년은 원 제국의 힘이 여전히 고려를 장악하던 때였지만, 원은 곧이어 급격히 힘을 잃어갔다. 정도전이 과거에 급제하여 하급 관료로 임용된 이십대 초반에는 이미 반원(反元)운동의 거센 물결로 원 세력이 고려에서 물러나 있었다. 고려에서는 신흥 유교세력이 성균관에 결집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 세력의 중심에 있었던 이색과 정몽주 등은 정도전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정도전은 34세 때에 원 사신을 영접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죄로 유배되었다. 봉화와 나주 등지에서 2년 4개월간 유폐되어 지냈지만 그 시절 만난 백성들을 통해 민초의 삶을 생생히 목격한다. 이때의 경험은 훗날 정도전이 위민과 민본 이념을 실천하는 데에 큰 밑거름이 된다.
유배에서 풀려난 뒤 정도전은 함경도 함흥의 신흥 무관 이성계를 찾아간다. 그는 이성계를 중앙정치에 끌어들이고자 했고,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가 권력을 쥔 뒤로는 그의 핵심 참모로 활동한다. 이성계를 위시한 개혁세력은 사전(私田)을 근절시키는 등 토지개혁을 추진했고 이는 왕조 교체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 뒤 정도전은 불교 척결을 강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탄핵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에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조선의 개국공신 중에서도 앞 줄에 서게 된 것이다.

『조선경국전』에서 『경제문감별집』까지, 정도전의 생각을 담다

정도전의 사상적 뿌리는 유학, 곧 성리학이다. 그는 『맹자』를 탐독하면서 맹자의 혁명론을 왕조 교체의 근거로 내세웠고,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을 건국의 주요 과제로 삼았다. 자신이 쓴 『조선경국전』에서 “무릇 임금은 국가에 의존하고 국가는 백성에 의존하니,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며 임금의 하늘이다”(60면)라고 천명한 것이 정도전의 생각을 압축해준다. 그의 민본정치는 곧 국왕의 공적인 역할을 강조하며 국왕의 권한을 재상을 임명하는 데에만 한정하고자 했다. 정도전의 총재론(冢宰論)은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다.
이 책에서는 정도전의 정치사상이 담긴 3종의 책을 소개한다. 『조선경국전』은 조선 건국 2년 뒤인 1394년 이성계에게 올려졌다. 『조선경국전』은 원나라 『경세대전서록』을 구성 면에서 모방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형식의 모방이었을 뿐 그 내용과 취지는 조선 고유의 현실에 맞게 조절되었다. 주요 내용으로는 ‘왕위를 바르게 함’ ‘국호’ ‘세자를 정함’ ‘왕실 계보’ ‘교서’ 등 왕실 관련 주제 다섯편과 치전, 부전, 예전, 정전, 헌전, 공전 등 신하 관련 주제 여섯편이 있다.
『경제문감』은 정도전이 1395년 지어 올린 책으로, 재상, 대관, 간관, 위병, 감사, 주목, 군태수, 현령 등 여덟편을 두어 각각의 직무를 설명하며 여러 문헌에서 격언을 인용했다. 내용 대부분이 중국의 『주례정의』 『군서고색』 『문헌통고』 등에서 인용되었다는 이유로 『경제문감』을 정도전의 독창적인 저술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지만, 정도전이 어떤 격언들을 골라서 실었는가를 살피는 것 또한 그의 정치사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경제문감별집』은 1397년 완성되었다. 이름 그대로 『경제문감』의 별집, 즉 속편에 해당한다. 『경제문감』이 재상 이하 관료들의 덕목만을 다룬 반면 『경제문감별집』은 임금이 귀감으로 삼을 만한 내용을 따로 서술했다. 크게 군도(君道)와 의론(議論) 두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군도편은 요순시대에서부터 원까지 중국 역대 제왕과 고려 태조부터 공양왕까지 모든 국왕의 치적을 정리하며 바람직한 군주상을 제시한다. 의론편은 『주역』을 해설한 정자의 말을 옮겨놓았는데, 정도전은 이를 통해 임금의 몸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준다.

비록 좌절되었지만 새로운 꿈을 잉태한 혁명적 정치사상

왕권을 제약하고 신권을 강화하자는 정도전의 급진적인 생각은 여러 반대에 부딪혔다. 특히 왕실 내부의 반대가 심했고, 결국 이방원이 정변을 일으키면서 그 소용돌이 속에서 정도전 또한 죽음을 당한다. 이로써 정도전이 꿈꾸고 태조가 동의했던 정치는 그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왕이 어떤 제약도 없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편저자 이익주는 정도전의 구상이 이후의 국가 정치에 여러모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경국대전』에는 재상의 지위와 역할이 강조되고 언관의 활동이 폭넓게 보장되었으며, 두 차례의 반정(反正)은 혁명까지는 아니라도 국왕에게 정치의 책임을 물은 것으로서 정도전이 이루고자 했던 책임정치가 실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31면).








세종·정조

임형택 편저 / 22,000원 / 창비



조선 국왕의 통치철학을 만난다

유교 문명국 건설의 사명: 세종


14세기는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여러 격변이 일어난 대전환기다. 원 제국이 해체되면서 유라시아의 곳곳에서 새로운 국가가 형성되었고, 이는 러시아(모스끄바대공국), 중앙아시아(티무르제국), 서아시아(오스만제국) 지역 제국들의 모태가 되었다.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서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 교체가 일어났다.
이 같은 세계사적 전환기에 고려에서는 문인지식층이 당대의 변화를 면밀히 인식하며 한반도의 체제 변화를 이끌고 있었다. 편저자는 당시 문인지식층이 원 제국과의 교류 경험에서 한반도가 문명의 일원임을 인식한 ‘문명의식’을 습득한 동시에, 한반도적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동인(東人)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들은 마침내 이성계라는 장군을 내세워 왕조를 건설했고 그 ‘이씨조선’은 새로운 동맹 ‘명 제국’의 변화에 발맞춰 전통적인 유교국가를 표방했다. 조선이 유교를 국시로 택한 것은 “개벽이라 할 정도의 창세적 변혁은 아니더라도, 유교사상을 동국의 현실 정치로 구체화하였다는 점에서 독자적이고 각별한 의의를 지니며 이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19면) 이러한 조선의 건국 이념은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군주인 세종을 통해 체계적으로 집약되고 발산된다.
왕조 초기의 혼선과 갈등이 수습될 즈음에 왕위에 오른 세종에게 ‘제대로 된 나라만들기’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왕국이 나아갈 방향과 기틀을 다지는 문제가 일차적 과업이었고, 민생을 안정시키면서 유교 문명국을 건립하고 발전시키는 일이 필수의 책무로 제기되었다. 세종의 치열한 삶과 사상은 현대 독자들인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인바, 다만 세종이 품었던 고민의 깊이는 다시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당대 최첨단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그것을 한반도의 토양에 맞게 적용하는 일을 반복해내기 위해 고심했다. 백성들의 일상을 돌보는 일에서부터 명과 왜 등에 적절히 응대하는 고도의 외교까지, 세종의 다양한 성과는 후대 군주들이 참고할 지침이 되었다.
“문명의식이라면 보편성을 갖는 것이므로 동인의식과는 모순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양자는 꼭 모순되지 않으며 상보적일 수 있다. 대도의 다인종·다문화를 접하면서 대륙의 동쪽 끝에 붙은 나라의 사람인 나를 의식하게 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현상 아니겠는가. 그뿐 아니라, 직전에는 몽골-원의 침략에 맞서 장기간 싸울 때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동국사람으로서의 자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다.”(17면)

실학군주의 개혁정치: 정조

정조 또한 세종의 통치 사례를 주로 참고했다. 정조가 세운 규장각은 흔히 세종의 집현전에 비견된다. 그는 당대 최고의 실학자들을 자신의 정치적 우군으로 삼고 조선의 실학시대를 직접 이끌어갔다. 그가 추진한 개혁정치 또한 실학에 기반을 두었다. 규장각을 통해 신진 사대부를 양성하면서 당대 척족세력들의 농단이 끼치는 폐해를 줄이고자 한 것이다. 다만 정조의 이 같은 정치적 야망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정조가 공들여 양성한 규장각 출신 관료들은 유교정치의 원형으로서 자기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각자 당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이에 더해 서학(西學)과 서교(西敎)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정국은 혼미해졌고, 정조는 점점 더 고립되어갔다.
여기에 더해 정조는 비운의 삶을 산 사도세자의 친자였다. 이 같은 엄중한 사실 때문에 최고권력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항시 불안하고 위태로웠다. 자신의 정통성의 확보가 절실했던 그에게 성리학은 일종의 정치적 보호막이었다. 정확히 말해 정조는 정통성 확보와 진정한 학문 추구를 동시에 이루기 위해 성리학을 배웠고, 그의 실학 또한 성리학을 바탕에 둔 것이었다.
이 같은 정조 사상의 복합성은 서양 세력과 함께 서학이 한반도에 들어오는 시기에 매우 또렷하게 드러난다. 정조가 왕위에 있는 동안 사대부들은 서학과 천주교를 극도로 위험시했고, 이를 조금이라도 언급하는 정치세력은 극심한 정쟁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조는 “천주교가 이 땅에 들어와서 유교국가의 정신적 기반을 흔드는 사태와 문체가 잘못 흘러가는 추세를 동일한 문제점으로 파악”(38면)했다. 정조는 서양의 학술과 종교를 분명히 구분했다. 다시 말해 그는 서양학술을 도입할 필요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 종교는 이단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학의 근본을 탐구하며 이를 토대로 서양에 대응해야 한다고 보았다. “사학이 우리 학을 해칠까 걱정하지 말고 오직 우리의 학이 사학을 막아내지 못할까 걱정해야 한다.”(276면) 정조의 통치철학을 이해할 때에 빼놓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문명의식과 동인의식,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자기 인식의 틀

세종과 정조는 각각 “조선왕국을 유교적 문명국가로 확립한 군주”, “유교적 문명국을 재건하기 위해 고투한 군주”로서 왕조국가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이 같은 정치 관념은 그들의 치세 기간에 평안을 가져다주었을 뿐 아니라 후대의 국가 운영에도 많은 것을 시사했다. 문명의식과 동인의식은 여전히 2020년대 한반도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시민들 각자는 세계인으로서의 보편적 시야와 한국인으로서의 개성을 동시에 갖출 것을 요청받고 있다. 이때에 다시 읽는 세종과 정조의 통치철학은 그들 각자의 사상적 고투 덕택에 여전히 생생한 교훈을 전한다.










김시습·서경덕

박희병 편저 / 23,000원 / 창비



한국사상에 폭과 깊이를 더한 조선의 경계인들

종횡무진 사상의 경계를 넓혀간 두 사람의 천재, 김시습과 서경덕


김시습이 어린 시절 신동으로 회자된 것은 유명하다. 당시의 국왕 세종이 그 소문을 듣고 승정원 승지를 시켜 김시습의 글쓰기 재능을 시험해봤다. 역시나 세종 또한 그 재능에 탄복해 찬사를 보내는데, 이때의 경험을 통해 김시습은 여생 내내 “세종에 대한 의리”(16면)를 품고 산다.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가 격렬히 통곡하고 이후 8년간 방랑의 길을 떠난 이유도 그런 세종의 은혜를 되새겼기 때문이다.
8년간의 방랑기 동안 김시습은 백성들의 처참한 현실을 목격한다. 이는 그가 국가와 인민에 대한 정치사상에 관한 글을 쓰고 민본적 철학을 개진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민본적 철저성은 세조의 왕위 찬탈 이래의 김시습의 실존에서 기인한다.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 체제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체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체제의 안과 밖 사이의 ‘경계’에서 체제를 비판적으로 조망했다. 그 결과 인민과 군주와 국가에 대한 이런 통찰이 나올 수 있었다.”(20면) 또한 김시습은 유교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에 관해서도 탐독하며 종횡무진 자기 사상의 경계를 넓혀갔다. 그러고는 경주 금오산으로 가서 8년간 지낸 뒤(『금오신화』를 지은 것도 이때의 일이다) 서울 수락산 기슭에서 지내며 『십현담요해』 『화엄석제』 등 불교 관련 책을 짓고 그 뒤로는 관동(강원도 양양 등지)에 가서 남은 생을 보낸다.
김시습이 유교, 불교, 도교를 넘나들었다는 세간의 평에 대해 편저자 박희병은 그보다는 “김시습의 사상 내부에 노장사상이 일부 들어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주 제한적”(25면)이라고 지적한다. 정확하게는 그가 유교와 불교를 적극적으로 회통시키면서도 도교에 대해서는 꽤 부정적이었다고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이 책 전반에서는 김시습이 조선 승려들의 명예욕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수행을 강조하면서 불교에 관한 미신적 사고를 철저히 물리치려 했음을 읽을 수 있다. 한마디로 김시습은 ‘유·불·도 3교 회통’의 대표적 지식인이라기보다는 모든 이론과 철학을 의심하고 자신을 성찰하면서 매번 내면의 갈등을 느낀 경계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1489년 개성에서 태어난 서경덕은 15세 때에 서당에서 『서경(書經)』을 배운다. 그때 그는 자신의 훈장을 비롯하여 조선의 선비들이 『서경』 읽기에 애를 먹는 모습을 보며 “글을 생각으로 깨쳐야 함”(34면)을 인식한다. 이후 서경덕은 자신만의 공부법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곧 자득(自得)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즉 “독서보다는 사색에 의한 깨달음”(35면)을 통해 이치를 알고 그 터득한 이치를 독서를 통해 검증하는 방법이다. 앎은 그저 외부(책)로부터 배우는 것일 뿐 나 자신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건 생각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서경덕의 자득은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서경덕은 (…) ‘모든 존재는 소멸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기(氣)가 다시 태허(太虛)로 돌아간다’고 했다. 태허는 곧 일기(一氣)이니, ‘존재의 고향’을 말한다. 이에서 보듯 서경덕은 살아 있을 때는 물론 죽을 때에도 이론과 실천의 완전한 통일을 보여준 사상가였다.”(36~37면)
서경덕은 상수학(수학)에도 능통했는데, 그 사유의 단위가 ‘만조 만억년’ 같은 천문학적 숫자에 달한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무한대를 지향하는 이 같은 시간관념은 서경덕의 자연철학이 지니는, 시공간적으로 무한한 사유와 맞닿는다. 다만 이처럼 학문의 범위가 넓고 다양했다는 사실이 그가 조선의 사회와 현실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자연철학은 흔히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오해받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백성들의 고통을 소개하고 준엄한 목소리로 위정자들을 비판했다.
“김시습과 서경덕은 한국사상사에서 독특한 지위를 점한다. 조선시대 사상가 가운데 김시습만큼 도저하게 ‘위민적’ 입장을 견지한 인물은 없을 것이며, 조선시대 사상가 가운데 서경덕만큼 조선 철학자로서의 드높은 자존감을 보여준 인물은 없을 것이다.”(49면) 편저자 박희병의 말처럼 두 사람은 주체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자기 개성을 추구한, 조선사상의 미간지를 개척한 철학자이다. 조선왕조 내내 이(理)를 중시하는 성리학이 득세하던 중에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비주류 사상을 꾸준히 설파하면서 기(氣)철학의 기틀을 다졌고, 이는 조선 후기의 홍대용과 최한기라는 독창적 실학사상가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함허기화·청허휴정·경허성우

김용태 편저 / 22,000원 / 창비



‘억불’의 조선사회에서
시대와 호흡하며 불교사상을 이어간 거승들


창비 한국사상선 제4권 『함허기화·청허휴정·경허성우: 불교사상의 계승자들』은 조선시대 숭유억불(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 정책하에서 시대와 공존하고 스스로의 활로를 찾으며 불교의 정통을 계승하고자 한 세 승려의 글을 모은 책이다. 특히 불교 배척의 기세가 가장 심했던 조선 초기에 불교의 가치를 지키고 선종과 교종의 틀을 지킨 함허 기화, 임진왜란 중에 승려들을 이끌고 구국 항쟁을 벌임과 동시에 수행 체계를 새로 정립해 조선 후기 불교의 지향을 제시한 청허 휴정, 근대 이행기에 선의 중흥을 도모한 경허 성우의 삶과 생각을 담아냈다.

고난 속에서 조선 불교의 원형을 만들어낸 3인의 승려

고려 우왕 때인 1376년 태어난 함허 기화는 어려서부터 유학을 배우고 성균관에 입학해 성리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성균관 동기의 죽음을 계기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했다. 당시 그가 만난 스승은 후에 이성계의 실질적 조언자가 되는 무학 자초(무학대사)였다. 그 뒤 조선이 세워지고 3대 태종이 강력한 억불정책을 실시하면서 불교 11개 종파의 242개 사원이 국가의 운영하에 놓였다. 뒤이어 세종 대에는 불교 종파가 선종과 교종 양종 체제로 개편되었다. 그때 선종에 소속된 함허 기화는 단순히 자기 종파에 머무르지 않았고 불교가 선종과 교종으로 나뉜 근본적 원인을 면밀히 탐구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능력이 같지 않아서” 즉 “대상의 능력에 따른 방편의 차이로”(21면) 선종과 교종이 나뉜 것이므로 인간이 자비를 펼침으로써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함허 기화는 또한 유교와 불교의 공존을 주장하면서, 당시 불교 무용론의 분위기 속에서도 불교가 맡아야 할 역할이 있음을 설파했다. 불교가 유교의 통치이념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도 부합하는 종교임을 꾸준히 알린 것이다.
서산대사라는 별호로 더욱 잘 알려진 청허 휴정은 1520년 태어나 성균관에서 성리학을 공부하다가 출가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뒤 8도 도총섭으로 임명되어 전국 팔도의 승려군대를 통솔하며 풍전등화의 조선을 구해내는 데 앞장섰다. 이 같은 승려군대의 활동은 당시 백성들이 품고 있던 불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뒤바꿨다. 불교사상과 관련해서 청허 휴정은 선종과 교종 간 갈등을 타개하고 두 전통을 아우르고자 했다. 그는 간화선(看話禪, 화두를 통해 진리를 깨닫는 방식)을 통한 선과 교의 동시 수행, 즉 선교겸수를 권했고, 이는 이후 한국 불교계에 굳건히 계승되었다. 이번 선집에 일부 번역해 수록한 『청허당집』은 청허 휴정이 쓴 오언절구, 칠언율시 등을 비롯한 다양한 형식의 산문과 운문이 수록된 작품집으로, 휴정의 행적과 주변 인물, 시대 분위기와 사상적 특징 등 그의 생애와 사상이 담긴 중요한 자료이다. 그밖에 「상퇴계상국서」 「상남명처사서」 같은 편지글에서는 당대 유학의 대가 이황, 조식과의 교유 등을 다채롭게 살펴볼 수 있다.
근대 전환기에 활동한 승려 경허 성우는 1849년 태어나 9세의 어린 나이에 출가했다. 불과 23세 때에 동학사 강사로 설법을 펼쳤는데, 그의 강의를 듣고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대중 앞에서 항상 온화한 얼굴로 설법했으며, 생각이 같다면 남녀노소와 귀천을 불문하고 참여를 이끌며 선의 일상적 실천과 대중화를 추구했다. 말년에는 자신의 행방을 알리지 않고 세속인으로 생활하다가 입적하는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같은 의문의 행보에도 불구하고 경허 성우를 근대 선종의 중흥을 이끈 승려로 칭송하는 것은 그의 치열한 자성, 의지, 과감한 실천력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유자재한 주체를 지향했고, 마음의 분별이 사라진 무심無心의 경지를 추구했다”.(35면) 일상에서 선을 수행하길 바랐고 선의 대중화를 통해 선의 기풍을 새롭게 일으키고자 했다. 경허 성우로부터 선의 기풍을 배운 승려들을 꼽자면 수월 음관, 혜월 혜명, 만공 월면 등이 있다. 이 20세기의 대표 승려들이 현대 한국 불교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경허 성우가 떨친 선풍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불교, 시대와 공존함으로써 스스로 활로를 찾다

오늘날 우리가 두루 누리는 사찰과 불상, 불화 등 불교문화유산의 대부분이 불교를 제도적으로 억압했던 나라 조선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처럼 조선 초기 대대적인 억불정책하에서 불교계는 시대와 공존함으로써 스스로의 활로를 찾았고 이로써 자기 신앙의 전통을 계승할 수 있었다. 이는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조선 불교의 원형을 만들어내고 지켜온 함허 기화, 청허 휴정, 경허 성우 등의 삶에 빚진 바가 크다. 그들이 계승해낸 간화성 수행, 선종 우위의 인식과 교학의 전승, 염불 정토 신앙의 확산 등은 조선 불교의 내적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불교가 대중과 더더욱 가까워지는 데에 이바지했다. 이 책을 통해 각 승려들의 역사적 위상을 톺아보면서 불교가 한국사상사 전반에 미친 영향을 두루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황

이봉규 편저 / 22,000원 / 창비


학문의 본령과 학자의 자세
유학자들의 기준이 된 퇴계의 사유와 실천

창비 한국사상선 제5권 『이황: 조선 유학의 분수령』은 인간 본성에 관한 연구로 조선의 유학을 동아시아 전체의 교범으로 격상한 퇴계 이황의 글을 엮어낸 책이다. 이황은 한평생 주자의 학문을 주석하고 집대성하면서 당대 유학의 경향을 이끌었고, 그가 창설을 주도했던 서원들은 그의 사후 400여개로 늘면서 조선의 주요 교육기관으로 발돋움했다. 조선 국왕을 비롯한 국정 지도자들에게 스스로 몸과 마음을 부단히 갈고닦을 것을 권하면서 군주와 사대부가 문교(文敎)의 정치에 매진할 것을 주문했다. 이로써 그는 조선의 유학을 연구와 실천 양면에서 한 단계 올려놓았고 유학이 조선 중후기의 통치이념으로서 완전히 자리잡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이 책에서는 이황이 남긴 글 가운데 이학의 전승과 확산을 위한 노력, 이학의 이론에 대한 성찰, 경세 방략, 생활의 경계 등을 엿보게 해주는 글을 위주로 선별·번역해 실었다.
조선 성리학을 이끈 방향타이자 동아시아 주자학의 교과서

이황은 1501년(연산군 7년)에 태어났다. 그다음 해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 숙부 이우의 보살핌과 지도를 받았는데 숙부마저 이황이 17세 때 세상을 떠나면서 그 뒤로는 특정한 스승 없이 혼자서 공부를 이어갔다. 성균관에서 공부했으며 34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543년 『주자대전』 간행 시에 교정을 맡았으며 그 뒤로 『주자대전』을 새롭게 고증하여 그 주제를 정확히 규명하는 실증적 연구를 이어갔다. 특히 주희의 문집 전체를 통독한 뒤 『주자서절요』를 펴냈는데, 이 『주자서절요』는 당대 동아시아 주자학의 주요 교과서처럼 쓰였고, 이황의 이론은 이후 조선 이학을 이끄는 방향타가 되었다.
벼슬에는 큰 뜻이 없어 명종이 여러차례 불렀을 때에도 얼마간 조정에서 일하다가 다시 귀향하기 일쑤였다. 1567년에는 명나라 사신을 응대하는 제술관에 임명되어 명 사신들에게 한반도를 대표하는 유학 지식인들(우탁, 정몽주에서부터 조광조와 서경덕에 이르기까지)을 소개했다. 뒤이어 선조 대에도 왕의 부름을 받고 조정에서 일하며 당시 조정의 급선무를 정리하여 「무진육조소」를 올렸다. 또한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올려 군주가 사적인 욕망을 자제하기 위해 일상에서 항상 성학(聖學, 성인이 되는 학문)을 갈고닦을 것을 당부했다.
이황이 유학 연구와 실천에 매진했던 때는 중국에서는 양명학이, 일본에서는 불교가 성행하던 때였다. 이황은 당시 유행하는 중국 양명학에 맞서 정통 주자학의 입장에서 인간의 본성을 해명하고 실천했다. 이황 이론의 핵심은 “선학(禪學)처럼 인륜의 마음을 깨닫고 각성하는 것이 아니라, 외물이 오면 응대할 수 있게 인륜의 이치가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는 마음의 상태를 잘 견지하는 것”(18면)에 있었다. 이 내용을 담은 『연평답문』은 특히 일본에서 이학을 전파하는 데에 주요한 근거가 되었다.
1555년 귀향한 뒤로 이황은 본격적으로 주희의 편지 중에서 여러 이론적 쟁점 및 정론이 되는 부분을 선별했다. 이 작업은 단순히 『주자서절요』와 『자성록』이라는 해설서를 펴냈다는 결과를 넘어, 이론을 실천으로 전환해내지 못하는 이황 자신의 내적 간극을 좁히는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그에게 큰 의미가 있다. 이처럼 지식을 축적함과 동시에 실천을 통해 인격의 성숙을 꾀하는 시도는 당대 동아시아 유학자들에게 절실히 다가왔고, 자연히 『주자서절요』와 『자성록』은 당대 유학자들의 주요 교과서로 자리매김했다.
이황은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접한 『심경부주』를 통해 『심경』을 평생 수행의 지침으로 삼기도 했다. 이 또한 조선 유학자들의 또다른 지침이 되어, 이후 조선에서는 『심경』을 공부함으로써 이학의 심법(心法)을 실천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심경』은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요순의 마음과 같게 하는 성학(聖學)의 지침이 되고, 임금을 향해서는 요순 같은 성군으로 인도하는 격군(格君)의 지침이 되며, 백성을 위해서는 요순처럼 백성을 친애하는 안민(安民)의 지침이 되었다.”(20면)
이황은 유년 시절부터 이(理)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가졌다. 12세 때 숙부에게 “무릇 사물에서 옳은 것이 이(理)인가요”라고 묻고 자신의 오랜 의문을 해소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뒤이어 공부를 이어가면서 인간의 본성이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으로 발현되는 과정을 이(理)와 기(氣)로 설명하는 문제를 연구했다. 이 같은 성찰은 기대승과의 서신 왕래를 통해 8년에 걸쳐 논변으로 전개되었고, 이것이 바로 이른바 사칠논변, 사단칠정논변이다. 특히 서경덕의 제자인 이구가 체(體)와 용(用)이 어떤 실체가 아니라 추상적 개념이라고 제기했을 때에 이황은 이(理) 자체가 구체적인 실체〔體〕이며 사물에서 발현될 때에 용(用)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사칠논변은 조선 후기 내내 유학자들에게 회자되며 유학 이론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단서가 되었다.
이황의 업적 중에서는 서원의 중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는 서원과 향약에 관련한 이황의 글 가운데, 그가 백록동서원의 사액을 요청했던 글과 이산서원의 학규, 역동서원의 건립을 기념하여 쓴 글, 향약조례, 그리고 향회에서 나이를 기준으로 자리를 정해야 한다고 밝힌 글 등을 뽑아 수록했다.

시대를 넘어 학파를 넘어, 조선 유학의 에토스가 되다

이황은 자신의 죽음 이후에 자신에 대한 과장된 평가를 막기 위해 직접 본인의 일생을 정리해두었다. 이 책에는 이황이 만년에 적은 「도산기」와 「도산잡영」을 비롯하여 「자명」 「고종기」 「유계」를 수록했는데, 이는 죽음을 맞이하는 대학자의 실제 모습을 생생히 엿볼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현실의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학문을 즐기는 ‘지식인의 한 전형’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황을 ‘조선의 에토스’ 그 자체로 평가해도 손색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제우·최시형·강일순

박맹수 편저 / 23,000원 / 창비



“내 안에 거룩한 하늘님을 모시고저”
근대와 대결한 한반도 개벽종교의 지도자들

창비 한국사상선 제16권 『최제우·최시형·강일순: 개벽 세상을 꿈꾸다』는 조선 후기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 그리고 조선 말 증산교 창시자인 강일순 등 한반도 후천개벽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의 삶과 사상을 정리한 책이다. 태초의 천지개벽이 하늘과 땅이 열린 물리적 현상이라면, 후천개벽은 인간의 정신에 일어나는 근본적 변화, 사회적 전환을 가리킨다. 지배층의 부패와 탐관의 수탈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봉기하는 와중에 서양 문물을 맞닥뜨리며 혼란에 빠진 조선조 말기에 이 후천개벽의 이념이 백성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다. 이는 수운 최제우에서 비롯되어 해월 최시형, 증산 강일순을 거쳐 소태산 박중빈에 이르기까지 여러 한반도 사상가들의 주요한 주제였으며, 현대 자본주의에 와서도 인간 각자가 ‘사람다운 삶’을 사는 데 여전히 절실히 탐구해볼 만한 화두다. 이 책에서는 최제우, 최시형, 강일순의 글을 소개하면서 한반도 고유의 사상적 자산인 후천개벽의 토대를 생생히 확인하고자 한다.

한반도 개벽사상을 정초한 이름들, 최제우·최시형·강일순

수운 최제우는 1824년 태어나 퇴계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고 있던 부친 최옥으로부터 유학을 배웠다. 어려서부터 출중한 글솜씨를 가졌음에도 재혼한 어머니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고, 이 일은 최제우가 조선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동학을 창시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생애 내내 유학을 공부했으나 이는 선친의 정통 유학 계승보다는 ‘유학 극복’의 공부에 가까웠다. 17세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상심에 빠진 그는 21세가 되던 해에 방랑길에 나선다. 이후 10년간 한반도 백성들의 삶 저변을 관찰하고, 서학(천주교)이 침투한 민간의 풍토를 면밀히 살핀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최제우는 조선의 지배질서 유교체제를 탈피하는 사상적 대전환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그 뒤로 서학을 접하면서 그 교리를 공부하면서도, 최제우는 자신이 품은 시대적 고민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했다. 그는 서양의 기독교가 하늘과 인간을 각기 분리된 것으로 보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졌음을 비판하며 서학과는 다른 자신만의 생각을 차근차근 다져간다. 그러던 중 37세가 된 1860년에 ‘내림 체험’(강령, 계시 체험)을 겪으면서 ‘하늘님’으로부터 천도(天道)와 함께 21자 주문과 영부(靈符)를 받는다. 최제우는 그때 받은 주문과 영부를 토대로 백성들을 이끌고 덕을 펼치는 활동을 벌인다. 신분차별을 없앤 평등의 공동체, 빈부를 가리지 않는 상호부조의 공동체 등을 내세웠는데, 이 같은 포덕 활동은 당시 처참한 삶을 영위해가던 백성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이 책에서는 최제우의 『동경대전』을 실으면서 동학사상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시(侍, 모심) 정신을 소개한다. 시란 인간이 각자의 영성을 확립하면서 이웃과 사회와 영적으로 일체가 되는 경지를 지향해야 함을 가리킨다.
해월 최시형은 1827년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다가 35세 되던 1861년에 동학의 소문을 듣고 입도한다. 그 뒤로 최제우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으며 신비체험을 겪은 뒤 포교 활동에 나선다. 최제우가 퇴계 유학을 학문적 기반으로 삼았던 것과는 달리, 최시형은 학문을 제대로 닦은 적이 없었던 터라 백성들의 눈높이에서 주문 수련을 중심으로 동학을 포교했다. 그러다가 최제우가 관군에 잡혀 목숨을 잃고 그의 자제들까지 세상을 떠난 뒤로 최시형 중심의 단일지도체제가 세워진다. 최시형은 기존의 강원 남부, 충청 북부 산악지대 중심의 포교 활동 범위를 충청 남부와 전라도까지 넓히는 개가를 올렸다.
그러나 이때부터 나라의 탄압은 더욱 거세졌고 교도들의 수난이 격화되자, 최시형은 교조신원운동(교조 최제우의 원한을 풀자는 내용의 합법적 시위)을 펼치며 동학농민혁명의 불씨를 피우기 시작한다. 그는 최제우의 시 정신을 모태로 한 ‘시천주(侍天主, 모든 사람이 자기 안에 하느님을 모신다)’ 사상을 펼치며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했고 이는 삼경(三敬, 경천·경인·경물) 사상으로 체계화된다. 백성의 일상 속에 평등한 영성을 심고자 했던 최시형의 노력은 이 책에 실린 『해월문집』의 「을유통문」 「무자통문」 「임진신약」 「임진통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증산 강일순은 1871년 동학농민혁명의 진원지인 고부에서 가난한 양반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서당에서 학문에 재능을 보였으나 집안 형편상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고, 24세가 되던 해에 동학농민혁명을 참관한다. 혁명이 좌절된 이후에는 백성들의 원한을 풀고 그들이 원하는 이상사회를 이룩하자는 내용으로 수련을 거듭한다. 그러다가 31세가 되던 1901년에 계시를 받고 진리를 깨달은 뒤에 1909년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백성들의 원한을 푸는’ 활동을 이어간다.
강일순은 ‘일찍이 하늘에서 최제우를 지상으로 파견하여 세상을 구원하도록 했으나 그 뜻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자신이 직접 이 땅에 하강했다’고 주장한다. 다만 그는 기존의 동학처럼 교도들을 체계적으로 조직하지 않았고, 제자들을 양성하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탈제도적이고 민중적인 ‘천지공사’라는 종교 행위를 벌여갔다. 특히 기존 가부장 사회에서 억압을 받아온 여성들의 묵은 원한을 푸는 일에 큰 관심을 두었다. 경직된 유교 윤리의 폐해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음(陰, 여성)이 조화와 통일, 상생과 화해의 바탕이 되는 세계를 제시한 바 있다. 그가 살았던 20세기 초 인민들의 기준에서는 대단히 선진적이고 획기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를 토대로 한 고유의 종교이자 변혁사상

편저자 박맹수는 이 책에서 기존의 동학 연구가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을 정확한 사실관계를 통해 되짚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최시형이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기존의 오해를 해명하고(28~30면), 증산 강일순의 사후 교파가 다양해지면서 증산의 행적과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크게 엇갈리는 점 등을 언급(39~41면)한다. 이 같은 정밀한 고증과 연구를 기반으로 최제우, 최시형, 강일순의 저술을 정리하여 소개했으며, 이로써 한반도 후천개벽사상이라는 하나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냈다. 이 책은 한국의 여러 사상적 천재들 중에서도 외부로부터 유입된 학문과 종교에 귀의하지 않고 바로 이곳 한반도를 토대로 고유의 철학을 창조한 개벽사상가들의 삶과 생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맞춤의 자료가 될 것이다.









김옥균·
유길준·주시경

최원식 편저 / 22,000원 / 창비


“비상한 재주를 지니고 비상한 때를 만나”
근대의 파고를 몸소 감당한 개화 지식인들

창비 한국사상선 제17권 『김옥균·유길준·주시경: 조선의 근대를 개척하다』는 한반도가 쇄국에서 개방으로 전환하던 시기에 근대화 방안을 제시하고 구태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 근대 지성인 셋의 글을 담은 책이다. 한반도 바깥에서 자국의 이익을 탐하며 조선을 속국화하려 한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조선의 근대화와 독립을 꿈꾸었던 김옥균, 유길준, 주시경이 나아간 길은 조선의 운명 그 자체였다. 편저자 최원식은 이 책을 펴내며 단순히 그들의 글을 엮는 데 그치지 않고, 20세기 초 한반도 근대 지식인들의 계보를 무척 선명하게 그려 보인다. 그는 “서재필의 근본이 김옥균임을 절감했고 주시경 역시 이 계열에 드는데, 이승만이 정치적 후계자라면 주시경은 언어사상적 상속자인 셈”(43면)이라면서, 김옥균과 유길준을 뿌리로 두고 각각 뻗어나간 계보를 이야기해준다. 이 같은 계보를 머릿속에 그리며 이 흥미진진한 책을 읽다보면 바로 “이 출중한 사상가들이 서양 및 아시아 근대와 부딪친 그 특이한 접촉 속에 비맑스주의적 근대극복의 사유가 숨쉬고”(15면) 있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구한말 조선의 대표적 지성 3인의 엇갈린 삶

‘갑신정변의 혁명가, 고균 김옥균.’ 세간의 평가는 그의 섣부르며 성급했던 결정, 부득불일지언정 한반도에 일본을 끌어들여 그 영향력을 키워준 오판 등을 주로 언급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갑신정변이 단순히 김옥균 무리의 독자적인 쿠데타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을 뒤흔든 대격동의 출발점이었다고 못 박는다.
편저자는 갑신정변의 출발점으로, 멀리 베트남에서 일어난 청불전쟁(1884~85)을 꼽는다. 청이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김옥균이 대사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듯 김옥균의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나고, 그 뒤 청이 프랑스에 패하면서 청나라의 권력이 양무파에서 변법파로 넘어간다. 일본 역시 기존에 내걸었던 ‘아시아 연대’의 깃발을 내리고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사회를 지향한다’는 기조의 탈아입구를 선언하며 본격적인 침략의 길을 걷는다. 한마디로 갑신정변이 향후 동아시아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 된 셈이다.
김옥균 사상의 열쇳말 중 첫번째는 ‘조선프랑스론’이라 할 수 있다. 김옥균은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입헌군주제와 공화제를 따르는 것을 면밀히 비교했고, 특히 일본이 영국을 따라 입헌군주제를 선호한다는 것을 참고했다. 조선을 ‘아세아의 불란서’로 만들자고 했던 김옥균의 꿈은 곧 그가 “일본과 대결할 다른 조선”(16면)을 꿈꾸었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두번째 열쇳말은 ‘삼화론(三和論)’이다. 여기서 삼(三)은 조선·청·일본을 가리킨다. 갑신정변 이전까지 김옥균은 반청(反淸)을 분명히 했지만 그 뒤로는 삼화론을 통해 조선을 중립국으로 만들 것을 꿈꿨다. 즉 김옥균의 꿈은 “그 간신한 독립을 견지하면서 궁극에는 일본에도 청에도 당당한 프랑스 같은 강국을 세우는 꿈”(18면)이었다.
그 어수선했던 시기에 김옥균이 이처럼 폭넓고도 날카로운 입론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실학 덕택이었다. 서울 재동의 그 유명한 환재 박규수의 사랑방이 김옥균과 그 동료들의 회의 장소였고, 그들은 그곳에서 자연스레 연암 박지원과 환재의 실학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갑신정변은 김옥균과 그의 친구들이 박규수를 통해 전수받은 연암학파의 실학으로 넓혀나간 지식과 시야를 토대로 조선의 안팎에서 벌인 사투라고 정의할 수 있다.
김옥균 편의 핵심저작 첫번째 글은 「치도약론」으로, 이 글은 김옥균이 실학을 어떻게 계승하고자 했는지가 또렷이 드러난다. 이어지는 『갑신일록』은 갑신정변 당시의 긴박감이 생생히 담겨 있는 글로, 편저자가 원문의 열악한 상태를 감수하고 최대한 정본을 만들고자 애를 쓴 작품이다. 「마지막 상소」는 세계열강의 형편을 날카롭게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의 진로를 밝힌 논설로, 김옥균 “최후의, 그러나 최고의 논설”(24면)로 꼽힌다.
“고균이 난세의 혁명가라면 구당은 치세의 능신(能臣)이다.”(24면) 구당 유길준을 설명한 이 한마디 말처럼 유길준은 어지러운 정국 아래에서 다재다능함을 뽐내면서, 대작 『서유견문』을 비롯해 여러 애국계몽 관련 논설을 펼쳐 ‘국민주의’ 사상가로서 큰 역할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에 나라를 뺏긴 것을 평생 자책하며 여생을 산 불행한 애국자라고도 할 수 있다.
앞서 김옥균이 ‘프랑스 공화국’에 기울었다면 유길준은 ‘영국 입헌군주제’에 매료되었고 이 같은 토대 위에서 ‘양절체제(복합체제)’를 더욱 벼렸다. 그는 당시의 조선이 청나라에 조공을 바쳤기에 하나의 속국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독립국임을, 즉 복합체제하에 놓였으니 청을 잘 달래서 독립을 얻어야 한다고 보았다. 좀더 정확하게 쓰자면 “청일전쟁 전에는 청을 달래고, 후에는 일본을 설득하는 현실주의를 구사한”(26면) 소국주의자였다.
다른 한편, 김옥균이 당시로선 급진적인 평등파였다면 유길준은 ‘국민개사론자’ 즉 ‘누구나 선비가 될 수 있다’는 기조하에서 특히 농업, 상업, 공업의 장인들이 도약해야 한다는 실용적 사고를 펼쳤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십세기적 대참극 제국주의』에 부친 서」라는 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 글에서 “국민주의도 제국주의도 바로 통일의 도구로 되는 데 불과”(32면)하다며 자신의 실용주의자적 면모를 선보이는데, 유길준의 이 같은 현실주의와 세계정부론이라는 이상이 연결되는 지점을 이 책의 백미로 꼽을 수 있다. 그밖에 과거제 폐지를 주장하는 「과문폐론」, 러시아 문제를 언급한 「언사소」, 이미 널리 알려진 「중립론」, 그리고 『서유견문』 등 유길준이 써낸 여러 다채로운 글을 담았다.
한힌샘 주시경의 별명은 ‘주보따리’였다고 한다. 언제나 분주한 몸짓으로 강의용 책을 큰 보자기에 싸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에서 붙은 이름이다. 비단 이와 같은 예를 들지 않더라도, 주시경이 과학적 연구에 바탕을 두어 국어를 정립하고 보급하는 데 열정을 보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의 업적을 꼽자면, 국어를 문법적으로 분석해 품사론의 기틀을 세운 점, ‘모든 종성은 다시 초성을 쓴다’라는 훈민정음의 원칙을 되살린 점, ‘가로풀어쓰기’를 도입한 점 등으로, 나열하기에도 벅찰 정도다. 이뿐 아니라 ‘국어연구학회’부터 ‘배달말글ㅤㅁㅗㄷ음’ ‘한글모’에 이르는 연구조직들을 만들어냄으로써 현대 국어학의 산실을 조성한 것 또한 그의 탁월한 면모 중 하나다. 국어 연구자를 양성하고자 한 그의 노력이 이후 분단체제하에서도 남과 북의 성실한 국어학자들을 꾸준히 배출해내는 토대가 되었다는 점은 따로 기록해둘 만하다.
주시경은 국어학자를 넘어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그의 독립협회 활동은 그 자체로 혁혁했거니와, 그가 기독교에서 대종교로 개종하는 등 당대의 개벽사상 등에도 회통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 책에서는 『주시경전집』에서 네편을 추려내 소개했는데, 그 첫번째 글이 『독립신문』에 발표한 그의 첫 논문 「국문론」이다. 22세의 어린 나이에 쓴 글임에도 무척 과감하면서도 그 요지가 잘 정돈되어 있다. 그밖에 「국문」 「국어와 국문의 필요」 「한나라말」 「큼과 어렵음」 등을 실었다.








박은식·신규식

노관범 편저 / 22,000원 / 창비



고국 없는 세상에서 더욱 절실해진 성찰의 계기
민족의 고통을 딛고 재생을 꿈꾸다


창비 한국사상선 제18권 『박은식·신규식: 시대의 아픔과 역사의 구원』은 격변기 구한말에 태어나 경술국치 이후에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한국’을 회복할 방안을 강구했던 두 사람의 삶과 사상을 엮어낸 책이다. 박은식과 신규식은 각각 『한국통사』와 『한국혼』이라는 탁월한 민족주의 역사서를 쓴 사상가이자 역사학자이며 독립운동가로서, 한반도의 역사를 제대로 전승하는 것이 곧 민족을 구원하는 토대가 됨을 역설했다. 최근 정치사나 사회사 연구에서 역사를 이끄는 힘으로서 ‘감정’에 주목하곤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박은식과 신규식의 역사서가 공통적으로 아픔을 증언하고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이 적어낸 통사(痛史)는 비단 나라를 잃은 슬픔을 격렬히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아픔을 교육·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실의 여러 굴종을 이겨내는 기폭제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역사이다.

박은식과 신규식 사상의 핵심, 아픔과 구원

박은식은 1859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청년기에 그는 평안도에서 지내면서 서북 지역민들이 겪어온 뿌리 깊은 지역 차별을 날카롭게 인식했다. 그뿐 아니라 보통의 백성들이 겪는 굶주림 등의 계층 간 불평등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 같은 현실 앞에서 그는 고뇌에 빠진다. “지치(至治)란 무엇인가? 인정(仁政)이란 무엇인가? 인민의 참상을 해결할 방법은 유학 안에 있는가? 인민의 참상을 해결할 의지는 정부 안에 있는가?”(17면) 그는 교육만이 현실의 난국을 타개할 방안이라고 보았다. 우선 그는 자신이 공부해온 유학에서 해법을 찾아보았고, 『주역』의 겸괘(謙卦) 편에서 과거 선현들의 지혜를 확인하고는 자신의 호를 겸곡(謙谷)이라 짓는다. 박은식이 실천성을 강조한 양명학으로 기울어진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이때에도 그는 각각의 인간이 마치 종교인이 된 것처럼 한 개인을 넘어 전 사회의 아픔을 절절히 느꼈으면 하고 바랐다. 그에게 지식이란 “공감하고 행동하는 앎”(18면)이었다.
이 같은 공동체의 고통에 대한 대안으로 교육과 더불어 그가 내세운 것은 바로 ‘자강과 혁명’이다. 여기서 자강(自强)이란 ‘스스로 강자가 된다’라는 뜻이 아니라, ‘자조(自助)’ 즉 자신의 실력을 키워 스스로를 돕는 것을 넓게 의미한다. 또한 이때의 혁명이란 단지 국권의 회복만이 아니라 세계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혁명과도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 그는 『한국통사』에서 이 같은 ‘자강과 혁명’의 인물로 흥선대원군과 김옥균, 그리고 동학당을 손에 꼽으며, 각 인물·집단이 가진 현재적 의미와 한계를 되짚는다.
각자 시대사적 과제들을 짊어지고 있던 박은식과 신규식은 중국의 신해혁명 소식에 크게 감화를 받고 상하이로 향한다. 이후 상하이에서 활동하며 ‘어려운 시기를 함께 건너는 공동체’라는 뜻을 지닌 ‘동제사(同濟社)’라는 모임을 결성했고, 이 단체는 향후 독립운동에서 한중 연대 활동의 매개가 되었다. 박은식은 한국과 중국 간의 연대가 단시간 내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맺어온 관계 아래에 풍부히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또한 한중 연대 의식은 그 자체로 머물고 정지하는 개념이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주의에 도달해야 하는 유기적 힘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한국과 중국 간 연대의 극적인 장면으로는 “1921년 상해 통합임시정부 국무총리대리 신규식과 광동 호법정부 대총통 쑨원 사이의 만남”(23면)을 꼽을 수 있다. 그해에 신규식은 쑨원을 방문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승인해줄 것과 당시 미·영·중·일 등이 참여하는 태평양회의에 한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대응할 것을 요청했다.
신규식은 1880년 태어나 대한제국의 청년 장교로 경력을 시작했다. 을사늑약 후에 음독자결을 시도할 정도로 독립에 대한 열의가 높았다. 박은식과 마찬가지로 1911년 중국 신해혁명에 감화를 받고 상하이로 이주해 쑹자오런, 황씽, 천치메이 등 중국 혁명지사들과 교류하고 박은식 등과 함께 동제사를 결성해 독립과 근대화에 대한 열정을 지닌 청년들을 규합했다. 그가 『한국혼』을 완성한 것은 35세 때인 1914년으로, 이 책은 ‘국가가 멸망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절절히 호소하는 역사서이다.

근대 한국사상계의 명작, 『한국통사』와 『한국혼』

이 책에 실린 박은식의 글은 문집, 교육서, 잡지, 역사물, 신문 등의 다섯가지 범주로 나뉜다. 그중 『겸곡문고』는 대한제국 초기 박은식의 글을 모은 문집으로, 사상가 박은식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간결하고 구체적인 논변이 돋보이는 글들이 실려 있다. 편저자는 이 중에서 「행하만록」과 손정현에게 보낸 세 편지(「첫번째 서한」 「두번째 서한」 「세번째 서한」)를 대표작으로 뽑으며 그 글들에 담긴 현실 인식과 개혁 사상에 주목해보길 권한다. 또한 교육서 『학규신론』은 한국 근대 교육학의 선구적인 저술로서, 박은식이 유교 지식인으로서 갈고닦아온 ‘교육자강론’의 핵심이 담겨 있다.
당대 한국과 중국의 여러 잡지에서 박은식은 단골 논객이었다. 워낙 많은 언론에서 그의 글을 실었기에 이 책에서는 그의 필명이 확인되는 기명 기사에 한정하여 선별했고, 여러 글을 ‘자강과 단합’ ‘교육과 실업’ ‘지방의 발흥’ ‘다양한 주체’ ‘유교의 혁신’ ‘중국의 현장’으로 주제를 나누어 재구성했다. 이 산문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선 박은식이 주변부의 차별과 불평등에 꾸준히 관심을 두었다는 점이다. 또한 유교혁신론을 펼치며 한국사회가 도덕적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위해 여러 구체적인 행동을 벌여나갔다는 점도 들 수 있다. 단순히 글로써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데서 더 나아가, 몸소 실천하며 하나의 사상을 물심양면 전체의 운동으로 만들어갔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한국 민족주의 역사학의 한 전범으로서, 박은식이 한국 독립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해 쓴 실천적 저술이기도 하다. 편저자 노관범은 이 책에 각각의 서론과 결론을 수록하면서, 독자들에게 이 두 책이 전하는 감각의 차이를 짚어가며 읽기를 권한다.
신규식의 대표작이자 강연록인 『한국혼』은 그 전문을 수록했다. 『한국혼』에서는 듣는 이의 감정에 절절히 호소하는 웅변의 힘이 진정 돋보인다. 박은식의 『한국통사』가 한국 근대 역사학의 고전으로서 널리 알려진 데 비해 『한국혼』은 여전히 우리에게 생소하다. 베트남의 혁명지사 판보이쩌우가 서문을 쓴 데서 엿볼 수 있듯이, 이 책에서는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세계주의자로서 신규식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혼』에서 신규식은 한국인들이 나라를 잃은 원인이 무엇인지를 묻고, 진정한 공동체 회복 방안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변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단순히 나라를 독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독립 이후에 어떤 정치공동체를 어떻게 운영할지를 준비하느냐이다. 그리고 그 변혁의 주체들을 아우르는 정치적 구심점은 바로 ‘민족의 시조’이고 ‘역사’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국혼도 연대도 모두 그 깊은 곳에는 ‘아픔과 구원’이 자리하고 있다. ‘아픔과 구원’의 메시지를 경청하고 한국 근대 사상사의 흐름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찾는 작업은 오늘날의 한국 사상계를 성찰하고 미래의 진로를 설계하는 유익한 길이 되어줄 것이다. 1910년대 한국사상계의 명작으로 박은식의 『한국통사』와 신규식의 『한국혼』을 돌아보는 까닭이다.”(32면)






안창호

강경석 편저 / 21,000원 / 창비



“오늘날 우리의 혁명이란 무엇인가?”
도산 안창호가 벼려낸 변혁의 정신을 오늘 다시 읽는다

창비 한국사상선 제19권 『안창호: 민족혁명의 이정표』는 한국 독립운동사의 핵심적 지도자이자 탁월한 사상가였던 도산 안창호의 논설과 연설을 모은 책이다. 주로 연단에서 대중을 상대로 자주독립의 사자후를 터뜨리던 그였기에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할 기회를 갖진 못했고, 그렇기에 안창호 특유의 혁명론이 제대로 소개될 기회가 적었다. 그렇다보니 안창호의 일면, 즉 독립운동의 조직가이면서 노선 갈등의 조정자로만 칭송받거나, 남한과 북한으로부터는 각각 준비론자와 민족개량주의자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이 책을 통해 안창호가 하나의 주의, 주장에 얽매이지 않고 계급, 이념, 노선을 두루 섭렵하며 중도 통합을 지향했음을 다채로운 산문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안창호는 당시 태동하던 동아시아 근대 자본주의를 목도하면서 민족과 근대성, 독립과 혁명 등의 여러 과제들을 종합적으로 풀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민족이 맞닥뜨린 현실을 바탕으로 민족의 역량을 최대한 결집하는 구체적 방안이 필요했다. 이에 안창호는 단지 각계각층의 일시적인 단합이 아니라 민족혁명이라는 기치 아래에 대공주의(大公主義)를 펼치고자 했고, 이는 오늘날 ‘변혁적 중도’로 연면히 계승되고 있다.

이제 안창호의 진면모를 다시 이야기해야 할 때

안창호는 1878년 평안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유학을 배우고 2년가량 신학문을 익혔다. 이때의 경험은 그가 사물의 이치와 근본을 따지는 습관을 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과 중국 사상가 양계초의 책을 토대로 세계관을 정립한 그는 당대 조선의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즉 안창호의 “최고의 스승은 당대의 구체적 현실과 정세”(20면)였던 것이다. 그는 개화파이면서 기독교도였는데, 그가 민족혁명의 핵심적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갑신정변이 아닌 동학농민혁명을 첫손으로 꼽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마디로 그는 “개벽을 향해 열린 개화파”(22면)였는데, 그가 일상에서 동학의 수련을 연상하게 하는 수양을 강조했고, 동학의 평등주의와 인본주의에 공감했으며, 한반도 신종교에 두루 열려 있었다는 사실이 그 점을 뒷받침한다.
평생 실속과 실천을 강조한 이답게, 안창호는 독립운동 기간 내내 탁월한 재정 실무자로 “자립에 기초한 물적 토대의 확충”(24면)을 중요시했다. 다음과 같은 연설 속에 담긴 경제관념을 보자. “임시정부가 한 일이 무엇이오? 동아시아에 있는 이가 한 일이 무엇이오? 재정 모집과 시위운동을 계속한 것이외다. 이것으로 외교와 전쟁과 모든 것이 될 것이오. 내가 며칠 후에는 피 흘리는 이에게 절하겠소마는 오늘은 돈 바치는 이에게 절하겠소.”(95면)
이 같은 ‘무실역행(務實力行)’의 정신은 우리 민족의 현실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중도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안창호는 당대 독립운동이 여러 이념과 사조로 분열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자칫 기회주의적이고 기계적 중립에 빠지지 않도록 운동의 과제와 목표를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설정하려 했다. 그는 대중을 하나의 추상적이고 단일한 수준의 집단으로 보지 않고 각자 수준과 역량이 다른 존재임을 인정했다. 그리하여 그에게 민족혁명이란 운동가 각자가 서로의 차이나 결함에 집착하지 않는 통합의 깃발이었고, “정치적 혁명이나 경제혁명이나 종교혁명 같은 부분적 성질에 있지 않고 우리 민족으로는 누구나 다 같이 어떤 혁명분자나 다 같이 힘 쓸 결심을 해야 할 것”(251면)이었다.
여기서 안창호가 주창한 대공주의(大公主義)가 현대의 ‘변혁적 중도주의’와 맞닿는 지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공주의란 일상의 소소한 저항에서부터 전 세계 공동의 변혁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연계된다는 주의이다. 당시 일제 치하의 현실에 빗대어 말하자면, 대공주의란 “우리의 주권 회복과 모범적 공화국 건설이 민족적 요구에 따른 당위일 뿐 아니라 미·중·일·러가 교차하는 한반도를 세력균형의 완충지대로 만듦으로써 ‘동양평화’의 초석을 놓고 세계평화를 바룬다는 발상”(28면)이라고 편저자 강경석은 말한다. 이 같은 발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비현실적인 급진 노선들과 체제 순응적인 개혁 발상에서 벗어나 각 시대 현실에 알맞게 대처하고 다수의 대중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곧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주의와 동일한 맥락이다.

우리는 변해야 한다

안창호에게 한반도 독립은 그에 뒤이은 신공화국 건설과 더 나아가 동양평화, 세계평화로 이어지는 첫번째 단계의 임무이다. 이 같은 장구한 혁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방침 또한 추상적이고 급진적이어서는 안 되고 구체적이고 점진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가 벌인 첫번째 독자적 활동이 최초의 남녀공학 학교였고 그 학교의 이름이 점진(漸進)학교라는 점이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점진적으로 변혁해가야 한다’는 안창호의 주장을 오늘날에 따라본다면 ‘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제로부터 독립하긴 했지만 남북으로 갈라져 산 지 어느새 80년에 가까워졌다. 즉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한반도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요, 뒤이어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이뤄가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편저자가 서문의 머리 부분에 쓴 것처럼, 안창호의 편지와 일기를 제외하면 그는 직접 글을 쓰지 않고 대부분 자신의 사상을 다수의 대중 앞에서 발표했다. 그의 연설은 강연 주최 측의 서기를 통해서나 언론사 취재록으로 남겨졌다. 다시 말해 그의 말을 누가 어떻게 옮기느냐에 따라 문체와 기록이 달라지는 터라 ‘단 하나의 원전’을 하나의 기준으로 잡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은 안창호의 최초 기록 문헌을 기준으로 삼아 극히 최소한의 윤문을 가했다. 또한 국한문체 기록의 시대적인 차이, 국내 매체와 해외 매체의 표현·용어 차이 등을 추가로 고려했다.








박중빈·송규

허석 편저 / 24,000원 / 창비


 
낡은 사유의 전환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원불교 지도자들이 권하는 정신개벽의 공부길

창비 한국사상선 제20권 『박중빈·송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20세기 한국의 대표적 사상가 소태산 박중빈과 정산 송규의 말씀을 담아 소개하는 책이다. 박중빈과 송규 모두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살면서 이 세상을 제대로 구원할 방도를 고민하다가 새로운 정신의 개벽운동을 벌일 것을 결심했다. 그들의 개벽운동은 최제우와 최시형의 후천개벽사상을 계승하는 일이기도 했고, 이를 “한층 원만하게 진일보”(16면)하는 일이기도 했다. 편저자 허석은 이 책의 서문에서 “무엇보다도 개벽의 차원과 양상을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으로 구분하고, 물질이 개벽되니 그에 상응하는 정신을 개벽하자고 한 점”(16면)을 주목하자고 권한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폐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금 시대에 주요한 변화의 열쇳말로 ‘정신개벽’을 꼽은 것이다.

소태산 박중빈의 『정전』과 『대종경』 읽기

소태산 박중빈은 1891년에 태어나 청년기 동안 깨달음을 찾아 길을 나섰다. 일제 치하에서 대다수 조선인이 국망과 가난으로 이중고에 시달리던 때였다. 박중빈은 전국을 돌며 피폐해진 현실을 낱낱이 목도했다. ‘위태로운 세상에 큰 병이 들었다’는 생각에 고뇌와 번민을 거듭했다. 그러던 1916년 대원정각(大圓正覺, 크고 원만하며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이후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지도 강령을 정해 원불교를 창시했다.
원불교 창시 당시에 박중빈이 깨달은 바는 원불교의 『정전』 중 첫번째 글(제1 총서편 1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여전히 그 현재성이 돋보이는 명문이다. “현하 과학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여, 쇠약한 그 정신을 항복 받아 물질의 지배를 받게 하므로, 모든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함이 그 동기니라.”(41~42면)
박중빈은 현대 과학문명이 발달하면서 인류가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할 것임을 간파했다. 그 원인은 물질이 가진 힘이 강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정신이 점점 쇠약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물질개벽의 참뜻을 깨달아 인간이 물질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의 노릇을 할 수 있도록 각자의 정신을 바꿔야 한다.
그는 일원상의 진리와 인생의 요도(사은, 사요), 공부의 요도(삼학, 팔조) 등 원불교 교리의 기본 골격을 세웠다. 그리고 이를 “천하 사람이 다 알아야 하고 다 실행할 수 있으므로 천하의 큰 도”(118면) 즉 일원대도로 이름 짓고 자신의 사상을 집약하여 『정전』으로 펴낸다. 그는 『정전』을 쓰면서 불교와 동학의 후천개벽사상을 토대로 하여 유교·불교·도교를 종합해내고자 했다. 이는 동학의 최제우가 유불선 삼교를 결합하면서 유교를 중심에 둔 것, 증산교의 강일순이 도교를 중심에 둔 것과 비교된다.
박중빈이 동학을 토대로 삼은 것은 단지 하나의 구호로서가 아니라 경전의 글귀마다 생생히 배어 있는 실천의 지침이다. 예를 들어 원불교의 세가지 수행법인 ‘정신 수양’ ‘사리 연구’ ‘작업 취사’의 경우 기본적으로 불교 각 종파의 수행법을 통합해낸 것인데, 동시에 도교의 양성법(정신 수양), 불가의 견성법(사리 연구), 유교의 솔성법(작업 취사)을 참고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도교와 불교의 수행에 더해 유교의 장점(현실 참여 중시), 동학의 장점(불의한 현실에 맞서기)까지 고루 취하고자 한 박중빈의 사상적 고투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박중빈은 이처럼 종교 교리의 문구 하나를 짓는 데도 온 힘을 다한 사상가로 평가할 수 있지만, 그 외에도 교단의 조직운영 원리를 창안하고 실제 조직을 이끈 실천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원불교 교리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했을 뿐 아니라, 해당 교리가 신도들의 실생활에 어떻게 쓰일지를 고민하고 그 실천적 방침을 끊임없이 고쳐갔던 것이다.
『정전』의 ‘조직원리’ 부분을 살펴보면, 사제들의 특권의식과 기득권을 철폐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예를 들어 ‘전무출신’이라는 제도는 오직 원불교 일에만 전력을 다하는 출가자를 가리키고 그들은 그에 합당한 대우와 존경을 받는다. 그렇다고 보통의 신도들과 차별적인 신분을 갖는 것은 아니고, 각자의 실적에 따라 숭배를 받는 식이다. 또한 남녀평등에도 관심을 두어 ‘남녀권리동일’을 사요(인생의 네 요도)의 첫 조목으로 삼았고 교단 내 교육과 제도를 병행해갔다. 이 교리가 100년 전에 설법된 것이라고 한다면 당시의 대중들이 느꼈을 파격은 대단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더욱 급진적인 이론과 토론이 이뤄지는 지금 볼 때는 무난하게 읽히기도 하겠지만, 100년 전 교리가 가진 현대성을 음미하며 읽어보면 그 변혁적 성격이 한층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정산 송규의 『정산종사법어』 읽기

정산 송규는 1900년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체계적으로 유학을 공부했다. 다만 시대의 혼란과 유학의 고루함 속에서 고뇌하다가 1918년 소태산 박중빈을 만나 한 마음 한 뜻으로 원불교를 지킬 것을 약속하게 된다. 그러다가 1943년 박중빈이 갑작스레 열반에 들면서 원불교의 최고 지도자가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방을 맞은 뒤에는 해외 각지에서 막 돌아온 동포들을 돕는 활동에 매진한다.
송규가 책 『건국론』을 집필하며 해방 이후 새로운 국가가 가져야 할 덕목을 정리했다는 점은 그가 종교지도자라는 점을 고려할 때 특기할 만하다. 그는 “정치와 종교가 한 가정에 엄부와 자모와 같이 세상을 운전하는 두 축”(26면)이라는 『대종경』의 말씀을 토대로 국가사업의 경륜을 밝혔다. 이 책은 삼권분립 등 기존 정치학 용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정신으로써 근본을 삼고, 정치와 교육으로써 줄기를 삼”(363면)는 고유한 건국 요지를 밝히는데, 이는 해방과 건국이라는 외적 변화에 부합하는 정신을 확립해야 국가가 온전히 운영될 수 있음을 간파한 주장이었다.
박중빈과 송규는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정교동심(政敎同心)’이라는 용어로 적절히 개념화했다. 송규는 정치와 종교가 한마음이 되기 위해서 한반도 주민들이 “시대정신이 깨어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삶 속에서 일원의 도를 깨달아가는 도치(道治), 도를 행하여 나타난 덕화로 민중을 다스리는 덕치(德治), 그리고 법으로 다스리는 정치(政治)를 결함 없이 해나가”(27면)길 바랐다.
또한 송규는 스승 박중빈의 말씀을 모아 『대종경』으로 펴내는 등 조직의 기틀을 다지는 일에 힘썼다. 점차 신도가 늘어감에 따라 조직을 적절히 개편했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 원불교를 전파하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이 같은 송규의 사상과 활동은 1961년 발표한 ‘삼동윤리’를 통해 결집된다. 삼동윤리란 말 그대로 인류가 화합할 세가지 대동의 원리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인류 공동의 윤리강령이라 할 수 있다.

위대한 사상가는 언어의 깊이 있는 예술가다

『정전』은 박중빈이 직접 저술한 원불교의 근원 경전이자 그가 손수 제작하고 감수한 교서이다. 『대종경』은 박중빈의 말씀을 모은 또다른 핵심저술로, 그의 법문과 행적을 15품으로 엮은 언행록이다. 『정산종사법어』는 송규의 언행록으로 『대종경』과 동일하게 15편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에서는 『정전』과 『대종경』의 전문을 소개하고, 『정산종사법어』는 분량 제약상 일부만 실었다. 100여년 전에 쓰인 경전을 읽는 일은 현대 독자들에게 어려운 도전일 수 있다. 원불교도가 아니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사상가는 언어의 도저한 예술가”(31면)라는 통찰을 새기고 박중빈과 송규가 자신의 처지에서 고투하며 깨달음에 이른 안목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자 노력한다면 누구나 이 말씀의 본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마음공부에 이 말씀들이 좋은 길잡이가 되길 빈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6411의 목소리 저 / 20,000원 / 창비


언론인 손석희, 배우 정우성 추천!

사회를 바꾸는 우리 일터 이야기

‘투명인간’ 노동자의 한숨과 땀방울의 연대기
웃고 울고 분노하는, 가장 진실하고 절실한 울림
웹툰작가, 물류센터 직원, 도축검사원, 번역가, 대리운전기사, 사회복지사, 전업주부, 예능작가, 헤어디자이너, 농부, 건설노동자…… 각자의 노동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수많은 이들. 전국 방방곡곡 다양한 현장에서 땀 흘리는 일흔다섯명의 노동자가 자신에게 익숙한 도구를 잠시 놓고 펜을 들었다. 그리고 각자가 일하며 겪은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어떤 리얼리즘 소설보다 리얼하고, 어떤 시집보다 감동적이며, 어떤 에세이집보다 반짝이는 언어로 가득한 책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로 묶였다.
한편당 A4용지 한장 분량의 짧은 글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밀한 사연들은 오래 시선을 붙든다. 화려하거나 미끈한 문장으로 포장되지는 않았지만 페이지를 가득 채운 진심과 진실은 곧바로 감전되듯 와닿는데, 그러면서 독자들은 순식간에 겪어보지 못한 삶의 현장을 체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이 책은 읽는 이의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을 지녔다. 배우 정우성이 추천사를 통해 말했듯, 각각의 기록은 “존재하되 우리가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직접 쓴 이야기”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경험을 통해 독자들은 평소에 무심코 지나쳐온 ‘일하는’ 얼굴들을 떠올리게 되며 그들이 어떤 기분으로 일터에 나가서 어떤 순간에 웃고 우는지를 짐작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나의 얼굴, 내가 사랑하는 이의 얼굴과 다르지 않음을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이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공생’의 실감으로 이어지는 동시에 모두가 이 사회를 떠받치고 살아가며, 또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공존’의 마음가짐으로 우리를 이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같이 살자”(추천사, 정지아 소설가)는 외침이 먹먹한 동시에 오래도록 따뜻하게 남는 것도 이러한 마음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것은 누구인가
이제는 그들의 ‘진짜’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는 출간에 앞서 북펀딩을 진행했다. 정치권·문화예술계·시민사회계 등 각계의 응원에 힘입어 펀딩은 시작되자마자 모금 목표를 달성했고,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목표의 네배를 훌쩍 상회하는 금액이 모였다. 이 프로젝트에 보여준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성원에 힘입어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는 출간 이후 국회의원회관 행사 등 이 책의 출간 의의를 설명함과 동시에 노동현실 변화를 촉구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 책은 노회찬재단의 기획으로 시작되었다. 노동자가 직접 쓴 글을 받아 ‘6411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2022년 5월부터 한겨레에 연재를 시작했다. 억울한 사연, 힘을 보태달라는 호소문, 위트 있는 일화, 따뜻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 등 저마다 다른 얼굴을 지닌 목소리가 지면을 통해 사회에 발신되었다. 여태껏 한번도 사회적 발언권을 지녀보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였다.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우리가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한국사회가 그 노동자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알린 고 노회찬 의원의 명연설이다. 그 연설 이후 ‘6411번 버스’는 소외된 노동계층을 대표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명이 ‘6411의 목소리’인 것은 그러한 이유다. 언론인 손석희는 이 책을 읽고 “하나하나의 글들 속에서 노회찬을 발견한다. 글쓴이들이 모두 노회찬이다”라고 썼다. 탁상공론이나 지나친 정쟁 끝에 진전이라고는 전혀 없는 정치인들이나, 늘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에게는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지 않는 재벌·기업인들에게 들려줄 목소리는 바로 ‘6411의 목소리’, 현장의 목소리라는 뜻을 품고 있는 말이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에 수록된 글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쓰였지만 모두를 한곳으로 이끈다. 바로 ‘더 나은 세상’이다. 여태껏 듣지 못했던, 존재하는 줄 몰랐던, 혹은 애써 외면해온 목소리들을 들음으로써 우리는 한발짝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한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라는 책 제목은 자본이라는 가치에 매몰된 세상을 향한 모두의 질문이자 경고이다. 물론 사람의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세상이 곧바로 오지야 않겠지만 “작은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편집자문위원회)이 있기에, 우리는 사람이 그 자체로 존중받는 세상을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잠시나마 꿈꿔볼 수 있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에 실린 생생하고도 빛나는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은 그러한 세상을 향한 마중물이 된다.











독자 저격

조효원 저 / 20,000원 / 문학과지성사


 
언어는 만방이며 세계는 곧 책이다.
세계가 책이 아니라면 우리 역시 존재가 아닐 것이다. [...]
독자를 저격하는 것은 구원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 없다.
살리는 것은 영원의 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책은 독자를 죽이기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
비평가이자 번역가, 서양인문학자로 이름을 알린 조효원(연세대 독문과 교수)의 비평 에세이 『독자 저격』이 출간되었다. 벤야민에 대한 학술적 연구에 주력하면서, 야콥 타우베스, 조르주 아감벤, 칼 슈미트, 베르너 하마허, 대니얼 헬러-로즌 등의 저작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는 등 활발한 연구 및 저술 활동을 해온 조효원의 『독자 저격』은 전작이었던 『다음 책-읽을 수 없는 시간들 사이에서』를 낸 지 꼭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2010년대 이후 계간지 『문학과사회』 『인문예술잡지F』 등의 지면에 발표했던 길고 짧은 글 16편을 모았다. 저자는 언어와 문학, 독자와 저자, 책과 세계, 종교와 정치, 역사와 미래 등에 관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지적이고도 흡인력 있는 글을 완성했다. 수수께끼를 내포한 듯한 저자 특유의 정연한 문장들이 겹겹이 포개어지며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는 한편, 글의 구성 및 형식상의 실험에서 위트와 유머 감각이 드러난다.
표제작 「독자 저격」은 0과 1, 즉 없음과 있음의 숫자를 번갈아 부여하면서 찰나의 책과 영원의 책을 대비시키고 제멋대로 읽을 자유, 막강한 독해의 자유라는 힘을 지닌 독자를 어떻게 저격할 수 있을까’를 물으며 독서 행위에 대한 이론적 성찰을 시도한다. “책은 독자를 쏠 수 있지만, 독자는 책을 쏠 수 없다. […] 책은 오직 준비된 독자만을 쏠 수 있다. […] 어떤 계기로든 한 번이라도 책에 의해 처참히 거꾸러져 본 독자는 생의 길목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책의 문맥과 행간을 독자적으로 주파할 힘을 얻는다”(55쪽). 이 글이 ‘독자’들을 끌고 가는 곳은 현실의 독서 연마술 따위가 아니라 영원의 책이 존재하는 이념의 차원이다. “찰나의 책은 아무런 문제도, 아무런 마찰도 일으키지 않는다. 찰나의 책의 세계는 실로 평화롭다”(70쪽). 반면 영원의 책은 고통의 불길을 내리꽂는다. 오직 죽이는 일에만 관심을 두는 영원의 책은 모든 생의 근본적 리듬인 연속성을 무너뜨리고, 타격을 입은 독자는 주어진 삶의 감각에 충실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쏘는 시늉만 할 수 있을 뿐 독자를 타격하지 않는 찰나의 책만을 읽을 것인가. “찰나의 책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활자가 바로 영원의 책을 망각으로 뒤덮는 미세먼지인 셈이다. 우리 시대가 먼지와 활자를 구별할 수 없게 된 시대라는 사실을 살벌한 현실로서 지각한 독자가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필시 그는 숨통을 조여오는 고독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61~62쪽). 찰나의 책, 휘발성 콘텐츠들이 시선을 강탈하는 시대에 독자를 죽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책이란 어떤 것일까? 작금의 시대에 대한 자조 섞인, 어딘가 비관적인 전망 속으로 가라앉은 저자의 글 끝에는 ‘그럼에도’가 매달려 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을진대 그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서양인문학자 조효원 교수의 신작 비평 에세이
‘알 게 뭐람’의 시대정신과 문학의 미래 그리고 문헌학에 대하여


문학장이 총체적 무관심 속에서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지 오래다. “이제 세계는 문학과 관련하여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로 우글거린다”(128쪽). 이 책의 저자 역시 많은 부분 위기에 대한 인식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정말로 비극적인 것은, 기준을 조율하고 확립하려는 모든 노력이 ‘알 게 뭐람’의 정신 앞에서 일거에 수포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라고 하면서 이 책은 “그 비극에 대한 인식의 기록”이라고 밝힌다. 오늘날 ‘근대의 사회적 상상’을 지탱해온 거의 모든 주요 개념이 무화되고 있는 위기 상황을 비판적으로 독해한 7장 「일방통행국」에서도 이와 같은 인식이 명료히 드러난다.

바야흐로 세계는 전대미문의 ‘일방통행국’으로 재편되었다. 국가라는 명칭을 장식으로만 달고 있는 이 ‘세계국가’에서는 모든 것이 오직 일방통행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대관절 어디로 향하는 일방통행이란 말인가? 아마 누구든 직감적으로 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하고 어렵고 심각한 모든 문제가 말끔히 사라진 공간, ‘구독’과 ‘좋아요’의 각축이 모든 눈과 귀를 지배하는 세상, 요컨대 모든 일이 카메라 연출에 의해 통제되는 예능 만능의 낙원으로. (130쪽)

그 밖에도 이 책에는 현실을 조망하고 역사와 소통하는 가운데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의식을 고찰하고 비평을 시도한 진중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4장 「이론과 무한의식」은 파산의 운명에 처한 이론의 여정을 따라가본다. 투쟁, 패권, 음모, 운동, 제휴, 해석, 위조, 이름, 역사, 무한, 착오 등으로 이어지는 사유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6장 「문학과 결의론의 미래」는 한때 유행한 사사키 아타루의 논의와 대결하면서 문학의 근원적 본질을 재사유한다. 저자는 푸코가 말한 ‘말할 수 없지 않은 것’으로서의 문학을 ‘결의론’과 연결 지어 되돌아보면서, 그 미래를 생각해본다.
8장 「궁지에서 궁진하기」에서는 베버의 ‘세계의 탈주술화’ 테제, 즉 계산될 수 없는 것은 무가치, 무의미하다고 간주되는 사회의 도래에 맞서 천천히 읽을 것을 가르치는 문헌학의 가치를 옹호한다. 이를 위해 니체, 세스토프, 부르디외, 로티 등의 사례를 통해 탐구주의자와 아이러니스트의 사유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헌학의 그리스어 어원은 ‘로고스에 대한 사랑’을 가리킨다. 이를 다시 번역한다면 ‘글을 바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따라서 로고스에 대한 성찰을 전개하는 과정에는 “‘어떤 존재에게 어떤 글을 어떻게 바칠 것인가’라는 근본적-상황적 고민이 시종일관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야 한다”(203쪽)고 저자는 말한다. 10장 「문헌학의 파레시아」는 프로이트, 아우어바흐, 하마허의 저술을 문헌학적 투쟁의 사례로 바라보면서 독해한다. 이들의 사례를 통해 ‘상아탑의 (재)건축’을 위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11장 「자유주의의 자유의지」는 「사도행전」 속 아나니아와 삽피라 일화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통해, 자유주의의 본질을 이론적 차원에서 숙고한다. 파레시아(진실 말하기)에는 거짓말의 자리가 없고 아첨에 반대된다고 규정되었으나, 오늘날에는 “가장 뛰어난 아첨꾼이 가장 존경받는 파레시아스트로 등극”하고자 하며, “자유주의의 자유의지는 파레시아의 가능성을 끝까지 압살”하고자 한다고 지적한다.
13장 「말하는 천재」는 세계의 질서와 폭력에 관한 슈미트와 벤야민의 사유와 입장 차이를 독해해본다. “탁월한 통찰력을 갖추고 평생 문학을 탐독한 법학자”와 “독일 최고의 비평가를 꿈꾼 자유기고가” 사이에서 햄릿을 두고 또 한 번의 논쟁이 벌어진다. 슈미트가 가톨릭주의와 프로테스탄트주의가 대립하던 시대의 분열상을 표현하는 인물로서 햄릿을 바라본다면 벤야민은 결의와 양심이라는 두 극단에서 분열한 햄릿을 텅 빈 내면을 지닌 인물, 일종의 기독교적 섭리 안에서 반전된 인물로 가정한다. 1장 「언어 외과의사의 편지」에서는 카프카에서 발레리, 발레리에서 벤야민으로 건너가며 지속이자 단절로서 ‘하이픈’의 의미를 고찰해본다. 저자는 헤벨의 우화 속 “칸니트페르스탄” 이야기를 통해 “불가해성으로 전락하지 않고 이해의 지평을 뚫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하이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조효원의 『독자 저격』은 독자와 저자와 텍스트에 대한 오랜 독서와 연구, 비판적 성찰이 응축된 책이다. 다시 표제작인 「독자 저격」으로 돌아가본다면, 저자는 독자 세계와 저자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심사위원회’에 관해 이야기한다. 항시 진실할 것을 명하는 검문이 이루어지는 곳. 때를 잘못 만난 ‘영원의 책’은 이 심사위원회에 회부되어 신권 재판 내지 여론 재판을 받고 화염 속으로 던져질 수 있다. 그럴 때 영원의 책은 더 이상 쏠 수 없게 된다. 이는 비단 먼 과거의 일만이 아니라 지금도 심심찮게 벌어지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일 것이다. 더욱이 “우리 시대는 진실을 검문하는 연옥이 무한대로 팽창하고 있는 시대다. 모든 개인이 제가끔 심사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하기 때문이다. 작금에 심사위원회 명패를 달고 활동하는 모든 집단은 무한히 자유로운 ‘바깥’으로 뒤집힌 모든 개인의 무정형한 ‘내면’에 의해 구석으로 내몰린 상태다”(63쪽). “중요한 것은 진실을 향한 본능적인 집착을 정확하게 타격하고 분쇄하는 일이다. 심사의 연옥을 철저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거대한 개인-심사자들의 리바이어던이 종내 세계의 책마저 완전히 불살라버릴 것이다”(64쪽).
















다정하게, 토닥토닥

김글향 저 / 16,800원 / 빈빈책방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었던 것은 언제나 그림책이었다.”
마음껏 울고 싶었던 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던 날, 다른 사람과 잘 지내기 힘들었던 날, 소중한 사람과 이별한 날, 내가 부족해 보이던 날…. 작가의 평범한 나날은 그림책을 만나 특별해진다. 이 책은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상의 순간, 자신의 마음을 다정하게 토닥여준 그림책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힘든 마음을 위로받고 싶을 때, 주변을 이해하고 싶을 때, 자신감과 용기가 필요할 때,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을 때면 작가는 그림책을 읽었다. 그림책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면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내 솔직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작가를 따라 따뜻한 그림과 다정한 문장에 ‘나의 이야기’를 더해 보자. 내 안의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뭉클한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이 책은 총 53권의 그림책을 소개한다. 작가는 독자가 자신에게 꼭 필요한 그림책과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 책에서 다룬 그림책 목록’은 그림책 독서 가이드가 필요한 독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림책이 ‘어린이만을 위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면 만날 수 있는
자유롭고 아름다운 그림책 세상으로 초대합니다.

여러분은 ‘그림책’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혹시 ‘아직 글을 잘 모르는 어린이가 읽는 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도 많이 출간되고 있고, 그림책을 읽는 성인 독자의 수도 늘었습니다. 여러 사회적 역할을 해내며 자신을 포장하고,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작가는 그림책을 권합니다.
이 책은 영유아 교재 연구원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작가가 오랜 시간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림책이 지닌 위로의 힘을 전하는 에세이입니다. 처음에는 어린이들을 위해 읽기 시작한 그림책인데,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살아가는 힘을 얻은 것은 작가 자신이었습니다.
세대를 아우르는 그림책의 매력에 푹 빠진 저자는 다양한 공간에서 그림책 강연을 진행하며 그림책을 사랑하는 어른들과 꾸준히 소통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림책에 관심이 많은 독자도 어떤 그림책을 어떻게 읽으면 더 좋은지 궁금해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론 자유롭게 마음 가는 대로 읽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나도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 도움을 주는 그림책들이 있습니다. 작가는 그림책을 읽는 어른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그리고 독자가 자신에게 꼭 필요한 그림책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습니다.
‘오늘 같은 날에는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알려주는 작가의 안내를 따라 그림책의 세계로 떠나 보세요. 마음에 닿는 한 장면, 한 구절을 분명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책에서 ‘나’를 찾는 방법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은 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 날, 용감하게 도전하고 싶은 날, 어제보다 조금 더 성장하고 싶은 날…. 작가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너무나 힘들어서 몸도 마음도 작아지는 기분이 드는 날에는 《도토리시간》(이진희, 글로연)처럼 내 마음을 위로하는 시간을 갖고, 용기를 내고 싶은 날에는 《그래봤자 개구리》(장현정, 모래알(키다리))의 개구리에게서 배운 것처럼 ‘그래, 나 ○○○이다!(어쩔래?)’ 외치는 기세도 보이지요.
‘맘마’와 ‘엄마’라는 글만 나오는 《나의 엄마》(강경수, 그림책공작소)를 읽고 ‘나의 엄마’와 ‘엄마인 나’를 생각합니다. 갑작스럽게 곁을 떠난 아빠를 추억하며 《소년의 마음》(소복이, 사계절)을 펼쳐 보기도 해요.
야구 선수를 꿈꾸는 아들을 응원하기 위한 그림책 한 권,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책 한 권,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의심될 때 불안을 잠재워 주는 그림책 한 권…. 이 책에서는 총 53권의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그림책에 관심은 있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어른,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으며 소통하고 싶은 보호자, 일상에 지쳐 위로의 메시지를 바라는 독자에게 좋은 지침이 되어줄 것입니다.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그림책을 읽으며 ‘나의 이야기’를 더해 보세요. 포근한 그림과 다정한 문장에 나를 비추어 보며, 내 마음을 돌보고 진정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신용목 저 / 12,000원 / 문학과지성사



 
 
“그때 알았을까,
어쩌면
내 몸은 삼십 년을 뚫어놓은 구멍이라는 것을”

평범해서 결코 당연하지 않은 미래
그 우연 속에 사랑하는 ‘우리’가 있어서
먼바다의 파도를 타고 오늘로 돌아온 시인
신용목 일곱번째 시집 출간



슬픔에 적극적으로 침잠함으로써 서정과 사회를 연결해온 시인 신용목의 일곱번째 시집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606번으로 출간되었다. 전작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문학동네, 2021) 이후 3년 만에 묶는 시집으로, 마흔한 편의 시가 총 여덟 부로 나뉘어 실려 있다. 첫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문학과지성사, 2004)가 세상에 나온 지 꼬박 20년이 흐른 지금, 시인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열아홉의 내가
자신의 미래를 보고 싶어서
삼십 년을 살았다

내 미래는 이런 거였구나, 이제 다 보았는데
돌아가서
알려주고 싶은데, 여전히 계속되는 시속 한 시간의 시간 여행을 이제 멈추고
돌아가서
알려주면, 열아홉의 나
자신 앞에 놓인 삼십 년의 시간을 살아보겠다 말할까
아니면
살지 않겠다 말할까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부분

미래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으나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이므로 늘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러나 미래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그저 주어진 당장을 살아가기. 얼핏 시시하고 쉬운 길처럼 보이지만, 일상의 평범이 곧 평온은 아니다. 현재를 살아 미래로 가는 일은 “울음소리”와 “닿지 않는 분노”(「목항」)를, “나를 키운 모든 욕망”과 “나를 죽인 모든 것”(「오월에서 사월로 무지개가」)을 끊임없이 통과하는 일이다. 그 한가운데에서 “어금니가 다 상해버”릴 정도로 꽉 입을 다물어 “몸속의 아이들을 침묵 속에 가두”(「포인트 니모」)어야 하는, “내 속의 아이가 깨지 않기를/그래서 울지 않기를/바”라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미래의 ‘나’는 이제 과거의 ‘나’가 보고자 했던 미래가, 즉 ‘나’의 현재가 지난한 과거로 이루어져 있음을 안다. 이토록 우연히 미래에 놓인 생존자로서, 열아홉의 마음을 품은 채 30년을 지나온 시인은 의문을 던진다. 과거로 돌아가 그 시절의 ‘나’에게 앞으로의 시간이 어떠한지 일러주면, 그는 “살아보겠다 말할까/아니면/살지 않겠다 말할까”(「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대답의 내용이 어떻든 ‘나’는 제 앞에 펼쳐져 있는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미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우금치」), “미래는 이런 거였구나, 이제 다 보”(「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고 난 뒤 삶에 자신이 없어지더라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아침”(「가로」)은 어김없이 찾아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결국 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을 이어가야 하는 “내 몸은/뾰족하게 깎은 인생으로//시간을 뚫어놓은 구멍”이다. 다만 이 구멍은 결손이나 상흔이라기보다는, 시간이 드나드는 통로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회오리치는 사랑”이 기운차게 그 내벽을 “붉은 피로 돌”(「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며 몸을 한껏 열어젖혀 헤집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으로 “파헤쳐진 몸은 내 것이어도 나만의 것은 아니”(「독주회」)다. 우연한 미래에 있는 것은 ‘나’가 아닌 “사랑 안에서만 믿을 수 있는 우리”(「수요일의 주인」)다.


“나의 조상은 몽상가가 아니라
노동자였습니다”

꿈이란 잠 바깥에 있는 것
부단히 움직여 만들어야 하는 것


이제 고백하자. 나는 죽은 사람이 살던 집에서 죽은 사람이 쓰던 물건을 쓰는 사람.
내가 잠들었을 때, 내가 사는 집에서 내가 쓰던 물건을 쓰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나는 죽은 사람의 인생 속에서 죽은 사람의 몸을 쓰며 사는 사람.
하지만

이건 악몽이고, 악몽은 잠 속에 있어야 하는데

나는 한 번도 잠들지 않았습니다.
-「미래 중독」 부분

시집의 중간께인 3부에 자리한 「미래 중독」은 열 개의 이미지가 이어져 흐르는 장시로, 이번 시집의 중요한 키워드인 ‘미래’에 대해 긴 호흡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충실하게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긴 그림자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날을 통해서만 미래에 다다를 수 있으므로, 미래에 중독되는 일은 곧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에 중독”됨이나 다름없다.
실현되지 않은 시간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미래’는 ‘꿈’으로 치환될 수 있다. 이때 꿈은 ”죽은 자들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현재는 어디에도 없”(「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나는 죽은 사람이 살던 집에서 죽은 사람이 쓰던 물건을 쓰는 사람”이고 “죽은 사람의 인생 속에서 죽은 사람의 몸을 쓰며 사는 사람”(「미래 중독」)임을, 즉 현재가 미래의 재료이자 과거의 구성체임을 감각할 때, 꿈은 잠 바깥에 놓여 “잠에서 깨고 난 뒤에도 깨지 않는”(「앵무새 둥지」)다.
그러므로 꿈은 “잠들지 않”을 때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 여보시게, 그냥 잠들어도 괜찮네 어깨를 두드”려도 잠 밖으로 나와 깬 채로 만들어야 하는 지금 여기의 몫이다. “꿈속의 내가 꿈 밖의 나에게 건넬 수 있는 유일한 것”(「미래 중독」)인 몸으로 직접 만들어야 하는 제조품이다. 몽상가가 아닌 노동자로서 우리는 “누군가의 혀끝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어느 날 꿈을 꾸며 미래라는 공산품을 만”(뒤표지 글)든다.


“사실 빛은 돌이었고
사실 빛이 통과할 때마다 매번 유리는 깨진다”

부서짐으로써만 닿을 수 있는 돌의 바닥
그곳에서 빛나는 미지의 내일


작고 거친 돌 하나가 있어

나는 훔친다
그 순간, 나를 가져버린 것을 내가 가져가는 전능을 보여준다

나는
창을 닦는다 부싯돌을 부시듯 행성의 모서리가 반짝인다
불을 켠다 부싯돌을 던지듯
어둠이 쓰러진 바닥에서 연신 매운 눈을 비비며, 불을 부는 사람의 빨간 눈을
보고 싶어서

주워 온 돌을 창가에 놓는다
-「여성안심귀갓길」 부분

이번 시집의 발문을 쓴 문학평론가 송종원이 짚고 있듯, ‘돌’은 신용목의 작품 세계에서 ‘불’ ‘재’ 등과 함께 구심점을 이루며 “단단한 구원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이 돌은 한군데에 가만히 놓여 있는 대신 “내달리다 쓰러”(「토키 영화」)지고 “마음먹고 던”(「북해어」)져지는 등 이리저리 움직이며 세계와 부딪는다. “생각의 조각들”이 “사방으로 터져 나”(「미래 중독」)가듯, “너의 말 속에서” ‘너’가 “매번 깨”지듯, 돌은 “쿵, 어둠 속으로 떨어”져 “오직 깨지면서 자신의 바닥을 고백”(「토키 영화」)한다.

미래는
공중에 숨어 있던 포물선을 잠시 보여주고 떨어지는 돌멩이의 유일한 바닥,
그곳에 쓰러져 있다
-「포인트 니모」 부분

‘돌’은 “몸에서 잠을 꺼내”고 “잠에서 꿈을 꺼내 뭉쳐놓은 것”(「광주」)이므로, 그것이 고백한 밑바닥에는 미래가 있을 것이다. 미지의 영역에 뉘어 있는 진짜 미래, 아무도 닿지 못하는 먼바다 복판의 지점 ‘포인트 니모(Point Nemo)’가 그곳에 있을 것이다. 산산이 부서지며 ‘발화(發話)’를 시작한 돌은 이내 제 “유일한 바닥”에서 ‘발화(發火)’하며 빛이 된다. 돌이었을 때 유리(琉璃)를 “와장창” “깨뜨”렸던 것처럼, 빛은 “통과할 때마다 매번”(「여성안심귀갓길」) 유리(遊離)를 깨뜨리며 “슬픔을 빼앗”(「광주」)는다. “바닥에 던져진 별빛”은 그렇게 가장 낮은 곳에서 “서로의 슬픔을 끌고”(「우금치」) 바다로 간다.









남겨두고 싶은 순간들

박성우 저 / 11,000원 / 창비

 
 
“그대에게 빈틈이 없었다면
나는 그대와 먼 길 함께 가지 않았을 것이네”

누구에게나 오래도록 남겨두고 싶은 순간이 있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아름다운 마음들
 

백석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윤동주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서정시의 거장 반열에 오른 박성우의 신작 시집 『남겨두고 싶은 순간들』이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사람살이 본연의 리듬을 창출해내고 이제는 희귀해져버린 토박이의 삶과 언어를 새롭게 발견”했다는 평을 받은 백석문학상 수상작 『웃는 연습』(창비 2017) 이후 7년 만에 펴내는 다섯번째 시집이다. 백석의 향토성과 서정성을 계승하면서도 세심한 감수성을 동원해 다양한 공동체적 양식을 살피는 시인의 눈길은 한층 넓고 깊어졌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오래 간직하고 싶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시인의 말)을 되살려 도시살이와 시골살이를 오가는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 덕분에 전통적 서정의 아름다움이라는 미덕을 지니면서도 무한경쟁의 쳇바퀴를 살아가는 지금 시대를 날카롭게 묘파해냄으로써 전 세대를 아울러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들이 풍성하게 채워질 수 있었다. 영화감독 이창동은 추천사에서 “말을 넘어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는” 이 시집은 “시는 쓰거나 읽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는 깨달음 준다”고 적었다. 사소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만은 아닌 순간들”(시인의 말)이 나에게도 꽤 많이 있음을 문득 알게 될 때 얻는 위로가 오래도록 따뜻하다.


시인이 채집한 마음들
아직 이 세상이 살 만하다는 증거

박성우의 시는 언제나 쉽고 편안하다. 시를 처음 접하는 이들도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사람살이의 온기가 흐르고 언젠가 살아본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특히 시인이 펼쳐놓는 선한 마음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문득 그런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마음이 과거 사회에 대한 향수나 지금은 사라진 따뜻한 정(情)에 대한 동경이 아닌지. 그러나 시인이 이끄는 손길을 따라가다보면 그러한 의심은 불식된다. 가령 이러한 장면들을 살펴보자. 이 시집 안에는 “혹시라도 내릴지 모를 비”를 걱정하여 “택배 상자를 방수지에 꼼꼼하게도 싸서 처마 밑에 모셔두고”(「정읍 칠보우체국 우체부 셋」) 가는 세심한 마음이 있다. 십여년 동안 일하다 그만두게 된 아파트 경비 어르신을 “한번 안아봐도 돼요?”(「방문」) 묻고 안아드리는 시인의 마음도 있다. 이는 시인이 직접 경험한 다음 시로 옮겨놓은 마음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말하자면 이 시집 곳곳에 펼쳐진 아름다운 마음은 시인이 여기저기서 채집한 것이자, 아직 이 세상이 살 만하다는 증거들이다.
이러한 마음은 관계로 이어진다. 이 시집 안에 등장하는 다양한 관계를 살펴보는 일은 그 자체로 흐뭇하다. “잠깐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어느새 “유치원생”에서 “중학생”이 되어버린 “딸애”(「잠깐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와의 일화들을 살펴보는 일은 잔잔하게 가슴을 데운다. 늦은 밤 노모가 책 읽는 소리를 듣는 장면(「드키는 소리」)이나, “얼떨결에” 받은 연극 “초대권 두장”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바쁜 시간을 쪼개 아내와 뜻밖의 데이트를 나서는 장면(「연극」) 등을 보다보면 독자들도 어느새 나의 가족을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관계는 가족 안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웃, 길 가다 스친 사람, 심지어 “먹을 걸 내놓으라” 조르는 고양이(「오후 세시」)까지 시인은 정성을 다해 마음을 나눈다. 이러한 관계가 박성우 시 특유의 자연스러운 입말과 어우러져 시 한편 한편은 마치 드라마처럼 독자들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우리가 이 시집에서 마주하는 것은 “지금 이곳에 깃들어 있지만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삶의 방식, 드물지만 엄연히 실재하는 다른 삶의 가능성”(해설, 오연경)이다. 외로움, 억울함, 분노가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곁에 누군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 힘들다. 『남겨두고 싶은 순간들』은 그런 아픈 등을 도닥이며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고,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과 기쁨”(시인의 말)이 된다고, 그러니 주위를 둘러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박성우의 시는 시종일관 공동체를 지향한다. 그 따뜻함이 “더 나은 삶의 씨앗”(해설)이 된다.










기술자들

김려령 저 / 15,000원 / 창비

 
 
 
누구에게나 잡스럽지만 든든한 비장의 무기가 있다!
소박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김려령식 이야기의 힘찬 도약
우리 모두의 인생에 부치는 각별한 격려와 응원
 
메가 히트작 『완득이』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은 데 이어 『우아한 거짓말』 『트렁크』 등 문학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작품을 잇달아 펴내며 전세대를 아우르는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는 작가 김려령의 신작 『기술자들』이 출간되었다. 청소년 소설의 외피를 지닌 『샹들리에』(창비 2016)를 제외하면 처음 선보이는 본격 소설집으로, 8년간 모아온 작품들을 엮어 더욱 큰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평범한 개인과 가족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시대 다채로운 삶의 풍경을 소담하게 담아낸 이번 책에서도 경쾌한 묘사와 매력적인 인물, 상투를 거부하는 서사로 사랑받는 김려령의 ‘이야기꾼’ 면모는 확연하다. 또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상식이나 제도에 질문을 던지며 물밑의 갈등을 거침없이 드러내온 전작들처럼, 이번 소설집의 도식적이지 않은 가족서사들은 삶과 관계에 대한 굵직한 고민의 궤적을 남긴다. 유사 가족이 된 두 중년 기술자의 동행, 부모가 자식 등골 빼먹는 ‘불량 가족’, 다 자라고도 ‘어른 아기’처럼 부모에게 기생하는 자식 등 파격적인 한편 너무도 그럴 법한 이야기들은 가족이라는 타인을, 또 낯선 나 자신을 새로운 관점에서 돌아보게 만드는 한편 모두가 각자의 앞에 놓인 삶을 충실히 살아내도록 다독인다.

너무 늦었다고,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할 때
바닥에서 시작되는 조금씩 채워가는 이야기

표제작 「기술자들」은 “당장의 일이 곧 본업”인 떠돌이 노상 기술자들의 이야기다. 베테랑 배관공 ‘최’는 팍팍한 현실에 집도, 가게도 정리하고 유일한 자산인 승합차에 모든 살림을 챙기고 유랑을 준비한다. 마지막 의뢰를 시공하러 가는 길에 만난 떠돌이 ‘조’도 최의 방랑길에 얼렁뚱땅 합류한다. 정처 없이 다니며 노지에서 차박하는 고단한 삶이지만 손발이 척척 맞는 최와 조는 자잘한 의뢰를 받아가며 생활한다. 일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가끔은 좋은 일도 생긴다. “오늘만 같아라”라고 중얼거리는 날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이보다 더 진정성 있게 그릴 수 있을까. 성실하게 일상을 일구는 두 콤비의 투박한 우정이 촉촉하게 마음을 적신다. 배관이며 실리콘, 줄눈, 타일처럼 “작지만 정확한 세상의 노동”을 통해 “작은 균열을 둘러싼 세목에 충실하려”(해설, 정홍수) 하는 김려령의 따스한 시선에서 우리는 일상 속에 숨겨진 많은 삶의 ‘이유’들을 발견하게 된다.
지나간 상처를 딛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묵묵한 감동은 「오해의 숲」에서 좀더 극적인 반전과 함께 그려진다. 직장에서 퇴사하는 날, 손절한 동창이 같은 회사에 입사해서 마주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도,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자신이 모난 성격 탓에 ‘폭탄’ 취급받는다 생각한 재영의 상처는 악연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우연으로 마주한 증언자 하윤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재영은 대체 무슨 억측과 망상을 하며 살아온 걸까? 한순간의 오해를 이용해 갈등의 심화와 해결을 동시에 꿰뚫는 플롯은 과감하고, 그 과정에서도 해소되지 않은 상처의 그늘까지 놓치지 않는 감각이 미덥다. 모두 각자 오해의 숲을 헤매며 사는 동안 내리는 판단의 무게를, 그럼에도 새로운 생의 서막을 마주하는 벅찬 설렘과 용기를 작품 속에서 느낄 수 있다.

“한번 틀어진 가족은 절대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요동치는 가족 현실과 흔들리지 않는 중심

이번 책에서는 개성적인 가족 이야기들이 특히 흥미롭다. 삶에 대한 일면적이지 않은 이해에서 발원해 이야기의 ‘패턴’을 파훼하는 작가의 면모가 빛을 발하는 대목들인데, 이런 다종다양한 가족들의 모습은 낯선 전개와 파격적인 결말로 몰아치며 독자의 마음에 강렬한 파장을 남긴다. 한편의 ‘매운맛’ 흙수저 잔혹사 「세입자」의 주인공 ‘나’의 부모는 과거에는 중학생이던 ‘나’의 알바비로 생계를 꾸렸고 지금은 수술비를 명목으로 호시탐탐 ‘나’의 월급을 노린다. 장녀의 등골을 빼먹으려 작정한 전형적인 ‘불량 가족’으로부터 탈출하듯 집을 나와 반지하방을 전전하던 ‘나’에게 어느 날 서울의 아파트에서 저렴한 월세로 살 기회가 찾아온다. 해외근무로 집을 비운 집주인이 싼값에 월세를 내놓은 것. 집 일부만 사용할 수 있는 셋방살이지만 주인 없는 멀쩡한 아파트에서 살며 처음엔 그저 행복했다. 하지만 악착같이 자신을 찾아오는 가족의 마수를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셋방살이도 생각보다 설움이 지독하다. 베일이 덮인 명품 가구들, 세입자는 이용할 수 없는 편의시설들은 비참한 처지를 매순간 일깨운다. 심지어 멀쩡한 듯하던 집주인에게서도 알고 보니 불량 가족의 사정이 자리해 있다. 온통 함정과 기만이 도사리는 이 집에서, 지긋지긋한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자식을 미워하는 어머니의 지극히 합당한 사정도 있다. 「황금 꽃다발」의 팔순 앞둔 노모는 부모에게 얻을 것 다 얻어내며 자라 성공한 삶을 살면서도 이른바 ‘흙수저 마케팅’으로 돈과 명예를 좇는 큰아들에게 더이상 줄 사랑이 없다. 대신 손대는 일마다 시원치 않지만 묵묵히 형 뒷바라지하며 소박한 행복을 가꾸는 막내에게 그녀의 사랑이 향한다. 집 안 청소를 하며 ‘희생자’로서 살아온 과거와의 이별을 선언하는 「청소」의 주인공은 비슷한 듯 다른 길을 걷는다. 홀로 일하며 자식 둘을 헌신적으로 키워온 ‘그녀’는 자신을 하인 부리듯 하찮게 사용하며 존중이라곤 할 줄 모르는 자식들을 미워하진 않는다. 다만 일주일간의 대청소를 통해 “다 닦고 다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긴 채 미련 없이 자식들을 떠난다. 부모를 욕보이며 없는 가난을 지어내는 아들의 무도한 행태도, 당당하게 편애를 선언하는 솔직한 모성도, 홀가분하게 자식을 떠나 뒤돌아보지 않는 결단도 가족 이야기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소재다. 하지만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당당한 선택을 내리는 인물들 앞에서 옳고 그르고의 판단은 힘을 잃게 된다. 각자의 삶을 일구어가는 이들을 응원하고 싶어질 뿐이다.

우리 시대 삶의 모습을 오롯이 담은
‘투명한 가벼움’의 예사롭지 않은 경지


“작가의 현미경에 포착된 우리 삶이란 게 그 얼마나 많은 실핏줄 같은 이야기의 줄기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인지, 새삼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추천사, 공선옥)는 표현처럼, 이번 작품집에서 일상적인 소재에서 시작된 이야기들이 내밀한 삶의 중핵으로 천연덕스럽게 돌입해가는 치밀함과 돌파력은 압권이다. 보잘것없던 일상의 디테일도 김려령의 렌즈를 거치면 달라진다. 삶의 중대사라 믿어온 것들이 한순간에 조각나고, 잊고 있던 잡동사니가 반짝이며 변화를 몰고 온다. 「뼛조각」의 주인공 수원은 우연히 자신의 무릎 옆에 작은 뼛조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상생활에 별 지장은 없지만, 지금 수원에게 이 뼛조각은 심각한 문제(여야만 한)다. 인턴기간이 끝나가도록 정직원으로 전환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차마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던 차에 때마침 무릎에 염증이 생긴 것. 수원은 수술을 핑계로 당당히 사직서를 내고 안 해도 될 뼛조각 제거 수술을 강행하는데, 그런 엄살을 응징하듯 입원 기간 내내 숱한 위기가 닥친다. 아버지는 간병인으로 묵묵히 수원을 돌본다. 왜 수원의 청춘은 뼛조각처럼 성가신 취급만 받는가. 늘 핑계만 대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왜 아무 말이 없는 걸까. 철없이 서러운 청춘과 그런 아들을 보듬는 아버지의 모습이 애달프게 우리 가슴을 흔든다.
가족 문제를 둘러싼 의견 차이로 이별하는 연인 이야기를 다루는 「상자」는 갈등 자체보다도 갈등으로 촉발된 성찰과 성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나’는 오랜 연인 ‘상우’로부터 어처구니없는 이별 통보를 받았다. 엄마가 33년간 보관한 상자 속 ‘나’의 어릴 적 유아용품들을 보더니, 이걸 여태 간직한 엄마와 ‘나’의 관계가 소름끼쳐서 더는 못 만나겠다는 것. 이 정 떨어지는 이별 사유에 마음은 미련 없이 정리됐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상우의 반응은 지나치다. 남의 끈끈한 가족애를 그렇게 폄훼하다니. 더 분한 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정말 우리 가족이 유난인 것일지도,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어리광만 피워온 어른 아기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상자를 정리하며 상우와의 관계도,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온 의존적인 삶도 버리겠노라 마음먹는다.
경쾌한 보법으로 불필요한 갈등이나 감정 소모를 뛰어넘으며 인물 내면의 성찰에 집중하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우리는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감춰져 있던 속마음들을, 엉망진창으로 꼬여버린 관계의 해법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잊고 있던 소중한 무언가를 끝내 발견하고야 만다. 힘주지 않아도 유려하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문학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가, 김려령이 다다른 더 넓고 밝은 지평이 이번 책에서 약연하다. “개개 인물의 목소리와 그들의 ‘잡다한’ 시간에 충실하면서”(해설) 앞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는 이야기들에 발걸음을 맞춰보자. 김려령만이 보여줄 수 있는 소박하게 사랑스러운 감동이 찾아와 당신과 동행할 것이다.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

이반지하 저 / 18,000원 / 창비

 
 
 “모든 발을 헛디디고 있으면 결국 그것도 걸음걸이가 된다”
박탈당한 공간에서 생존하고 활약해버린 이반지하의 말들
각종 매체를 넘나드는 현대미술가이자 퀴어로서 분투하는 글쓰기를 선보이며 독보적 영역을 확보한 작가 이반지하의 세번째 단독 저서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가 출간되었다. 특유의 유머와 통찰이 담긴 퍼포먼스, 끊임없이 정상사회와 대결하는 예술행동으로 행보마다 주목을 모으는 그가 이번에는 ‘공간’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아무리 벗어나고 뛰쳐나와도 우리는 여전히 ‘공간’ 안에 있지만,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그곳에서 배제된다. 나쁜 장애인은 지하철을 박탈당한다. 성소수자 청소년은 학교를 박탈당하며 평범한 시민조차 공공도서관을 박탈당한다. ‘빈곤의 공간’과 ‘공간의 빈곤’이 만연한 사회에서 예술가 이반지하는 어떻게 자신만의 공간을 창출해왔을까.
 
서울시의회, 도서관, 대중교통 같은 공공의 공간부터 편의점, 스타벅스, 압구정 부촌의 목욕탕, 웨딩홀 등 사적 일상이 와글거리는 공간까지. 한껏 그를 밀어냈지만 결국은 예술가 이반지하에게 다시금 점거당할 수밖에 없었던, 오히려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사회의 구석구석을 말한다. 세상의 모든 ‘공간 상실자’들에게는 위안과 웃음, 용기를 전하는 한편, 우리가 박탈당한 공간을 특유의 신랄하고 자유분방한 문체와 삽화로 점거하고 재창출해버린다. '퀴어 예술가'이자 '노동자'로서 공간 속에 녹아들고 어느새 침투해버리는 자, 공간 빈곤과 차별의 세계에서 날카로운 생존자로 활약하고 어떻게든 침투하는 자, 이반지하의 치열한 자기이론적(autotheory) 기록이 여기에 있다.


“공간 선생님, 어디 계세요? 왜 아무 데도 안 계세요?”
퀴어 예술가가 대면한 상실의 공간들을 탐구하다

“나, 평생을 집에서 도망치며 살고 있나.”(9면) 이반지하는 이런 질문으로 책의 서두를 연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속한 곳에서 매번 멀리 달아나야 하는 현실을 이제는 멈춰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퀴어 예술가이자 노동자, 일인 생활자로서 살아간다는 건 사방에서 비수처럼 날아오는 혐오를 견뎌내는 일인데, 살뜰히 준비해 먼저 쳐들어가거나 여유있게 살 곳을 골라내지 못하고 매번 끼어버리고 떠밀려나서 수비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자각에 이른 것이다. 이런 자각은 그가 지나온 공간들에 대한 회고와 각성으로 확장되는바, 이 책은 아무리 속하려 해도 속할 수 없는 자기 삶을 매번 시험대에 올리며 사는 사람, 이반지하의 치열한 공간점거기다.
이반지하는 ‘끼어버리다’(1부) ‘밀려나가다’(2부) 그리고 ‘헛걸음도 걸음이다’(3부)라는 말로 자신의 삶을 삼등분한다. 공간에서 끊임없이 배척당하는 존재의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아슬아슬한 희망을 적극 언어화하기 위해서다. 공간을 바라보는 그의 시야는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을 역동적으로 오간다. 자신의 방에서 시작해 편의점에서 목욕탕으로, 카페에서 야구장으로, 공공도서관에서 결혼식장으로, 쉼 없이 이동하고 훌쩍 뛰어넘는다. 자신에게 슬픔이나 분노, 소외감을 안겨준 공간을 스스럼없이 대면하는 이반지하의 글에서는 오갈 데 없는 청소년의 얼굴, 성별 이분법에 충실한 옷들로 채워진 옷장 앞에서 적절한 자기 옷을 찾지 못한 젠더퀴어의 얼굴, 상대적 빈곤에 허덕이는 청년의 얼굴, 지하철에서 투쟁하는 장애인 전사들의 얼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공 도서관과 화장실을 빼앗긴 평범한 시민들의 얼굴이 보인다.

사회가 우리를 공간에서 밀어낸다면
나, 이반지하가 그 공간을 점거해버리겠다


어느날 이반지하는 헤테로 결혼식에 사회자로 정식 초대를 받았다. 결혼 당사자인 신부로부터 ‘아버지’(이반지하의 팬들은 그를 이렇게 부른다)라는 칭호로 불리지만 예식장에 홀로 서 있는 그는 옷차림부터 낯선 존재다. 부모, 친척, 교회 지인들로 점철된 헤테로 대화합의 장이자 정상사회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이런 감각을 느낀다. “나는 어느 사진에 껴들어도 혼자 오려내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260면)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함께해준 이들과 감사와 응원, 애정 어린 축하를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이 통속적인 감동을 느낄 권리를 갈구하는 성소수자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한다. “꼭 필요하거나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은 아니지만, 없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다.” 성소수자뿐 아니라 헤아릴 수도 없는 이유로 사회의 일반 범주에서 비껴나간 소수자들은 ‘일반’이나 ‘정상’이 아니기에 평범한 공간과 불화하고 부대낀다.
이반지하는 이런 불화의 감정을 섬세하게 끌어 안고, 세상에 산재한 공간 상실자들에게 공감하며 묻는다. “당신을 내버려두는 곳이 당신들에겐 있는가. 어중되고 속하지 못한 마음을 내버려두는 곳은 학교에도, 하다못해 한강공원 벤치에도, 어디에도 없던데. 나는 걸음마다 쉬었다 갈 곳이 필요하던데. 아무나 앉아도 되는 빈 테이블과 의자는 생각보다 흔한 것이 아니던데.”(247면) 우리가 정말로 ‘우리를 내버려두는 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 공간은 어떤 모양일까. 그곳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는 누구나 속해 있지만 좀처럼 속하기 어려운 ‘공간’이라는 키워드를 던지며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계급과 빈곤, 젠더와 권력의 문제를 생생하게 묘파한다. 당신이 이 책을 어느 퀴어 예술가의 자전적이고 수다스러운 넋두리로만 읽는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빈곤의 공간’과 ‘공간의 빈곤’이라는 문제를 눈앞에서 놓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제대로 읽는다면 사방천지를 넘나들다가 어느새 훅 들어오는 이반지하의 일갈에 몸과 마음을 점거당할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레이디스, 테이크 유어 타임

박문영 저 / 16,000원 / 문학과지성사

 
 
“당신에게 에버그린을 선사합니다.
오늘보다 더 젊게 새로 태어나세요”

신기루와 신기술 사이에서
혼자서도 완전한 내일을 꿈꾸는 여성들의 연대
2013년 큐빅노트 단편소설 공모전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문영의 여섯번째 장편소설 『레이디스, 테이크 유어 타임』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올해로 데뷔 11년이 된 작가는 그간 활발한 작품 활동은 물론, 중편 「사마귀의 나라」로 제2회 SF어워드 중·단편 부문에서 대상을, 『지상의 여자들』로 제6회 SF어워드 장편 부문에서 우수상을 거머쥐며 박문영식 SF 세계를 증명해왔다. 『지상의 여자들』은 “이 낯선 시대정신이 어떤 속도로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거울상 같은 작품”(SF어워드 심사위원 이유미)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는데, 이처럼 그는 사회 이슈, 특히 젠더적 갈등과 환경문제를 공상과학적 배경과 결합하는 문학적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 중인 만큼 그림을 보는 듯한 생동감 있는 언어와 입체적인 인물 묘사가 작품으로의 몰입력을 높이며 다양한 독자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번 신작에서 작가는 완경 이후 중노년 여성의 신체를 강화시키는 호르몬 치료 및 최신 나노봇 수술이 가능한 세계를 그린다. 남편의 아내로서, 애인의 여자친구로서, 아들의 엄마로서 남성에게 헌신하고 의지해온 육십대 전후의 여성에게 초인에 가까운 물리력이 주어졌을 때 그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노화로 쇠약해진 여성들이 삶의 새로운 동력을 발견하고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새로운 연대를 이루는 밝은 내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 소설을 읽고 한 가지만은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SF 작가들의 소설적 상상력에 불이 붙는다.
-권김현영(여성학자)

“아직은 괜찮다고, 우리는 더 괜찮을 수 있다고”
자유를 열망하는 여성들에게 건네는 명랑하고 다정한 실험


『레이디스, 테이크 유어 타임』은 총 세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레이디스’는 소도시 ‘영청’에 사는 중장년 여자들의 일상과 삶의 고민을 들여다본다. 여성 코미디언 출신 노보금은 은퇴 후 방송국에서 최대한 먼 곳을 찾다 영청에 정착해 2년째 거주 중이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 저녁마다 시장 광장에 울려 퍼지는 댄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시니어 여성들을 목격한다. “홀로 고요하게 지내고 싶”(p. 16)어서 거처를 옮겼으므로 보금은 함께 춤추자는 이웃의 권유를 한사코 거절한다. 그러다 결국 이웃 주민 성만옥, 자연주의 소모임인 ‘들쭉’ 대표 마종은과 함께, 소음에 거세게 항의하는 빌라 3층 여자를 찾아가 양해를 구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들쭉’의 일원이자 이름의 끝 자를 따 만든 ‘금은옥 자매’의 맏언니가 된다.
소설 속 에코 페미니즘 계열의 비영리 여성 소모임인 들쭉의 회원들은 여성과 소외 계층,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활동에 앞장서면서 자신의 내면을 읽고 스스로를 지키는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들쭉의 대표로서 관리와 홍보 업무까지 맡고 있는 마종은은 내면이 단단한 사람인 듯 보이지만 사실 “언제나 다리 높이가 맞지 않는 의자에 앉은 기분”(p. 40)으로 살아간다. 과거 유학 중이던 아들이 결혼하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아직까지 손주를 보지 못했고, 남편과 아들 내외는 한집에 살고 있어도 각자 일하는 시간이 달라 겸상조차 하기 힘들며, 자기주장이 강한 며느리 유구희와 제멋대로인 아들의 비위를 맞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카페 ‘만춘’에서 일하는 시니어 바리스타 성만옥 역시 남편이 있지만 남편이 함께 일하던 공장에 불을 지르는 장면을 목격한 후로 별거 중이고, 딸 고지나는 그런 만옥을 원망하는 신산한 삶을 살고 있다. “불을 지르고 싶은 사람과는 살 수 있어도 불을 지른 사람과는 살 수 없”기에 결정한 일이지만 그의 가슴 한구석에는 남편에 대한 깊은 원망과 상처가 깊다.
만옥의 딸 지나 역시 남성과 행복하지 않은 연애를 하며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 남자친구가 원하는 것을 기어이 들어줘야 하고 그의 압박에 순응하며 감정을 공감받지도 못하는 연애를 지속해야 할지 망설이던 때, 광고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레이디스, 테이크 유어 타임!”(p. 75).

“저기, 선생님, 체력이 정말 좋아질 수 있나요? 진짜 젊어지는 게 맞아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레테타는 단순한 미용 시술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근력, 유연성, 민첩성, 지구력, 순발력 모두 완경기 이전으로, 아니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수준으로 강해질 수 있죠.”
“사람 뼈가 어떻게 강철처럼 튼튼해질 수 있어요?”
“우리가 흔히 접했던 임플란트와 인공관절 수술이 비약적으로 발전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나노봇 의료 기술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수술이에요. 게다가 에리카늄을 능가하는 신소재 아크라늄은 인체의 골밀도 상태와 흡사하고 부작용이 거의 없죠.”
“왜 육십대, 칠십대 여성만 대상인가요?”
“완경 이후 쇠약해진 신체에 최적화된 치료니까요. 레이디스, 테이크 유어 타임. 말 그대로 여성분들에게 시간을 돌려드리는 수술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시간을 누리시라고요.” (pp. 81~82)

2부 ‘테이크’에서는 레테타 수술이 영청에 상륙한다. 수술 후 부작용에 대한 우려, 비판적인 사회의 시선, 레테타 반대 시위 집회로 어수선한 가운데 수술을 받기로 결심하는 노보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무료 임상 시험 첫 시범지가 된 영청 시내 구석구석에 혈관과 관절을 바꿔주는 레테타 홍보 전단지가 배포되고, 회춘을 너머 초인이 되는 것은 물론 무혈 월경까지 거론되면서 레테타 수술은 국민적 화두가 된다. 이 혼란 속에서도 수술을 받은 여성과 받지 않은 여성은 서로가 어떤 마음으로 수술 여부를 선택했는지 이해한다. 남성과 가족 또는 업무적으로 얽혀 지내다 저마다의 아픔을 얻고 늙어간 사람들이므로, 금은옥 자매와 들쭉 회원들을 비롯한 영청시 여성들은 서로를 응원하고 또 지킨다.
3부 ‘유어 타임’에서는 레테타 수술을 받은 여성이 ‘야간 자율 수색대(야자수)’로 활동하는 등 초인이 된 이후의 세계가 펼쳐진다. 야자수의 임무는 밤의 시내를 순찰하며 위험에 빠진 사람이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불법 주차 차량을 번쩍 들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가 하면, 취객 남성을 가뿐히 들어 고깔 모양 주차 금지 표지판 안에 넣어버리기도 하는 그들은 뼈가 부러질 정도의 충격에도 끄떡없다. 이 세계에서 여성들은 새롭게 주어진 강력한 힘 못지않게 단단한 연대를 통해 각자의 삶을 불행에서 행복 쪽으로 밀어 보낸다.
『레이디스, 테이크 유어 타임』은 단지 여성적 관점에서 성차별의 현주소만 다루는 소설이 아니다. 레테타라는 상상력을 빌려 여성에게 완벽한 자유를 부여하는 실험이고, 영청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견고한 여성 연대를 구축해 나이 들며 잃어버리기 쉬운 사랑과 온기를 복원하는 이야기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소재임에도 그동안 발표한 작품 중 “가장 밝고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작가의 말처럼, 한계 속에 놓인 모두에게 따뜻한 용기와 긍정의 가능성을 선물한 레테타 수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이 책은 독자에게 밝고 유쾌한 위로가 될 것이다.











조금씩 몸을 바꾸며 살아갑니다

이은희 저 / 15,000원 / 문학과지성사

 
 
 
춤추고 요리하는 스마트 의족과 의수에서
‘아이언맨’의 기계 슈트를 입은 강화 인간까지,

인간의 한계를 넘어
보다 인간적인 삶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몸과 테크놀로지의 결합
우리 시대 최고의 과학 커뮤니케이터 하리하라가 들려주는
친절하고 재미있는 내 몸 교환 설명서


우리 시대 최고의 과학 커뮤니케이터 하리하라 이은희의 신작 『조금씩 몸을 바꾸며 살아갑니다-현대 과학이 알려주는 내 몸 교환법』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저술과 강연, 방송,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현대 과학의 이슈와 쟁점을 일상의 언어로 알기 쉽게 소개해온 저자 이은희는 이번 책에서 인간이 발명해낸 가장 멋진 발명품 ‘제2의 몸’에 대한 놀랍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등록장애인은 264만 2,000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5.1퍼센트를 차지하며 이 중 65세 이상 장애인 비율이 53.9퍼센트에 이른다. 고령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노년층 인구 비율이 지속적인 증가세에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 선천적 장애를 비롯해 질병이나 뜻밖의 사고로 겪게 되는 후천적 장애 외에도 노화라는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에 도전하는 인류에게 이 책의 제목 “조금씩 몸을 바꾸며 살아갑니다”가 의미하는 현실은 더 이상 남의 일도 먼 미래의 꿈같은 이야기도 아니다.
이 책은 이렇듯 질병이나 사고, 노화 등으로 인해 우리가 살면서 잃거나 부족해진 부분들을 어떻게 메우고 보강하여 인간답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몸’의 이상이나 변화로부터 일어나는 건강상의 위험 혹은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시도된 다양한 의학적·신체적·기능적 노력에 집중해 소개한다. 저자는 먼저 사람의 몸을 이루는 주요 기관의 특징과 역할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러한 기능에 심각한 손상을 입거나 영구적 장애가 생겼을 때 현대 과학이 어떻게 대응해왔는지를 역사적으로 훑어보는 한편, 최신 과학기술의 눈부신 성과에 이어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인간을 향한 전망까지 두루 아우른다.
인간이 발명해낸 가장 멋진 발명품인 ‘제2의 몸.’ 이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만큼이나 과학기술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지만, 저자 이은희는 “어쩌면 인간다움이란, 자연이 부여한 조건 속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일일지도” 모르며, “그렇다면 우리 몸이 상처 입고 기능을 잃었을 때 그걸 대신하는 방법들을 다양하게 찾아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행동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병들고 다친 몸을 보완하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때로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때로는 막다른 벽에 부딪혀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수많은 목숨을 구하고 인류에게 더 나은 삶을 선사할 수 있었음을 이 책은 다양한 사례 및 구체적 자료를 들어 생생하게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몸, 그 몸을 조금씩 바꾸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독서와 함께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인간이 발명해낸 가장 멋진 발명품
‘제2의 몸’에 대한 놀랍고도 흥미로운 이야기


본명 이은희보다 ‘하리하라’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저자는 신화에서 발견한 36가지 코드를 생물학적 시각으로 풀어낸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를 첫 책으로, 다수의 과학 교양서를 활발하게 펴내며 과학 도서의 대중화를 이끈 선두 주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해왔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과학 지식을 콕콕 짚어내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흥미롭게 풀어내는 저자는, 이 책 『조금씩 몸을 바꾸며 살아갑니다』에서도 ‘우리 몸과 테크놀로지의 결합’이라는 최첨단 이슈를 청소년과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친절하고 재미있게 소개한다.
먼저 인간 감각 인식의 80~85퍼센트를 차지하는 시각(눈)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심장과 혈액, 손과 다리, 청각(귀)과 후각(코), 폐와 신장, 자궁과 피부, 마지막으로 털에 이르기까지 인체를 구성하는 주요 기관의 특징과 역할을 개괄한 다음, 질병이나 사고, 노화 등 여러 이유로 그 기관들이 손상되거나 기능을 잃었을 때 과연 인류가 어떻게 대처하고 대안을 마련해왔는지를 재미난 의학의 역사와 함께 큰 틀에서 조망한다. 예를 들어 현대인이 가장 많이 받는 수술 1위에 꼽히는 백내장의 경우, 고대로부터 가장 많은 실명의 원인이었으며 고대 이집트 벽화에도 백내장 시술이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를 끈다. 그 밖에도 새로운 다리의 실마리를 돼지에게서 얻었다거나, 한번 손상되면 회복되지 않는 시력이나 청력과는 달리 냄새를 지속적으로 맡았을 때 후각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 등 생물학에 기반한 유용하면서도 쓸모 있는 과학 지식이 책에 가득하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과학기술의 놀라운 최신 성과들을 짚어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잃어버린 청력을 되살려주는 인공 와우의 개발이라든가 인간의 다리나 손 못지않은 기능을 장착한 스마트 의족과 의수, 원래는 화상을 비롯한 피부 손상 환자들의 치료용으로 개발되었지만 동물실험에 희생되는 동물들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게 된 인공 피부의 개발 등이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아직은 연구 단계에 있지만 약 25만 명에 달하는 난임 부부를 위한 인공 자궁, 해마다 국내에서만 1만 5,000명 넘게 발병하는 만성 신부전 환자를 위한 인공신장의 개발도 머지않았음을 독자들은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딩동♫~
“주문하신 몸이 배달 완료되었습니다”


우리 몸과 테크놀로지의 결합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 보다 인간다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인류의 발걸음을 일목요연하게 써 내려간 이 책은, 과학기술에 대한 희망찬 전망과 더불어 그 이면에 숨겨진 부작용과 문제점 또한 놓치지 않고 성찰한다. 몸을 보완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는 의학과 과학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고, 법적 문제를 포함해 사회적·윤리적·문화적 측면까지 아우르며 우리 삶 전반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시선은 아직까지도 차별과 구분 짓기를 동반하기 일쑤다. 저자는 책의 「들어가며」에서 “이러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 행동이 상처 입고 손상된 몸을 가진 이들을 열등하거나 모자라는 듯 바라보는 시선과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다. “진짜 인간다움이란 인간이 스스로의 두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실현하도록 노력하는 것이지, 그렇게 찾아낸 결과로 서로를 차별하고 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과학기술의 발전 외에도 다양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함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다리가 불편한 이들에게 스마트 의족이나 착용 로봇을 장착해줄 수도 있지만, 휠체어가 다니기 쉽도록 길가의 턱을 없애고 여닫이문을 미닫이 자동문으로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고가의 신약이나 보장구를 누구나 돈 걱정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보조금 지원이나 무상 대여 시스템과 같은 정책도 마련되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발명 촉진을 위한 지원 정책도 필수적이다. 이 책은 더 나은 과학기술의 개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다 같이 공존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모색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새삼 일깨운다.













글자들의 수프 - 셰프의 독서일기

정상원 저 / 15,500원 / 사계절

 
 
1. 출간 의의

▣ 미식가의 시대 VS 음식 문화 이해의 빈곤 시대
우리는 현재 음식 문화 컨텐츠의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 현지의 맛을 즐기기 위해 해외를 드나드는 건 그렇게 유별난 일도 아니며, 세계 어느 나라의 식재료도 맘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이제 음식에 대한 인류의 열망만큼은 국가 간의 장벽을 허물고 하나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풍요의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저마다 미식가를 자처하며 미식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음식에 대한 이해는 빈곤한 모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 맛의 원천은 잊을 수 없는 ‘이야기’
그저 한 끼 식사에 대단한 의미를 쫓아야 하는가 싶겠지만, 맛있는 한 끼를 원한다면 관심을 갖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소울푸드의 조건도 화려한 차림새나 고급스러운 맛이 아니다. 맛의 원천은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난 잊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맛있는 한 끼를 원한다면 음식 문화의 이해와 나만의 이야기를 가치 있게 만들어 가야 한다. 어쩌면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는 것은 음식에 얽힌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 인문학의 향기로 요리하는 셰프 정상원
미쉐린 셰프 정상원은 맛있고 화려한 음식을 뛰어넘어 요리에 인문학의 향기를 입혀 명성을 날렸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독서가이자 요리사였다. 라면 회사에 다니던 아버지 덕분에 집에는 항상 벌크 포장의 라면 스프가 있었다. 라면 스프로 음식의 간을 맞추던 소년은 수많은 책을 읽으며 과학과 문학 사이를 탐험했고 어른이 되자 요리사가 되었다. 그는 ‘기억의 도서관’ ‘셰프의 아틀리에’ ‘클리퍼를 든 셰프’ 등 책, 그림, 영화를 접목시켜 양식 코스 메뉴를 만들어 냈다.

▣ 맛있는 요리를 위한 탐독 여행
정상원은 늘 지적 설명을 곁들여 음식을 내어 주었고, 손님들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또 다른 영감을 남겼다. 냉철한 과학도의 시각으로 설계하여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조리한 음식의 마무리는 접시를 받아 든 손님 몫이었다. 이를 위해 정상원은 매일 밤 시, 소설, 철학, 역사를 탐독하며 독서 일기를 썼다. 이효석, 백석, 채만식, 마르셸푸르스트 등 수많은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식 이야기를 읽는 것은 물론 그 무대를 모두 여행했다.

▣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글자들의 수프〉는 정상원 셰프가 탐독 여행 중 음식과 만난 독서 일기이다. 그는 현기영과 조정래의 이야기 속에서 현대사의 가슴 아픈 밥상을 만나고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앞에서는 소세지 논쟁을 떠올렸다. 더불어 작품 속에서 나타난 음식과 관련된 희노애락을 읽으며 작가들이 표현한 맛의 원천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기록해 갔다. 그리고 우리에게 음식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이며,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 맛있는 순간,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는 일은 별것 아닌 일 같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다. 인류의 문화 곳곳에는 음식과 관련된 흔적이 남아 있고 그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문학, 역사,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음식에 맛만을 탐미했을 때 우리의 삶은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음식 문화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단맛, 쓴맛, 매운맛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스토리텔링 한다면 우리의 행복한 순간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미쉐린셰프 정상원은 요리에 인문학의 향기를 입혀 세간에 명성을 날렸다. 그는 ‘음식의 맛은 몸을 자라게 하고 책 속의 문장은 생각을 잘하게 한다. 요리사에게 주방은 언어를 배우는 학교이자 맛과 향이 저장된 도서관이다.’라고 말한다. 정상원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매일 문학, 역사, 철학에서 나타난 음식 이야기를 탐독하며 독서 일기를 썼다. 현기영, 조정래, 이효석, 로맹가리, 단테 등... 이들의 음식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모든 희노애락이 담겨 있다. 〈〈글자들의 수프〉〉는 그 이야기를 셰프만의 경험과 언어로 해석하며 쓴 독서일기이다. 정상원이 만난 음식 이야기를 천천히 음미하고 곱씹다 보면 음식 문화에 대한 이해는 물론 맛있는 상상과 행복한 생각 그리고 뜻밖의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2. 책 소개

미쉐린셰프 정상원은 요리에 인문학의 향기를 입혀 세간에 명성을 날렸다. 그는 ‘음식의 맛은 몸을 자라게 하고 책 속의 문장은 생각을 잘하게 한다. 요리사에게 주방은 언어를 배우는 학교이자 맛과 향이 저장된 도서관이다.’라고 말한다. 정상원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매일 문학, 역사, 철학에서 나타난 음식 이야기를 탐독하며 독서 일기를 썼다. 현기영, 조정래, 이효석, 로맹가리, 단테 등... 이들의 음식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모든 희노애락이 담겨 있다. 〈〈글자들의 수프〉〉는 그 이야기를 셰프만의 경험과 언어로 해석하며 쓴 독서일기이다. 정상원이 만난 음식 이야기를 천천히 음미하고 곱씹다 보면 음식 문화에 대한 이해는 물론 맛있는 상상과 행복한 생각 그리고 뜻밖의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3. 이 책의 특징

▣ 미쉐린 셰프의 해박한 음식 해석
정상원 셰프는 15년 동안 프렌치 다이닝, 이탈리안 레스토랑, 스페인 식당, 라면 전문점 등을 하며 많은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되기도 했다. 요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작품 속에 나오는 음식의 조리법과 제철 식재료에 대해 해설하여 작품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한국 식재료는 물론 서양 식재료와 와인, 맥주까지 알기 쉽게 해설하고 있다.

▣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무대를 직접 답사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해설하는 만큼 그 무대도 천차만별이다. 현기영의 제주, 조정래의 벌교, 한승원의 장흥, 정지아의 지리산 등등 다양한 지역이 등장한다. 작가는 셰프가 제철 재료를 찾아나서듯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지역을 현장 답사한 뒤 그 지역의 음식 문화와 역사까지 해설한다. 또 헤겔을 이해하기 위해 하이델베르크대학교 학생 식당을 방문하는가 하면 네루다를 이해하기 위해 남미 곳곳을 여행하며 글을 썼다. 이 가운데 그가 가장 손꼽는 곳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푸르스트가 자랐던 프랑스의 작은 마을 콩브레이다.